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오두’편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오두’를 설명하자면 다섯 종류의 좀벌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좀벌레는 주로 나무에서 살면서 나무의 속을 조금씩 갉아먹어 결국 아무리 튼실한 나무라도 결국 고사시키는 무섭고도 골치 아픈 좀벌레를 의미합니다.
한비는 국가라고 하는 큰 나무도 결국 이들 좀벌레에 의해서 언제든지 말라죽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한비가 말한 이 다섯 종류의 좀벌레는 무엇일까요.
가장먼저 ‘학자’들을 좀벌레라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공부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저희들과 같은 사람들은 조금 뜨끔합니다. 우리가 국가를 패망에 이르게 하는 좀벌레라니...
한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를 비롯하여 삼황오제 시절의 법도와 춘추시대, 전국시대의 법도들은 같지 않아 늘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된 시기에 걸맞은 법도를 적용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비가 좀벌레로 규정한 이들 학자들은 현란한 말솜씨로 자신들을 치장하고 당시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인의를 빙자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입니다. 한비가 ‘성용복(盛容服)’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모와 복장을 화려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위선과 가식 그리고 겉모습의 화려한 치장이 이들을 판별하는 기준입니다.
두 번째 좀벌레는 거짓을 내세워 속임수를 쓰고, 잔꾀를 부리며,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유세가들을 말합니다. 당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개인의 영달을 위해 지식을 파는 ‘총명하지만 도의에서 벗어난 유세객’들을 말합니다. 선거 때가 되거나 정치적 구조조정으로 이합집산이 있을 때, 자신의 지식을 팔아 권력과 관직을 구걸하는 자들을 지칭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한비는 이들을 ‘언담자(言談者)’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사욕에 눈이 멀어 공의(公義)를 소홀히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공의를 사소하게 생각하는 자들에게 신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렵겠죠?
세 번째 좀벌레는 무력을 앞세운 협객들입니다. 한비는 이들을 ‘대검자(帶劍者)’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패거리를 모아 공권력을 조롱하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이 패거리를 모을 수 있는 근거는 ‘의리’입니다. 물론 이런 의리는 공의(公義)와는 거리가 먼 패거리들의 의협심을 말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공권력과 법의 권위를 무시하는 조직폭력집단들입니다.
우리나라에 한 때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들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코믹물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오락용 작품이지만 너무 인기가 있던 나머지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조심스러웠던 것은 자칫 폭력배들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조폭들이 웬지 친숙해보이고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들이 내세우는 ‘의리’가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조폭들이 미화되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의 어느 구석을 둘러보아도 ‘의리’가 존재하지 않아..그나마 저급한 패거리들의 의협에서 ‘의리’를 찾으려한다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조폭은 예나 지금이나 분명히 ‘좀벌레’입니다.
네 번째 좀벌레는 권력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한비는 이들을 ‘환어자(患御者)’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환(患)’은 ‘관(串)’과 같은 의미로 친밀하다는 뜻입니다. 권력자에게 친밀하게 붙어서 뇌물을 주고받고 청탁을 일삼는 무리들입니다. 한비는 이들이 전쟁의 공(功)을 도적질했다고 말합니다.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공을 인간관계를 동원하여 가로채는 기생충과 같은 무리들입니다. 대체로 절대 권력자의 측근에 이런 좀벌레들이 언제나 기승을 부리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상공업자가 좀벌레라고 합니다. 이것은 조금 시대적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국강병을 위해 장정들은 전시에는 군사로 평시에는 군량과 국가 재정을 위해 농업에 종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가는 농업을 중시합니다. 농부들처럼 신성한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자들과 이렇게 만들어진 생산물을 단지 말과 조작으로 이익을 챙기는 상인들.. 그리고 권력자들을 위해 호사스러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인들과 대비시킨 것입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신성한 노동에 의한 생산물을 쉽게 탈취하는 무리..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따라서 상공업자라기 보다.. 타인의 노동의 가치와 수고를 자본이나 지위로 농단하는 무리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좀벌레의 특징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감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조직속에 제도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서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는’ 특징이 있습니다. 겉보기엔 정당해보이고, 때론 멋있어 보이기도 해서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사실 국가의 패망의 원인이 되는 무리들입니다.
다섯 좀벌레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지칭하거나, 다른 사람을 좀벌레로 규정하는 것은 고전을 읽는 자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가 좀벌레가 되어 이 사회를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좀벌레를 제거하는 것은 ‘좀약’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