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을 정벌한 윤관장군 영정
고려 16대 예종(睿宗)때 여진정벌의 공을 세운 명장 윤관(1040년(고려 10대 정종 5)~1111년(예종 6)의 묘로 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었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으로 태조를 도운 삼한공신(三韓功臣) 신달(莘達)의 고손이며 검교소부소감(檢校小俯少監)을 지낸 집형(執衡)의 아들이다.
고려 문종(文宗)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숙종 9년(1104)에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이 되어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정벌에 나섰으나 여진의 강한 기병에 패하고 임기응변으로 강화를 맺고 철수하였다. 그 후 특수부대인 별무반(別武班)을 창설 대원수(大元帥)가 되어 예종 2년(1107)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함께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국방을 수비케하였다.
윤관은 문무(文武)를 겸한 공신으로 예종 6년(1111)에 돌아가자 인종 8년(1130) 예종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실묘(失墓) 하였다가 1764년(영조 40) 윤관의 구비파편(舊碑破片)이 발견된 후 영조가 봉분을 새로 조성하고 치제(致祭)하게 함으로써 윤관의 묘소임이 공인되었다.
묘역의 규모는 크고 웅장하며 봉분과 석물이 단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봉분아래는 장대석 모양의 호석(護石)을 두르고 봉분 뒤로 담장을둘러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봉분정면에상석(床石)이 놓여있으며 왼쪽에 묘비가 서있다. 한 계단 아래에 양쪽으로 망주석과 상석전면에 사각의 장명등이 세워져 있다.
글 파주시청 문화관관과
▲윤관장군 묘역 전경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930(분수리 산 4-1)
▲여진을 정벌한 윤관장군 묘(사적 제323호)
▲윤관장군 묘표 / 윤관 장군은 1111년에 이곳에 안장 되었고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묘역이 실묘(失墓) 되었다가 1746년 에 다시 찾았다
고 전해진다. 묘역에 있는 이 묘표는 묘를 다시 찾은 후 1766년에 건립 되었다고 한다.
▲윤관장군 신도비
▲윤관장군 신도비(파평윤문 대종회에서 1992년 건립한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