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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문학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소정
2008 겨울호 신인상 시상식 및 겨울 시의 축제 / 민문자
2008년 12월 27일 토요일에 아스토리아호텔(3,4호선 충무로역 4번 출구 100m 전방)에서【서울문학 2008 겨울호 신인상 시상식 및 겨울 시의 축제】가 100여 명이 참여하여 성황리에 열렸다. 1부 시상식에는 산업환경신문사 발행인 이덕영 시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한승욱 서울문학발행인이 개회사를 하고 초대 손님 소개가 있었다.
축사에 이수화 펜클럽한국본부부이사장, 성준기 한국문인협회부이사장, 김홍일 새한국문학회한국문인회장이 각각 창간 십년의 서울문학의 역사적 의의와 발전을 기원하며 이 행사에 대한 축하의 말씀을 하였다.
최무송 서울문학문인회장은 축하의 인사말이 끝난 후 신인상 수상자에게 교보문구에 직접 가서 구입했다는 어어령씨의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일곱 권을 일곱 명의 수상자에게 각각 선물하였다.
시 부문의 신인상 수상자, 구도선, 강님, 안태희 김윤제, 고영신, 방승기의 시상식에는 원동은 시인이 시상을 하였다. 수필부문의 김현식의 시상식에는 이원복 수필가가 시상을 하였다.
수상자들은 상패와 서울문학 로고가 새겨진 금배지와 가족 친지들의 꽃다발을 받고 사진촬영을 하였다.
축가는 정상기 시낭송가이며 뮤지컬 배우가 이태리가곡 <그 여자에게 내말 전해주오>를 감동스럽게 멋지게 불렀다.
그 여자에게 내말 전해주오 / R.Falno
그 여자에게 내말 전해주오
나항상 그를 생각하므로서
내맘에 평화 다 잃어 버린 것을
그 앞에 내맘 떨리어 말 할수 없도다
내 맘에 맺힌 이 말을 전해주게
내 맘에 숨은 사랑 그에게 달리는 것
그 고운 두눈 내 마음 사로잡아
아무리 홀로 애쓰나
내 수고 헛 될 뿐 (왜 들려 주잖나)
김상순 강남예술단장이 이도령으로, 박정이 시인이 춘향으로 분장하고 언제 들어도 좋은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를 창극으로 보여주어 장내분위기를 띄워 주었다.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 / 박정이 시인, 김상순 창극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이히 내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의 백청을 다르르르 부어
씨는 발라 버리고 붉은점 웁뿍 떠 반간 진수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당 동지 지루지허니 외가지 단참외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사탕의 회화당을 주랴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데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아마도 내 사랑아
2부 사회는 시낭송가로 활동하는 도경원 시인이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을 먼저 낭송하고 진행했다.
서울문학 창간 후 일 년 네 차례(봄, 여름, 가을, 겨울), 신인상 시상식 때마다 그 첫 테이프를 끊어 준 이원복 선생께서 이번에도 첫 번으로 시낭송을 하였다.
《서울문학 겨울 시의 축제》에 실린 29명 중 참석하지 않은 두 명을 제외하고 27명의 시낭송과 시낭독이 있었다. 또한 곱게 차려입은 박정이 시인의 춘향가 중에서 <이별가>와 이경선 선생의 판소리 <토끼가 수궁에서 살아나온 후 이야기>를 중간 중간에서 양념으로 첨가하여 들었다.
춘향가 중에서 이별가 / 박정이 시인, 판소리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천리라도 따라 가고 만리라도 따라 나는 가지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다 쉬어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부다
하날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 일도 보련 마는
우리님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길래
이다지도 못 보는고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동풍 연자되어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정회를 허고지고
뉘년의 꼬염 듣고 영영 이별이 되라는가
어쩔거나 어쩔거나 아이고 이 일을 어쩔거나
아무도 모르게 설리운다
토끼가 수궁에서 살아나온 후 이야기 / 이경선
[아니리]
별주부는 하릴없이 수궁으로 돌아가고 토끼는 살아났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생방정을 떨다가 사람이 쳐놓은 그물에 딱 걸렸것다
(성음)
" 아이고 아이고 어쩔거나 아이고 이일을 어쩔거나 차라리 내가 수궁에서 죽었드라면 정초 한식 단오 추석이나 받아먹을 것인디 이제는 뉘놈의 뱃속에다 장사를 지낼것인가"
[아니리]
이때 쉬파리떼가 윙~하고 날아오니
"아이고 쉬낭청 사촌님네들 어디갔다 이제오시오~"
"오 네이놈 그물에 걸렸으니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
" 아이고 죽고살기는 내 재주에 매었으니 그저 내 등에다 쉬나 실어주고 가시오"
"네가 꾀를 부릴 양으로 쉬를 실어 달라 한다만 사람의 손을 당할성 싶으냐"
"아니 사람의 손이 어떻단 말이오 "
" 내 이를 테니 들어 봐라
[자진모리]
" 사람의 내력을 들어라 사람의 내력을 들어봐라 사람의 손이라 하는 것은 엎어지면 하늘이요 뒤집으면 땅인디 요리조리 금이있기는 일월다니는 금이요 엄지손가락이 두마디기는 천지인 삼재요 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정월이월 삼월 장가락이 그중에 길기는 사월오월 유월이요 무명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허기는 칠월 팔월 구월이요 소지가 그중의 짧기는 시월 동지 섯달인디 자오묘유가 여기있고 건감간진 손이곤태 삼천 팔괘가 여기있고 불도를 두고 일러도 감중련 감상련 여기있고 육도삼략 대장경이 천지가 모두 일장중이니 내아무리 꾀를 낸들 사람의 손하나 못당하리라 두말말고 너 죽어라~~
[아니리]
죽고살기는 내재주에 매였으니 그저 쉬나 실어 주고 가시오~
쉬파리떼가 쉬를 잔뜩 실어놓고 날아간 후에 그때여 초동목수아이들이 외너리소리를 부르며 올라오겄다
[아니리]
"야들아 토끼걸렸다 근디 요놈이 썩었는가 쉬파리떼가 쉬를 잔뜩 실어 놨어야""그럼 냄새를 맡어봐라~"
요놈이 머리쯤 맡았으면 맛나게 구워먹고 갔을 터인디 하필이면 꼬리쯤 맡어놓은 것이
"아따 이놈 썩었는가보다"
하며 휙~ 하고 내던져 놓으니 이 꾀많은 토끼란놈이 저건너 바위위에 오똑 하고 서더니만은
"야 이놈들아 내가 썩은 것이 아니라 너희들 코구멍이 썩었다 이놈들아"
하며 두번 살아났다고 신명나게 한번 놀아 보는디
[중중모리]
관대장자 한고조 군량많기가 날만허며 군주결승 장자방이 의사 많기가 날만허며 신출귀몰 제갈량이 조화 많기 날만허며 무릉도운 신선이라도 한가허기가 날만허며 예 듣던 청산 두견 자주운다 각새소리 타향수궁 갔던벗님 고국산천이 반가워라 그산광야 너른 뜰에 금잔디 좌르르 깔린디 이리뛰고 저리뛰고 깡짱뛰어 노닐며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고국산천이 반가워라
서울문인 시낭송 (29명)
1. 그럴 줄 안 냄새 / 이원복
산(山) 내음 짙어
강(江) 향기(香氣) 푸른
은한(銀漢)에
내 몸을 담가 놓으면,
노래로 익을까.
시(詩)로 흐를까.
시작(詩作)노트
새해로 아흔 세 살 되실 친지 어르신에게
내 시집「아내의 한강」을 드렸더니
받으시고는 “내 이미 그럴 줄 알았어
만날 때마다 냄새가 내게 풍겨 오더라니까”
라는 말씀을 연거푸 해주셨다
2. 기다림 / 김은자
솔밭을 지나
길 없는 떨기나무숲
헤쳐가며
꾸럭꾸럭 찾아나선 붉은
하소연
투깔스런 눈빛에 저만치
나앉는 풍경이 된다
멀리 실배암강, 아련한
초록길 꿈틀대며 곰비임비
일어나
들썩이며 몰려드는
바닷소리
아픔은 바소침 되고, 다시
선한
하얀 서러움
아슴아슴 그리움은 멀어져가고…
3. 연탄 한 장 / 안도현 / 안은주 시인 낭송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 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했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4. 고향 / 구도선
고향 찾아가 부모님 묘소 참배하니
‘오, 내 아들 왔느냐 ’
다정한 부모님 음성 들리는 듯하다
마을 앞개울에 떼 지어 놀던
피라미 은어는 어디가고
웬 골프장이냐
동네 한 바퀴 돌아보니
주인 없는 빈집만 여기저기
옛 친구 다 어디 갔나
백발노인 한분만 보이고
붉은 대봉감만 아직도
주렁주렁 열렸구나]
5. 겨울바다는 외롭지 않다 / 이종림
영흥도 영흥대교가 삼각 붉은 곳깔을 쓰고
살랑대는 서해바다의 소곤대는 소릴 들으며
겨울 바다의 외로움을 끌어안아 주고
아롱아롱 산모롱이 잘리고 깎이는 아픔도 참고
여름에 거친 파도도 품어 달래고
해일도 어루만져 평정을 안겨주던 해변
나무와 언덕이 시뻘건 눈물을 흘리고
도로와 건축물이 영흥도의 행복을 부수고 있는 데도
굽이굽이 작은 포구들은 겨울 파도를 달래고
십리포 작은 해수욕장에 자갈 모래는 스르륵 치익
바닷물을 맑게 걸러내고 외로움을 달래는 소리
서걱대는 자갈밭을 걷는 연인들의 사연도 듣고
가족의 포근한 아이들의 어리광도 보고
실연에 쓸쓸함도 안아주는 스르르 철석
조용한 파도 소리
사연과 사연속에 끼어들어
심리포 작은 백사장은 자갈 모래를 씻겨주며
맑은 바닷물이 소곤대며 웃고 반기고
그 소리 듣다 보니 고운 마음의 자르르
겨울 바다에 간간히 찾아주는 발길들
사연도 버리고 추억도 버리고 또 만들고
홀로 쏟아버린 눈물도 파도가 쓸어 담고
호들갑떠는 사랑얘기도 슬픈 사연도 어루만지는 겨울바다.
조약돌과 모래를 쥐고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6. 영덕 해맞이 언덕에서 / 박광섭(朴光燮)
아물거리는 수평선 넘어 오색무지개 타고
유토피아에 온 선녀(仙女)
감탄의 떨림으로
침묵의 바다에 조화(調和) 빚어
파란물 드렸는데 스쳐오는 맞바람
저 선 넘어 이는 물결 밀고 와
금실금실 펼쳐지니 한 폭의 파란
비단(緋緞) 물결이어라!
이 좁은 가슴 활짝 열고
저 넓은 비단결 담아 보려니
힘차게 불어 저 물결 넓고 넓게 펼쳐다오
백사장에 펼치다 지난 밤 새긴 발자국
못내 아쉬워 머뭇거리고...
바위절벽 찢긴 자락 진주알 뿌려지닌
이 가슴속에 젖어들어
내 마음 파랗게 물드니
아물아물 저 선 넘어
그 선녀(仙女) 마음 그려 보는데...
높새여, 높새풍이여!
술렁이는 비단 물결
이 세상 끝까지 펼쳐주어
하늘같이 맑고 푸르게 이 마음 물들게 하여
선아(仙娥) 선심(善心) 전하여 주려무나....!
넘실대는 파란 물결
네 한 폭 너울지는 비단(緋緞) 물결이여!
7.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 정 일 근 / 정순복 소설가 낭송
네모난 밥상을 볼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 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 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않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 처럼 않아
어린 시절로 돌아 간듯 밥숫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 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 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 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 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들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 먹고 싶다
8. 소망의 꽃이 피게 하소서 / 박용호
새벽을 재촉하며
어두움을 밀어내는 제야의 종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질 때
적막은 산산히 부서지고.....
새 소망을 잉태하는 마음과 마음마다에
동요가 물결친다.
어둡고 부패한 지난날들을 한데 동여매고
저 하늘 끝까지 울어 나는
종소리에 실어 보내고
새 소망의 한해를 재촉하여 전진하게 하소서.
어두음은 밀려 갔는가
새 아침은 밝아 오는가
어둡고 괴로웠던 지난날들을 잊게 하고
더러운 시기와 질투와 탐욕의 잔재물을
후회없이 버리자.
9. 꽁초 / 아운(雅雲)안태희(安台熙)
삶의 숨찬 찌꺼들이 동서울터미널 건널목에 꽃잎 지 듯 떨어진다.
첫차 떠날 시간 고만고만한 삶의 분신들이 떠나온 입술을 그리워하며 뻐덕한 빗자루에 몸을 맡긴다. 설렘 초조 만남 미움 분노 이별들이 서로 엉키어 낄낄대기도 하고 힘겨운 눈꺼풀을 껌벅이며 뒹굴며 끌려간다. 입술로 지지던 뜨거운 연민의 삶을 내려놓는다. 가슴에서 뜨겁던 입술로 손끝에서 모진 발끝으로 시멘트에서 지지 발피며
그래도 한 순간은 불같은 사랑을 주고받았노라고.
10. 해 / 박두진 / 전민정 시인 낭송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라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라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11. 낙화암 / 김윤제
산기슭
고란사 종소리
은은하게 울릴제
의자왕의 삼천궁녀
전설이 피어난다
백제멸망 천오백 년
그 세월이 언제던가
잠시나마 타임머신 속에서
백제를 만나본다
부여를 휘감아 도는
백마강은 아직도 쉼 없이 흐르고
백제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부여 땅을 밟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되살아난다
12. 풍전호텔 앞에서 / 배명식
인쇄촌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
연말 겨울 바람이 더 재촉하는가
청도의 산속 풍경보다 온 나는
풍전호텔 앞에서 먼 과거로의 여행길 같다
늘 잠시 왔다가 가는 을지로와 퇴계로 사이
현존의 고단함이 어디인들 특별할까마는
사는 일이 아침 안개 같이 사라지는
영원과 시간 사이에 갇히는 틀이다
누군가와 만나는 일은 즐거움이다
세상과 소통하며 네 속에 나를 각인하고
하루사이 피력의 바다로 헤험쳐 가면
성과 속은 백지장 앞뒤에 새기는 마음이다
진정 우리는 사랑으로 산다
끝모를 노동의 손에 먼지 묻고 씻는 사람들 속에
너와 나는 인연의 고리 풀어지지 않고
영원한 처소에서 내리는 빛 안고 갈 것이다
13. 내리 푸른 산빛
- 다산 생가에서 / 한석산
첫새벽 풀잎에서 젖 같은 이슬 받아
백리향 녹아드는 찻물을 끓이는 날
능내리 푸른 산빛이
샛강을 끌고 가네.
이에 저에 등 떠밀려
마현골 깃사리고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라
책읽기를 부지런히 하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두물머리 바윗돌에
휘두른 저 붓자국은
맥이 돌아 숨을 쉰다.
이가 시린 카랑한 물
온 밤내 길어 와서
벼룻물 어르는 아침
딸깍대는 귀얄다기
뒤뜰에 살구꽃 향기 마재마을 다 적신다.
14. 님의 침묵/ 한용운/ 조순배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5. 겨울 새벽에 / 고 영 신
지난밤 소복이 내린 흰 눈은
성결하심 그대로 순결하고
겨울 새벽에 드리는 내 혼의 노래는
죄 씻음을 받은 기쁨이로다.
푸른 노송 가지에서 돌연 푸드득 산꿩이 날아오르면
예견하지 못한 나의 목자 인도하심에
가슴 벅찬 기쁨으로 놀라던 그때가
다시 되살아나듯 부풀어 오른다.
과수원 너머 높다란 밭 위로
청량함과 고요함이 강물처럼 흐르는데
가치 없는 일에 쫓겨 분주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움 속에 이미 지났음에도
영의 만족과 감사는 더 깊이 흐른다.
또 다시 부드럽고 빠르게 내리는
풍성한 눈은 뜸했던 감격의 노래가
다시 되살아나야 할 것을 권하고
명함이 분명하도다.
16. 차향기로온 손님 / 석 선 혜
대숲에서 일어난 바람으로
넌지시 건네는
차 한 잔
초겨울 살
미소로 피어나
눈인사를 하고
지난해에 뿌리고 간
알가(閼伽)의 넋
양지 볕 뜰에 널어놓고
배웅 길에
차마 거둘 수 없어
홀로 지키는 깊은 밤
비인 찻잔에서 흘리는
다심(茶心)에 얼굴을 묻고
무심(無心)한 소리 듣는다.
17. 창문을 열고 / 강님
너
내 곁에 있을 때엔
없는 듯 잊고 살아왔고
너
떠나 있을 때엔
함께 있음을 느끼며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
너
있으니 없는 듯
없으니 있는 듯해
창문을 열어 본다
불현듯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감춰 둔 보물
강하고 질긴 애정의 꽃
너를 보기 위함이었다
18. 먼동 / 남솔고
동녘하늘 밝아오니 먼동이 트나보다.
민가에 닭 홰치는 소리에
산천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내요.
찬서리 밟으며 들로 산으로
여보게나.
나락 단위에 앉은 메뚜기 못 보았는가
흰옷 입은 촌로가 물어봅니다.
둥근 해가 뜨기 전에 몸을 사련나 보군요
봄, 여름, 가을 다보내고 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끝없이 밀려오는 기러기 무리 그 힘찬 날개소리 들어보렴.
이제 이 세상 시름일랑 다 내려 놓고
마당 쓸고 감꽃 떨어지기 기다리는 마음으로...
종일토록 꽃에게 물어보아도 꽃은 말이 없고
윗마을 낭군님은 돌아오는데
임께서는 어찌 함께 오시지 않는지요.
※ 나락단 위에 앉은 메뚜기는 촌로의 아들을 말하며
기러기 무리는 독립군과 아군을 뜻하고 암울했던 시기에
구부(舅婦)간의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는 시(詩).
이 마음 깊은 곳에 그대
평화의 씨를 뿌리고
새 소망의 꽃이 피게 하소서.
어두웠던 날들아 영원히 잠들어라
이제 광명의 날이 날 찾아와
이로 벗하여 새로운 전진을 하련다
내어 딛는 발길마다에
새로운 용기와 자신과 희망을 주옵소서
시선이 닫는 곳마다에
새로운 판단력과 지혜를 주옵소서
드리하여 당신으로 부터의 은총은
나만을 위하여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대 영광이기 위하여
새 소망의 꽃이 피게 하소서.....
19. 그 때 그 사람 / 권순악
이 세상에
버려야 할 것 천지지만
버리고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것이 있더라.
버리려 하여도
버려지지 않고
잊으려 않고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 있더라.
버리고 버려도
가벼워지지 않고
버리지 않더라도
죄는 아니라지만
마음은 한 없이
바람 부는 추억 속에 있다.
버리고 지워도
주워지지 않는 사람아.
20. 하늘공원 / 이현욱
사람의 욕심
채우고 버려진 땅
구름위로
그림계단이 펼쳐져있다.
잘 가꾸어 하늘정원
그 열기가 꽃불을 밝힌다.
가을빛 넘기는
단풍잎에
싸리꽃 마음 흐트러지는데
철없는
갈대는 겨울을 부르고
계수나무 아래
하얀 토끼는
늦은 세수를 한다.
21. 동강의 추억(6) / 방승기
고요한 아침 동강의 모습을 처음 보았네
미탄 쪽에서 강물 따라 같이 내려가면서
속살까지 내보이는 네 진실함에
나그네 차마 발을 떼지 못 하겠데
가수리 팔경 아름다운 너의 여덟 친구들도
오랫 동안 사람들에게 다가와 줘
그래! 강 아, 고맙다.
찌는 듯한 더위도 식혀 주는 너그러 움
풍덩! 너와 살을 같이 하고 싶음은
내 마음까지 파랗게 물들까봐
얼굴만 살짝 대어 보았지
강 건너 백로한테 놀라 다람쥐 도망치고
목 매기 황소 두 마리 풀 뜯는 한가로움이
낚시꾼의 여유로움보다 못 할까?
아! 강 아! 시가 있다
가슴이 애려 시상이 안 떠오른다
낚시꾼한테 버들치 몰려 나오다가
아차! 툭 ! 떨어트려 아쉬워함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갈림길이었네
아옹다옹 인간만사 욕심쟁이들은
오늘도 덥다 돈 못 번다 아우성치는데
너는 모르는 체 감싸주며 흘러만 가느냐
22. 거리엔 너의 물결이다 / 남궁연옥
땅거미 속
푸른 정맥으로 일어서는 수은등에서
어둠 속에 주차된 도심 속에서
너를 본다
주홍빛 단풍의 어지러움에서
그 속에 묶인 인파 속에서
그 꽃물 흩어지는 바람 속에서
낮은 네 헛기침을 듣는다
블록렌즈 유리창의 카페에서
와인의 부드러운 입김에서
빈 술잔에서 너를 본다
맨살의 보도블록 각지게 누운 외곽에서
젖빛 물안개 모으는 다리 난간에서
발걸음 황망한 계단에서
가슴에 쿵쾅대는 너의 음성 듣는다
긴 밤 적시는 빗속에서
배우들의 미소가 걸린 포스터에서
심곡에 걸리는 노랫말에서
가슴 흥건히 네가 있다
거리엔 너의 물결이다
23. 조개껍질 / 박윤규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언니 바닷가에서
주어온 조개껍데기
여긴 여긴 북쪽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짝을 그리워하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소리 바닷물소리
24. 여명(黎明) / 김현식
병술년이 밝았다.
고즈넉이 앉아 있는 산봉우리 하이얀 설경 위로
눈부신 태양이 온누리에 복음을 밝힌다.
마을 어귀에서는 흰둥이 검둥이가 저희들의 해라고
컹컹 멍멍 희망과 미래를 토해낸다.
장닭도 질세라 오색영롱한 깃털을 세우고
홰를 치며 살맛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표효한다.
눈속에 푸른 소나무 기상
아스파라거스(asparagus) 내음
병술년은 이들의 낭랑한 앙상블처럼
동서남북 천지가
희망의 빛으로 가득차리라.
25.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 정상기 뮤지컬 배우 낭송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 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26. 분이네 수정고드름 / 채 수 명
솜사탕처럼 포근한 함박눈이 펑펑 휘날려 하얗게 수놓은 후
칼바람 춤추나 양지바른 산골마을 정월초였으리.......
분이네 마당 감나무 꼭대기에 새벽 때부터 까치 한 쌍 짖어대고
싸리문 지나 아담한 돌담집 초가지붕 처마 밑에
유난히 탐스런 수정고드름 줄줄이 열려 차전놀이 준비한다.
백년가약 꽃미남 한양도령 만돌이 노심초사 잠 못 이루다
흑심 많은 동네청년들 미덥지가 않던지 다급히 내려오니
삽살개도 나와 요란하게 짖어대 온 동네 난리 난 듯 떠들썩할 때
곱디고운 분이네 수정 고드름은 찬란한 아침햇발 받아
영롱한 자태를 마냥 뽐내며 축복의 대합창 축제를 즐기고 있다.
낭랑 18세 처녀가슴 콩콩 뛰며 미소 짓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호롱불 아래 야밤까지 내 사랑 꽃분홍 목도리 뜨게질 하자
흑심품고 내 동생하며 애지중지 정성 다한 동네 청년들
이 소식 전해 듣고 심통 난지라 독립운동 접선하듯 떼거지로 몰려와
몽둥이로 작대기로 분이네 수정 고드름 훌훌 털어 상처 남기고 도망을 쳤다.
초소병 분이동생 졸다 외마디소리에 놀란 가족들 모두 나와 격노하자
수정 고드름 이 마음 아는지 어느새 아픔 잊고 삐죽이 고개 내밀어
종류석보다 더더욱 늘어져 오색영롱 찬란하게 빛을 토하니
분이 만돌이 싱긋 웃고 동네 청년들 상사병 걸려 누워도
무심한 수정 고드름은 함박눈 꽃송이 되어 온 동네 하얗게 수놓고 있다.
27. 하나의 뜰이고 싶어라 / 라이나 마리아 릴케 詩 / 최무송 낭송
하나의 뜰이고 싶어라
생가에 숱한 꿈이 피면
고운 꽃이 피어나는 뜰이고 싶어라
떨어져 있어도 한몸이 되는
새로운 뜰이고 싶어라
꿈꾸는 뜰이고 싶어라
꽃들의 숨소리와
웃음소리를 모두 보듬어 안는
하나의 뜰이고 싶어라
28. 월출(月出山)의 여명(伃明) / 자현(慈玄)
만상(萬祥)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우산의
아침을 여는 일출(日出)!
바우마다 빛을 밝히어 세상을 연다.
봄이면 산유화 진달래 활짝피어
비경(比熲) 을 이루고!
여름이면 깊은 골짜기 흐르는 냇물소리
선경(仙境)에 들게하네!
가을이면 깊은 천황(天皇峯)에 떠오르는 밝은달
천(千江)에 비추어!
환하게 밝아서 어둡지 않는 기상(氣象)이 높고 높아
영골(靈骨)을 낳게 하니!
설산(雪山)에 달빛이 스며들어 광명(光明)의 흐름이
우주(宇宙)를 비추는 거룩한 법경(法境)일세!
29. 은행꽃 / 이덕영 / 민문자 낭송
겪은 세월 숱한 사연
너는 알건만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가슴 속
끝없는 기다림, 고독한
그리움이다 사랑이다
동구 밖에 심어져 오랜 세월
바람이 불고 비에 젖어도
해마다 피고 또 졌지만 아무도
너의 모습과 존재를 아는 이 없다
그래도 그렇게 고향을 지키고
있을 너, 잊혀진
그리움이다 사랑이다
아름둥치 둘러 처진 범줄 아래
두꺼운 껍질 떨어진 자리 푸른
피 돌고 가는 실가지 마디마다
도톰한 눈 부릅떠 꽃과 잎 틔울 때
너는 잎 같은 꽃이다 아무도
꽃이라 하지 않을 너, 알지 못할
그리움이다 사랑이다
오월 하늘가득 초록그물로
실비 맞던 날 순명이듯 떨어져
다시 오른 어쩌면 은자(隱者)의
불꽃, 꺼지지 않을 영원한
그리움이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