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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은 1) 창조사적인 안식일이다.
6일 창조하신 후 7일째 안식하셨다(창2:1-3) 그 다음
2)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함께 안식일을 주셨다.
이를 두고 일명 구속사적인 안식일이라고 말한다.
안식일 날은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쉬는 날이었다.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면서 7일 중 하루를
안식하는 날로 정하셨다(신5:15절) 3) 새 언약이
선포된 ‘오늘 날'에 새로운 안식’을 주셨다(히3:7이하)
2. 에덴에서는 순진무구한 상태로 아무 죄가 없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에덴을 쫓겨난 후에는 마귀와 죄와 사망의
공격을 받기 때문에 몸이 쉰다고 안식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노동에서 쉰다고 안식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시면서 안식일 날은 속죄의 제사를 피
흘려 드리고, 제단에 불태워 화제를 드리라고 하셨다.
구약의 안식일은 희생과 예물을 드리므로 인간이
죄와 사망에서 구속함을 받아야만 진정한 안식을
누릴 것을 예표로 말씀하셨다. 참 안식의 그림자다.
3.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소나 양으로
드리던 희생과 예물 대신에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피 흘려 생축 같이 드림으로 우리를 새로운 안식
으로 초대하셨다. 골2:16-17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안식일은 어떤 장소나 시간을
정해서 지키지만 신약의 안식은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상태적인 안식일이라는 말이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는 찬송과 같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그 분과 하나가 되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안식의 상태가 된다. 유비쿼터스의 안식의 날이다.
4. 예를 들면 구약의 안식일은 공장의 작업장과 휴게
공간이 따로 되어있는 것과 같이 6일과 하루를 구분
하였지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안식일은
장소나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분 안에 있고,
그 분이 내 안에 계시면 항상 안식이 되는 것이다.
주일을 하루 정해서 예배하고 감사, 찬송하기도
하며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6일은 아무렇게
하고 하루만 드려서 주일성수를 한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께서 안식후 첫날 곧 제8일째는 새
생명의 날로 모든 날과 겹쳐져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주일 중 하루만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면
복을 주신다고 믿는다면 아직 구약 율법의 안식일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일 하루를 통해 아무리
정성을 다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 그리고 진리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기분이 좀 상쾌하고 또
스스로 자위를 받기는 하지만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하루가 된다. 도덕적 향락이 된다.
5. 그렇다면 안식일 날 무엇을 해야 할까? 눅13장은
천국에 대한 말씀이다. 이 말씀 중간에 예수님이 18년
동안 귀신에게 묶여 꼬부라져 있던 한 여인을 풀어
주시는 사건이 나온다. 이 사건을 지켜보던 유대의
회당장이 안식을 날에 왜 일을 하느냐고 지적한다.
그 때에 예수님이 하신 대답이 바로 15-16절이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외양간에서 풀어
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 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함당치 아니하냐”
이 말씀을 토대로 안식일 날 무엇을 해야 할까 알아보자.
오늘 날의 많은 종교적인 관점의 기독교인은 이 회당
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14절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이를
현대어로 바꾸면 ‘아니 여보세요, 사람의 병 고치는 일은
오늘 같은 안식일 날 하지 말고 다른 6일 동안 해야지요
오늘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십일조하고, 감사하는 날로
거룩하게 구분해야지요’ 하는 식이다. ‘거룩하게 주일
성수를 해야지요?’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을 한 번 보라 16절 “그러면 열 여덟 헤 동안 사탄
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
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사단에 묶인 사람을
안식일 날에 풀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이 여인은
귀신이 들려 십 팔 년을 고생했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사단에게 묶여 있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것을 풀어주는
것이 안식일 날 할 일이 아닌가? 반문하신다. 그렇다
안식일 날 해야 할 일은 바로 사단의 결박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는 일이다. 범죄한 모든 인간은 사단이 영을
묶어 마음과 정신을 묶었고, 육신을 죽음의 두려움으로
묶었다. 엡2:2절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
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가 영과 혼과 육이 사탄의 종이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유리하며 방황하는 별과
같이 정처 없이 다니다가 부딪치는 떠돌이별과 같았다.
그래서 엡2:3-6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신다.
6.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을 사단에게서 구원하시고,
마음과 생각을 구원하시고, 끝내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신다. 마귀는 결박의 숫자(666) 예수그리스도는
결박을 푸는 숫자(777)이다. 마귀는 영도 마음도 육신도
묶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영도 마음도 육신도 푸신다.
그런데 우리 영은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었으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아직 육신의 습관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영의 부활 생명은 얻었으나 우리의 몸은
아직 부활의 영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다. 후크마의 말처럼 already와 not yet사이다.
7. 인간이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저주 받은 결과이다. 아담은 수고하여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고, 하와는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한다(창3장)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은 남자나 여자나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책임과 의무에 묶여
있으면 종이다. 정신과 육체가 결박당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피와 성령과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하면 금방 피곤해지고 만다. 그래서
한라산을 등산하는 것과 쓰레기 줍는 건 산에 오르기는
같지만 피로도가 다르다. 자유인은 일하는 것을 즐기고,
종은 피동적으로 움직이므로 피곤해 진다. 직장, 남편 노릇,
아내 노릇, 부모 노릇, 아이들 공부 등등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안식일 날, 이 안식의 때는 사단의 결박에서
풀려나는 일을 해야 한다. 요즘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옛날 같으면 짚신 신고 길쌈을 해서 자급자족을
했지만 지금은 자본주의 결박이 아주 무섭다. 시골마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정도면 굉장한 부자이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에 비교하면
그렇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아프리카 전체 GDP와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하더라. 그러나 옛날에는 배가 고파서
고통스러웠지만 이젠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파 고통스럽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 진 거다. 문제는 사회가 발달되고
경제가 윤택해지면 질수록 죄가 많아지고, 죄에 대한
부르짖음이 높아간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다. 신앙의 자유도 누리고 돈도 많이 벌
수 없을까? 뽕도 따고 님도 보는 논리다. 진짜교회와
가짜교회는 항상 같이 존재한다. 주께서 하시고 싶은 뜻에
따라 사탄의 결박과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는 참 교회가
있을 것이며 세상에는 돈으로 살도록 하지만 찜찜한 구석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대용품을 드리도록 해서 안심
시키며 위로와 용기를 고양해 주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빵과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한 결과 빵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나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자유가
없다. 미국의 국가 이념이 자유이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사단의 멍에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도록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마11:28) 거기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와 자신과의 바른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간다. 잘 못하면 종교라는 의식으로 무엇을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식일을 맞이할 수 있다. 짐승을 제외하고
모든 인간이 다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단의 결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유와 안식이 없다. 말을 바꾸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안식이 없으면 나의 신앙생활은 종교적인 열심일 뿐이다.
우리 신앙이 자유와 안식이 없이 신앙의 형태만 발전시키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가 된다. 귀신이 무서운 것은
사람을 잡아 묶는다는 사실이다. 율법으로 묶고, 교만하게
하고 염려와 걱정으로 묶고, 죄책감으로 묶는다. 그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율법으로 사람을 묶는 것이다.
8. 율법은 병원의 X레이와 같다. 아담 이후에 사람들이
다 죽어갔다. 이는 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들은 죄의식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을 들이대
죄를 드러내시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처치하시고,
죄에서 자유 그리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하셨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그러나 부자 청년처럼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는 것은 아직
사단에게 잡혀 있는 상태이다. 율법에 갇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되어야만 온전한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멀쩡하게 살아있는 율법이 폐해
졌다는 망발을 하면 안 된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을 해방시켜
그 분 안에서 자유와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
(히2:14. 요일3:8) 사단을 처치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말이다. 인간은 귀신에게 속박을 당하지만
주님께서 사탄을 묶어버렸다. 그 때에 우리는 귀신의
결박에서 해방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셔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죽으면 그 분과 같이 산다. 그 분과 하나
되어 한 떡이 되고 한 영이 되면 그 분과 함께 자유와
안식을 누린다.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은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 다시 사셨으며 지금도 성령을 통해 임마누엘로
우리들 중에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하나님을 만나는 자유와
안식을 항상 사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 중에 이유이다. 안식일 날 주께서 아브라함의 딸을
어떻게 고치셨는가? 이것은 바로 우리의 안식일의 문제이다.
사탄의 결박과 죄와 환경과 세상과 나의 자아에서 풀려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남을 풀어주는 안식을
누려야 할 것이다(고후3:17) 안식일은 어떤 날이나 장소가
아니라 안식의 주 곧 안식을 주시는 머리(주, 두목, 대장)가
되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영의 자유와 안식을
얻는 날이 바로 진정한 안식의 날이다(골2:19)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
안식을 얻어 사랑의 종노릇함으로
주님께 우리를 드려 주의 기쁨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