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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나마 다시 정리
panic bird..
- 나의 삶이 어떤 패턴속에 빠져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중독이다. 중독이 되는 이유는 더나은 것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고.
- 항상 익숙한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고, 특징적이고 똑같은 행동패턴을 반복하는 중독된 삶을 살고 있음을 알아챠려야.
- 넘을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들, 같은 패턴의 정보만을 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우리는 에고라는 중독의 삶에서 벗어나야, 중독밖으로 벗어나야 한다. 한. 관찰자
- 작용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 사고 너머에 존재하는 것.. 동양에서 깨달음. 느끼고 통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 습관, 직관, 깨달음
- 직관은 습관과 깨달음 양쪽에서 온다. 직관은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온다. 무아의 직관으로 연결될때 깨달음에서 오는 직관이 온다.
- 1차는 나는 누가인가?
- 2차는 나와 세상과의 관계, 나에 대한 깊은 통찰력, 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한
- 3차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하는 힘의 근원. 무아, 전체의 근원. 근원에 대한 깨달음.
- 중독에 대한 것을 끊을 수 있는 스킬이 생긴다. 나라는 ㅣ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스킬,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면 뭐가 남는가?
=> 神, 道, 천지기운, 천지마음
장자가 기르는 투계
- 싸우려 하는 단계. 두려움에 있는 단계
- 다른 닭이 피하는 단계. 존재하는 단계. 싸울 대상이 있다. 그래서 안된다.
- 모든 닭이 무관심한 단계. 인식도 하지 않고, 나도 없고, 싸울 대상도 없는 단계. 나도 사라지고 너도 사라진 상태. 인식하는 것도 사라지고, 인식할 대상도 사라지는 단계.
- 새로운 차원의 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 내가 없어져야 영원히 존재한다. 깨달음의 가장 큰 장애는 깨달음에 대한 환상이다. 깨달음은 감각, 감이다. 비교에 의한 에고는 비교를 통해 무엇인가를 감지한다. 상대성에 의해 형성된 것은 진실이 아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은 비교에 의해 창조된 개념일 뿐이다. "자각"이 필요.
- 상대적 관점을 약화시키기. 상대적 관점을 놓아라. 개념으로는 알 수 없다. 느낌이다. 우리는 관념속에 빠져있다. 개념속에 중독되어 있다. 자신의 수용체에 의해 한정된 작용을 한다.
- 나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 내려 놓아라. 행복하다는 말은 언제든 불행해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관념과 생각은 개념에 의해서 와전된 것 뿐이다. 개념, 정보일 뿐이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잡념을 계속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라. 그리고 자유로워져라.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라.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정짓기"를 멈춰라. 상대성을 내려 놓아라. 실제 존재가 아니라 개념, 정보일 뿐이다.
- 기억하라. 나는 이미 완전하다. 원래 완전한 작용을 한다. 나는 완성해야 한다는 열망이 있다. 깨닫고 보니 제자리로 돌아온다. 진실을 향해 그냥 가는 것이 인생이다. 진실을 향한 액션을 취할때 흙탕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뒤집어 쓸 수 있다.
- 시간에 대한 관점
- 내가 존재하면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 내가 없어지면 시간도 공간도 사라진다. 진정 자유로워진다.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 도인이다. 내가 사라지면 가능하다. 그래서 무아는 진리다.
현실과 비현실
- 현실과 비현실 또한 그냥 개념이다. 뇌에는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기준이 없다.
나에 대한 관점
- 진짜 나는 살아있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내가 창조한 개념, 선택의 경험일 뿐이다. 율려가 깨어나면 에고를 느낄 수 있다. 파동만이 존재하는 상태. 한. 무아. 도인.
- 근원과 작용을 동시에 이해하는 그런 상태
근원에 다가가기
- 환상..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보이는 세계만 현실로 인식하지 않는다. 시공을 초월한다. 그 세계에서는 때로는 학습이 가장 큰 착각의 요소가 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환상이다. 말을 넘어선 감각이 진실이다. 우리가 가진 개념은 환상이다. 토마토를 먹으면 토마토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토마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상.
- 습관은 저항하겠지만 원리적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천지기운, 천지마음.
- 생각이 일어나고 감정이 일어날때 습관적인 정보의 작용임을 알고, watching할 수 있어야. 중독임을 알아차리고 관찰자가 되어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 watcher가 되느냐? 에고가 되느냐는 선택일뿐이다. 이것은 바꾸는 것이 아니다. 선택이다.
- watcher는 아무런 상관없는 근원적 존재다. 진정한 watcher는 고통과도 무관하다. 에고가 만든 환상, 나에 대한실체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에고다.
피해의식
- 열등감, 우월감, 자만심 등의 감정은 에고라는 꿈이 꾸는 또 다른 감정일 뿐이다. 생각은 꿈이고 환상이다. 잠잘때 꾸는 것만이 꿈이 아니다. 생각도 꿈이다. 실체가 아닌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살아가므로 인생자체가 꿈이다. 나라는 실체를 모르면 그냥 꿈일 뿐이다.
- 부처는 실체라고 믿는 모든 것이 환상임을 알았다. 그래서 1주일을 침묵했다. 침묵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에고라는 것이 내가 창조한 것이므로 에고를 내려놓고, 사려지려 했다. 그러려는 순간 수많은 천신들이 내려와 부처에게 말했다. 세상을 구원하라.
- 부처님의 상태는 적멸보궁, 열반이었다. 내가 사라지면서 오는 기쁨.
- 남는 것은 불성뿐이더라.
- 내가 없고, 희노애락도 없고, 작용만이 있는 무아의 상태와 같다.
의식의 진화 7단계
1단계. 나는 모른다. 설탕을 먹어보고 똥의 맛과 비교하면서 분별하는 단계.
2단계. 나는 안다고 생각한다.
3단계. 나는 안다. 고집을 세우기 시작하는 단계. 자신의 신념지식을 맹신
4단계. 나는 아는 것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단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
5단계. 나는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6단계.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안다는 말을 못하겠다. 내가 아는것이 진짜일까?
7단계. 나는 멍청이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모른다.
- 자신의 거울만큼 거울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합니다. 오감을 벗어나서, 직관으로 찾아야.
"판단하고 있는 주체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지혜와 빛을 막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빛이 생기고, 빛이 생기는 순간 어둠은 사라집니다"
"본성에서 오는 지혜로 사느냐?"
"에고가 가지고 있는 습관으로 사느냐?"
도인공부 = 신성공부.
- 세상과 단절
- 근원적인 법칙만 남아있는 상태
- 무정하고 법 그 자체가 되는 상태
- 뇌파가 바뀌면서 물질상태가 바뀌는 것.
- 생각은 업이다. 생각을 놓아야 진공이 되고, 생각을 놓아버릴때 우주의 생명과 통한다.
- 의식이 개인에서 초월하여 초월의식이 된다.
생각의 정지 - 생각이 의미없음을 깨닫고 감각이 깨어나기
1) 힘을 통한 생각의 정지
2) 의식을 놓음으로써 생각의 정지
3) 의식이 집중을 통한 전체바라보기로 생각의 정지
4) 의식의 집중을 통한 하나 바라보기로 생각의 정지
판단의 정지
- 생각이 멈추면 판단이 정지하고, 생각이 있기 이전의 느낌이 존재한다. 느낌이 생각의 뿌리다. 생각과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
- 사람은 과거의 고통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두려움이 있다. 과거에 기대는 판단의 기능을 정지시켜라.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래에 기대는 것에서 벗어나라. 현존의 영속성을 알고 현재에 충실하라.
자기를 바라보는 눈
- 주인 watcher가 되어 자신의 내면, 감정(피해의식, 이기심, 자만심 등)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사라진다. watcher의 힘을 길러야 한다. watcher의 감각을 깨워라. 그러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계속되면 "실재"만 남고 가아, 현상은 사라진다.
근원에 다가가기
느낌에 대하여
1) 의식의 방향을 주시 - 자신의 의도로 의식을 창을 선택하여 주시
2) 머무르기 - 외부대상에 머무르기
3) 머무르기 - 현재에 머무르기
4) 머무르기 - 느낌에 머무르기
5) 머무르기 - 내부에 머무르기, 감정에 머무르기, 감정을 Watching하기.
- 이렇게 하여 관찰하는 대상과 관찰하는 내가 하나되어 외부대상을 물마시듯이 느끼기.
- 판단하지 말고 본질에 머무르기, 문제는 내가 머무르는 것이 본질이냐? 혹은 개념화된 가아, 에고냐?
- 습관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판단, 개념을 보고 있음을 watching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watcher의 감각이 좋아진다.
- 마신 물에 대한 어떤 표현, 평가도 본질과는 무관하다. 항상 그렇게 사물을 대하고 생각하라. 현재에 그냥 머물러라. 의식에 대한 지속적인 자각이다.
- 나무를 멋지다라고 말하는 과정. 개념화된 내가 개념화된 나무를 만난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라. 상과 상이 만난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라. 느껴지는 모든 것이 마음은 아니다. 감정은 에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감정을 품은 마음이 바로 실체로서의 마음이 아닌 에고다. 마음의 참작용은 마음은 모든 것을 인식하는 그 자체다. watcher의 의식이다. 한의 의식이다. 비유하면 배우로 살 것이냐? 감독으로 살 것이냐?와 같다. 감정을 가지지 않고 바라보는 것은 본질에 다가서는 과정이다. 본질은 끊임없이 앎, 지혜, 직관으로 작용한다. 그 감각을 깨워야 한다.
- 자신안에 있는 무의식까지 다 정리하고 ..
- 정보는 오감을 통해 들어온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있을때 그 감정이 생기자마자 감정에 잡혀버린다.
- 감정이 생길 때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하지 마라. 좋은 것에도 집착하지 마라. 그냥 머물러라. egocentric bias에 의해 내가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냥 머물러라.
깨어있기.
- 항상 깨어 watcher가 되는 것이다. 바라보는 자까지 인식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 주의해야 하는 것은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생각에 빠지는 것은 "비현실 세계" "현상"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 실체도 없고, 개념도 없고, 작용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본질"
- 나의 작용과 너의 작용이 다르지 않구나를 알게되는 단계. 자비심이 곧 작용이다. 마음의 근본과 우주만물의 근본이 하나로 통할때 일체가 밝아진다.
"에고가 主가 되는 삶을 살것이냐? 從이 되는 삶을 살것이냐?"
- 에고를 삶의 방편으로 써라.
상대성 내려놓기
- 시간, 현실과 비현실, 나
- 세상 어디에나 항상 새로운 내가 있다.
- 주인없는 생명. 개념이 다 사라지고 생명의 작용만. 내가 사라지면 우주가 관여함. 내가 사라질때 우주와 연결된다.
無象大道 한世界
- 진동은 뇌간으로 들어가는 암호다.
- 율려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나타난다. 나는 사라지고 율려만 남는다. 이 세상의 율려와 나는 하나가 된다.
- 단학은 깨달음을 펼치는 곳이다. 깨달은 사람은 의식이 없다. 분별을 포기하고, 신명에 이르러..
- 깨달음은 볼수도 없고, 만날수도 없다. 당신 모습이 실체이고 그 자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깨달음이다.
- 그리고 남는 것은 어떻게 살것이냐만 남는다.
- 아는 것보다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깨달음보다는 그 깨달음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 깨닫고 볼때,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고 실현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더 귀한 것은 깨달음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깨달음의 기준
- 진짜 깨달았는지 착각인지 아는 방법은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통공완.
- 깨달음이 진짜라면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에 도움이 되면 흥할 것이고, 세상에 도움이 안되면 멸할 것이다.
스승과 교주의 차이
- 스승은 먼저 action하고 교주는 먼저 나서지 않는다.
- 의심과 의지는 나에게서 나온다. 의심은 신성을 밝게 하는 도구다. 끝까지 함께할 수 있다.
- 메시지는 선택하는 것이다.
- 세상에는 깨닫지 않고 수행자로 남는 사람이 너무 많다.
- 꿈이 없는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 아니고 깨달음을 기피하는 사람이다. 기피할뿐이다.
- 몰라서 못했다고 하는 것은 알고 안한 것과 같다. 그래서 깨달음 세상에서는 같은 업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