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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뜨면 (동 화)
김 봉 대
태화강 동굴피아에 밤이 왔습니다. 오늘은 좀 특별합니다. 왜냐고요? 이야기 하는 나무 할아버지가 동굴피아 가족과 동굴피아를 품고 있는 남산의 울창한 숲속에 살고 있는 모든 친구들을 불러 긴급한 회의를 하게 되었거든요.
회의 소집을 알리는 것은 밤에만 우편을 배달하는 부엉이 아저씨가 했답니다. 아저씨는 동굴과 숲속에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쪽지들을 큰 나무에 붙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긴급 공지
동굴피아와 남산 숲속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긴급회의를 소집하니
모두들 참석하기를 바라노라.
* 불참해서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1. 모이는 날 : 단기 4355년 7월 13일 보름달이 뜰 때
2. 모이는 장소 : 동굴피아 광장
이야기 나무 할배가 씀
부엉이 우체부 아저씨의 고생으로 공지사항이 펴지자 숲속에는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맨 처음 공지사항을 본 토끼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왜, 회의를 하는 걸까?”
땅속에서 고개를 내민 두더지가 토끼의 말에 대답을 했어요.
“글쎄 말이야, 오래 전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동굴을 훼손했을 때와 얼마 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두 번 회의를 했는데 이번에는 무엇 때문일까?”
겁을 먹고는 양쪽 귀를 바짝 세우고 있는 토끼를 보고는
“이렇게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데 설마 큰일이야 일어나겠니. 좋은 소식이 있겠지.”
두더지의 말에 토끼는 세운 귀를 내리면서
“아무튼 내일 회의에 가 보면 알겠지.”
“그래, 내일 밤 회의에서 다들 보자.”
멧돼지, 산비둘기, 까마귀, 사슴벌레, 다람쥐, 고라니 등등 숲속의 친구들은 나쁜 일 보다는 좋은 일이기를 바라면서 내일을 기다렸습니다.
남산의 숲 속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보름달이 뜨면 그들만이 다니는 작은 길을 따라서 동굴피아에 자주 놀러 가지요.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아는 이야기 나무 할아버지가 있거든요. 친구들이 갈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지요. 또한 할아버지 앞에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재미난 책도 있어요. 그래서 숲 속의 친구들은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리지요. 아참, 동굴피아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숲속의 친구들도 있어요. 물론 지금은 볼 수가 없는 호랑이와 곰, 고래도 있지요.
드디어 나무 할아버지가 긴급한 회의를 개최한 밤이 되었습니다. 광장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고 시끄러웠습니다. 목소리도 각자가 달라서 얼마나 큰지요. 광장 뒤편에서 조용히 잠을 자든 귀신고래 아저씨도 눈을 떴습니다.
“아함, 오늘 밤은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도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네!”
옆에서 잠을 자든 아기 고래도 긴 입을 앞으로 쏙 내밀고는
“아빠, 오늘은 나무 할아버지가 숲속의 모든 친구들을 불러 모았어요. 저 친구들도 왜 모였는지 궁금하겠지만 나도 무척 궁금해요.”
아기 고래가 광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무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들렸어요.
“다들, 이제 조용히 해라!”
할아버지의 말에 모든 친구들이 자리에 앉아서 할아버지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잘 지냈지. 오늘 이렇게 보니 참으로 반갑구만.”
“할아버지, 저도 정말 반가워요.”
까만 생쥐가 할아버지를 올려다보고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 내가 오늘 이렇게 여러 친구들을 모이게 한 것은 실로 몇 십 년만이다. 그 때는 이 동굴에 일본군으로 암흑이 찾아 왔을 때와 동족간의 전쟁에 대한 나쁜 소식이었지만 오늘은 좋은 일로 모였으니 다행이구나.”
“저도 그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었어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아요!”
쪽제비가 무서움에 떨면서 고개를 숙였어요.
“그래, 그 두 번의 전쟁으로 우리 친구들과 숲도 많이 다쳤지. 다시는 우리에게 그런 나쁜 일들이 생기지 말기를 우리 모두 바라자.”
“할아버지, 무슨 좋은 일이에요. 어서 말해주세요.”
“그래, 예쁜 노루야, 내가 그 이야기를 할게. 며칠 전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놀러 왔더구나. 내 앞에 와서는 여기 이 책들을 보더니 한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
“여기 있는 이야기책과 할아버지가 이야기 해 주는 것은 이제는 지겨워.”
“그래, 똑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잖아. 얼마 전에 만든 ‘전래동화 이야기 길’이 조금 새롭지만 말이야. 이제까지는 일곱 편을 만들었는데 더 좋은 이야기를 찾아서 계속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럼 좋은 전래동화를 더 찾아야 하잖아?”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전래동화는 많이 있잖아. 나도 할머니에게 많이 들었어.”
그리고는 그 친구는 나를 보고는
“이야기 할아버지, 우리 이야기 다 들었지요. 전래동화 이야기 길에 만들 재미난 이야기들을 더 뽑아 주세요.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로 말입니다. 숙제입니다.”
하면서 이야기 할아버지에게 숙제를 주고 갔어요. 할아버지는 그날의 이야기를 모든 친구들에게 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전래동화 이야기 길에 사용할 재미난 이야기를 더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선정해야 할지를 몰라서 오늘 이렇게 회의를 하게 되었단다. 선정되면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다 즐겁게 보고 가지. 혹시 너희들이 알고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면 나에게 좀 해 다오. 이야기 길에 나오도록 할 테니까.”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나자 친구들은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선정해 달라고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다시 말했습니다.
“좀 조용히 해! 이렇게 하면 아무 이야기도 더 선정할 수가 없단다. 다들 전래동화 길에 있는 이야기 글을 보았지. 맨 첫 번째 있는 ‘견우와 직녀’를 한 번 보자. 견우와 직녀가 있는데 거기에는 그림과 함께 재미있는 문제도 있어. 그 문제에는 ‘견우와 직녀는 언제 만날까?’ 라고 말이야. 그래서 이야기 길에 선정이 되려면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또 그에 맞는 문제도 만들어야 해. 알겠지!”
할아버지의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고는 재미난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 있게 손을 드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때 동굴의 불을 밝히고 있는 호랑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 호랑이야, 너는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니?”
“할아버지, 저도 이야기 길의 이야기를 다 아는데, 왜 동물의 왕인 우리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요. 그것을 볼 때마다 화가 나요!”
“그럼, 호랑이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해 봐라.”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하늘에 있는 해와 달을 우리 할아버지가 만들었잖아요. 그 이야기는 할아버지도 잘 알지요.”
“암, 잘 알다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지.”
“네, 그래요. 또 다른 이야기도 있잖아요.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말이에요.”
“그렇지, 전래동화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많지.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잖아. 이야기 끝에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너는 무슨 문제를 만들거니?”
“그건 할아버지가 하나 만들어 주세요.”
“그럼, 이렇게 만들어 볼까. ‘해님과 달님을 만든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라고 말이야. 너는 그 할아버지 호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지.”
“예, 썩은 동아줄이 뚝 끊어져서 수수밭에 떨어져 죽었지요.”
“잘 알고 있네. 그런 이야기를 또 하고 싶어?”
“아니에요, 할아버지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 볼게요.”
얼굴이 붉게 된 호랑이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를 할 친구들은 없어?”
광장에 모인 친구들은 서로서로 돌아보기만 했어요.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할아버지 어깨에 앉아 있는 부엉이가 손을 들었어요.
“그래, 눈 큰 우리 부엉이가 할 말이 있구나. 어서 이야기 해 보렴.”
“할아버지, 우리는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우편배달부에요. 이런 착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선정해 주세요.”
“너는 우체부를 한다고 고생은 많지만 안타깝게도 너의 이야기는 뽑을 수는 없어. 부엉이는 자신의 어버이를 잡아먹는 새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야. ‘부엉이는 자신의 부모를 잡아먹을까요, 안 잡아먹을까요.’라고 문제를 낼 수도 없잖아.”
“할아버지, 그건 잘못 알려진 이야기에요. 지금은 안 그래요. 억울해요. 흑흑흑.”
“그래도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알고 있단다.”
다시 침묵이 잠시 흐른 뒤 까만 생쥐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할아버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선정해 주세요.”
“그래, 생쥐야 너는 무슨 재미난 이야기가 있니?”
“우리 가족에게는 재미난 이야기가 아주 많잖아요. 그 중에도 십이지에 보면 우리가 맨 앞이잖아요. 잘 아시지요.”
“알다마다. 소의 머리에 앉아서 일등을 했지. 하지만 일등을 빼앗긴 소는 그때부터 쥐를 괴롭히게 되었지.”
“그래요, 바로 그 이야기를 선정해 주세요.”
“그럼, 문제는 무엇으로 하고?”
“십이지에서 쥐가 왜 맨 앞에 올까요, 라고 하면 안 될까요?”
“그 이야기를 소가 들으면 또 쥐들을 괴롭힐 텐데. 그래도 괜찮을까?”
“괜찮아요, 여기는 소가 없으니까요.”
“음, 알았다. 좋은 이야기가 되겠구나. 다른 친구들은 없어?”
그때 앞에 앉아 있는 토끼가 손을 들었다.
“오, 귀여운 토끼야, 너도 무슨 말을 하고 싶구나!”
“우리는 전래동화에 주인공으로 많이 나왔는데, 우리 이야기를 뽑으면 안 될까요?”
“음, 너의 가족들은 ‘토끼와 거북이’란 이야기로 이미 길에 있잖아.”
“그래도 경주에서 진 이야기라서 창피해요. 꾀 많은 토끼이야기를 하면 어때요!”
“이야기에 없는 친구들도 많은데 너는 그래도 있으니까 안 될 것 같다.”
기가 죽은 토끼 이야기를 듣고는 두더지가 앞으로 나와서는
“할아버지, 집에 가서 의논을 해 보고 내일 이야기 하면 안 될까요?”
“그래, 오늘은 이만하고 다들 집에 돌아가서 깊이깊이 생각해보고 좋은 이야기를 꼭 해다오. 나도 숙제를 빨리 해야 하거든.”
할아버지의 말에 친구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일을 약속하고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밤 두더지는 할아버지를 찾아왔어요.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두더지야, 너 혼자만 왔구나?”
“예, 할아버지. 집에 가서 물어보니 우리들의 이야기도 있더군요.”
“응, 있지. 두더지 딸의 신랑감 찾는 이야기가 있지.”
“그래요, 우리 할아버지가 신랑감을 찾아 전국을 헤매다가 결국에는 두더지를 신랑감으로 선정했잖아요.”
“그래, 그 이야기를 길에 만들어 보자꾸나.”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며칠이 지나도 두더지가 가고 나서는 할아버지를 찾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이야기 할아버지는 밤이 와도 숙제를 하지 못해서 한숨만 쉬었어요.
“큰일이구나, 이제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그들이 찾아 올 텐데. 두더지 이야기와 쥐 이야기인 십이지는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만, 두 개 뿐이라서 큰일이구나. 어쩌지.”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수염을 만졌어요. 그러자 오래전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그래, 바로 그 이야기다. 우리 고장에서 일어난 이야기지. 산 속에 있다 보니 바로 아래에 있는 바다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생각 못했구나. 이, 바보!”
그 이야기는 바로 동백섬이 생긴 유래의 이야기입니다. 옛날 힘센 청년이 그물로 잡은 인어 아가씨를 다시 바다로 놓아주었는데, 그 인어 아가씨가 용왕의 딸이었지요. 청년은 인어공주와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었지요. 청년은 인간이므로 용궁에서 오래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용왕에게 우리 부부가 육지에서는 살아갈 땅이 없다고 하자 용왕이 바다로부터 섬을 솟아올라 오게 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동백섬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제 숙제를 세 개 했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아무래도 세 개로는 부족할 것 같았거든요.
“무슨 이야기가 또, 있을까? ……그래, 가지산 쌀바위 이야기도 있지. 바위틈에서 한 끼의 쌀이 나왔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결국은 그 욕심으로 망하는데 말이야. 이 이야기도 좋구나. 그래 이제 하나 만 더 생각해 보자. 내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재미난 이야기가 어디엔가 숨어 있을 거야.”
다시 할아버지는 두 눈을 감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그 모습을 본 아기 고래는 할아버지가 불쌍해 보였어요.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회의를 하고 난 다음부터는 잠을 잘 자지 못한 모습을 보았거든요. 아기 고래는 꼬리에 힘을 주고는 할아버지가 빨리 숙제를 마치기를 빌었어요. 그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래, 살아서 움직이는 친구들만 생각하다가 보니 잊어버리고 있었네. 꽃말이 슬픈 추억인 ‘할미꽃’ 이야기도 참으로 슬픈 이야기지. 산골에서 두 손녀를 데리고 살았던 할머니와 두 손녀의 이야기이지.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교훈도 있으니까 충분히 전래동화의 길에 맞을 거야. 휴, 이제야 한시름 놓았네.”
그제야 할아버지는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숙제를 한 다음날 그 친구들이 동굴피아에 왔습니다. 그들은 똑 바로 할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 숙제는 잘 했지요!”
하면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오는 버튼을 눌렸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흠, 숙제를 한다고 고생은 했지만 좋은 이야기를 찾았단다. 한 번 들어 봐라.”
할아버지는 두더지 딸 시집보내기, 쥐가 이야기한 십이지 이야기, 동백섬의 인어 이야기, 가지산 쌀바위 이야기, 슬픈 추억이 있는 할미꽃 이야기를 차례차례 했습니다.
“할아버지, 참 재미있어요. 그 이야기들을 새로운 전래동화 이야기 길에 꼭 만들어 주세요. 그래도 아직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니 많이 찾아주세요.”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숙제 한다고 내가 이렇게나 늙어 버렸어.”
“그래도 동굴피아와 남산은 할아버지가 있어서 모두들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잖아요. 다음에 또 할아버지 보러 오겠습니다.”
“그래, 잘 가. 후∼∼유!”
다시 남산에 보름달이 떴습니다. 매월 보름달이 뜨면 남산은 시끄러워져요. 보름달을 보면 모두 내일이 온 줄을 알아요. 그리고는 모든 친구들이 찾아와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선정해 달라고 하거든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동굴피아를 찾아간다면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가지 마세요. 그런 날에는 화가 잔뜩 난 호랑이를 만날지도 모르거든요.
이제 또, 다음 보름달이 뜨기 전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전래동화 길에서 반갑게 인사를 할 거예요. 그러면 그 이야기들은 나무 할아버지가 만든 줄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