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불량가족 레시피/ 손현주/ 문학동네)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은평지회 편집부/ 2016. 12. 2(금) 발제: 김혜정
모처럼 등장인물 가계도를 그려두고 읽었다.
여든 세 살 할매, 쉰네 살 아빠, 뇌경색 삼촌, 엄마가 다른 고3 유나언니와 다발성경화증을 앓는 오빠, 열일곱 살 여울이를 보며 그야말로 마음이 복잡했다. 말끝마다 찰진 욕이 뒤섞인 할매는 1남 7녀를 낳아 기른 억척스러웠던 엄마 모습이랑 겹쳤다. 여자를 밝히지만 끝까지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불곰 아빠는,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오랜 투병생활 끝에 67살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 고마워, 코스튬플레이
사는 게 아무리 힘들더라도 뭐든지 숨쉴 구멍은 있어야 한다. 여울이는 비루한 현실을 단숨에 뒤바꾸는 코스튬플레이에 지난 2년간 온 정성을 들였고 깨달음도 얻었다. 손현주 작가는 청소년기를 ‘미래에 대한 막연함에 가위 눌리듯 내 자아가 짓눌렀던 그 때’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질풍노도의 힘들었던 십대를 자꾸 곱씹어 보게 한다.
여울이는 불량스러운 ‘가출’이란 표현보다 자존감이 높아 보이며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는 느낌의 ‘출가’를 꿈꾸지만, 2년을 버티게 한 코스튬플레이에 고마워하고 끝낼 시기를 분명히 안다.
열일곱 살이었던 나를 돌아보면 자취방에서 책이랑 씨름하거나 월말고사가 끝나면 볼 수 있었던 영화와 여러 가지 공연으로 간신히 버텼다.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 따뜻한 밥 한 끼의 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여울이네 가족은 밥상에 둘러앉아 밥먹는 장면이 단 한번도 없었다. 코스튬플레이 할 때 마리아 아줌마가 싸온 김밥과 따끈한 보리차로 인하여 엄마의 부재를 더욱 강하게 느끼면서도 엄마랑 동일시하는 여울이의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
40평 월세 집에 차압 딱지가 붙여진 날, 널브러진 할매를 위해 기꺼이 죽을 끓인 여울이의 마음은 짐작하고도 남아 눈시울이 뜨거웠다.
‘할매가 미워 부엌일 거드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날들이 떠올랐다’는 여울이는 학창시절 철없는 내 모습이랑 닮아서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따뜻한 밥 한 끼의 힘은 특별하고 여운은 오래간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고등어구이, 배추된장국을 끓여 딸과 마주앉았다. 연신 맛나게 먹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주인공 여울이에게도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 먹이고 싶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열한 살 딸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냐고 물었다.
“ 심장”
“그거 말고는?”
“음식”
“음식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물, 공기, 자연”
시절이 하수상하다. 가족이 해체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힘은 대단하고 굳세다. 불량가족일지라도 아버지, 언니, 오빠, 삼촌을 ‘방관자’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기다리는 여울이에게 고인 물처럼 매몰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당당하게 제 몫을 살아가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 2015년부터 은평지회 편집부원으로서 매월 두 권씩 청소년소설을 읽고 함께 토론합니다.
이따금씩 발제글도 씁니다.
최근에는 <하얀 거짓말/ 재스민 왈가/ 라임/ 311쪽> 읽고 썼어요.
속내를 드러낸 글이라 부끄럽지만 <불량가족 레시피> 먼저 올립니다.
첫댓글 천국같은 한국에서 밥 한끼 못 먹는 가족이 있긴 있나보네요?
물론 있겠지요.
나와서 보면 한국 너무나 흥청거리고 살아서 천국인 줄 다 알고 있어요.ㅋㅋ
작품 얼른 읽어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