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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생각을 인연이 닿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축의 "ㄱ"자도 모르면서 주말 주택을 짓게 되었고, 짓다보니 손재주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생스러웠고 끝이 없는 공사였지만 지금은 달콤한 시골살이에 빠져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꿈속의 시골생활을 실현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소나무의 녹음이 우거진 강원도 횡성의 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초원리'로 들어가는 길 입구가 나옵니다. 자연과 농촌마을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성황당과 곳곳의 오래된 농가들이 마을 이름처럼 정겹게 자리해 있습니다.
농가들을 지나 마을 깊숙이 더 들어가면 한눈에 반할 만한 하얀 집이 언덕 위에 앉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나 봤을까? 자연 속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하얀 집의 주인은 이병송, 임영조씨 부부입니다.
보통 시골에 주택을 지으려면 계획하고 준비하는 기간만 해도 상당한데 이들 부부는 얼떨결에(?) 친구의 땅을 구경하러 왔다가 맘에 쏙 드는 땅을 발견, 결국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는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만 없었지 늘 가슴속에 시골살이에 대한 꿈은 꾸고 있던 터였습니다.
유럽여행하며 시골 작은 집에 눈길
그는 직업 때문에 잠시 유럽에 나가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 16개국을 돌아다녔는데 시골에 조그만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답니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전원생활을 하려 했었는데 마음에 드는 땅을 찾으니 계약 전까지 잠도 안 왔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경사진 곳에 풀만 무성하고 길도 없는 폐농지를 누가 살까 만은 사람도 인연이 있듯 터도 인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곳은 그가 늘 꿈꾸던 터와 닮아있었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치고 마을에서 제일 높은 지대라 앞이 확 트여 시원하며 게다가 맑은 물까지 있었습니다. 처음엔 집까지 지을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주말에 내려와서 텃밭만 가꾸려 했는데, 막상 묵을 곳과 쉴 곳이 여의치 않아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가진 돈은 별로 없고 우리 식구가 살집인데 그래도 신경은 써야겠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제가 직접 짓게 되었습니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 골조, 지붕, 창호만 빼고는 바깥주인의 손길이 집 안팍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지붕도 밋밋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이씨가 시원스럽게 다시 터서 서까래로 받쳐 놓았습니다. 이씨는 집 지을 비용이 부족하다면 직접 짓는 것도 괜찮다고 추천합니다. 물론 두 번 다시 집을 짓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생은 했지만 모르고 시작하는 것보다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천천히 지을 생각을 한다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집을 가질 수 있다고…
"이 선반 보셨어요? 다른 집에서 이런 것 구경하기 힘들어요."
주방과 거실을 차단해 주는 벽 가운데 공간을 내어 선반 형식으로 모양을 낸 것을 안주인이 가리킵니다. 이렇듯 직접 집을 짓는다면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아이디어도 활용할 수 있고 인건비가 절감되어 경제적입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들 부부는 24평 집을 지으며 적어도 1천500만원 정도의 건축비가 절감되었습니다.
집 지으며 부부의 정 더욱 깊어져
집을 지으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의견 충돌도 많았을 것 같은데, 두 부부는 집 지었을 때 이야기만 하면 서로를 칭찬하기에 바쁩니다.
"제가 좀 다혈질이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운반이나 설비 때문에 사람을 쓰게 되는데 대강 대강 일 하는 것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그럴 때는 안 사람이 사태를 수습해주죠."
이씨는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합니다.
"여자는 직감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상황에 잘 대처하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임영조씨가 거듭니다.
"남자는 멀리 바라보고 계획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이씨는 노후를 대비해 근처에 한옥 집을 지을 계획입니다.
"본가가 김포에 있는 한옥 집입니다. 재개발로 묶여 집을 허물어야 하는데 그 집 재료를 그대로 가져와 지을 생각입니다."
평일엔 생업에 종사하다가 주말에 내려와 시골살이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닙니다. 오가는 길에 교통대란도 겪어야 하며 그렇게 시달려서 내려오면 주중에 돌보지 않은 텃밭이며 집안 관리 등 산더미 같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체력으로는 불가능하죠. 저희 부부는 워낙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길거리에 뿌린 돈도 엄청 납니다. 하지만 이젠 나이도 들고 정착하고 싶어요. 일하며 쉴 수 있는 집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언덕 중턱에 있는 연못에서 이씨의 아이들이 고무배를 띄워놓고 한창 노젓기에 바쁩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오기 싫다던 아이들도 어느새 자연에서 지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끔 동네 분들도 올라오셔서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눕니다. 한적하고 쓸모 없던 땅에 예쁜 집이 들어서고 아이들 소리도 들려 사람 사는 동네 같다며 좋아들 하신다고.
초원리에서 시작한 이씨 가족의 전원생활은 여름의 녹음 속으로 점점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