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마을 1.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 2.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 있는 자연 마을. 원래 구룡사가 있던 절터였으나 뒷날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마을
구룡산(九龍山) 1. 서울특별시 서초구 염곡동과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산. 높이 306m. 산의 이름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열 마리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졌다. 하늘에 오르지는 못한 한 마리는 좋은 재목, 좋은 재산인 물이 되어 양재천이 되었다고 한다. 주봉(主峰)은 국수봉(國守峰)이다. 조선시대 전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이 곳에는 바위굴 국수방(國守房)이 있어 봉수군(烽燧軍)이 기거했다고 한다. 또한, 이 곳은 세종대왕 초장지(初葬地)로, 세종대왕 초장지였던 영릉터가 있다.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가1469년(예종 1년)에 경기도 여주로 옮기게 되었다. 신갈나무, 리기다소나무, 아카시아, 현사시나무 등이 자라고 있으며, 희귀한 '물박달나무'도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껍질이 종잇장처럼 너덜너덜 벗겨지는 특징이 있으며 한국 전역에서 자랄 수 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높거나 험하지 않아 부담없는 산행이나 아침운동을 즐기기에 적당한 산이다.
1-1. 서울특별시 강남구 포이동과 염곡동에 있는 산. 표고 283.2m의 산으로서, 이 산에서 용 아홉 마리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설화가 있다. 구룡산 정상을 국수봉이라고도 한다.
2. 강원도 영월군~경상북도 봉화군 강원도 영월군(寧月郡) 상동읍(上東邑) 덕구리와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춘양면(春陽面) 우구치리 사이에 있는 한국의 산.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있는 이 산은 높이 1,346m로서 태백산(太白山:1,567m), 청옥산(靑玉山:1,277m), 각화산(覺華山:1,177m), 옥석산(玉石山:1,242m) 등과 함께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있다.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부에 있어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계를 이룬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은 남북으로 흘러서 각각 낙동강과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산과 관련된 전설만 전한다. "용이 승천하여 구룡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가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었다."라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명의 유래에 대한 내용은 사료에 나타나지 않는다. '조선지형도'에는 구령산(九靈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구령산'이 '구룡산'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더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금당골 북쪽의 구룡골은 구룡산에서 유래한 마을 지명이다.
3.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 산남동 · 산북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165.6m). 주택지에 인접하고 있어 시민들의 등산로와 휴식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근린공원인 구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서식하는 두꺼비가 구룡산 아래의 원흥이 방죽으로 내려와 산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구룡산의 골짜기 아래에는 방죽말 방죽, 장전방죽, 산남방죽, 농촌방죽, 원흥이방죽 등의 방죽이 다수 조성되어 있다. 계곡은 물이 맑아 두꺼비 서식지로 유명하며, 두꺼비가 구룡산 아래의 원흥이방죽으로 내려와 산란하기 때문에 원흥이방죽까지 폭 10여m의 두꺼비건널목이 설치되어 있다. 산세가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하여 일명 ‘구렁봉’이라고도 한다. 지명은 산의 형세가 아홉 마리의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九龍爭珠形]과 관련하여 유래된 것으로 설명된다. 한편, '구렁봉'이란 지명은 주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구렁'을 용이 아닌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말한다. 또한, '구렁산'은 산에 구절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다.
4. 충청북도 청원군 충북 청원군 문의면 덕류리와 현도면 하석리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370m). 정상부에는 석축 산성이 있다. 지명은 산의 모양이 아홉 마리의 용이 모여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모양이 여러 마리의 용이 이어진 듯 긴 것이 특징이다. 달리 '구봉산'으로도 불리는데, 구룡산과 같은 뜻이다. 다만 '용'만큼 상서로운 동물인 '봉황새'에 비유한 것이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문의 쪽에서 보면 삿갓 모양이기에 '삿갓봉'으로도 불린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문의)에 "구룡산이 현의 서쪽 12리에 있다. 꼭대기에 노인성전(老人星殿)의 옛터가 있는데, 그 화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회인현에서도 보인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곳에 구룡산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대동여지도'의 북면에 구룡산이 금방산과 함께 표기되어 있다.
5. 충청북도 보은군 충북 보은군 내북면 용수리 · 법주리와 회인면 쌍암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549m). '여지도서'(회인)에 "구룡산(九龍山)은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와 주맥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872년지방지도'(회인), '조선지지자료'(회인), '한국지명총람'에 모두 표기자 변화 없이 구룡산(九龍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6. 충청남도 공주시 충만 공주시 우성면 상서리(上西里) · 동대리(銅大里) · 방문리(方文里) · 단지리(丹芝里)와 사곡면 화월리(花月里)에 있는 산이다(고도:350m). 산기슭에 아홉 마리의 용들이 여의주 구슬을 갖고 다투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내용이 전한다.
7. 경상북도 영천시 경북 영천시의 북안면 상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675m). 이 산은 북안면과 대창면, 경산시 용성면, 청도군 운문면 경계에 있다. 이 산에 있는 연중 마르지 않는 '무지터'라고 불리는 샘에서 9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구룡산이라 부른다. 무지터 바로 옆 넓은 너럭바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또한 무지터 주변에는 무덤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도 포획하지 않는 등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신성시하였다. 이 산의 동쪽에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의상이 창건한 웅정암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웅정암은 1603년에 중창되었다. 이때부터 이 절을 영지사라고 불렀다.
7. 경상남도 사천시 경남 사천시 사남면 화전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384m). 와룡산(臥龍山) 북쪽 선상(線狀)의 한 봉우리이다. 구룡산은 구릉형의 산으로 분류할 수 있고, 사면 또한 완만하여 종순형의 노년산지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구룡산의 서서북쪽에는 와룡산의 또 다른 선상에 있는 봉대산(烽臺山)이 있다. 동쪽으로 흥무산(興霧山) 선상에 있는 능화봉(陵華峯, 陵華山)이 있다. 구룡산과 능화봉 사이를 죽천천이 서북으로 흘러 사천만으로 유입한다. 구룡산 지명의 첫 기록은 '조선지형도'(사천)이다. 구룡산은 원래 귀룡산으로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사천)에 "귀룡산(歸龍山)은 현으로부터 남쪽 10리 지점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귀룡산의 지명은 능화봉·능화동과 마찬가지로 고려 현종과 그 아버지 안종 욱(郁)의 전설과 관련이 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사천)에 따르면 고려 태조의 여덟째 아들 욱(郁)은 경종이 죽은 후 사저에 머물던 경종의 비인 헌정왕후(獻貞王后) 황보씨(皇甫氏)와 친하게 지내다가 서로 정을 통하게 되었다. 욱은 그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사수현(泗水縣)에 유배되고, 헌정왕후는 현종을 낳자마자 죽었다. 어린 현종은 성종에 의하여 길러지다 두 살 때 사수현의 욱에게 보내져 성장하였다. 안종 욱은 문장에도 밝았지만 지리에도 정통하였다. 일찍이 현종에게 금 한 주머니를 몰래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歸龍洞)에 장사하여라. 그리고 반드시 엎어서 묻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 996년(성종 15) 욱이 유배지에서 죽자 현종은 그의 말대로 하였는데, 매장할 무렵 엎어서 묻도록 청하자 술사가 "무엇이 그리 바쁜가."라고 하였다. 다음해 2월 현종은 서울에 돌아갔다가 우여곡절을 겪고 1009년 왕위에 올랐다. 1017년(현종 8) 현종은 아버지 안종의 묘를 건릉(乾陵)에 이장하고 후에 무릉(武陵)이라고 칭하였다. 추존하여 효목대왕(孝穆大王)이라 하였다가 1021년 효의대왕(孝懿大王)이라 고치고, 묘호(廟號)를 안종이라고 하였다. 귀룡동은 구룡산 동쪽의 능화동을 지칭한 것이고 그 뒷산이 능화봉이다. 현종과 관련한 이야기가 '신증동국여지승람'(사천)에 전한다. 배방사(排房寺)의 옛날 명칭은 노곡(蘆谷)이며, 와룡산에 있다.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 절에 우거하면서 새끼 뱀을 보고 시를 지어 "작디 작은 뱀 새끼 약포의 울타리를 도는구나. 온몸에 붉은 무늬가 제대로 아롱졌다. 항상 숲 밑에만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하루아침에 용이 되기 어렵지 않으리라."라고 읊었다. 와룡산은 '조선지도'(사천)에 의하면 안점산봉수(봉대산)과 이구산(니산) 및 귀룡산에 둘러싸인 곳에 있다. 와룡산의 범위는 지금의 와룡산 주봉에 한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8. 경상남도 창원시 경남 창원시의 동읍과 북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432m). 원래 염산(簾山, 廉山)이라 불러 옛 문헌에는 구룡산보다 염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름인 염산은 산세가 발을 두른 듯 펼쳐져 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지명인 구룡산은 산의 9등성이가 아홉마리의 용처럼 보여 붙여졌다. '여지도서'(창원)에 염산은 "부 동쪽 15리에 있다. 첨산(檐山)으로부터 이어진다. 일명 구룡산이라고 한다."라는 기록과 함께 산 아래 문방동(文房洞)과 곡천(谷川)에 관한 기록이 덧붙여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창원)에는 "염산석성(簾山石城)이 부 남쪽에 있는데, 높고 험하며 둘레가 1,070보, 안에는 내[川]와 시내[溪]가 하나씩 있다."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 동쪽 2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창원)에는 읍치 북동쪽에 구룡산이 묘사되어 북쪽의 백월산과 이어진다. '대동여지도'에는 천주산의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염산이 산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마산)의 동면에 구룡산이 용강리(龍崗里)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성보명(城堡名)에 구룡산성(九龍山城)이 화곡리(花谷里)에 있는데 '임진고보(壬辰古堡)'라 설명하고 있다. 구룡산의 남사면에는 용강리, 용전리 등의 마을과 구룡사, 용주사, 용각사 등의 사찰이 있는데 모두 구룡산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 유래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