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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문학동네.
20세기 현대 문학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불멸의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1912년에 집필, 월간지 <디 바이센 블래터>(1915년 10월호)에 발표 한 중편소설이다. 같은 해 12월 쿠르트 볼프 사(社)가 이 책을 출판했다. <변신>은 한 인간이 벌레로 변신하여 겪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의류 회사의 영업사원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곤 자신이 거대한 벌레(해충, 갑충 등으로 번역)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변신>은 그동안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지만 여전히 새롭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이다. 한국어로도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 특히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변신>에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화가를 수상한 루이스 스타카피의 삽화가 어우러져 있다.
"애초부터 표지에 끌렸던 책이다. 기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벌레로의 변신을 통해 보여준다. 책 내용보다는 중간 중간에 그려 놓은 그림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 ID / heydaynote
“헌데, 책 표지에 '벌레'가 그려져 있다면, 그것은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으로 각인될 것이고, 그렇게 된 이상 <변신>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카프카는 바로 그 지점을 우려했던 게 아닐까. 그레고르 잠자가 상징하는 인간의 소외 혹은 벌레의 메타포 혹은 부조리한 인생 같은 단어만 읽어 낼까봐.” - ID /katzeneko
카프카도 표지에 벌레를 그리는 것을 반대했다. 문이 열린 모습만 그리고 상상은 독자에게 맡겼다고 한다. 변신 모티브는 오랫동안 동화, 민담, 신화 등에 자주 등장해왔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아침 깨어나 보니 벌레로 변해 있는 카프카의 ‘변신’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 보인다. 돈을 버는 존재에서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밥벌레로 전락하고 만다. 인간이 생산활동을 중단했을 때 상황은 끝난다. 그것이 가족 안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연봉이 센 영업사원이었다가 동생이 주는 밥을 먹어야하는 신세는 절망스럽다. 누구나 벌레가 될 수 있다. 카프카의 냉소적인 시선은 차갑다. 가오싱젠은 카프카를 20세기 현대문학의 진정한 선구자라고 칭했다. 낭만주의문학은 카프카에서 막을 내렸고 카프카의 부조리가 등장하면서 차가운 시선이 현대문학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카프카를 시작으로 베케트, 카뮈, 이오네스크가 나올 수 있었다고 전한다.
카프카는 첫문장에 ‘어느 날 아침’이라는 구절로 누구나 벌레가 될 수 있고, 언제든 벌레가 될 수 있다고 암시한다. 한 때 아버지가 벌레가 되었고 벌레 취급을 받았다. 이젠 상황이 역전되어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었다. 벌레-사람-벌레-사람-벌레가 되는 과정은 윤회를 말하고 있다. 가족 중 한 명이 벌레가 되었다면 가족은 붕괴가 될 거 같지만 재편성 된다. 인간에겐 향상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이를 비난한다. 가족에 대한 조롱. 사랑은 사치스럽다. 그것이 카프카의 무서움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사랑이 뭘까 고민하게 된다.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의미도 묻고 있다. 인간으로 기능을 상실한 그레고르에게 가족은 말을 걸지 않는다. 처음으로 말을 건 여동생은 말은 “오빠 정말 이럴 거야!” (p79)이다.
카프카는 41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체코 프라하 태생으로 체코에 살면서 독일어로 작품을 쓰는 유태인 작가였다. 보험회사 직원이었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헤르만 카프카로 유대인이었다. 자수성가했으며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유럽을 떠돌다 프라하에 정착했고 카프카에게는 독일어를 가르쳤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카프카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주제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도 같이 존재한다.
카프카의 작품은 완벽한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난해성, 다의성, 다층적 구조로 카프카의 문학세계는 난해하다. “카프카적인!” 용어라 따로 있을 정도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포감과 위협을 주는 무시무시함이 카프카적이다. 카프카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다양한 해석에 있다로 하겠다. 독자들에게 여지를 남겨둠으로 모호성과 난해함은 끝없이 재해석된다.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한 카프카.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카프카는 변신의 원인도, 과정도, 목적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 그레고르 역시 변신에 대해 담담하게 대처할 뿐 출근할 걱정부터 하고 있다. 그레고르는 한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을 한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충격을 받지만 가족들은 누구하나 그레고르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곧바로 뒤이어 날아온 사과는 달랐다. 그것은 그레고르의 등을 제대로 맞추어 깊숙이 들어가 박혔다. 불시에 당한 이 엄청난 고통이 자리를 옮기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듯 그레고르는 몸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마치 그 자리에 못 박히기라도 한 듯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p.86)
마지막 순간 그는 자기 방의 문이 확 열리더니 비명을 지르는 여동생을 뒤로 하고 어머니가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오는 것을 보았다.(p.86)
“저 괴물은 틀림없이 두 분을 돌아가시게 할 거에요. 뻔하다구요. 우리처럼 이렇게 힘겹게 일해야 하는 처지에 집에서마저 이런 끝없는 고통을 겪으며 산다는 건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저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p.113)
그레고르의 방에 여동생이 들어가 방을 치우고 음식을 날라다 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을 비치는 게 그레테이다. 쓸모없는 소녀에서 오빠가 벌레가 되고 쓸모 있게 된 존재다. 어머니는 그레고르의 방에 들어가 아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와 여동생이 몇 가지 타당한 이유를 들어 그녀를 만류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집 안에서 쓸모없는 계집아이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걸핏하면 그녀에게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여동생이 그레고르의 방을 치우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이 함께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p66)
"그레고르에게 가게 해줘요. 불쌍한 내 아들! 도대체 내가 그애한테 가야 한다는 걸 왜 이해 못 하는 거예요!(p67)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며 살아왔지만 벌레로 변한 후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한다. 아버지에겐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고 가족들은 각자 일거리를 찾아 생계를 이어간다. 아버지는 은행안내원으로,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며, 여동생은 판매원으로 나선다. 지금까지 그레고르가 혼자 생계의 짐을 떠맡고 살았지만 어찌 보면 그레고르의 희생이 아니어도 가족은 살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든 게 누구의 책임일까?
집에 돌아와 그 돈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식구들은 모두 행복해서 입이 벌어졌다.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나중에 그레고르는 온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실제로도 그렇게 했다-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후로 그런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p56)
어머니는 불빛 아래로 몸을 깊이 숙인 채 양장점에 넘길 고급 내의를 바느질했고, 점원으로 취직한 여동생은 장차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것인 듯 저녁마다 속기와 불어를 공부했다. (p91)
옆방에서 돈벌이이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레고르는 문에서 떨어져나와 그 옆에 놓인 서늘한 가죽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너무나 부끄럽고 서글픈 나머지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던 것이다.(p61)
-이렇듯 뼈 지게 일하고 피곤에 찌든 식구들 중에 누가 꼭 필요한 일 이상으로 그레고르를 돌봐줄 수 가 있었겠는가? 살림은 점점 더 곤궁해져 이젠 하녀마저 내보내야 했다. 대신 백발이 흩날리는, 뼈대가 굵은 거구의 파출부가 아침저녁으로 와서 가장 힘든 일만 해주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머니가 그 많은 바느질일을 해나가며 틈틈이 해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즐거운 모임이나 명절날 같은 때 너무도 행복해하며 하고 다녔던 집안 대대로 내려온 여러 가지 패물이나 장신구들을 팔아버리는 일까지도 있었다. (p.93)
그레고르의 여동생 그레테는 벌레로 변신한 오빠를 돌봐주지만 하숙생 사건을 계기로 그레고르를 쫓아내는 데 앞장서게 된다.
“내쫓아야 해요!” 여동생이 소리쳤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저것이 어떻게 오빠일 수 있겠어요? 저것이 정말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나가주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계속 살아가면서, 오빠는 비록 잃어버렸을망정 오빠에 대한 기억은 소중히 간직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를 못살게 굴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고.... 나중엔 틀림없이 이 집 전체를 독차지하고서 결국 우리를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신세가 되도록 만들 거예요.” (p.114)
아버지가 던진 사과로 상처가 심해지고,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던 그레고르는 결정적으로 하숙생 사건으로 돌변한 여동생의 행동에 충격을 받고 방으로 돌아와 곧 죽게 된다. 그레고르가 죽고 난 후 보여주는 가족의 태도는 어떤 면에서 충격적이다. 소풍을 가고 새집으로 이사할 것을 꿈꾸고, 딸아이의 결혼을 계획하는 가족의 모습은 마치 악몽에서 벗어나 삶의 생기를 되찾은 인상을 준다.
이제 그레고르는 매일 이런 식으로 식사를 받아먹었다. 하루 두 번, 부모님과 하녀가 아직 잠들어 있는 아침시간과 모두가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 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부모님은 잠시 낮잠을 잤고 하녀는 여동생이 이런 저런 심부름을 시켜 내보냈던 것이다. 그들도 분명 그레고르가 굶어 죽는 것은 원치 않았겠지만, 그의 식사에 대해서 여동생이 들려주는 것 이상은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p.53)
부상이 심해, 그레고르는 한 3달이 넘게 고생해야 했다. 누구도 빼내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사과는 여전히 살 속에 박힌 채 이 사건의 뚜렷한 기념물로 남아 있었다.(p89)
그들은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 따스한 햇살이 차 안 곳곳을 밝게 비추어주었다. (-) 잘 생각해보니 전망이 그리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서로 상세히 물어본 적이 없었지만 세 사람 모두 꽤 괜찮은 일자리를 얻은데다, 특히 앞으로는 전망이 밝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집을 옮기는 일일 것이다. (-) 잠자 씨 부부는 점점 생기가 도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최근에 두 볼이 창백해질 정도로 갖은 고생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탐스러운 처녀로 피어났다는 것을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느꼈다. (-)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p. 126)
알려진 대로,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모두 소각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평생지기 막스 브로트에게 남긴 부탁인데 브로트는 이를 따르지 않고 10여 년간 카프카의 작품을 편집해 출판했다. 브로트는 1968년 사망했고 죽기 전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고를 비서 에스더 호파에게 넘겨주며, 공공 기록보관소에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호파 역시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호파는 카프카의 원고와 기록물을 두 딸에게 물려줬다. 이에,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카프카의 유작을 보관할 권리가 도서관 측에 있다며 두 자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두 자매는 1970년대에 이미 법원이 에스더 호파에게 카프카 원고의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했기에 자신들이 상속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결국, 지난한 재판 끝에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 승소. 카프카의 유고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정착하게 되었다.
막스 브로트 : 작가, 비평가, 작곡가, 문화철학자.
1902년 브로트는 프라하에 있는 독일 대학생들의 독서 및 연설 모임에서 카프카(1883-1924)를 만났다. 그는 당시에 문학예술분과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대해서 강연했다. 그가 니체를 몽상가로 매도하자 카프카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 시절에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텄으며 그들은 거의 매일 만났다. 브로트는 카프카의 창작을 격려했으며 출판의 기회를 주선했다. 1908년과 1913년 사이에 두 사람은 가장 가까이 지냈으며 카프카는 브로트의 유능함과 처세술을 칭찬했고, 브로트는 카프카의 관용과 진실에 대한 애착에 경탄했다. 브로트의 결혼 이후에 두 사람의 관계가 냉각되기도 했으며 정치적인 견해차를 보이기도 하였다. 카프카는 전쟁에 자원 입대하려고 한 반면 브로트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 브로트는 카프카를 현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여겼으며 자유 기고와 강연을 통하여 카프카의 세상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카프카전집사전
유대인이었던 카프카에게 변신의 의미는 무엇일까. 징벌, 해방, 구원이었을까. 현대인의 상징인 갑충으로 변했고 현실에 불만족하는 주인공에 대한 징벌로 볼 수도 있다. 도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수용한 카프카의 의도도 볼 수 있다. 사회와 단절되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삶을 향항 결심.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 갑충과 동일시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그레고르 잠자를 보면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시작된 산업화, 대도시화로 인해 인간의 삶의 형태가 얼마가 급격하게 변화했는지 보여준다. 허상적인 가족주의와 가부장적 담론을 수호하는 아버지 사이에 갈등했던 억눌려온 지배욕구가 변신이라는 대주제를 가져 온 것은 아닐까.
<서평-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