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조정·협동 능력 전문가보다 높은 지성 만들어 [과학으로 보는 논술] 집단지성 |
|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이번 '촛불시위'에서 '집단지성'이라는, 조금 생소한 말이 등장했다. 사전적 의미로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차별화와 통합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경쟁이나 협력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전체 집단의 지적 능력이 개개의 개체가 갖는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박테리아부터 식물, 동물, 인간, 컴퓨터 등 거의 모든 범주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학문적으로 먼저 알려진 집단지능의 예는 개미나 꿀벌과 같은 사회적 곤충이다. 1911년 곤충학자 휠러는 개개의 개미들은 지능을 갖지 않지만, 이들이 모인 전체 개미 집단은 거대한 콜로니(Colony)를 만들거나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높은 단계의 지적 능력이 발현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초유기체성(superorganism)'이라고 설명했다. 개미 집단이 이렇게 개체의 능력을 뛰어넘어 하나의 초유기체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개미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10~20종류의 페로몬을 방출하는데, 동료 개미들이 이를 감지해 유인, 동원, 경보, 다른 계급 인지, 애벌레를 보살핌과 같은 높은 단계의 사회적 생활을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는 '집단지능'이라는 말보다는 '집단지성' 또는 '군중의 지혜'라는 개념이 더 많이 쓰인다. 인간이 집단화됐을 때 나타나는 지성의 힘을 역사적으로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생학'의 창시자인 골턴이었다. 그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성의 유전자'를 가진 지식인들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열성 유전자를 가진 우매한' 사람들의 수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이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싶었던 골턴은 1906년에 영국 서부의 우시장(牛市場)에서 '황소 무게 맞추기' 경기를 개최했다. 황소의 무게를 맞추는 사람이 그 황소를 차지하는 경기였다. 여기에 787명의 군중과 몇몇의 황소 전문가들이 참가했는데, 누구도 황소의 무게를 맞추지 못했다. 골턴은 '우성의 유전자'를 가진 황소 전문가들이 승리하지 못한 데 실망했지만, 적어도 군중들의 우매함은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소 전문가들이 제시한 수치들과 군중이 제시한 수치들의 평균값을 각각 구해봤다. 결과는 놀랍게도 군중의 승리였다. 787명의 군중들이 써낸 황소 무게의 평균값은 실제 황소 무게인 1207파운드와 단지 0.8%의 차이만 있는 1197파운드였다. 이 결과에 골턴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개개의 사람은 우매할지라도 집단의 수준에서는 '높은 단계의 지성'이 나타날 수 있고, 이를 'Vox populi('민중의 소리'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인정했다.
·
이와 유사한 실험을 몇 년 전 독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한 적이 있다. 종목은 한 해에 태어난 신생아 수, 특정한 시간대에 다리를 통과하는 자동차의 수, 특정 집단의 체중 등이었고, 보건복지부장관, 교통전문가, 의사 등이 전문가로 나섰다. 결과는 거의 모든 종목에서 임의로 모집한 군중의 승리였다.
그렇다면 집단화된 군중들은 왜 전문가들보다 높은 지성을 가질까? 사회학자 스로비키가 2004년에 펴낸 '군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라는 책에 따르면, 그 이유는 첫째 광범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은 전문가 집단이 내리는 판단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신뢰성이 높고 의견을 수렴하는 속도도 더 빠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군중들은 혼잡한 식당이나 교통 상황에서도 충돌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조정(Coordination)'의 능력을 가지며, 자유시장이나 인터넷 공동체에서처럼 중앙통제나 특정의 규칙이 없어도 신뢰성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협동(Cooperation)'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군중집단의 의견이 항상 지혜롭지 만은 않다. 스로비키는 "대중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이나 사고가 지나치게 동질화되고, 대중을 지휘하는 중앙통제가 등장하거나 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분산될 때, 또는 집단 히스테리가 등장할 정도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변하면 이 집단은 더 이상 '지혜'를 만들어내지 못 한다"고 경고했다. 지금의 '촛불시위'나 앞으로 등장할지도 모를 다른 촛불시위는 이 점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입력 : 2008.07.09 16:32 / 수정 : 2008.07.09 16:34
[2009 창업가이드 | 1인 창조기업] “고추장만 잘 만들어도 CEO 되는 시대 이제 한국경제 주체는 1인 파워기업"
창의성이 신성장 동력… 정부도 “발 벗고 돕겠다” 지원 약속
돈 되는 아이디어 무궁무진… 5년 안에 1인 기업 60만개 예상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부는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서비스로 승부하는 1인 창조기업을 적극 돕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고추장 손맛이 뛰어난 할머니가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국민 개인이 자신의 아이디어, 재능, 지식, 문화적 유산 등을 활용해 경제적 활동을 활발히 하도록 정부가 나서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해주면 번듯한 일감이나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이유는 혼자서는 시장을 찾기 어렵고 사업위험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 개인의 시장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사업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국민에게 자발적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 창의성이라는 신성장 동력을 국가 자산화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고추장 맛을 키워온 시골 할머니의 재능도 적절한 지원체계를 통해 훌륭한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뛰어난 손맛을 가진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마을이 생산 공동체를 이루도록 지원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을 도시와 해외로 단계적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생산과정은 주변 초·중등학교에 학습교재화 함으로써 발효식품에 대한 산교육을 마을 공동체가 직접 담당하게 할 수도 있다.
약사 출신의 한 벤처기업인은 주부로서 오랫동안 담가온 청국장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서양의 땅콩 잼에 도전하는 건강식품을 개발했다. 지금은 벤처인증을 받고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지만 회사설립을 통해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까지 감내해야 할 개인적 고통과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컸다고 한다.
또한 가족의 비방으로 사용해 온 쑥뜸을 아토피 피부치료와 주름예방에 적용하는 제품 아이디어를 개발한 한 주부도 사업화하기 위해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보증과 사업계획서를 요구하는 통에 거의 사업을 포기할 뻔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금지원 심사에서 전공, 학위, 경력 등이 문제가 되어 아이디어 자체의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개인의 작지만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정책이 지금까지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마침 중소기업청에서 1인 지식서비스기업 육성에 관한 시의적절한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책 역시 전문지식과 관련된 제한된 업종에서 자격을 갖춘 법적 실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앞 사례의 고추장 할머니와 같은 평범한 국민이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문턱이 높다. 물론 개인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에게 맞춤식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에 관해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야흐로 개인의 창의성이 국부와 일자리를 견인하는 창조경제 시대에 접어들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의 지적 능력과 협업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지식의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있어 1인이 재택근무, 겸업, 부업, 협력형 사업을 하기가 쉬워졌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경제활동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온 청년, 여성, 고령층, 장애인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가가 이들에게 손쉽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외부에 알리고 시장적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개인의 창의성이라는 결코 마르지 않는 자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창조경제를 세계적으로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30대의 전업주부이지만 자신의 삶을 독창적인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미래 시나리오 작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자신의 액세서리 디자인을 알리고 싶은 미취업 학생, 신체장애로 몸을 움직이기 불편하지만 홈페이지 구축과 관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애인 등은 모두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에게 일감과 일자리, 나아가서는 사업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이들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여건에 있다. 전국이 고속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고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있다.
1인 창조기업이란 ‘창의적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지식거래, 제품, 콘텐츠, 서비스 등으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개인이나 1인 중심 조직체’를 의미한다. 보통 기업이라 하면 주식회사와 같은 법적 실체라든가 최소한 사업자등록을 한 1인 사업자를 지칭하지만 1인 창조기업은 사업자등록이 없는 평범하지만 창의적인 국민 개인을 정책대상에 포함한다. 따라서 정책지원의 구체적 대상을 법적으로 정의하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창의적 국민을 비즈니스적으로 돕겠다는 국정 어젠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 전통 재래식 된장을 담그는 솜씨를 사업화한 ‘맛있는 상상’의 오원자 사장. photo 맛있는 상상 /‘에코미스트’ 이기현 사장이 자동향기분사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앞으로 정부는 1인 창조기업을 돕기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시범사업을 범부처적으로 전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읍·면·동 단위의 주민센터 등을 창구로 활용해야겠지만 테크노파크, 문화산업진흥원, 정보산업진흥원 등 이미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혁신지원기관들의 기능을 확대해 개인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온라인 창구로는 블로그를 활용하면서 점차 온라인 종합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아이디어 평가에 있어서 업종과 자격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하며 창의성 자체가 객관적 기준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과 국민평가단 등을 혼합한 ‘집단지능’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아이디어의 상품화와 사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정부구매 부문을 활용하고 정부 R&D 사업 중에서도 창의적 개인의 참여가 가능한 영역을 찾아 개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정부 부문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1인 창조기업’이란 국가 창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작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개인들은 물론 이들에게 기부와 자금지원으로 격려해주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창구를 마련해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과 같이 창의적 국민들의 작은 아이디어를 모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겠다는 것이 ‘1인 창조기업’이라는 국정 어젠다의 핵심목적일 것이다. 현재 1인 창조기업의 수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대략 사업자등록 기준으로 5만~6만개로 추정된다. 개인적으로 추산해 보면 이들의 매출 총계는 3조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새로운 국정과제에 의해 디지털 콘텐츠 부문에서의 성장속도가 실현된다면 2014년쯤에는 60만개의 1인 창조기업들이 50조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GDP 대비 0.3%에도 미치지 못하는 창조적 개인의 기여도가 2014년에는 GDP 대비 4% 가까이로 급속 성장함으로써 바야흐로 창조경제의 시대를 활짝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30년 동안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이 ‘효율성(efficiency)’을 추구함으로써 산업화의 핵심주체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중소벤처기업이 등장해 ‘혁신(innovation)’을 주창하며 정보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는 지금, 1인 창조기업과 같은 창조적 개인이 새로운 경제주체로 등장해 ‘창의(creativity)’를 이끌어주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 이장우 경북대 문화산업연구소 소장·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기업들도 집단협동 적극 활용… NASA는 화성지형 이름짓기 네티즌에 맡겨 |
|
·
'집단 협동'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례들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외에도 많다. 한 명의 천재 프로그래머에 의해 기본구조가 만들어져 공개된 리눅스는 수많은 익명의 프로그래머들의 집단적 노력으로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컴퓨터 운영체제(OS)로 자리 잡았다. 리눅스는 현재 1억 줄이 넘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로그램 한 줄을 개발하는 데 드는 미국 업계의 통상 비용이 100달러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집단 협동에 의해서 100억 달러라는 가치가 무상으로 창출된 것이다.
기업들도 집단협동을 활용하여 돈을 벌기 시작했다. 회사의 연구개발(R&D) 혹은 기술적인 문제를 자신들이 직접 풀기보다는 외부 사람들에게 기대는 방식이다. 캐나다 금광 회사 '골드코프(Goldcorp)'는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지질학자를 고용해 금광을 찾았지만 실패하자, 자신의 금광 후보지에 대한 모든 지질학적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한 후 현상금을 걸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회사는 추천된 후보지 80%에서 총 220t의 금을 발견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미국 티셔츠 생산 회사 '트레드리스(Threadless)'는 옷 디자인과 디자인에 대한 평가를 소비자에게 맡긴 후 좋은 평가를 받은 옷만 생산해 성공한 기업이 됐다. 생산을 위해서 선택되면 1만2500달러를 소비자 디자이너에게 지급하고 셔츠 150만개를 생산, 20달러씩에 판다. 2007년 최고의 디자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기도 했다.
기업이 기업 밖 익명의 다수의 도움으로 가치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집단 소싱(crowd-sourcing)'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NASA는 화성의 지형에 이름 붙이는 작업을 집단 소싱했고, 그 결과 화성의 분화구와 평야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네티즌의 자발적인 참여로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이름을 갖게 됐다. 시각장애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인터넷 사이트는 짬 생길 때마다 한 페이지 또는 반 페이지씩을 읽어 주는 수많은 봉사자에 의해서 매일같이 오디오 북을 생산해 내고 있다.
집단 협동은 세계적 차원의 네트워크 없이는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가치를 생산해 내고 있다. 집단 지능을 활용하는 기업이 점차로 늘어날 전망인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다양한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집단 협동이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이 거대한 문명 사조로서 발아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입력 : 2008.02.25 04:33
"인터넷 시대엔 익명의 다수가 공익창출에 앞장" [새로운 문명이 온다] 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
|
·
인터넷의 전 세계적인 보급과 발전으로 익명의 다수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매스 컬래버레이션(Mass Collaboration·집단협동)'이 21세기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1년 개설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2007년 말 현재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등록한 저자 638만7732명이 221만 개 이상의 항목을 집필했다.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는 수많은 익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참여해 100억 달러 가치가 있는 운영체제를 만들어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협동'이라는 현상은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위험성도 있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배리 웰만(Barry Wellman) 토론토대 교수는 "'집단 지능'은 '집단 광기'로 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그를 만나 '매스 컬래버레이션'이 신(新)문명의 보편적 가치 생산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캐나다 토론토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나 보았던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칼바람 추위를 피해 토론토 대학 한가운데 있는 '네트워크 연구소(Netlab)'에 서둘러 들어섰다. 현관문 안쪽에는 열기가 후끈했다. 현관문을 사이에 둔 눈보라와 열기, 오프라인 세계와 온라인 세계 사이의 거리도 이쯤 떨어진 것일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 이 연구소 소장 배리 웰만(Barry Wellman·66) 교수가 나타나 반갑게 맞아줬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원들도 함께 배석시켰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들을 연구하는 이들 연구원들은 포르투갈,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중국, 터키 등 주로 인터넷이 한창 보급되고 있는 나라에서 인터넷의 사회적 파급효과를 배우려고 이 연구소를 찾았다고 한다.
'네트워크 연구소'는 캐나다의 어느 중산층 마을을 골라 고속 인터넷을 깔아 주고, 인터넷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실험적으로 연구하여 세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는 대표적인 인터넷 연구소다. 토론토대에서 커뮤니티 사회학을 가르치는 웰만 교수는 2003년 창립 때부터 이 연구소를 이끌어 오고 있다. 서로 인사를 끝내자마자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집단 협동 '매스 컬래버레이션'(mass collaboration·익명의 다수가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작업방식)이 새로운 문명의 씨앗으로 여겨질 수 있나.
"협동은 인류가 집단으로 생활하면서부터 늘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인터넷은 수만년 동안 이루어진 협동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집단협동을 만들어 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위키피디아'를 꼽을 수 있다. 아주 훌륭한 백과사전이 익명의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협동, 즉 집단 지성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사회가 진전될수록 '매스 컬래버레이션'은 사회의 공공적 가치나 기업의 부가가치를 위해서 더욱 발전할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만들어내는 가치와 어떻게 다른가.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사전이다. 기업 안에서의 협동이 사익(私益)을 추구한다면, 집단협동은 공공의 이익을 만들어낸다. 위키피디아는 2001년 처음 개설된 후 올 초에 이미 221만 개 이상의 항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2억 번에 달하는 수정과 편집을 거치면서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매스 컬래버레이션은 '집단 지성'을 낳기도 하지만 '집단 바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특정한 사람이나 조직을 해치기 위해 집단적으로 협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간혹 집단적 광기를 부리기도 한다. 인터넷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단지 가능성의 공간이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람들은 현명한 집단(Smart Mobs)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 이것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인류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
▲ 배리 웰만 토론토대 교수(오른쪽)는“네트워크 사회가 진전될수록‘집단 협동’이라는 생산방식은 공공적 가치와 기업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더욱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김용학 연세대 교수. /김용학 교수 제공
―집단 협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다분히 이타(利他)적인 동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행위 동기를 너무 좁게 가정한다. 인간은 원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존재다. 리눅스 개발자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가 말했듯 '일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에 동조하는 사람들, 도움을 받았으면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믿는 호혜적 인간들,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 그리고 명성을 얻기 위한 목적 등 동기도 다양하다."
―인터넷이 남을 도와주는 정신을 촉진시키는 것인가.
"그런 증거는 확실히 있다.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보다 온라인에서 남을 더 잘 도와준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비사용자보다 더 잘 도와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익명의 다수가 모인 오프라인 집단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집단 협동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커뮤니티는 지리적인 이웃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이라는 사실을 뉴욕에서 살던 어린 시절 깨달았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사회관계망에 불과하다. 상호작용을 통해 커뮤니티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생기고, 이러한 신뢰가 협동을 더욱 쉽게 만든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는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때마침 터키에서 온 바바라 연구원이 거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 정도는 그 사회의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성화 정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각 나라의 문화적인 차이가 공공적 가치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정도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인터넷이 세계 제일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한국에서 왜 '집단 협동'의 사례는 드문지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은 혈연·지연·학연 등 '연줄 공동체' 안에서 상부상조하던 역사적 전통이 뿌리깊기 때문에 열린 공동체를 위한 집단 협동에는 아직 덜 익숙한 것이 아닐까.
· [전문가 칼럼] 웹 2.0 비즈니스망 흔든다
·
다수 일반인이 참여하는 플랫폼 시대
구글·아마존닷컴 등 성공으로 붐 조성
· 입력 : 2006.02.13 18:27 / 수정 : 2006.02.13 18:27
o 예병일·코리아인터넷닷컴 대표
o 구글 효과인가. ‘웹2.0’(차세대 인터넷)이라는 키워드가 미국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용자의 참여’, ‘개방성’,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이런 특징을 갖는 웹2.0이 인터넷 비즈니스를, 아니 비즈니스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것인가? 우리는 웹2.0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웹2.0은 인터넷의 새로운 흐름을 지칭하는 단어. 1.0버전과는 완전히 다른 2.0버전이라는 의미다. ‘플랫폼으로서의 웹’(The Web as platform),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웹’(A whole new Web) 이라고도 불린다. 웹2.0의 특징들을 기업 사례와 관련시켜 쉽게 살펴보자.
우선 웹2.0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지 않고 블로깅, 검색, 태깅(꼬리표 달기) 등을 활용해 스스로 정보와 네트워크를 창조하고 공유한다. 이용자의 참여다. 네티즌들이 만드는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생각하면 쉽다. 브리태니카처럼 소수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던 백과사전을 이제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직접 쓰고 편집한다.
일반인들이 만든 백과사전을 ‘신뢰’할 수 있을까? 여기서 집단지능, ‘다수의 지혜’라는 특징이 나온다. 소수의 사람들이 폐쇄된 장소에서 결정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광장에서 지혜를 모으는 것이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주장이다. 한 스팸메일 필터링 제품은 수많은 메일 이용자들의 판단을 활용해 어떤 메일이 스팸인지 판정한다.
이처럼 다수 일반인들의 참여는 ‘플랫폼’으로서의 웹이라는 특징 때문에 가능해졌다. 웹1.0은 기업의 홍보 사이트처럼 일방적으로 퍼블리싱했다. 하지만 이제 웹이 윈도 같은 운영체제(OS)처럼 하나의 플랫폼으로 자리잡으면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웹을 활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블로깅), 상거래를 한다(이베이).
여기서 흥미로운 ‘롱테일’(긴 꼬리)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웹1.0은 상위 20%가 결정해 일방적으로 배포했다. 그러나 웹2.0은 다수로 구성된 ‘긴 꼬리’가 참여한다. 80/20법칙과는 반대로 ‘작지만 많은’ 것이 중요해진다. 수백, 수천 개 대기업들의 배너광고가 아니라 꽃집 같은 수십만, 수백만 소규모 광고주들을 공략한 오버추어나 구글 애드센스가 시장을 선도한다.
o
o 배너광고의 더블클릭(DoubleClick)과 키워드 광고의 구글 애드센스. 책 정보위주의 반즈앤노블닷컴과 고객참여로 수많은 리뷰가 올라있고 고객 데이터 분석으로 최적의 추천을 해주는 아마존닷컴. 판매 위주의 쇼핑몰 사이트들과 회원들이 판매하는 이베이.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전자는 웹1.0을, 후자는 웹2.0을 대표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웹2.0에 열광하고 있고, 웹2.0적인 기업들이 시대를 리드하고 있다.
웹2.0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사건은 2004년의 구글 상장. 최소한 지난 1년 반 동안 구글의 성장세와 주가는 ‘신화’였다. 구글이 웹2.0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사실 당시 한국에서도 웹2.0 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싸이월드, 네이버 지식검색이 그들이다. 웹2.0이 비즈니스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진정한 ‘차세대 인터넷’이 될지, 아니면 일각의 주장대로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글, 아마존 같은 성공적인 기업들이 이미 웹2.0의 특징을 사업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현실이다.
사실 용어 자체가 뭐가 중요하랴. 그 용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글, 아마존 같은 이 시대의 성공기업들을 이해하려면, 나아가 비즈니스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려면, 웹2.0같은 최신 트렌드에 주목해야 한다.
(예병일 코리아인터넷닷컴 대표 biyeh@korea.internet.com )
|
[Why][이인식의 멋진 과학] 놀라운 '대중의 지혜' 구성원은 비록 어리석어도 집단은 흔히 옳은 결정 내려 "선거 민주주의 신뢰할만" |
|
용모가 출중하고 다재다능한 영국 신사 프랜시스 골턴은 교배기술로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는 것처럼 우수한 인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여 우생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1907년 85세에도 지적 호기심을 주체 못한 골턴은 우연히 소의 무게를 맞히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대회를 구경했다. 내기에 참가한 800명은 대부분 소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골턴은 대중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고 싶어 참가자들이 써낸 추정치의 평균값을 뽑아보았다.
소 무게의 평균값은 1197파운드로 나왔다. 참가자들이 소를 잘 모르기 때문에 실제 무게와 크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골턴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의 무게는 측정 결과 1198파운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해 3월 '네이처'에 '여론(vox populi)'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골턴은 군중의 판단이 완벽했음을 인정하면서,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므로 "민주주의도 생각한 것보다 신뢰할 만한 구석이 있다"고 썼다.
·
골턴의 사례는 어떤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이 특별히 박식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집단 전체가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경영 칼럼니스트 제임스 서로위키는 이러한 집단의 지적 능력을 '대중의 지혜(wisdom-of-crowds)'라고 명명하고, 2004년 5월 펴낸 같은 제목의 저서에서 군중의 어리석음과 광기를 경멸하는 견해에 도전하는 논리를 펼쳤다.
집단을 비하한 발언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령 철학자 니체는 "광기 어린 개인은 드물지만 집단에는 그런 분위기가 항상 존재한다"고 말했으며, 사회학자 구스타프 르봉은 "집단은 높은 지능이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없으며, 소수 엘리트보다 언제나 열등하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서로위키는 대중의 지혜 효과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주식시장이 큰 탈 없이 작동하다가 가끔 엉망이 되고, 새벽에 동네 편의점에 가서 항상 우유를 살 수 있는 이유도 대중의 지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전문가 말만 듣지 말고 대중에게 답을 물어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대중의 지혜 효과가 개인에서도 발생한다는 연구결과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7월호에 발표되었다.미국 MIT 인지과학자 에드워드 벌과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 해럴드 패슐러는 428명에게 "미국에는 세계 공항의 몇%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 8개를 주고 그 대답의 정확성을 분석했다.
실험대상자는 같은 질문에 대해 두 차례씩 답을 하도록 했다. 대상자 절반에게는 첫 번째 답안지를 작성한 직후 예고 없이 두 번째 답안지를 내도록 했으며 나머지 절반으로부터는 3주 뒤에 답을 받아냈다. 벌과 패슐러는 두 경우 모두 두 차례 답의 평균이 첫 번째나 두 번째 답보다 더 우수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사람이 똑같은 문제에 대해 두 번 지레짐작할 때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정확하지 못해 그 평균의 정확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존 통념과 다른 결과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확한 답을 모르는 질문에 대해 여러 차례 지레짐작하는 동안 뇌 안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마치 군중처럼 작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입력 : 2008.07.19 03:44 / 수정 : 2008.07.19 19:51
‘지식 혁명’ 꾀하는 기업들
‘집단지식’이 새로운 부를 낳는다
심심이ㆍ지식맨ㆍ태그스토리ㆍ디시인사이드 사이트에는 정보와 동영상이 넘쳐나
일부 사이트는 유료화돼도 네티즌 와글와글… 실시간으로 지식 정보 교환
|
▲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인 '심심이'를 개발한 최정회 이즈메이커 사장. |
엘빈 토플러가 ‘미래쇼크’(1970)란 책을 내놓았을 때 그는 41살이었다. 미래쇼크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미래학이란 학문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77살에 그가 다시 책을 냈다. 이번엔 ‘부의 미래’다. 미래쇼크 이후 여러 책을 썼지만 토플러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지식’이다.
지식이 미래의 힘과 부의 원천이란 입장은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책에선 지식이 약간 진화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과 대중지혜(Wisdom of Crowds), UCC(User Created Contents·사용자 제작 콘텐츠) 같은 여러 사람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놓은 지식의 덩어리를 강조했다.
한국을 늘 주시하고 있다는 토플러다. 그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선 그가 꿈꾸는 미래를 이미 실현해 놓은 기업이 있다. NHN의 지식인 서비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카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모두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다. 미국에도 싸이월드와 비슷한 개념의 마이스페이스닷컴, UCC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가 인기다. 그러나 UCC의 원조는 한국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UCC가 ‘User Created Contents’가 아니라 ‘User Copyed Contents’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투브를 구글이 인수하자 그 동안 구경만 하던 저작권자들이 헛기침을 시작했다. 뉴스코퍼레이션과 NBC 유니버설, 바이어콤 등 거대 미디어 그룹이 유튜브를 상대로 거액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외신이 나왔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KBS, MBC, SBS가 지난 11월 대형포털과 국내 최대 동영상 UCC 사이트인 판도라 등 64개 동영상 UCC업체에 저작권 침해를 경고하는 공문을 보냈다. 동영상 UCC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UCC의 대부분이 저작권이란 족쇄를 차고 있다. 판도라 김경익 사장은 “저작권 문제에 늘 신경을 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피해가기 어렵다”며 “소규모 동영상 사이트인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벤처 기업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모델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즈메이커 최정회(31) 사장은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졸업반이다. 최 사장은 9년 전에도 4학년 졸업반이었다. 휴학 기간을 빼도 5년간 4학년 등록금을 냈다. 올해 졸업을 할 수 있을지는 며칠 후 결정이 난다. 그는 졸업장을 받는 시기를 뒤로 미루는 대신 네티즌의 집단 지성을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었다.
현재 회사 대표 상품은 ‘심심이’란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이다. 회사가 2003년 처음 심심이를 내놓았을 때 심심이는 메신저를 통해 컴퓨터와 대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예를 들어 메신저에서 심심이를 불러 ‘노무현’이라고 채팅창에 적어 넣으면 심심이는 ‘소신 있게 살아온 천연기념물적 정치인’부터 욕설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심심이에게 말을 가르친 것은 사용자다. 심심이는 여자는 이모, 남자는 삼촌이라고 불렀다. 심심이가 하는 말은 사실은 삼촌과 이모가 입력해 놓은 것이다. 수많은 삼촌과 이모가 심심이를 가르쳤다. 기본적으로 심심이는 수많은 네티즌이 입력해 놓은 것을 그대로 말한다. 말하자면 심심이는 한국 네티즌의 생각을 말한다. 사용자들이 만든 인공지능, 집단지성의 결정체다. 수십만 명의 생각을 담은 150만개에 달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즈메이커에 쌓여 있다.
심심이는 네티즌의 자발적 집단 창작품으로 저작권 문제가 없다. 문제는 채팅 프로그램으로는 심심이가 돈을 벌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심심이가 휴대전화로 거주지를 바꾼 다음 이야기가 달라졌다.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이른바 문자(SMS·단문메시지)로 심심이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한번 문자로 이야기하면 백원짜리 동전 한두 개를 통신사가 거둬 간다. 혹은 한 달에 3000원을 내고 쓸 수도 있다.
이 돈을 통신사가 모아 자기들이 30%를 가지고 나머지를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즈메이커와 통신사에 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절반씩 나눠 가진다. 2006년 초 한 달 동안 이즈메이커로 들어온 돈은 4000만원이었다. 그러나 11월엔 1억5000만원이 들어왔다. 이즈메이커는 직원이 10명밖에 안 되는 미니 벤처기업이다. 1억5000만원은 큰돈이다. 최 사장은 “지난 몇 년간 수입이 거의 없었다”며 “사업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따뜻한 겨울을 맞았다”고 말했다.
물론 심심이로 벌어들이는 돈은 적다면 적다. 그러나 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사람이 없는 드문 경우다. 얼마 전 이즈메이커는 집단지성을 이용하는 좀더 유용한 서비스도 내놓았다. 지난 10월 시작한 ‘지식맨’(www.jisikman.com)이 그것이다. 갑자기 뭔가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광화문 근처를 걷다가 가까운 극장에서 몇 시부터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알고 싶은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휴대폰을 꺼내 ‘별 9999’를 눌러 지식맨에 문자를 보내면 150초 안에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김치 부침개 한 장에 칼로리가 얼마죠? ‘우박은 춤춘다’라는 노래의 작곡자는 누구죠?”
지식맨에 사람들이 물어본 질문이다. 답변을 하는 것은 네티즌이다. 현재는 약 3300명이 지식맨에 가입해 질문이 들어오면 낚아채 답변을 한다. 대답을 하면 싸이월드에서 현금처럼 쓰는 도토리(현금 100원에 해당) 하나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받는다. 11월엔 만 명이 건당 200원을 내고 지식맨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갔다. 네티즌이 한 대답은 5만개가 쌓였다. 앞으로 이것이 중요한 자산으로 변한다.
동영상 쪽에서도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집단지식의 덩어리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하는 업체들이 생겼다. 태그스토리(tagstory.com)는 PCC 동영상 사이트, 혹은 프로추어(프로+아마추어) 동영상 사이트라 불린다. PCC는 일반 유저라기보다는 전문가(프로페셔널)에 가까운 사람들이 생산한 지식과 정보다.
태그스토리는 조선일보, 스포츠조선, 노컷뉴스, 고뉴스 등에서 일한 기자들이 만든 동영상을 위주로 운영한다. 뉴스 현장이나 명사들에게 접근할 기회가 많은 기자들이 직접 찍은 동영상이다. 덕분에 성장세도 빠르다. 지난 청룡영화상 시상식 때는 프로추어들이 만든 동영상을 보려는 사람이 몰려 하루 50만플레이를 기록했다.
|
▲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사장 |
엘빈 토플러가 예전부터 이야기 해 온 프로슈머(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 개념에 제일 잘 어울리는 사이트는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다. 디시 김유식 사장은 “네티즌이 움직일 수 있는 운동장, 놀이터를 만들자 자체적으로 집단지식을 생산하고,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기존 미디어에서 공급해 오는 것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던 사람이 디시인사이드에 모여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즐기고 널리 퍼뜨린다. 강아지가 대나무를 기어오르는 사진을 누군가 만들고 사람들이 보고 즐긴 다음 그 사진을 다른 곳을 퍼 나르는 식이다.
또 익명의 집단지성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전통 미디어를 탄 후 세상이 변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황우석 교수 사태 때 익명으로 디시에 올린 과학도들의 글이 사태를 해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디시에 오른 글이 신문 방송을 타고 황 박사가 실제로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김유식 사장은 이런 현상을 “놀이터를 만들었는데 권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이런 권력을 이제 본격적으로 돈으로 바꿀 생각이다. 디시는 IC코퍼레이션이란 코스닥 등록업체를 인수해 우회상장을 했다. 집단이 만들어 낸 지식을 본격적으로 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백강녕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 기자 young10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