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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공덕, 해드리고 싶어 합니다
굉련(박영주, 대전)
2003년 보문사 절에 다녔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이 불러서 말씀하셨다.
”10월 7일 중국 스님이 법문하러 오신다. 이 스님은 극락에 다녀오신 스님이고 도력이 높으신 스님이다. 나이가 80살이나 되신 분이니 통역하러 온 사람과 잘 상의 하여 불편이 없으시도록 잘 모셔라.“
그때부터 며칠간 통역을 하신 분과 상의하여 관정 스님 수발을 들었다. 내 수발은 단순한 것으로, 끼니가 되면 식사를 마련해 드리고 하루 종일 법회하고 마정수기 하시고 나면 힘들어 하시기 때문에 안마를 해 주는 정도의 일이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성심성의껏 해 드렸다.
나는 중국 스님을 모셔본 적이 없기 때문에 중국 스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잘 알 수가 없어 가장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우리가 절에서 하는 식으로 준비해 드렸다. 큰스님은 계란은 물론 5가지 냄새나는 채소(오신채)도 일체 잡수시지 않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써야 했다. 정말 계를 철저하게 지키시는 큰스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절에서 많이 쓰는 참나물이나 취나물을 해드렸는데 한국에 다니시며 익숙해지셨다고 잘 잡수시었다. 나물도 깔끔하게 해드려야지 양념을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양념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무 같은 것도 깔끔하게 썰어서 소금만 조금 넣어 간해서 드리고, 양배추나 배추를 썰어 간장 좀 넣고 살짝 끓여서 드리면 잘 잡수셨다. 샐러드도 나름대로 드레싱을 해서 드리면 잡수지 않으셨다. 당시 나는 중국에서는 채소도 모두 익혀서 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국 스님들도 모셔보았지만 한국 스님들에 비해 많이 안 잡수신다. 밥은 반 그릇 정도 살살 담아 드리고, 반찬은 거창하게 해봐도 안 잡수시고 3가지 정도면 충분하다. 한 번은 반찬을 5가지를 만들어 올렸더니 2가지는 잡수지 않고 밀어놓으시며 말씀하신다.
”먹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남으면 다 버리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것 해드리지도 못하고, 속으로는 은근히 죄송하고 혹시나 잘 못 모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밥상도 따로 차릴 필요 없고 통역하고 다니는 거사님이나 다른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한 상에서 공양을 하신다. 이런 점은 한국 스님들과 크게 달랐다. 한국에서는 큰스님들은 따로 공양상을 차려드리기 때문이다.
차는 보이차를 드렸는데 즐겨 마셨고, 간식은 거의 드시지 않았다. 다과나 엿 같은 것 드리면 너무 달다고 하셨고 강정 같은 것 한두 개 드시는 정도였다. 큰스님 일정을 보면 매일 몇 시간씩 법회에 참석하시고, 영평사 같은 곳에서는 공양도 안 하시고 10시간이 넘게 마정수기를 하셨기 때문에 수발을 드는 사람으로서는 참 걱정이었다. 그래서 여쭈어 보았다.
”다른 것 잡수고 싶은 것 있으십니까?“
”없다.“
”이렇게 잡수시고 그렇게 오랫동안 염불하시고 마정수기 하셔도 괜찮으십니까?“
”그런 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원력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밥을 안 먹어도 힘이 난다. 걱정하지 말라!“
자잘한 일은 모두 통역을 부탁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할 때도 있지만 큰스님 쳐다보면 한국말로 하면 대부분 통했다. 그럴 때는 가끔 내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뭐라고 말씀을 하신다. 통역의 말에 따르면 감사의 표시라고 한다.
”나 때문에 수고가 많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말씀드렸다.
:스님 저는 해드리고 싶어 해드리는 것입니다.”
큰스님 법회는 보문사에서 하시지 않고 보광사에서 했다. 두 절 신도들이 함께 한 절에서 법회를 한 것이다. 우리 절에서 법회를 마치고 난 뒤 공주 영평사를 가셨다가 조치원 학림사에 갈 때까지 충청권을 다니실 때는 모시고 다니며 수발을 들고, 스님이 거제로 가셨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통역을 맡은 강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큰스님이 충청도에서 열심히 수발을 해주어 고맙다며 우리 집에 한번 와보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다. 나는 지금까지 큰스님을 집에 모셔본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사가에는 잘 가지 않는 스님이 특별히 오신다니 영광스럽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으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너는 전생에서 스님의 수발을 들었다. 그러니 과거의 인연이 깊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굉련이란 법명도 지어주시면서 열심히 수행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처음에는 큰스님이라고 하여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지만 정말 편하게 해주셨다. 물론 가까이서 수발을 했기 때문에 허물없이 가까워진 측면도 있지만 큰스님의 평소 소탈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는 다 같이 수행하는 도반이다.”
다음날 오전 좀 한가한 시간이 나자 그림과 덕담을 써 주셨다.
영주 대거사를 치하하며 (英珠 大居士 存)
그지없는 공덕 (無量 功德)
떠돌이 중 석관징 드림 (雲遊僧 釋寬淨 敬贈)
영주 대거사를 치하하며 (英珠 大居士 存)
나무아미타불 (南無阿彌陀佛)
서방 극락세계에서 만납시다!(西方極樂世界再會!)
떠돌이 중 석관징 드림 (雲遊僧 釋寬淨 敬贈)
“서방 극락세계에서 다시 만나자!”
나는 이 문구가 가장 좋다. 아주 짧은 인연이었지만 큰스님이 이처럼 극락왕생을 담보하셨으니 말이다. 나는 늘 큰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너는 내가 절대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왕생하도록 도와주마.”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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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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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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