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갈리시아 사람들 속에서... (2)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이른 새벽부터 포르투갈 여자 셋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짜증이 나 인야도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 보니, 신시아 할머니와 껑충하게 큰 독일인 한스(Hans)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후 1시 기차를 탄다는 신시아 할머니였기에, 시간이 넉넉할 터라,
"왜 이리 서두르세요?" 하고 의아해 물으니,
기왕 산티아고에 온 김에 오전 10시 성당 미사에 참석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스는, 자기는 오후 1시 비행기로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대로 헤어지는 게 아쉬웠던 인야는 셋이서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자고 제안했고, 둘 다 찬성해서... 나중에 알베르게를 나오면서, 거기에 있던 자원봉사자에게 부탁을 하여... 정문에서 한 컷을 찍었다.
그런 뒤 알베르게를 내려가면서 인야가 갈리시아에 와 있는 까르멘에게 전화를 거니,
"인야, 어떻게 할 건데?" 하고 물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거기 '빌라 노바 데 아로우사(Vila nova de Arousa)'에 갈 생각인데......" 하자,
산티아고에서 '빌라 가르시아'를 지나는 기차가 있으니, 그걸 타고 내린 뒤 역 앞에 서 있으라 했다.
기차가 몇 시에 있는지 몰라 역부터 가보려고 인야는, 길에서 한스와 헤어졌는데... 그는 다리가 아파서 매우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고, 인야에게 '29'라는 숫자를 적으면서 뭔가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그가 독일어만을 하는 사람이어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결국은 서로가 웃고 마는 걸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어쩐지 그의 웃음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는 덩치는 컸지만 퍽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신시아 할머니와는 성당 앞까지 가서,
"신시아, 내가 여기 갈리시아의 '빌라노바 데 아로우사'에 가야 하는데, 기차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 가야 합니다." 하자,
"그럼, 우리도 이제 헤어지는 거야?" 하고 아쉬워하던 신시아 할머니에게,
"제가 '은의 루트'를 걷고 마드릳에 들르면, 전화할 게요." 하는 약속을 남기며 헤어졌다.
할머니는 미사를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고, 인야는 그 전날 헤어졌던 '호세(Jose)'도 성당 미사에 참석할 거라고 했기에, 잠시 기다려 봤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혹시 성당 안에 있는지 잠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막 미사가 시작되려는지, 사제가 복사와 함께 걸어나가고 있기에 다시 나오고 말았다.
산티아고 기차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거기서 다행히 호세와 딱 마주쳤다.
"호세, 조금 전 신시아 할머니도 성당에 들어가셨어." 하자,
"응, 우리는 어차피 미사가 끝나도 같은 기차를 타게 될 거야." 하더니, "그러면 내가 갈 '바야돌릳(Valladolid)'까지는 그 분과 함께 가게 될 거야." 하기에,
그의 사람 됨됨이가 윗어른을 아주 극진히 보살피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인야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짧은 재회였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으로 헤어지려는데, 호세는 악수를 하면서,
"인야, 이 까미노에서 당신을 만난 게 너무 기뻐." 하는 것이었다.
인야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태로 있다가,
"오늘이 '호세 축일'이라니, 축하해!" 하고 겨우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기차역으로 걸어가면서 인야는 길거리 빵집에 들러 엠빠나다(empanada) 한 쪽을 사들고 역으로 향했다.
11시 7분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빵도 먹고, 그동안 제대로 남기지 못했던 기록을 몇 자 끼적이기도 했다.
신시아 할머니와 호세와 함께 하느라 개인 시간을 낼 수 없었던 며칠이었던 것이다.
기차를 타고 빌라 가르시아(Vila Garcia)에 내리니 12시가 돼가고 있었다.
역 앞에서 인야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마놀로 부부가 차를 타고 도착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도 어젯밤에 도착했어." 하는데,
인야가 겨울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 한국 지인들을 안내하며 바르셀로나에 머물 때 겨울 길을 걷겠노라 흘렸던 이야기가 빌미가 되었던 걸까. 첫 번째 까미노를 끝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놀로 부부는 또다시 약속이라도 한 듯 갈리시아 고향에 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걷는 도중 J(장)이 준 핸드폰으로 까르멘과 몇 차례 통화를 하며 소식을 주고받긴 했지만, 인야의 일정에 맞춰 자신들의 고향 겨울 나들이를 정해준 그들의 깊은 속내와 인연이 그저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말로는 약간의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라고 했듯, 그들이야 고향 오가는 일이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인지라... 인야와 관계 없이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곧장 집으로 향하는 대신, 마을의 한 집에 들러 방금 잡아왔다는 싱싱한 조개와 맛조개를 샀다.
그리고 아직 부모님께 가보지 못했다며, 아랫동네 '산 로께'에 있는 마놀로의 본가로 향했다.
3년 전 첫 방문 당시, 여동생 아델라(Adela)는 수술을 받아 병실에서 목발을 짚고 있으면서도 인야를 어찌나 친절하게 대했는지 어리벙벙했던 기억이 선명했는데,
이제 아델라는 남편 꾸꼬(Cuco), 그리고 어느덧 번듯하게 커서 커플 신방을 꾸린 무남독녀 크리스티나(Cristina)와 함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워낙 큰 집이라 방은 넉넉했다.
첫 만남인 꾸꼬는 특유의 푸근한 인상으로, 적극적인 성격의 아델라는 스스럼없는 몸짓으로 인야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지난번 여름 까미노를 마치고 왔을 때는 정신이 없기도 해서였겠지만, 누가 누군지조차 파악이 잘 안 됐었는데... 이 가족의 온전한 형태가 비로소 인야의 눈과 마음에 들어온 계기였다.
인사를 마친 뒤, 이번에 마놀로 부부가 머물기로 한 윗동네 '산 미겔'의 까르멘 친정집으로 이동했다.
2층짜리 전형적인 갈리시아 옛집인 그곳은 너른 텃밭을 지닌, 방이 남아돌 만큼 웅장한 집이었다. 온통 검은 옷과 스카프를 둘러 갈리시아 전통 여인의 인상을 풍기던 장모님과, 비록 수전증으로 손은 떨었지만 정정하셨던 장인어른은 인야를 마치 친자식처럼 품어주었다.
짐을 풀기 전 마놀로가 가장 먼저 인야를 데려간 곳은 거실 벽면이었다.
3년 전 첫 까미노를 마치고 고마움의 뜻으로 그려 선물했던 '네꼬라(게)' 그림이 아담한 나무 액자에 담겨 당당히 걸려 있었다.
돈 한 푼 없이 겨울 길을 걸으며 내내 위축되어 있던 인야의 마음에 알 수 없는 감동이 출렁였다.
'그래도 내가 이 집에 머물 최소한의 끄나풀은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위로가 밀려온 순간이기도 했다.
인야는 2층의 아늑한 방에 짐을 풀었다.
이윽고 인야가 오면 '빠에야(Paella)'를 준비하겠다던 까르멘의 약속대로 역시 풍성한 점심 식사가 시작되었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조금 전에 사 온 조개와 맛이 구워져 나왔다.
그런데 이 집의 취사는 장작으로 불을 때는 전통 오븐 방식이라 듯, 음식 맛이 깊고 훌륭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까르멘 친정아버지가 담갔다는 집포도주는 포도 원액처럼 진하고 맛있었는데, 갈리시아 전통이라며 하얀 사발에 따라 마시는 방식이었다.
인야가 처음으로 갈리시아 식의 '따사(Taza:사발)'에 비노를 마시는 것이기도 했다.
출발 전 지갑을 잃어버려 내내 궁색하고 고달펐던 겨울 까미노였다.
그러나 까르멘 부부의 세심한 보살핌과 친정집의 극진한 환대 속에서, 그간의 모든 고생은 단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건 단순한 보상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야말로 과분한 복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따스했던 나날 이후의 상세한 기록은 수첩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매일 비노에 취하고, 맛 좋은 음식과 고향 집 같은 분위기에 흠뻑 취해 기록할 틈이 없었음이 분명했다.
다만 네 명의 그 집 식구들과 대리석 벤치에 모여 앉아 찍은 사진, 그리고 인근 깜바도스(Cambados)의 겨울 축제 나들이 사진 속 인야의 환한 미소만이 그 정신없이 흐뭇했던 며칠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사실 인야에게는 산티아고에 다다를 무렵부터 마음 깊이 품고 있던 계획이 하나 있었다.
지갑을 잃은 채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으로 산티아고에 도착해 갈리시아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면, 그다음 일정이 너무나 애매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해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무려 열흘이라는 시간이 붕괴된 채 남을 것이었다.
스페인 친구들이거나 J(장)의 집이 있으니 어떻게든 뻔뻔하게 비비고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빈털터리 추레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신세만 지는 것은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그때 인야의 머릿속을 번쩍 스친 생각이 있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길을 더 걷자. 길에서 시간을 보내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겠는가......'
돈 없이 날짜를 보내기에 까미노만큼 완벽한 환경은 없을 것이었다.
알베르게 비용은 지극히 저렴했고, 딱딱한 바게트 빵을 사서 하몬이나 초리소 몇 점을 끼워 넣은 보까딜료(Bocadillo) 하나면 한 끼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
이미 지난 겨울 길 내내 그렇게 근근이 버텨왔기에, 인야 자신은 이 궁상맞은 방식에는 몸도 마음도 완벽히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한 자유 속에서 남은 열흘을 채울 수 있을 것이었다.
비록 몸은 부서지는 고생길일지라도, 인야에게는 마음 편한 것과 자유로운 것이 언제나 최우선이었다.
이 척박한 겨울 길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원초적인 방랑의 기쁨을 주는 길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인야는 오히려 새 길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슴이 뛰었고 걸음에 피치를 올렸다.
또 다른 길, '은의 루트(Vía de la Plata)'의 한 구간이라도 끝마치기 위해서는 단 하루의 시간도 아쉬웠기 때문이다.
고생에 길들여진 방랑자는 그렇게 다시금 스스로 택한 길을 향해, 남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