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할 일이 있다
내가 해리 리버만 선생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는 이미 100세가 된 노인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그를 만나러 롱아일랜드에 처음 갔을 때, 그는 나무 그늘 아래서 유화를 그리는 데
몰두해 있었다. 얼마 전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지금 그리는 작품이 그중의 하나라고 했다.
노화가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턱에는 길게 수염이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정신이 또렷하고 옷도 말끔하게 차려 입어, 많아야 여든 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든 살! 여든 살은 그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나이이기도 했다. 리버만은 정기적으로 참가하던
노인 모임에서 그림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미 일손을 놓은 지 6년이나 넘은 터라
그는 시내의 체스 모임에 나가 시간을 때우곤 했다.
어느 날 그곳의 관리 사무원이 함께 체스를 두던 친구가 몸이 불편해서 나오지 못한다는 말을 전해
왔다. 리버만이 실망한 표정을 짓자 친절한 사무원은 그에게 화실을 한번 둘러보고 괜찮으면
그림도 그려 보라고 권했다. 노인은 껄껄대며 웃었다.
“나는 여태껏 그림 붓도 구경 못해 봤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재미로 한번 해 보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사무원의 추천에 리버만은 생전 처음 붓과 물감을 들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곧 그림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여든한 살이 되던 해 노인은 본격적으로 그림에 대해 공부했고 곧 놀라운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다.
‘원시의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로 불리기 시작한 리버만의 그림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977년 11월, 로스앤젤레스의 명성 높은 예술 전시관에서 해리 리버만의 22번째 전시회가 열렸다.
그의 101세 기념 전시회였다. 이 노화가는 입구에 꼿꼿이 서서 개막식에 참석하러 온
사백여 명의 내빈들을 손수 맞았다. 노화가는 말했다.
“나는 내가 백한 살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백일 년의 삶을 산 만큼 성숙하다고 할 수 있지요.
예순, 일흔, 여든 혹은 아흔 살 먹은 사람들에게 저는 이 나이가 아직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고
얘기해 주고 싶군요.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 그게 바로 삶입니다.”
(몇 해 전인지, 우연히 해리 리버만이라는 화가의 이름을 알게 되어
검색하여 만났던 그림과 글입니다. 빈마음님 올려주셨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