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자전거를 타고 세계 여행을 떠난 이호선(50)씨는 2008년 6월, 11개월동안 30,000km의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추위, 더위, 고독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이호선씨로부터 여행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전거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워낙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저는 일자리가 많은 일본에 가면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1984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아사히 신문사의 자전거 근로 장학생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미국의 뉴욕으로 가서 자전거로 서류를 전달하는 메신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1984년부터 거의 자전거가 없이 생활을 한 적이 없는 정도네요.
자전거 세계 여행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2002년 12월 귀국하여 식당도 개업해보고 했었는데 실패하고, 갑자기 자전거로 전국일주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렇게 2005년 전국일주를 자전거로 하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예전에 정말 하고 싶었던 세계 일주 여행에 대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때부터 2년간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한다는 계획하에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고, 종로에서 돈까스 배달을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대략 1000만원 정도 모아졌을 무렵 서울 공덕동 집에서 인천항을 향해 자전거로 여행을 시작한거죠.
여행 경로와 여행 이야기를 해 주세요.
첫번째 여행 목표는 포르투갈의 땅끝마을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중국-홍콩-중국-네팔-인디아-파키스탄-이란-터키-그리스-이태리-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경로로 2008년 2월 24일 포르투갈의 땅끝마을(Cabo Da Roca)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다음 "모로코-캐나다(몬트리올~밴쿠버)-일본(도쿄~시모노세키)-한국(부산-진주-서울)"의 경로로 여행을 마치고, 2008년 6월 24일까지 약 30,000km를 달렸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 필요한 비자는 현재 체류하고 있는 국가에서 다음 여행할 국가의 대사관으로 찾아가 발급을 받으면서 갔습니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기간은 대략 2,3일에서 길게는 1주일 정도 걸리는데, 필요한 서류에 기재만 잘 하면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라 현지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구요.
사실 아직도 내가 세계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간혹 이메일을 통해 이란, 캐나다 등의 친구들로부터 소식들 들으면 "내가 세계 여행을 하기는 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 중 두번 버스로 이동을 했었는데, 티벳에서 4,000m 고지를 올라서서 내려가는 길이 너무 거칠고 경사가 급해 바퀴살이 부러지고 해서 버스로 이동을 했습니다. 또 12월에 터키에 들어서니 세상이 모두 얼었더군요. 이러다 얼어 죽겠다 싶어 버스로 터키를 지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체 30,000km 중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는 대략 25,000km 정도 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이란이 그렇게 추울지 몰랐다는 것과 유럽 지중해에서 차가운 겨울비를 몇일씩 계속 맞다보니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달린 거리는 150km에서 200km를 넘기도 했고, 중국에서는 눈 뜨면 자전거를 타서 밤 10시가 넘게 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한두달은 장거리를 달리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어느정도 지나니까 어렵지 않더라구요. 캐나다에서는 100km도 넘게 숲길만 혼자 달리니, 혼자서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웃기도 하면서 달렸죠.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체력이 아니라 "고독"입니다.
여행에서 만났던 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이란은 산유국이기때문에 내면적으로 매우 부유한 국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인정이 많고,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인데, 제가 자전거로 지나가니 서로 자기 집에서 묵고 가라고 초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2주 이상을 홈스테이를 했는데, 매일 서로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여행 이야기를 하고 대접을 받았죠. 영어가 통하지 않아서 동네의 대학생이 사전을 가져와 통역을 했는데,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었습니다.
그곳에 묵는 동안 딸들이 내 속옷까지 모두 세탁해서 주는 등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것 같네요.
특히 이란은 기아의 프라이드가 국민차처럼 유명하고, 한국산 전자제품을 매우 좋아합니다. 또한 드라마 '대장금'과 탤런트 '이영애'씨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유명합니다.
미국이 아닌 캐나다로 여행 경로를 잡은 이유가 있었나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갈지 캐나다로 갈지 고민했었는데, 결국 캐나다로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보다 더 리얼한 자연을 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혹독했던 캐나다였습니다. 추워서 얼어 죽는지 알았는데, 다행이 현지인에게 두툼한 침낭을 선물받아 지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네 친구가 25년 전 밴쿠버에 가서 사업에 성공을 하여 식당을 4개 정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이벤트를 하나 해 주자'라는 생각으로 찾아가기로 했지요.
젊었을 때 동네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지구 한바퀴를 돌아 자기를 찾아왔다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연락처도 없이 그냥 밴쿠버에 가서 교민들에게 물어보니 어렵지 않게 그 친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완전히 쇼크를 받을 만큼 놀라고 아주 재미있는 이벤트가 되었지요.
캐나다에 사는 친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이벤트를 할겸 찾아갔다. |
숙박과 식사는 보통 어떻게 하셨나요?
보통 텐트를 치고 생활을 했는데, 숲속의 버려진 집이나 지붕이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이용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길가에 버려진 폐차인데,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너무 아늑하고 좋습니다. 특히 캐나다의 차량들은 크기가 커서 매우 편했지요. 춥고 바람이 많이 불 때 최상의 캠핑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사는 현지에서 해결을 했는데, 요리는 하지 않고 치즈, 초코렛, 소시지 등을 사서 달리면서 계속 먹었습니다.
추운 캐나다에서 폐차만큼 좋은 캠핑장소는 없었다. |
가장 어려웠던 구간은 어디였나요?
파키스탄이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과 접경지대가 넓고 그 지역에 약탈하는 도적들이 많아서, 외국 관광객들을 보면 무조건 따라 옵니다. 저도 세번씩이나 지방도로에서 도적들을 만났는데, 그곳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대사관의 영사님이 이란 비자 발급을 위해 추천서를 써 주는 조건이 파키스탄을 지나지 않는 것이었을 만큼 파키스탄은 위험한 국가였던 것 같네요.
영어, 일어는 잘 하시는데, 언어가 도움이 되셨나요?
영어, 일어를 할 수 있고, 스페인어도 어느정도 합니다. 그런데, 언어는 거의 쓸 일이 없었던 것 같네요.
관광지에 가면 모두 영어를 할 수 있지만, 제가 가는 길은 대부분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영어가 통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유럽에 가면 대부분 영어가 통할 줄 알았는데, 그곳 또한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영어가 안 되니 가장 외롭게 여행을 했던 곳이 유럽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네팔에서는 학교에서 영어를 많이 배운 탓인지 그곳 젊은이들의 영어가 유창하여 제가 어렵지 않게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카트만두는 UN의 산하부서가 거의 있는 곳이라 마치 영어권 국가에 있는 것처럼 상가 간판도 영어고, 영어로 대화도 잘 통했었지요.
자전거 고장도 자주 있을 법 한데요?
자전거가 고장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자전거는 거의 고장이 나지 않습니다. 1년 동안 여행하면서 펑크가 좀 났었고, 무겁게 짐을 싣고 거친 길을 다니느라 바퀴살이 몇번 부러졌었지요.
펑크는 고장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 바퀴살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만 하면 큰 일이 아닙니다. 기어변속이나 다른 부분은 한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한번에 바퀴살 5개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근처 자전거 가게를 찾아 사이즈도 맞지 않는 살을 구해 얼기설기 엮어서 1,500km나 더 달렸으니 자전거는 왠간히 고장이 나도 간다니까요.
자전거 여행이 다른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자전거 여행은 여행의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과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햇빛이 내리쬐면 덥고, 어디 도망 갈 때가 없기 때문이죠.
피곤해서 길에 쓰려져 자면 그곳이 내 방이 되고, 내 체력으로 움직이고, 가장 여행다운 여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배낭여행을 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았는데, 모두 정해져 있는 같은 코스를 따라 같은 것을 보고 똑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다니더라구요. 그러면서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라고 하는데, 관광지에서 친절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관광이지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과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이 자전거 여행이다. |
나에게 자전거는 OOO이다.
나에게 자전거는 "당연한 존재"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전거를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자전거로 살아온 인생이어서 그런지 그냥 당연한 존재였고 지금도 당연히 내 옆에 있는 존재입니다.
일본에서도 자전거로 살았고, 뉴욕에서도 메신저를 하면서 자전거로만 돌아다녔고, 지금도 자전거로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자전거 여행을 준비 하시는 분들에게 한마디.
요즘은 자전거 여행에 관심은 엄청 많으십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젊은이들부터 연세드신 분들까지.
일생에서의 자유를 위한 탈출이 여행이고, 가장 여행다운 여행이 자전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장이 나면 어쩌지?', '숙식은 어떻게 하지?', '영어를 못 하는데 어쩌지?' 등의 걱정을 하면서 정작 출발을 못 하시더군요.
일단 우리나라 전국일주라도 한번 하시면 금방 자신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여행은 자유를 찾기 위한 것이니까 내가 필요한 생활의 모든 것을 가지고 여행을 간다면 그건 생활의 연장이지 여행은 아닌 것 같구요, 좀 더 자유롭게 여행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