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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2) 역대기는 어떤 책? 역대기 개론 역대상 29장 10-19절
지난 시간, 이스라엘의 역사를 ‘땅을 차지한 민족’(landed people)과 ‘땅을 잃어버린 사람들’(landless people)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저 분열왕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부터 추방을 경험했었지요? 네, 하나님께서 포악하시고 악독하셔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자기소견대로 살았던 이들이 자초했던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회복하고 세워내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섬기고 사랑해야했던 왕들이 했던 일이 무엇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신정정치’를 ‘제정정치화’ 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인간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만든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성전화’하였습니다. 내 삶의 중심에 모시질 못하고 성전에 가두어두고, 필요할 때만 찾는 수단이요, 도구, 혹은 모든 일에 대한 책임전가의 대상만 되었습니다. 또한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왕실의 노예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청지기와 동역자로 살아야할 언약백성들이, 왕실의 부귀와 영화를 위한 존재, 왕실의 야망과 탐욕을 위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늘 부역과 노동을 짊어져야 했고, 세금과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전쟁이 나면 왕으로부터 보호와 돌봄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노략과 수탈, 죽임과 고통을 당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교재에도 인용이 된 것처럼, 저 남유다 백성들마저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뭐라고 하셨는지 읽어볼까요? 대하 12장 5절입니다.
“그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의 일로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한지라”(대하12:5)
오늘은 이 역대기상하가 어떤 책인지 전체적으로 살펴보시면서, 오늘 역대기상하가 찾은 대답,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광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교재를 봅니다. 165쪽 아랫 단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제목 아래 단락, “역대기 상하는~” 시작!
“역대기상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태초 아담으로부터 다시 서술합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역대기상하와 열왕기상하가 중복되지만,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보는 관점은 서로 다릅니다.”
두 줄 뛰어 넘어서 “이것은~” 시작!
“이것은 두 역사서가 다루고 있는 신학적인 주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또한 이 역사서들이 기록될 당시의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역사서의 신학적인 주제가 다르다! 그리고 기록될 당시 백성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관점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먼저 열왕기서는 그 저자가 예레미야로, 주전 586년~537년경에 기록한 책으로 알려져 있고요, 역대기서는 에스라를 저자로, 그리고 주전 450년~42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 언제이지요? 열왕기서는 남유다가 주전 586년 멸망하고 난 뒤, 이미 앗시리아로 끌려간 이스라엘, 바벨론으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들, 나라가 망한 백성들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요, 역대기서는 바벨론에서 포로로 붙잡혀간 이들이 고레스칙령으로 돌아오기 시작해, 다시금 성전을 재건하며 삶의 자리를 일구기 시작한 포로귀한 공동체를 위해서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어떤 이야기들을 해야 했을까요?
그래서 열왕기상하는 왜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landless people이 되어서 외국땅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책입니다. “왜 우리가 망했을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 다윗이 다스리던 나라가 분열되고 망한 것일까?” 포로로 끌려가면서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던 이들을 위해 답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열왕기서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그렇다. 하나님을 떠나서 그렇다. 선지자, 저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지은 죄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을 하고 있는 책입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건만, 도리어 가두고 때리고 죽이고 말씀을 거역한 행보들, 그렇게 고집스럽게 나아간 저들의 비굴하고 굽신거리는 정치와 외교, 힘의 우상을 기웃거리며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면서 결국 이룬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악행을 일삼은 이스라엘과 유다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음을 가르쳐 주는 책인 것입니다.
반면 역대기서는 누구를 위해서 쓴 책이라고요? 교재를 통해서 한 번 더 확인해 볼까요? 167쪽 1번 다윗왕의 통치라고 시작되는 단락, “역대기 상하는~” 읽어보겠습니다.
“역대기상하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 온 유대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기 전, 즉 그들이 포로로 붙잡혀 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자들의 예언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경고의 예언을 들었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왕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방의 땅으로 강제 이주 당했으며, 약속의 땅에는 이방민족들이 이주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반세기(70년)를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보니, 과거의 찬란했던 영화는 사라지고, 굴욕과 수치의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역사를 다시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서는 제사장의 눈으로, 선지자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정죄가 아닌,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왜 고통을 당해야 했고, 왜 포로생활을 해야 했고, 왜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왜 약속의 땅이 폐허가 되었는지를 말이지요. 안그래도 더 맞을 곳이 없는 상처투성이인 유다백성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 위로받아야 하고 치유되고 희망과 미래가 필요한 이들이었기에, 과거 조상들이 죄지어서 고통당하고 벌 받은 이야기들은 잠시 덮어져있고, 회개하고 뉘우치며 하나님 앞에 서고자 했던 이들이 세움받고 높여지는 이야기들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를, 당신께서 메시야를 보내시어 모든 것을 회복하고 세워내실 것을 약속하시는 희망 가득한 이야기로, 오늘 역대기는 백성들을 예배의 자리로 성전으로 회복의 하나님께로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러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자와 기록시기, 그리고 이 역사이야기를 들어야했던 백성들의 처지가 달랐기에, 오늘 두 역사서에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열왕기상하는 하나님 없이 행한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갈등과 외교, 그로 말미암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그 결과들을 이래서 우리가 이렇게 비참해진 것이라고 깨닫게 하기 위해 기록하고 있다면, 역대기서는 돌아와서 보고 있는, 굴욕과 수치만 남아 있는 허물어진 약속의 땅을 다시금 영광스러운 나라로 회복하는 꿈을, 그렇게 다시금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를 회복하는 길을, 오늘 저 귀환 공동체인 유다백성들을 향해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일은, 하나님과의 언약,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백성됨을 회복하는 일에 있음을, 그 일을 위해 다시금 조상들의 실수와 악행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 앞으로 특별히 성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이루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랬듯이, 저 다윗과 솔로몬이 그렇게 복과 은혜를 누렸듯이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성군이 되어 있을 때, 나라도 백성들도 부강하고 안녕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서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왕들이 보인 성전에 대한 태도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의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웃시야는 제사장에게 화를 내며 향로에 분향하다가 미간에 나병이 들게 되고, 성전을 정화하고 유월절을 잘 지킨 히스기야는 생명도 연장받고 앗수르 군대를 18만 5천을 이기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겸비하여 회개했던 왕들, 특별히 열왕기가 제일 악하다고 기록하는 므낫세가 회개하고 포로에서 귀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던 아몬은 살해되기도 하고 시드기야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을 찾고 기도하던 왕들이 복을 받고, 말씀을 버리고 고집부리던 왕들은 그렇게 역대기의 시선과 강조점에서 외면당하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더욱 이 역대기에는 열왕기서에 잘 보이지 않던, 제사장 가문, 레위지파, 찬양대, 성전 문지기들의 이름들이 왕들만큼이나 상세하게 소개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하여 이 책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교재를 통해 화인해 볼까요? 167쪽 중간입니다. “역대기에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역대기에는 두 가지 강조되는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솔로몬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성전을 건축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기 상 전체를 할애해서 소개하고 있는 저 다윗은, 정치가 장군으로 그려지기보다, 제사제도를 확립하고, 제사장처럼 예배도 드리고, 또 백성들을 축복하는 왕으로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의 삶으로 자신과 백성들의 삶을 세워내었던 왕을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오늘 교재(168쪽 하단)도 이야기하지요? 이스라엘 열왕들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곧 다윗의 집을 배반한 것과 같다고 까지 표현할 정도로 다윗과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될 것을 역대기서는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렇게 쓰여진 역대기서를 듣고 읽으며 귀환공동체가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 땅을 허락받고 가꾸어가는 백성으로 빚어져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교재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볼께요. 168쪽 위에서 두 번째 단락 “포로 후기 공동체는~” 시작!
“포로 후기 공동체는 붕괴된 다윗 왕국을 재건하려고 했으며, 파괴된 성전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초토화된 왕국과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에게 하신 약속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조로 하여금 영원히 견고히 서게 하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현재 그들의 상황이 어떠했던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왕 다윗을 다시 한번 그리워하면서 다윗 왕조가 재건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소망은 그들로 하여금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저 열왕기서가 인간왕, 연약한 왕들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면, 이 역대기서는 진짜 왕, 강력한 왕의 승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70년 바벨론 포로생활, 그 노역의 때를 잘 견뎌낸 이스라엘에게 돌아가라고 건축하라고 말씀하시며 고레스를 움직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하며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희망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성취해주시는 것이지요. 예레미야 29장 10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0)
자, 그렇게 선하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지난 시간에도 읽으셨지만 한 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역대하 30장 8-9절
“그런즉 너희 조상들 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전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의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들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대하30:8-9)
그런데 어땠을까요? 아까 역대기 저작연대를 보셔서 아시지만, 에스라가 2차 바벨론 포로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귀환했을 때는 이미 1차 포로귀환이후 79년이 지난 458년이었으니 성전이 완공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이 완공되고도 60년이 지난 이후였습니다. 그래요. 1차 포로귀환이 있은 후 느헤미야, 학개를 비롯한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마음을 합하여 여러 방해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작고 초라했을지었정, 성전을 완공해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에스라가 백성들을 데리고 귀환해 보니 다 모여서 말씀을 듣고 읽고 절기와 제사를 회복해내던 모습은 이미 많이 퇴색되어 있었고, 제사장들마저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여 살아가는 등 또다시 부패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고 성전중심의 삶을 회복하고자, 성전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책이 역대기서입니다. 솔로몬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확인하면서 말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7:14-16)
그러다보니, 역대기의 구조는 온통 이렇게 성전과 관련 되어 있습니다.
구 분 | 내 용 | 범 위 | 성전과 관련 |
대상1~29장 (통일왕국시대) | 족보(아담~다윗) | 대상1~10장 | 성전이전 시기 |
다윗의 통치 | 대상11~22장 |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 | |
대상23~29장 | 성전운영을 위한 준비 | ||
대하1~36장 (분열왕국시대) | 솔로몬의 통치 | 대하1~9장 | 솔로몬 성전의 위엄 |
남유다의 왕들 | 대하10~11장 | 북이스라엘의 성전 오염 | |
대하12~36장 | 남유다의 성전에 대한 충성 |
한동안 역대기서의 말씀을 나누게 되실텐데, 저와 여러분 더욱 성전, 성전, 성전중심의 삶을 회복해내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참 거룩한 성전들로 더욱 세워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표에서 보시는 대로 하나 더 짚어볼 특이한 강조점이 있다면, 역대기에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재가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확인해볼까요? 169쪽 아랫단락 둘째줄부터 읽어보지요. “그런데 이 두 역사서는~” 시작!
“그런데 이 두 역사서는 강조점이 다른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역대기에는 북쪽왕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조 여로보암부터 모든 왕들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기 때문에, 역대기서는 그들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두가 악이며 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멋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 역대기상하가 돌아온 유다지파, 유다공동체를 위해 기록된 책이기는 하지만, 조금 마음이 아픕니다. 처음부터 성전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신으로 만들고 엉터리 제사장들을 세워 그릇된 신앙을 가졌던 북이스라엘, 그토록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시고 회개와 돌이킴을 말씀해주셨지만, 그렇게 북이스라엘의 사람들은 BC 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열국으로 흩어진 뒤로, 오늘 성전재건의 삶에서 찾아볼 수 없을만큼 소멸되어 버리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이지요. 성경에 그토록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시겠노라 이야기하셨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들이 말씀대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그 어느 성경에도 없습니다. 남은 자들만 구원하시겠노라는 미래적인 말씀만 남아 있습니다. 왜요? 아무도 그들이 누구인지 누구를 섬겨야하고 어디로 돌아가야하는지 말해줄 수 있는 이도 기억하는 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유다로서는 소중한 형제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요. 역대기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올라가라 건축하라 하시는데, 나는 왔는데, 저는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형제의 믿음을 지금부터 잘 챙겨라.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우리를 떠나고 금송아지를 섬기듯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하는 형제와 이웃이 있으십니까? 유다는 이스라엘을 잃어버렸지만, 우리는 잃어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더욱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저들을 위해 말씀을 전하고 저들을 위해 더욱 수고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더욱 성전 중심으로 바르게 서고, 우리의 형제와 이웃들을 더욱 힘을 다하여 초청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함께 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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