|
신인문학상 시부문 예심평----------------------------------------------------------------------------------------------------------
세계를 매만지는 독특한 시적 인식과
예리한 언어 감각
이번 2024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는 175명의 응모자가 880편의 작품을 투고해 주었다. 문학에 대한 깊은 열정과 열의가 느껴지는 작품이 많아 심사하는 동안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해외로부터 전해진 투고작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한 부분이었다. 먼 타향에서 모국어를 다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귀한 일이라 할 수 있으리라.
예심 과정에서는 이처럼 뜨거운 열정과 더불어 우리 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된 수련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선발하고자 했다. 시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는 시적 성실성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 시에 필요한 새로운 감각과 목소리가 무엇보다 우선되는 심사 기준이었다. 신인에게 기대되는 것은 시적 숙련도와 완성도뿐만 아니라 우리 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새로운 개성이며, 종래의 세계를 일변할 만한 저력을 지닌 낯선 목소리이다. 그러한 개성과 마주하길 바라며 예심을 진행하였고, 그 과정을 통해 11명의 작품을 추릴 수 있었다.
이선연의 「그는 서랍 속에 살고 있었다」 외 4편은 뚜렷한 이미지를 통해 시를 끌고 가는 점이 신뢰를 주었다. 또한 연속되는 시편들이 일종의 이야기를 구성하듯이 이어지며 독특한 매력을 자아냈다.
일련의 특징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를 다 읽고 났을 때, 손에 쥐어지는 것이 적다는 것이 무엇보다 아쉽게 느껴졌다.
이교진의 「앵무의 혀는 나의 혀를 닮았다」 외 4편은 언어에 여백이 많아, 시적 긴장감을 자아냈고, 적은 언어를 통해 이미지를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시란 말하지 않은 것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전하는 양식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시편들이 다소 추상적인 경향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통해 나름의 개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현숙의 「스웨터」 외 4편은 오래도록 시를 수련해 온 이의 솜씨가 엿보였다. 사물을 경유해 세계를 매만지고, 독특한 시적 인식에 도달하는 고유의 방식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며, 때로 과감하게 던지는 시적 선언 또한 시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수민의 「칼날 위에 선」 외 4편이 보여주는 예리한 언어 감각 또한 좋았다. 단정하고 가볍지만 동시에 선명하게 표현되는 세계가 상당한 신뢰감을 주었다. 작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그 예민함 또한 시인에게 필요한 미덕으로 여겨졌다.
김하원의 「고스트 스토리」 외 4편은 감각적인 언어와 개성적인 시적 주체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자유로운 발상과 상상력을 통해 시가 마주하는 세계를 거침없이 넓혀가는 점이 장점이었는데, 한편으로는 넘치는 표현력이 오히려 시 세계를 가린다는 인상을 주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김영화의 「숲 도서관」 외 4편이 보여주는 섬세한 문장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자연물과 사물을 자유롭게 매만지며, 시적 상상력을 넓혀가는 전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문장력이 미더웠고, 그 구성이 안정되게 전개되는 점 또한 그간의 시적 수련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였다.
최웅식의 「나무병원」 외 4편의 대범하고 흥미로운 상상력은 읽는 이의 흥미를 자극했다. 문장 간의 간격이 만드는 활달한 감각 또한 매력적이었다. 거침없이 전개되는 언어와 그 시적 전개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불거지는 거친 선언과 성긴 문장들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밖에 이호재의 「기다리지 않는 봄」 외 4편, 김채원의 「계절의 끝에 서다」 외 4편, 류윤하의 「주문」 외 4편, 이동민의 「판화」 외 4편, 양사강의 「모란 경전」 외 4편이 좋은 평가를 받아 예심을 통과하였다. 그와 더불어 아쉽게도 예심을 통과하지 못한 작품들 가운데도 마음에 남는 작품이 남았음을 덧붙이고 싶다. 문학의 가치란 손쉽게 우위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투고와 심사라는 형식 속에서 아쉽게 손에서 빠져나가는 작품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이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사실 또한 함께 밝혀둔다.
문학이 사소해져만 가는 요즘,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을 보여주신 모든 투고자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설령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의 형식을 갖추고 우리가 그것을 나눌 수 있는 한, 문학은 그 아름다움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시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잊지 마시기를, 그리고 계속 써나가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_ 예심 심사위원: 황인찬 김양숙 김명아
신인문학상 에세이부문 예심평------------------------------------------------------------------------------------------------------------
좋은 에세이의 기준은 무엇일까
올해로 9회를 맞이한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에세이 부문에는 총 77명의 응모자가 210편에 가까운 작품을 보내주셨습니다. 전국 각지를 비롯하여 해외에서 온 원고도 있었습니다. 보내주신 원고를 읽으며 깔깔 웃기도 했고 눈물을 조금 흘리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심사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독자가 되어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따라서 심사평을 쓰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게 느껴집니다. 많은 분께서 심사 기준을 궁금해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사실 심사 기준이란 것은 애당초 존재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좋은 에세이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기승전결이 잘 잡혀야 한다?” 이 조건을 생각하는 순간, 기승전결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혹은 그랬기 때문에) 호소력이 있는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카프카의 일기에 기승전결이 있나요? 그의 유명한 소설 『소송』은요?
“넋두리와 토로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이 기준을 제시하는 순간, 즉각 반례가 떠오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한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지하로부터의 넋두리』라고 바꿔 읽어도 달라질 게 없습니다. 자기연민이 가득한 글이 나쁜 글이라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신변잡기나 일기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일기는 에세이보다 못한 장르인 걸까요?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웬만한 소설보다 뛰어나지 않나요?
“성찰과 교훈이 담겨야 한다?” 글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면 아마 숨이 막힐 겁니다. 『지하로부터의 넋두리』를 읽고 무엇을 깨달았나요? 아무것도… 이따금 명작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아무것도 주지 않는 그들의 빈손을 우리에게 제시할 뿐입니다. 불행으로부터 반드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마당에 내놓은 고추처럼 햇볕에 말리는 과정 역시 글쓰기의 한 과정이 아닐까요. 고통에서 교훈이나 배움을 추출하지 않고 건조하기. 마당에 내놓고 잊기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값진 교훈을 주기 때문에 좋기도 합니다….)
결국 좋은 에세이의 기준이란 것을 떠올리는 순간 수많은 반례가 떠오를 뿐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무엇이 결여되어서, 혹은 이러 이래서 부족하다는 말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에세이는 어떠어떠하면 안 된다’라는 말로 에세이를 가두는 대신, 왜 당신의 글이 우리의 마음을 끌었는지, 독자의 입장에서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심사평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차성환 님의 「슬픔의 거리」 외 2편은 서두부터 눈길을 끌었습니다. 세 편은 모두 타인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조한 묘사로 일관하는 이 글은 장면을 차분히 그려보게 했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후벼파면서 쳐들어오는 글이 있다면, 가랑비처럼 젖어 들게 만드는 글도 있겠지요. 그래서 차성환 님의 글을 ‘천천히 다가오는 글들’이라고 이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눈길을 끈 또 다른 점은 문단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오토바이가 바람을 밀고 온다’, ‘바람이 유모차를 밀고 온다’, ‘어머니가 급하게 마당으로 나갔다.’ 이 문장들은 모두 한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이더군요. 시의 연 갈이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 문단 나누기는 감기에 걸린 어린아이에게 죽을 떠서 먹여주는 누군가의 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위태롭고도 단단하게 서 있는 이 문장들은 글에 여백을 주었고, 그로 인해 어떤 슬픔이 여백을 통해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오토바이가 바람을 밀고 온다’라는 문장에서는 정말 바람이 부는 듯했습니다. 재미난 점은, 이들이 하는 역할이 저마다 달랐다는 점입니다. 어떤 문장은 여백에, 어떤 문장은 장면 전환에, 어떤 문장은 감정의 고조에 기여하고 있었지요. ‘어머니가 급하게 마당으로 나갔다’라는 문장은 부연 설명 없이도 전개를 뒤집기에 충분했습니다. 차갑고 섬뜩한 바람이 부는 듯했지요. 문장을 오랫동안 홀로 놔두면 서스펜스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선생님의 글을 통해 배웁니다.
또 재미있게 읽은 글은 강민경 님의 「안면 있는 유령이 생긴다는 것」 외
2편이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면 있는 유령이란 뭘까. 글을 다 읽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게 되더군요. 더불어 선생님의 문장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는데, 그 동인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만, 강한 바람에 쓰러지는 나무들, 그럼에도 뽑히지 않는 뿌리의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 문체의 영향일 텐데,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자면 ‘나’를 ‘너’로 지칭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를 ‘너’로 치환함으로써 생기는 거리가 글과 주제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그것은 어머니를 보내는 과정에서 슬픔을 여과하기 위한 어떤 안간힘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넌지시 가늠해 봅니다. 그래서 이 글의 ‘너’에는 옅은 슬픔이 묻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떠나보낸 사람들을 앞으로 안면 있는 유령이라고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움의 새로운 방식을 알려준 강민경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들께 모두 편지를 쓰고 싶지만, 지면의 한계로 이만 말을 줄이겠습니다.
총 11명, 33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하였습니다. 김지호의 「아버지의 술버릇」, 박미림의 「뒷산 친구」, 곽민주의 「그렇게 집이 내게로 왔다」, 이다한결의 「면접관의 변명」, 차성환의 「회혼」, 조성주의 「이발소 그림 풍경에는」, 윤주연의 「단순하게」, 강민정의 「안면 있는 유령이 생긴다는 것」, 우주연의 「무꽃」, 유나경의 「사진 안부」, 김은희의 「나의 환승 연애」 등입니다. 제각각 개성과 강점이 뚜렷한 글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에세이처럼 보이지 않는 글도 있었는데, 그 글이 가진 힘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에세이라고 해서 반드시 에세이의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것도 에세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장르적인 물음을 실천하는 용기를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에세이라는 상을 머릿속에 정해놓고, 그 형식에 맞는 글을 쓰기보다는 어떤 형식이건 개의치 않고 쓴 뒤에 그걸 에세이라고 우기는 깡에서 개성적인 목소리가 분출되기도 하는구나,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습니다.
원고를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_ 예심 심사위원: 문보영 이은숙
신인문학상 시부문 본심평------------------------------------------------------------------------------------------------------------
개성적인 세계가 짙게 만발하는 꽃밭이기를
제9회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시 부문은 총 175명의 작품 880편이 응모되었고 예심을 거쳐 올라온 11명의 작품을 심사숙고한 끝에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짙고 깊은 시선으로 참신한 개성을 보여준 두 분의 작품을 각각 대상과 우수작으로 선정하였다.
먼저 임수민의 시는 ‘아름다운 세상’ 따위는 없다고 단언하는 듯하다. 표제작 「칼날 위에 선」 등을 위시한 그의 시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속에 무수한 ‘날銳’들이 숨겨져 있음을 제시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불행의 양상으로 드러나든 몇 겹의 가면 뒤에 숨은 사회구조로부터의 그것이든 그 ‘날’ 혹은 ‘각’을 향해 깊게 시선을 던진다. 가령 “그 집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수 있고/이층 벽돌집일 수도 있습니다…//선택은 당신의 몫으로 떠넘길 수 있는데/가끔은 넘기는 게 좋아서 넘기곤 했습니다.” 같은 구절에서 ‘칼날 위에서 태어’난 우리들의 운명을 개인의 몫으로 넘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장면은 이 시선이 어디까지 닿는지 잘 보여준다. “유독 사람이 많은/이곳에서 문이 열렸기 때문에/내렸습니다/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이 역 화장실의 네 번째 칸에서 ‘벌벌 떨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이지만 그 한켠에 숨은 ‘칼날’을 귀로 ‘듣기’ 때문이다. ‘물을 내리며 /이곳은 조용한 사람이 없어/손을 씻으며/시끄러운 사람이 되기로 했는데’의 여백에는 시퍼런 긴장이 깔려 있다.
「이름없는 구경꾼」도 같은 맥락이다. ‘병실’과 ‘무대’가 혼용된 우리 삶의 ‘현장’을 이색적으로 치환한 작품이다. 그러한 그의 면모는 그가 다음 문장처럼 “이름없는 전시장/나는 구경꾼을 번역하는 구경꾼”임을 자처하는 뛰어난 ‘번역자’라고 생각한다.
신현숙의 시에서 ‘시간’은 짙은 밀도를 가졌다. 「스웨터」의 물성物性에 기대어 한 가족사의 편린을 제시한다. ‘보풀’에서 ‘문’을 발견하고 기억 공간에서 먹던 겨울날의 ‘귤’을 떠올린다. ‘빨간 스웨터’를 한 번의 겨울만 입은 ‘언니’가 등장하고 그가 남긴 스웨터를 풀어 ‘장갑’을 만든 ‘엄마’가 있다. 그 장갑을 끼지 않으려고 겨울 내내 도망치는 화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훗날 이 시를 쓴 것인지 모른다. 그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새집을 짓는 손/폐허에서 돌멩이를 줍는 손을 보았다”라고 고백할 때 먼 시간에서부터 더듬어 나오는 손은 아름답다.
두 분의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 개성적인 세계가 짙게 만발하는 꽃밭이기를 기원한다.
- 시부문 본심평 : 장석남 황정산 장병환
섬세한 시각과 위트,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이번 『시와산문』 신인상 수필 부문에는 예년에 비해 많은 예비 작가가 참가했다. 본심에 11분의 응모자 작품들이 올라왔다.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예년 투고작에 비해 그 수준이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간 우리 『시와산문』의 신인상을 통해 많은 좋은 시인들이 발굴된 성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닌가 자랑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동안 투고된 작품들 상당수가 감상적인 신변잡기로 시작해서 상투적인 교훈으로 끝내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수필을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유로운 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글쓰기이다. 글로 담아야 할 주제에 있어서나 글의 형식에 있어서나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기에 이 내용이나 표현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상투적인 글이 되어 버린다. 이 상투성을 얼마나 극복했나 하는 점이 수필 심사의 가장 큰 기준이라 할 수 있다.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 중 윤주연의 「단순하게」, 김은희의 「곰신과 꽃신」, 우주연의 「무꽃」 그리고 조성태의 「이발소 그림 풍경에는」이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모두 다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무리가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지금 당장 수필 전문 문예지에 실려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중 김은희의 작품은 탄탄한 글쓰기 실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소재가 조금 진부해서 수상작에서 제외되었다.
영예의 대상작으로 우주연의 「무꽃」을 뽑기로 합의했다. 우주연의 작품은 탄탄한 글쓰기 실력과 언어구사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물을 보는 섬세한 시각이 큰 장점이다. 작가는 이런 예민한 감각으로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의미 있는 삶의 깨달음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훌륭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윤주연의 작품은 위트가 돋보인다. 이 위트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감상적이지 않은 어조로 잘 전달하고 있다. 조성태의 작품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수필 문학의 묘미를 잘 보여준 수작이다.
대상으로 선정된 우주연 그리고 우수상으로 선정된 윤주연, 조성태 세 분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훌륭한 에세이스트로서 활발한 활동 기대되는 바가 크다.
- 에세이부문 본심평 : 황정산 장석남 장병환
시부문 수상작 ------------------------------------------------------------------------------------------------------------------
<대상>
칼날 위에 선
임수민
우리는 저마다의 칼날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집을 내려다봅니다
그 집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수 있고
이층 벽돌집일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으로 떠넘길 수 있는데
가끔은 떠넘기는 게 좋아서 넘기곤 했습니다
밤마다 칼 가는 소리가 들리고
텔레비전 볼륨 소리가 높아집니다
우리는 어느 병동 앞에 서 있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의 운명을 정해줄지도 모릅니다
너는 어느 역 화장실 네 번째 칸
벌벌 떨고 있다
물을 내리며
이곳은 조용한 사람이 없어
손을 씻으며
시끄러운 사람이 되기로 했는데
그 순간 스크린 도어가 열린다
유독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문이 열렸기 때문에
내렸습니다
내렸습니다
칼날은 무뎌지고
발이 아픈 아이들은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이름없는 구경꾼
뱃가죽을 닫으면 이곳은 전시장
나를 해석하는 밤이 시작됩니다
팸플릿을 펼쳐 들고 오늘의 순서를 살펴보는 저녁
환자의 이름이 걸려 있지만
해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대 위에는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 누워 초대된 관객을 바라봅니다
이것은 하나의 행위예술일지도 모릅니다
실밥이 풀리며 안전줄을 만들고
탯줄이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발자국은 또 어떻고요
발가벗겨져도 상관없습니다
모두 나에게서 나왔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 나의 나체를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머리카락이 마르기도 전에
눈을 깜빡거리는 법을 찾기도 전에
예약 창은 오류를 범했습니다
이름 없는 전시장
나는 구경꾼을 번역하는 구경꾼
걷다
방울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걷고 있다
방울을 손에 쥔 채
모자를 떨궜다
줍지 않으면 허리를 굽힌 채
식사를 해야하는 밤이 오고
어디서 개가 울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울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걷고 있다
울지 않으려고
나는 수저를 드는 사람
개밥을 맛있게 먹고
눈을 뜨면
겨울 햇살이 비추는
산신각 앞이었다
놀이터일지도 몰라
생각한 순간
미끄럼틀을 타고 있는
아이가 보이고
가마에 탔다
방울 소리를 따라 가마가
이동하는 동안
잃어버린 책가방에서
방울이 그려진 그림 카드가 나왔다
가마에서 내리며
신발을 잃어버렸다
시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
어느 순간 시는 왔습니다. 시가 문을 두드리며 먼저 찾아왔습니다. 문을 닫고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서운 눈보라에 떨고 있는 시를 슬픔에 가득 찬 그 눈동자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저는 살며시 손을 맞잡아 주었습니다.
손을 맞잡은 그 순간 시가 제게 마음 한켠을 내주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여린 마음을 움켜쥐고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시는 저에게 제 안에 있는 슬픔을 밖으로 꺼내 주었고 문장을 내어주었습니다. 저는 시의 응답에 답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내어준 슬픔과 기쁨이 문장이 되어 세상에 나왔듯이 제 시가 누군가에게 긴말하지 않아도 살며시 손을 맞잡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이 고민할 것이고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나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제 시가 한 편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으면 합니다.
시인은 시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시의 슬픔을 알게 해주신 정현우 시인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시인님의 시집을 읽으며 시의 마음을 더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앞으로도 저의 최애 시인이십니다.
끝으로 시 쓰기를 포기해야 하나 생각한 순간에 쓰는 용기를 주신 계간 『시와산문』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슬프면서 서늘하고 환상적인 시를 묵묵히 써내려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시작부터 좋은 일이 많은 한해였습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합격부터 등단까지 저에게 과분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신 만큼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함께 청춘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친구 성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우수상>
스웨터
신현숙
보풀을 잡아당기면
사라진 문이 열릴 것 같아
이런 밤엔 차가운 귤을 죽은 사람과 나눠 먹는다
언니는 빨간 스웨터를 한 번의 겨울 동안만 입어보았다
너무 빨리 자라서 몸에 구멍이 났던 거라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믿을 수 없는 말
창문을 깨부수던 겨울바람 때문이라고
엄마는 스웨터를 풀어 장갑을 만들었다
한 개의 사슬에서 다른 사슬을 엮어 눈이 빨개지도록
목숨이라도 될 것처럼
대문을 열어두고 밥을 덥혀 놓고
마루에 쿵쿵 발소리를 냈다
장갑을 끼지 않으려고
겨우 내내 도망치는 동안
눈이 오고 사람이 가고 장갑 속에서 빨강이 녹았다
사라지면
사라진 자리에 새집을 짓는 손
폐허에서 돌멩이를 줍는 손을 보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끝없이 날라다 놓는 밥처럼 희고 둥근
저 안개 속 벼랑 아래
누군가 손가락을 녹여 사슬을 뜨고 있다
실타래를 끌어당겨
시린 발을 덮고 죽은 발을 다시 짜고
구멍 난 몸뚱어리에 숭숭 빛이 다가오면
등이 따뜻해졌다
꽃의 기원
저 섬에는 한 집 밖에 안 살아요
다 육지로 나갔다니까요
거제 고래호 선장님
파도 같은 목소리에
동백나무에서
꽃송이 후두둑 떨어진다
붉은 핏덩이가
빗물 고인 웅덩이에
덩어리 채
첨벙
아까워
성긴 빗자루에
무른 몸을 기대고
동백 알을 살살 모으는 한 사람
바다 한번 보고
쓸다가
지나는 배에 손을 흔드는데
벼랑을 껴안는 파도
파도를 부수는 벼랑 사이에
붉은 마음들
수북하다
마음이 있다
시가 나를 붙들었다 오늘.
독자로만 남기로 마음먹었다. 식탁 위에 놔두곤 했던 시집들을 책장에 꽂았다. 가방에 넣어 다니던 시집도 서랍에 두고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대왕 소나무 군락지로 가는 산길은 쉽지 않았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숨을 고르며 돌아갈까,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자고 말해주는 그를 따라 몇 굽잇길을 더 걸었다. 왼쪽에 벼랑을 두른 능선엔 햇살이 쏟아졌다. 솔 향기 짙어지네, 하는 순간 망토처럼 펼쳐진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놀랍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나무들 사이를 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여행은 여정을 마친 사람에게 한 줄의 답장을 준다고 했던가.
돌아온 날 저녁 늦게 당선 소식이 왔다.
시가 내 옷깃을 슬쩍 잡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이제부턴 팔짱 끼고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벼랑으로 데리고 가 세상의 끝을 보여주어도 좋겠다. 어스름 저녁 여우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깊은 숲속으로 가도 좋겠다.
발을 떼면 날아갈 것처럼 들뜨는 마음이 있다.
금세 부서지고 흩어지는 슬픔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뜨거운 희망의 언어로
삶의 후미진 구석마다 불을 밝혀주고 싶다.
오늘의 환대를 머리맡에 오래 걸어 두고 싶다.
그 빛으로 등불을 삼아 아직 쓰지 못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매우 절실하고 매우 소중한 일이 내게 있음을,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음을 감사하며 적막한 삶을 어루만지고 싶다.
시와 함께 오래
에세이부문 수상작 ------------------------------------------------------------------------------------------------------------------
<대상>
무꽃
우주연
무가 없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 언뜻 보니 나의 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잘 돌아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내 사랑을 그렇게나 받던 그것이 아무 조짐도 보여주지 않다가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리다니. 고이 키운 딸이 말 한마디 안 남기고 야반도주라도 해버린 것 같았다.
제주농원 아저씨는 꽃값은 절대로 안 깎아 주는데 뭔가 그에게 시시해 보이는 것들은 인심을 좀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다육식물이나 선인장에서 잘라낸 가지, 팔기에는 말라버린 모종, 꽃이 다 져버린 화분 같은 것 말이다. 아무거나 주어도 내가 너무 기뻐하니까 재미가 생긴 듯하다. 가게 문을 나서는데 손바닥만 한 무 한 덩이가 땅바닥에 던져진 듯 떨어져 있었다. 윗부분에 짧은 초록색 잎이 보글보글 올라온 모양이 귀여웠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왜 무가 여기서 구르냐고 물어보니까 얼른 가져가란다. 나는 언제나처럼 기뻐하며 어린 아기를 보에 싸서 오듯 검정 봉지에 넣어서 집에 데리고 왔다.
무는 고생을 좀 한 듯 거칠고 색이 곱지는 않았으나 동그란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작은 텃밭에 무를 잘 심어놓고 물도 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면서 보살폈다. 과연 얼마나 큰 무로 클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 후 얼만가 지났는데 무 줄기 끝에 무언가 하얀 것이 보였다. 꽃, 무꽃이었다! 초록색 줄기에 하얀 꽃 한 송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꽃핀을 머리에 꽃은 예쁜 어린 딸 같았다.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난리가 났다.
“세상 이쁘네.”
“백치미? 동치미?”
“백치미, 고거이 진짜 예쁘다는 거잖아.”
“하하.”
꽃말이 궁금했다. ‘계절이 주는 풍요’. 아, 얼마나 멋진 꽃말인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의 아름다운 딸, ‘페르세포네’가 떠올랐다. 조금 있으니 여러 송이가 쉴 새 없이 피어올라 왔다. 꽃을 잘라서 작은 꽃병에 꽂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소박하기 그지없고 다정한 꽃을 보며 나는 이것이 바로 계절이 주는 풍요로구나 생각하면서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언젠가 큰 무로 자라서 캐내야 할 때가 되면, 나는 과연 나의 무를 먹을 수 있을까? 그래도 아마 내가 먹어주는 게 무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많았다. 깍두기 동치미 무생채 무나물…. 그래도 펄펄 끓는 물에 무를 던져넣어야 하는 뭇국은 안 되겠다 싶었다. 잘 썰어서 햇살에 말려서 무말랭이를 만들어 조금씩 반찬으로 먹는 게 가장 오래 그녀를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봄이 지나가면서 꽃을 자른 줄기가 이리저리 휘면서 꽃이 정신없고 얌전하지 않게 퍼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자제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고는 꽃을 식탁에 꽂지 않았다. 여름이 왔다. 곧 장마도 시작되었다. 나는 안 좋은 날씨를 핑계로 텃밭에 잘 나가지 않았고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대체 그사이에 무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 집에 어슬렁대는 줄무늬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내가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흙에다 박아놓은 것도 아닌데 고양이가 그런 짓을 했을 리는 없다. 아니면 뒷마당에 떨어진 밤을 먹으러 가끔 왔다 갔다, 하는 청설모? 밤을 까먹으니, 무도 먹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무를 뽑아서 들고 가기에 청설모는 너무 작았다.
요새는 인터넷에 치면 웬만한 답은 다 나온다. 검색창에 ‘꽃피는 무’라고 쳐보았다. ‘추대 피해’, ‘농가 시름’ 이런 말들이 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무에 꽃이 피는 것을 두고 마치 가축 농가에 돼지열병이 돌던 때처럼 난리들을 치고 있었다. 기자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국가비상사태라도 되는 듯 열띤 보도를 하고 있었다. 무에 꽃이 좀 피었는데 이 난리란 말인가? 알고 봤더니 꽃이 피어 버리면 꽃에 영양을 빼앗겨서 땅속의 무가 못 자라고 질겨져서 팔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품종이었는데 모두 다 꽃이 피어버려 생산자에게 고소하려 한다니. 아니, 나의 무가 화란에서 왔다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무의 잎이 꼬불꼬불 보슬보슬하였구나. 화란에서 예전 남편이 애들에게 사다 준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온몸을 바쳐 꽃을 피우느라 땅속에서 녹으며 쏟아지는 장맛비와 함께 흔적도 없이 나의 무가 사라졌다는 스토리다. 문뜩 어느 책에선가 감자꽃을 똑똑 따 주어야 감자가 동글동글 실해진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여지껏 이 세상에 살면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나 감자뿐일까,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 자손이 어디 스스로 꽃을 피울 것인가, 어머니가 통째로 자기 자신을 바쳐야 할 거다.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자식 셋 키우느라 나 자신을 못 찾고 허둥지둥 바쁘게 살았는데 과연 자식 꽃은 잘 피운 것일까. 요즘은 애들이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하면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다가 나도 조금 있으면 없어지는 게 아닌지, 살짝 팔다리를 만져본다.
겨울이 되었다. 동치미를 먹다가 보니 다소곳이 묻혀있던 나의 무가 떠오른다. 나를 그리도 행복하게 해주고 아름다웠던 너를 쉽게 잊지는 못하리. 네가 있던 그 자리는 다른 풀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며, 또 다른 무도 심기 싫다. 나는 그냥 그대로 비워놓고 그 빈자리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시간을 보내는 가장 멋있는 방법
작은 마음의 이야기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저기 이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문학을 제대로 공부도 못해본 나에게 이런 축복이 오다니,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재능과 특별함, 고뇌와 슬픔이 뒤범벅되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정하고 조용히 앉아서 쓰기 시작하니 의외로 머릿속에서 글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살면서 굽이굽이 생의 여러 순간에 나만이 느꼈던 감정이 어디로 사라졌던 것이 아니고 그대로 내 안에서 잠자고 있다가 깨어나는 모양입니다. 한동안 막혀 있던 머리의 송과샘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행복의 호르몬을 살살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글쓰기란 나 스스로 나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작업인 듯합니다. 행복하지만 때로는 고통스러우며,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과정인 것도 같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입니다. 조선 후기의 시인 이덕무李德懋는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눈 오는 새벽, 비 내리는 저녁에 좋은 벗이 오질 않으니 누구와 얘기를 나눌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글을 읽으니, 듣는 것은 나의 귀였다. 내 팔로 글씨를 쓰니, 감상하는 것은 내 눈이었다.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거늘, 다시 무슨 원망이 있으랴!
진정으로 글쓰기는 내가 나를 벗 삼는, 나와 시간을 보내는 가장 멋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가족들이 행복한 것이 바로 나의 행복이라고 여겼습니다. 무대 뒤편의 스태프처럼 가족이라는 배우들이 멋진 연기를 펼쳐내도록 도와주는 게 현명한 주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요즘의 나는 조심스럽게 객석이 다 빈 무대에 살살 나와 보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앉아도 봤다가 주연이 되어 한 번 그 앞에 서보는 시늉을 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속의 어디선가부터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합니다. “우주연, 우주연. 너도 할 수 있어…, 아직 그렇게 안 늦었다고….”
끝으로 이런 의미 있는 상을 주신 계간 『시와산문』 발행인 장병환 이사장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와산문』을 창간하신 이충이 시인의 아름다운 문학정신을 생각해 봅니다. 제가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다가 눈을 부비고 긴 동면에서 깨어난 것은 전적으로 스승들 덕분입니다. 주수자 소설가, 박금아 수필가 그리고 서안나 시인님, 고맙습니다.
<에세이부문 우수상>
단순하게
윤주연
“앞으로 머리카락 자르는 걸 무서워하지 마요! 왜? 어차피 자랄 거니까!”
헤어커트 선생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사삭사삭 가위질 소리 사이로 지나간다. 나를 포함해서 헤어 가위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두 명밖에 없다. 나머지는 초급반을 여러 번 수강한 사람들이다. 선생님 말씀을 찰떡같이 이해하는 이들의 책상 위에는 틴닝가위(숱가위), 빗이 달린 바리캉 등이 반짝이는 옷을 입고 각자의 위엄을 뽐내듯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들은 엄지와 약지를 가위 손잡이 구멍에 넣고 손목을 약간 뒤로 젖힌 채 능숙하게 가위질한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홈헤어커트 수업 시간이다. 수강생들은 선생님이 오기 전 일찍 도착해서 책상에 고정 거치대를 손나사로 조여 설치한다. 거치대 끝 원뿔 모양의 정상에 대머리 마네킹 얼굴을 끼워 넣는다. 마네킹 얼굴의 이마 꼭대기에는 힘차게 날아오르는 갈매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 갈매기 선과 통가발의 이마 끝을 맞추어 덮어씌워야 한다. 빡빡해서 온 힘을 다해 중심선을 맞추어야 하니 시작부터 난관이다.
내 옆자리 수강생은 바리캉으로 본인의 머리를 민다는 남자 수강생이다. 그분이 사물함에서 마네킹을 꺼내갈 때는 마네킹 두 개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이따금 흠칫 놀랜다. 삶은 달걀과 두상이 똑 닮았다. 따발총처럼 발사되면 멈추기 힘든 나의 웃음 총이 작동하지 않도록 그 수강생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황금색 옷을 입은 선생님은 털이 긴 고양이 같다. 우리가 실습하는 동안 거울을 바라보며 수시로 자신의 상한 머리끝을 잘라낸다. 중간중간 가위를 한두 바퀴씩 돌리며 자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생경해서 실습하며 힐끔힐끔 쳐다봤다. 털 관리를 끝낸 후 거울 속 자기와 흡족한 눈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회원님, 손빗을 사용하면 안 되죠. 빗을 써요!”
“아, 이어라인부터 다시 탈게요.”
“욕심이 피를 부릅니다. 가위 조심!”
“악!”
선생님의 주의 사항을 무시했다가 피를 봤다. 왼손으로 잡은 머리카락을 한 번에 다 자르려 하면 안 된다. 가위 끝부분이 왼손 손바닥과 맞닿아서 다칠 수 있다. 절반만 자르고, 머리카락을 놓는다. 자르지 않은 나머지를 손가락 끝부분으로 다시 잡아야 한다. 안전하게 헤어커트를 할 수 있는 팁이다. 머리가 복잡한 상황에서는 이 수칙을 실천하기 어렵다. 쉽고 빠르게 결과물을 내려 하면 더더욱 그렇다. 선생님이 나누어 준 유인물 속 브로킹(컷을 하기 쉽도록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것)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머리카락은 어차피 또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작품으로 탄생한다.
노인복지관 봉사를 다니다가 헤어커트 봉사자 수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주로 학원에서 헤어커트를 배우는 학생들이 의무 봉사로 온다. 복지관에서 헤어컷을 받고 싶다고 신청하는 분들이 훨씬 많아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 요즘 미용실 헤어커트 비용이 제법 비싸다. 가격이 매년 오르기 때문에 신청자가 더 많아지는 듯하다. 문화센터에서 12주 과정만 수강해도 남성 커트는 가능하다고 하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면서 언젠가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겠다는 말을 한 이후로 남편은 예전보다 미용실에 가는 주기가 짧아졌다. 자기 뒷머리에 땜빵이 생기거나 옆머리에 계단이 생길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타란툴라 거미 같은 두 개의 층이 될까봐? 아니면 본인의 머리를 도화지로 쓸 것 같아서? 누구에게나 서툰 시기는 있는 법 아닌가. 통가발 여러 개를 이용해서라도 그 시기를 잘 지나가 보리라. 왼손으로 잡은 키친 타올 한 장을 허공에 두고 일직선으로 자르기를 한다. 무한 반복하니 점점 가위질이 익숙해진다. 그와 더불어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큰 결심을 할 때 머리를 자른다. 최근에 머리 복잡한 일이 많았던 나도 십 년 넘게 유지한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퍼머를 한 것도 아닌데, 나를 괴롭혔던 복잡한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기분이 새롭다. 마음속 언저리에 숨어 있던 용기가 꿈틀거리기도 한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챙챙 가윗날이 맞부딪치는 금속성이 날 때마다 근심 걱정도 함께 사라졌다. 내 얼굴형에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확신에 늘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는데, 주변의 반응을 보니 편견이었다. 복잡한 일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에도 편견이 깊게 깔려 있어 더 힘들었다.
삶에서 처음 보는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할 순간에 다다랐을 때, 문화센터에서 배웠던 헤어컷 수업 내용이 떠오른다.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하던 딸이 국제학교나 대안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그랬다. 당황스러운 속에서도 헤어컷 선생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질문했다.
“실수로 친구의 정수리 부분을 약간 짧게 잘랐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강생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른 헤어스타일로 바꾸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오른손 검지를 흔들며 말하셨다.
“뒤는 본인이 보기 힘들어요. 앞머리보다 빨리 자라고요. 굳이 말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친구에게 층을 내는 허쉬컷을 해줬는데 양쪽 길이와 모발 끝 질감 처리가 엉망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수강생이 대답했다.
“중단발로 바꾸는 건 어떠냐고 물어봐요.”
고개를 흔들며 선생님이 말했다.
“헤어컷 값도 받지 않고, 그날 밥을 한 끼 사줍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세상일이 좀 더 쉽게 해결되는 거 아시죠. 그리고 머리카락은 또 자랄 거니까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 내가 잘라야 하는 머리카락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자식을 남과 다른 길인 ‘대안학교’에 보내려 하냐는 시선에 신경 쓰는 것보다 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려 한다. 세상을 살아갈 때 꼭 다수에 속할 필요는 없지만, 외로운 소수의 길을 선택했을 땐 당당함을 좀 더 겸비해야 한다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교육청 인정 대안학교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머리는 어차피 또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처럼, 어떠한 형태로든 각자 원하는 방향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의 인생 작품을 잘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위질할 때 좀 더 자연스러워진 팔꿈치를 기대하면서.
시대에 필요한 담론을 꾸준히 쓰는
작가가 되고파
언제 처음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써보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대해, 나 자신에게 궁금한 것이 많던 때였습니다. 몸이 아팠고, 긴 치료 기간이 필요했고, 수업일수가 부족하여 중학교 1년을 휴학했습니다.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막다른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가족들은 병원에 입원한 저를 바라보며 대신 아파해 주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죠. 가족들의 격려와 보살핌이 있어도 제가 혼자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부터 나 자신과 소소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검사받을 일 없는 진짜 일기를 썼습니다. 울적한 마음이 들 때마다 쓰고 또 썼습니다. 글 속에서 상상 속 인물이 되어 현실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글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습니다. 주변이 온통 흑백으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꿈이라면 이 꿈에서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인생 그래프가 포물선을 그리며 위아래로 요동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작가’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엿보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는 ‘나’를 느꼈으니까요.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지요. 내가 경험한 일, 그 일을 통해 사유한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혼자만의 글이 아닌 독자와 함께하는 글은 또 달랐습니다. 처음 내딛는 한 걸음은 자그마하고 보잘것없었지만, 희망을 한 손에 붙들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썼습니다.
제 수필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 시와산문사 장병환 이사장님, 편집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수필의 세계로 이끌어 주시고, 늘 빈틈없는 수업을 해주신 이현호 선생님, 흔쾌히 글쓰기 모임 ‘글요일’ 수업 장소를 제공해 주신 서점 마그앤그래 대표 이소영 작가님,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 성장한, 당선 소식을 듣고 저보다 더 기뻐해 준 글요일 회원 곽민주, 노윤영, 시윤정, 이영실, 임정명, 정지연, 최윤정, 한진희 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딸, 부모님, 그리고 글 좀 읽게 빨리 쓰라고 재촉하며 나를 격려한 친구 세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생태, 동물권, 장애인 차별 문제와 같은, 스스로 아픔을 오롯이 고백하기 힘든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대적인 고민을 담고 있는,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 사회가 가진 현실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마운 분들께 꾸준함으로 답하겠습니다. 계속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발소 그림 풍경에는
조성주
30여 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의 재건축 이주 기간이 공고되면서 요즘 단지는 쓰레기와의 전쟁이다. 2,000여 세대의 대단지에는 세대 평균연령 칠십 세가 넘는 오래 산 주민들이어서인가 날이면 날마다 버려지는 물건들이 산더미같이 쌓인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버려지는 것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해 하루가 즐겁다. 한때는 아이들로 붐볐을 놀이터 한편에 비를 가릴 수 있는 가림막을 설치해서 만든 물물교환 장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배려로 ‘필요한 것 가져가세요’라는 팻말이 등장한 이후, 오늘은 무엇이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퇴근길에 한 번씩 둘러보곤 한다. 아직 몇 년은 더 쓸 만해 보이는 전자제품에서부터 탁자나 흔들의자 등의 엔틱가구류, 어느 집 서재를 장식했을 시사잡지에서 화집, 유럽 여행 중 유명미술관 아트숍에서 구매했을 서양화가의 복제화 액자, 그리고 새댁의 혼수품이었을 게 분명한 60~70년대의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커피잔 세트 등등 온갖 생활용품들이 나와 있다. 평생 어느 집에서 요긴하게 쓰였을 물건들이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든가 아니면 쓰레기로 분류될 운명이다.
나도 버리기에는 아까운, 오래 아꼈던 것들을 시간 날 때마다 정리해 내놓으면서 나와 있는 것 중 마음이 가는 것들하고 물물 교환한다. 어제는 밀레의 화집과 체코산 크리스탈 와인잔 세트가 눈에 들어와 냉큼 집어왔다. 오늘도 퇴근길에, 어제 저녁에 정리해 놓은 물건을 내어놓고 죽 돌아보는데 내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어 이발소 그림이네…….’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 이발소는 추억의 장소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푸시킨의 시에 아담한 초가집 한두 채, 농부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는데 옆에는 물레방아 혹은 풍차가 돌아가는 풍경,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새끼 돼지들과 그 옆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글씨가 세로로 씌어 있다. 이발소 그림의 단골 풍경이다.
제도권 미술의 상투화된 패턴이 저급화해 대량 생산되어 유통되는 통속미술을 우리는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 한다. 미술계에서는 예술성이 없거나 그림 수준이 낮다고 비하해 쓰는 말이기도 하다. 소재는 상투적이고 기법은 유치하지만, 이발소 그림에는 대중이 꿈꾸는 이상향이 담겨 있다. 너무도 낭만적이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런 풍경이다.
이발소 그림은 한국전쟁 직후 서울 용산 삼각지 부근에 자리 잡은 화랑들이 대량 제작한 조악한 상업화가 그 시작이다. 이곳의 주 고객은 미군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그림들을 구매해 그리운 ‘켄터키 옛집’으로 보내면서 향수를 달랬을 것이다. 또 한편, 이 화랑들은 전국의 이발소에 이런 그림들을 대량으로 보급해 전국의 이발소를 작은 갤러리화 하는 데도 한몫했다.
누구라도 알만한 세계 명화나 전통 민화를 복제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지금도 용산의 삼각지역에서 전쟁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재개발에 묶인 건물에 이발소 그림을 생산하는 조락한 화랑들이 몇 군데 남아 있다.
어릴 때 나는 아버지를 따라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오빠들과 이발소에 가는 날은 집안 행사에 준하는 날로 특별 외식인 자장면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부터 서열에 따라 이발하는 동안 나머지 형제들은 대기 의자에 앉아 육영재단에서 발간하는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나 신문 ‘소년동아. 조선’ 등을 보았다. 그달에 발간된 잡지와 그날의 신문을 다 읽을 때쯤이면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취학 전인 나는 의자 높이가 맞지 않아 손잡이에 나무 빨래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앉았다. 어깨에 하얀 나일론 보자기가 둘리고 머리가 잘려 나가는 동안 몸을 꼼짝할 수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대형 거울 위에 걸려 있는 그림 감상이었다. 눈을 좌우로 돌려가며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액자 안의 시를 보고 또 보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은 그 시절 이발소에 흔히 걸려 있던 유명 복제화였다. <만종>에는 해 질 무렵 들판 한가운데에서 부부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멀리 뒤편 교회당의 저녁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 그림 속 풍경을 보면서 손님들은 자연스레 서양 회화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을 상상했을 것이다. 이발소 그림이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낳은 것도 바로 이 같은 배경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에 걸려 있던 푸시킨의 시 「삶」은 내가 암송한 첫 시다. 한글을 깨치게 된 것도 이발소에 다니면서 잡지나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읽게 된 것 같다. 후에 그 시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시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의 시 「삶」은 대한민국 방방곡곡 전국의 이발소에 걸린 덕분에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우리에게 각인되어 널리 알려진 국민 애송시가 되었다.
이발소 그림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억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각 학교 문예반의 ‘시화전’이다. 이때는 남·여학교를 불문하고 타 학교 방문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무리 지어 국화꽃 한 다발을 품에 안고 남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 두근거리던 설레임, 문학과 미술이 조화를 이룬 전시 작품들은 이발소 그림이 가지는 문화 콘텐츠를 좀 더 풍요롭게 하는 데 한몫했다.
작가가 상상한 풍경을 구도와 색상으로 대담하게 전개한 이발소 그림은 현실보다는 이상세계에 가깝다. 그것은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민중들의 이상향이었다. 이러한 그림은 근대 이후 우리 미술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그림들을 일컫는 하나의 상징이며 한 시대를 읽는 아이콘이다. 미술이 원래 삶의 한 요소로 생활에서 부여받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라면, 대중 그림의 통칭처럼 쓰이는 이발소 그림은 그림의 존재 이유를 가장 정직하게 담고 있다. 시대를 읽는 키워드의 역할을 나눠 가진 이발소 그림이 그림이란 기능에서 그것이 진지한 예술론적 탐구이거나 대중미술로서 장식용으로서 역할이거나 간에 그림의 기능으로서는 족하다.
미국의 토머스 킨 케이드는 ‘이발소 그림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미국에서만 1,000만 장 넘게 인쇄되어 팔렸다. 특히 크리스마스카드에 흔히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발소 그림이 소위 ‘이발소 그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준 낮은 그림을 우리는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그림에는 삶에 굳건히 뿌리내린 민중의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그림이 조금이나마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삶의 고단함을 보상해 주고 회복시켜 준다면 그것이 비록 덜 예술적이라 할지라도 비하되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리고 또 하나, 이발소는 지난 시절 유년의 나에게 그림과 시를 감상하고 잡지와 신문을 접할 수 있는 유일의 최고의 ‘문화의 전당’이자 ‘작은 화랑’이었다.
오늘 나는 분신처럼 아끼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놀이터에서 주워 온 푸시킨의 「삶」이 있는 이발소 그림을 벽에 걸고 오래도록 흐뭇했다.
내 소중한 이들에게
30여 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 재건축으로 이주 날짜를 통보받고 기간 동안 전원살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MBC 아카데미 귀촌 프로그램에서 만난 지인이 도서관, 홍예 공원이 훌륭하고 용봉산이 병풍처럼 처져있으며 충남도청이 있어 사회인프라도 나쁘지 않다면서 내포를 추천했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거론하며 남편도 재촉했습니다.
가을날, 주민 센터 앞에 걸린 추사고택 전시회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유년 시절 종손가의 종실이로 성장한 내게 풍수가 빼어난 고택은 아련했습니다.
첫눈 내린 날, 한적한 새벽의 풍설은 남달랐습니다.
봄입니다.
요 며칠 비개인 이곳 눈 부신 햇빛은 찬란합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청보리가 무두룩이 올라온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달래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 쑥 개떡을 쪘습니다.지리산 자락으로 숨어든 구천이와 별당 아씨처럼 진달래꽃 따서 화전도 부쳤습니다.가을엔 호박고지도 말리고, 그해 걷이한 정미소에서 막 찧은 햅쌀로 밥을 지을 것입니다. 방앗간에서 떡가래를 뽑아 조청에도 찍어 먹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제삿날이면 사당 문이 활짝 열리고 집안의 여인들은 볏짚에 곱돌 가루를 묻혀 제기를 닦았습니다. 어머니는 끼니때 함께하지 못한 밥주발은 아랫목에 묻으셨지요.
방짜유기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급격한 산업 중심 사회로 변화하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 잡히지 않는 꿈처럼 담장 밖을 서성이던 허기는 어머니와 고택과 함께 상실한 유년기의 애틋함일까요. 내포 타향살이에서 전 그 시절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
생명과학 전공자로서 문학은 저에게 평생의 동경이었고 외사랑이었습니다.그 오랜 짝사랑이 이제 겨우 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글을 써도 된다는 격려로 알아듣겠습니다.
직장에서도 물러나 시간 없다는 핑계도 못 하고, 여한 없이 읽고 써볼 요량입니다.
어설픈 글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 『시와산문』 이사장님과 편집장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용기를 내라고 항상 부추기는 제 글의 첫 독자인 옆지기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멀리 스웨덴에서 박사 후 연구원과정에 있는 사위 정성준과 딸 이서은에게도 깜짝 소식을 알릴 수 있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