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지키려다 숨진 어린이집 선생님, 그 뒷이야기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배로부터 ‘선생님이 끝까지 아이를 구하려다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선생님의 필사적인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늦은 밤, 선생님의 빈소로 가는 차량 안. 왜 지금 시점에서, 왜 영상이 보도돼야 하는지 거듭 고민했습니다. 보도 내용과 그 이유를 유족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했고, 설득 끝에 영상보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여동생, 아내, 엄마, 딸을 잃은 유족들은, 가해 운전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길 원하고 있었습니다.
언덕진 어린이집 주차장, 주행기어 상태에서 그대로 하차한 학부모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6일 아침 8시쯤, 전남 순천의 한 학부모는 아이를 등원시키기 위해 승용차를 끌고 어린이집에 도착했습니다.
주차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 학부모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차량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철제 울타리를 살짝 들이받고서야 멈췄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는 운전석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조수석에 탄 아이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당직이었던 35살 A선생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주차장에서 어린이집 등원차량에 함께 탑승할 동료 교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부모의 승용차를 발견한 A선생님은, 학부모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어린이집 안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아이가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조수석에서 아이가 차량 문을 열어줬습니다. 그런데 학부모가 갑자기 조수석 쪽 차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차량이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흔들립니다. 놀란 선생님은 아이가 탄 조수석에 눈을 떼지 못한 채,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날까 차량을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차를 붙잡은 A선생님의 안간힘에도 차는 멈추지 않았고 뒤로 쭉 미끄러졌습니다. A선생님은 끝까지 차를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차량은 비탈에서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 차량의 무게에 떠밀린 선생님은 철제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크게 다쳤습니다.
동료 교사들은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합니다. 차가 밀려 내려간다는 비명에 근무 중이던 선생님들은 신발도 갈아 신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고, 뒤이어 온 다른 학부모와 동료 교사가 A선생님을 살리기 위해 차례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습니다. A선생님은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학부모 ‘기어 조작한 적 없다’ 주장…진실은?
경찰은 학부모가 기어를 주행(D)에 놓고 그대로 내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부모가 내릴 때부터 차량이 계속 전진했고, 울타리를 들이받고서도 바퀴가 조금씩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는 평소 차량에 탑재된 ‘오토홀드’ 기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오토홀드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떼면 파킹 기어를 넣지 않아도 저절로 차량이 멈추는 기능입니다. 주로 주행 중에 신호에 걸렸거나 잠시 정차할 때 쓰는데, 평상시 오토홀드를 쓰던 학부모가 습관적으로 주차, 즉 기어를 파킹(P)으로 조작하지 않고 그대로 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입니다.
학부모는 조수석을 통해 운전석으로 이동해 착석했고,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조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차가 움직인 뒤에야 위험을 감지하고 차량을 제대로 주차하려고 했던 것인지, 또 조수석에 아이가 타고 있던 상황에서 어떻게 운전석으로 이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사고 직후 차량의 기어는 중립(N)에 놓여 있었습니다. 학부모는 차량 내부에서 기어를 따로 조작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행기어(D)가 걸린 상황에서 차량이 충격을 받으면 기어가 자동으로 중립(N)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같은 학부모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요즘 나오는 차량들은 사고가 나면, 사고 당시 차량의 움직임이 ‘EDR(사고 기록 장치)’에 기록된다고 합니다. 당시 기어의 움직임은 어땠는지, 운전자가 어떤 페달을 어느 속도로 밟았는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사고에서는 차량의 속도가 느리고 주행 거리가 짧아 EDR 데이터가 기록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학부모가 기어를 주행(D)에 놓았는지 중립(N)에 놓았는지와는 별개로, 교통사고특례법상 과실치사혐의 입증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A교사는 왜 차량을 놓지 못했을까?
보도가 나가자 선생님의 희생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지역 어린이집 차량들이 일제히 추모 글귀를 붙였고, 순천시의회도 애도를 표하며 어린이집 등하교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A선생님 혼자 비탈을 내려가는 승용차를 멈추기는 물리적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A선생님은 끝까지 승용차를 놓지 못했을까요?
동료 선생님들은 A선생님이 평소 심성이 곱고 배려심이 깊었다고 말합니다. A선생님은 말과 행동에서 항상 아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다정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보다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다급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차량을 잡았을 것이고, 차가 내려가는데도 아이가 걱정돼 끝까지 차를 놓지 못했을 거라고, 동료 선생님들은 안타까워했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작은 부주의에도 학부모들의 민원과 문의가 빗발칠 수 있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만약 A선생님이 학부모와 인사만 나누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면, 혹은 차량을 붙잡지 않고 몸을 피해 목숨을 구했더라면, 학부모들의 비난 섞인 시선을 피할 수 없었을 거라는 말입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이렇게 목숨을 희생해야만 주목받고 칭송받을 수 있는 거냐며, 답답한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언론이 어린이집과 선생님들을 단 한번만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연일 자극적인 아동 학대 사건이 보도되는 상황에서, 원장은 학부모들의 불신과 걱정이 이해되긴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정도가 지나칠 때가 있어 선생님들이 학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매일 아이의 사진을 찍어놓는다고 털어놓으면서, 현실에선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게도 울림이 있는 말이었습니다.
안타깝게 희생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