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를 준비하는 노동자들이 고민을 전해왔다. 나이 많고 근속연수가 오랜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명예퇴직과 자녀들의 취업을 맞바꾸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것을 선거공약에 포함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들이 자신들의 자녀가 그 회사에 취업할 때 우선권을 부여하라고 회사에 요구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 노동조합 간부는 “그것이 요즘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요구하는 최대 요구 사항”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노사간에 “동일한 조건일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춘) 직원의 피부양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는 단체협약 규정을 체결한 기업들도 있고, 그러한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직원 자녀에게 유리한 조건을 적용하는 관행을 마치 미풍양속처럼 지키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요즘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 시대에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노동자라면 당연히 자녀의 취업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자녀 우선 채용 요구”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 요구를 노동자에게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해보자. 정부가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이나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에게 그 회사에 취업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한 회사에서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하며 회사 발전에 기여한 직원의 자녀에게 그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회사로서는 회사 직원들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것이 그 회사의 특징과 사정을 훤히 알고 취업을 원하는 사람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으니 향후 인사노무관리에 유리한 측면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대상의 권리를 보호할 때에는 항상 그 권리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권리’에 따르는 바뀔 수 없는 명제다. 발명에 대한 특허권조차 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다른 이들이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때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규정이 다른 사람들의 직업 선택 권리를 박탈하는 대표적인 상황은 직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사업장에서 정규직만 노동조합원 자격을 갖는 경우이다. 정규직 사원이 정년퇴직하면서 자신의 자녀를 그 회사에 취업시킬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그 노동자 가정에 꽤 좋은 혜택이 되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규직의 부당한 ‘세습’이나 다름이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들이 그 회사에 취업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헌법상의 권리인 직업 선택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강한 존재와 약한 존재가 대립하는 갈등 구조에서는 대개 약한 쪽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할 때가 많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할 때처럼... (“인사·경영권까지 간섭하는 대기업 노조가 약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 대기업 노조도 자본과 맞서는 관계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소수의 노조가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구조에서는 비정규직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본질적 책임은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경영자에게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노동조건을 적용한다면 비정규직 차별이란 문제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엄연한 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녀가 취업 우선권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노동자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공정하게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있는 방안이나 제도의 확립도 없이 지금 당장 단체협약의 그 조항들을 폐기한다면 현재의 기업 풍토에서는 회사 관리직 사원이나 인사노무 담당자나 지역 유력 인사나 (하청회사의 경우) 원청회사 직원의 추천을 받은 자들만 취업하는 꼴이 될 것이 뻔하고, 그렇게 취업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니 노동조합은 조직력 방어의 차원에서도 그 권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로 판단할 능력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을 우리나라 어느 제도권 교육과정에서도 제대로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정규수업시간에서부터 노사관계를 가르친다. 교과서에서는 노사관계에 대하여 “가족관계를 제외하고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며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이라고 정의한다.
그 말이 백번 맞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생활 그 다음이 직장생활이다. 실제로 가정에서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장차 노동자가 되는 사회에서는 학교의 정규 수업 과정에서부터 노사관계에 대해 중요한 비중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독일 중등학교 사회과목의 한 교과서에서는 모두 340쪽의 분량 중에 93쪽을 노동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청소년 실업에 관한 내용만 29쪽이나 되는 교과서도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사실들”을 토론 주제로 다룬다. 독일 금속노조와 사용자단체가 체결한 임금협약, 금융노조와 사용자단체가 체결한 기본협약 등과 함께 노동조합이 발표한 성명서, 노동문제에 대한 신문기사 등이 교과서에 수록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학년에서부터 ‘모의노사교섭’이 일상화된 특별활동으로 자리 잡혀 있어, 기업 경영에 관한 각종 자료들이 주어지면 학생들이 스스로 경영자 대표들을 뽑고 노동조합 대표들을 뽑아 임금협상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해보기도 한다. 적정한 임금인상률에 대한 고민과 그 단체협약이 노동자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을 초등학교에서부터 경험하는 것이다. 한 사회과목 교과서에서는 모의노사교섭을 모두 6회에 걸쳐 진행하도록 편성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모의노사교섭을 벌이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독일 한 나라만 예로 들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마찬가지이다. 궁금한 분들은 한국노동교육원이 발행한 400쪽이 넘는 보고서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실태”를 참고하기를 권한다.
그런 나라에서는 단체협약에 직원들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노동조합 조직 보호와 노동자의 구매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직업 선택 자유를 박탈하거나 평등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을 제도권 교육 과정 속에서 이미 경험한 뒤에 노동자가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노동자가 되는 사회와 노동에 대한 아무런 개념 정립도 없이 노동자가 되는 사회의 노동운동은 같을 수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그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하는 수준도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노동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문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히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독일의 초등학생들이 모의노사교섭을 하면서 노사 양측으로 편을 갈라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노동교육 2004. 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