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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강 제5편 신용제도에 대한 맑스의 견해 -[자본]제3권 제27장~제37장
맑스는 신용제도가 계급의 공동자본에 합병하면서 빚어내는 본질적인 결과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자본일반을 재생산하는 자본의 흐름을 이끌며 일종의 중앙통제소같은 역할을 하는 화폐자본 유통의 위치를 바꾼다. 또한 그것은 자본의 성격이 급격히 변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본의 사회화를 함축한다. 예) 주식회사는 집단적이고 결합적인 자본의 등장을 용이하게 하는데, 이런 자본은 자본가의 사업규모와 범위 그리고 형태를 엄청나게 확대시키는 한편, 세계시장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보다 많은 장소에서 결합노동과 집단적 소유가 생겨날 수 있게 한다.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투입하여 만인의 복지를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이를 위해서는 사회내에서 소규모로 분산되어 낭비되고 있는 자본을 결합적 형태로 끌어모을 필요가 있었다.
모든 화폐자본을 생산에 봉사하도록 강제하고 한편으로는 순환의 어떤 국면에서 금속준비를 최소한도로 축소하는 것이 바로 신용제도와 은행제도의 발달이다. 전체구조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만든 것도 바로 발달된 신용제도와 은행제도이다. 중앙은행은 신용제도의 기둥이다. 그리고 금속준비는 이 은행의 기둥이다. 신용제도가 화페제도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정량(총생산에 비하면 보잘것없은 양)의 금속이 제도를 받쳐주는 기둥이란 점도 인정되고 있다. 금속(혹은 상품)화폐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꾸몄던 세계신용 및 화페제도는 1970년대 초에 포기됐지만 세계금융제도의(미제의 달러중심)위계적인 기둥구조를 가진다.
화폐가 가치의 자립적 형태로서 상품에 대립되어 나타나거나, 혹은 교환가치가 화폐라고 하는 자립적 형태를 취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기초다. 일반적 등가물로서 상품화폐가 자립적 형태다. 만일 상품화폐 대신에 신용화폐와 신용창출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어떻게 될까? 신용이 위축되거나 혹은 완전히 중단되어버리는 자금 부족시기, 화폐는 갑자기 유일한 지불수단으로 그리고 이 시기에는 상품의 일반적 가치하락이 나타나고, 상품의 화폐(상품자신의 순수하게 환상적인 형태)로의 전화는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해진다. 이것인 물신성 이론을 암시한다. 신용화폐 그 자체는 그것이 자신의 명목가치만큼 절대적으로 현실화폐를 대표하는 한에서만 화폐다.
신용과 현실화폐 사이의 긴장은 오래전에 이미 충분히 알려졌다. 신용과 현실화폐 사이의 긴장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비로소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어이없는 모순과 역설의 가장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왜. 1.자본주의체제에서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위한 생산이 완벽하게 폐지되어 있고, 따라서 부는 오직 생산과 교환의 착종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과정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2.신용제도의 발전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러한 부와 그것의 운동에 대한 이 금속적 제약을 끊임없이 폐기하려고 노력하고, 또 끊임없이 반복해서 이 제약에 머리를 부딪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화폐는 신용화폐가 극복 혹은 회피하려는 생산확대를 가로막은 걸림돌이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면 신용화폐의 질과 신뢰가 오로지 상품화폐와의 교환 가능성에 의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만일 자본축적이 이처럼 신용화폐와 신용수단의 동시적인 축적에 의존해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신뢰와 기대에 의지하여 주기적으로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갈지자 행보를 하는 물신적 괴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신용화폐는 금속화폐를 그냥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용제도와 화폐개념을 완전히 새 차원으로 변경해 신용제도가 품고 있는 물신성을 제거하기보다는 적극 수용한다. 신용의 거품,자산버블,투기적인 호황과 파국 등은 모두 자본이 화폐자본의 제약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대신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신용제도의 핵심은 그것이 무한한 성장의 세계로 향하려는 축적의 모든 화폐적 장애물을 부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은 종이화폐(채무증서)창출에 있다. 2001년 미국에서 주택거품이 만들어지면서 함께 벌어진 현상이다. 만일 금속 기둥이 화폐제도 전체에 걸쳐 사라져버린다면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답은 정부와 결합되어 있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다.(국가재정결합체) 이것들은 오늘날 세계화폐 신용제도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 상품생산(금과 은의 생산)에 기초한 규제 메카니즘을 인위적인 기구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신용창출에 행사되는 유일한 규율은 인간판단이다.
2007~2008년 대공황은 미국의 연준위가 중요한 역할. 규제의 실패-규제제도 개선. 그러나 실업 고려x –인플레이션만 잡음: 유럽중앙은행→그리스의 채무위기를 해결-강화된 긴축만을 요구. 인위적인 기구들은 잘못- 사회적 세력관계와 충돌하는 선택들로부터 영향. 그것은 상품화폐가 중앙은행의 정책기준으로 작용과 전혀 다른 규제 메커니즘을 창출하고 있다.
지속적인 자본축적의 확대경향이 화폐적 차원에 맞추어지기 위해서는 신용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금속본위제(그리고 은행권의 태환성)로 이루어진 장애물은 극복되어야 하는데 왜 금과 은의 양이 적절하게 조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상품산출의 변동에 맞추어 유연하게 양을 조절할 수 없기에) 아니라 궁극적으로(한정되어 있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온갖 형태의 자본투자(이 모든 투자의 가정은 결국 보다 많은 잉여가치 생산에 맞추어져 있다.)의 투기적 성격은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에 불가피하게 개입한다. 각기 다른 유통기간(특히 고정자본)에서 비롯하는 다양한 변이들은 오로지 적극적인 신용제도의 개입에 의해서만 조장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용도로 축장되어 있는 죽은 자본을 끌어냄으로써 축적을 지연하는 대신 축적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프의 빼레르 형제 15년간 유휴상태의 자본과 노동을 성공적으로 흡수했고 급격하게 변모된 건축환경을 남겼다. 이것은 신념과 믿음 그리고 심리상태에 대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신용제도는 표면적으로 법칙이 없고 혼돈스러우며 제어가 되지 않은 능력으로, 투기열풍과 주기적인 파국을 함께 배양한다. 이자가 특수성의 범주에 속하고 이런 특수성을 규제하는 요인은(만일 규제가 된다면) 다른 특수성들-특히 서로 다른 자본 분파들 사이의 경쟁과 화폐자본의 공급과 수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적이고 무법칙적이며 결합적이다. 신뢰에 의존해 있다. 맑스는 자본의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자본과잉)을 향한 경향이 자본의 일반적 운동법칙의 핵심적인 모습이며, 그 경향은 주기적으로 신용제도를 와해시키는 신뢰위기를 유발하는 방아쇠이자 근본원인이라고 이야기했다. 화폐본위제의 카톨릭주의는 실제의 가치가 화폐상품에 의해 대표된다고 생각하는데 맑스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투기열풍을 가로막는 실질적인 장벽이라고 규정했다. 자본축적의 일반적 운동법칙과는 반대되는 모습으로 현실을 꾸며나가는(은폐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 투기적인 가공자본의 역할이다.
제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신용제도의 전사
이자를 낳은 자본(낡은 형태인 고리대자본)은 상인자본과 함께 자본주의 생산양식 이전에 존재했다. 상품과 화폐 구매와 판매는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것들이다. 여분의 화폐(축장)는 전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그리고 반드시 존재했다. 그러나 자본이 되는 것은 오로지 화폐축장자가 고리대업자로 전화할 때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폐가 자본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고리대자본의 발전은 상인자본(특히 화폐거래자본)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다.
전 자본주의 시기에 고리대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1.낭비를 업으로 삼는 귀족(토지소유자)에게 화폐를 대부하는 고리대이다. 2.자신의 노동조건을 소유하고 있는 소생산자에게 화폐를 대부하는 고리대이다. 이 소생산자는 수공업자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농민이다. 그리하여 고리대는 한편으로는 고대적.봉건적 부와 소유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작용을 하며, 다른 한편 소농적.소부르주아적 생산을 훼손하고 파괴한다. 그것은 본원적 축적과정을 완수한다. 화폐와 상품의 탁월한 이동성 때문에 상인자본은 토지에 기초한 봉건세력을 지배하게 된다고 햇던 말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모든 생산양식에서 고리대가 혁명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오직 고리대가 소유형태를 파괴하고 분해하는 한에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나머지 조건이 존재하는 장소와 시기에 비로소 고리대는 한편으로는 봉건영주와 소생산자의 몰락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론 자본으로 노동조건이 집중하는 것에 의해 새로운 생산양식을 형성하는 수단의 하나로 나타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규모 화폐자본의 집적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어떻게 출현시킬 것인지는 전적으로 역사적 발전단계와 그것과 함께 주어진 갖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정해진다. 고리대자본은 생산양식을 변경x-직접적 생산자의 모든 잉여노동을 실제로 취득하며, 생산자에 의한 노동조건의 소유 또는 점유(그것에 대응하는 분산적인 소규모 생산)가 본질적인 전제이며, 그리하여 자본은 노동을 직접적으로 종속시키지 않으며 따라서 산업자본으로서 노동자와 대립하지도 않는다. 고리대는 생산양식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기생충처럼 그것이 달라붙어 그것을 곤궁하게 한다. 고리대는 생산양식을 착취하고, 그것을 쇠약하게 하며, 재생산이 더욱더 비참한 조건 아래 이루어지도록 제약한다.
고리대의 화폐집적-영주 사치(화폐조세로)→평민착취 강화, 소생산자 화폐의 지불수단 필요. 전쟁이나 재해 우연사건, 소 한 마리 죽음 등-소생산자 재생산 위협-고리대 채무에 종속. 고리대 이런 파괴적인 힘은 대중의 혐오-카톨릭 교회는 19세기 말까지 이자와 함께 고리대를 금지했다. 루터는 고리대와 공정하고 정당한 이자율 구별. 자본주의 내에서도 고리대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도시빈민 지역의 전당포나 인도 곳곳에서 농민들에게 기생하고 있는 대부업자들이다. 자본주의의 이자 낳은 자본이 과거의 고리대자본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기능하는 조건들이 달라졌다는 것(화폐대부자와 마주하는 차입자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에 있다. 차입자는 아무 재산없이도 잠재적인 자본가로서 신용을 얻는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가장 뛰어난 인물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지배는 더욱더 강고하고 위험한 것이 된다. 그래서 무일푼이 갑부가 되는 자본의 신화는 이런 계급관계을 영속화하기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으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자본가계급에게 신선한 피를 공급하고 그것의 활력과 힘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사용된다.
고리대자본과 이자낳은 자본이 산업자본에 의해 어떻게 예속됐고 거꾸로 산업자본이 다시 이자 낳은 자본에 어떻게 예속됐는지를 간단하게 살핀다.
맑스는 신용제도에 내재하는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별도로 알려준다. 은행제도는 자본~양식이 만들어낸 가장 인위적인고 정교한 산물이다. 그래서 상업과산업에 대해서 거대한 권력을 행사. 은행은 사회적 규모에서 생산수단의 일반적 부기와 분배의 형태(비록 형태뿐)를 제공한다. 개별자본가는 평균이윤은 총자본의 총잉여노동에 의해 결정되며, 총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자기의 분배몫을 받는다. 자본의 이런 사회적 성격은 신용과 은행제도의 충분한 발전에 의해서 비로소 매개되고 충분히 실현된다. 이 제도는 모든 이용가능한 자본, 잠재적 자본을 산업.상업자본가의 처분에 맡기며, 따라서 자본의 대부자도 사용자도 이 자본의 소유자도 또는 생산자가 아니다. 그럼으로써 이 신용과 은행제도는 자본의 사적 성격을 지양하고, 따라서 잠재적으로 자본 그 자체의 지양을 포함한다. 은행과 신용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그 자신의 제약을 뛰어넘도록 밀어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고 또 공황과 협잡을 매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신용 역할과 은행제도-[자본]제3권 제27장 이후-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의 신용의 역할
왜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에 신용이 필요할까? 금융부문의 활동이 가치 그리고(혹은) 잉여가치에 생산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능할까?
1.신용은 이윤율을 균등화하는 방식으로 각 산업부문들 사이에 화폐자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신용이 계급의 공동자본으로 기능하다고 스스로 언급했다. 자본이 취하는 나비와 같은 형태는 서로 다른 산업,활동,장소 등에서 얻는 수익률을 표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2.신용은 a)금을 종이로 대체하고, 상품교환의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금(축장화폐)의 필요성을 줄이고,(유통수단의 감축, 자본 중 항상 화폐형태로 존재하는 부분의 감축) 상품화폐의 사용과 함께 제공됨으로써 b) 또한 회전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유통비를 대폭 줄인다. 이런 유통촉진은 자본재 생산과정 일반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요컨대 신용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다른 한편 신용은 구매와 판매행위를 오랫동안 서로 분리시킬 수 있으며 이리하여 투기 바탕으로서 역할한다)
3.신용은 주식회사를 가능하게 하는데 주식회사는 생산규모를 대폭 확대하게 해주고 형식적인 정부기능을 사유화하며 자본의 집중을 도와준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개인적인 성격보다 사회적 성격을 표방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의 한계 안에서 사적 소유로서 자본을 철폐하는 것이다. 주식회사-일정한 분야에서 독점을 낳아서 국가의 간섭. 다른 한편 새 종류의 기생층 재생산(금융귀족 재생산하고 발기인이나 투기가, 명목상의 임원) 회사설립이나 주식발행이나 주식거래과 관련된 투기와 사기의 제도전체를 재생산한다.
이 전화는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만일 관리자가 단순히 감독임금만을 받은다면 이제 자본은 관리인부터 제일 밑바닥의 일용근로자에 이르기까지 실제 생산에 종사하는 모든 개인들에 대해 이자를 추구하는 순순한 화폐자본의 소유에 근거한 소유권으로 나타난다. 잉여가치 생산은 그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단순한 수단으로 나타난다. 직접적 생산자인 자본가는 타인의 화폐자본의 관리자가 된다.
주식회사들에서는 생산기능이 자본소유와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이 거기에서는 생산수단과 잉여노동의 소유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주식회사는 자본~양식 그것 안에서 자본~양식을 철폐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기를 철폐하는 모순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고도로 발전된 결과 주식회사는 자본이 생산자소유로 재전화- 소유는 생산자들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 결합된 생산자들의 소유(직접적인 사회적 소유)로서의 생산자 소유다-하기 위한 필연적인 통과점이다.
산업자본이 은행신용을 통하여 잠재적 화폐자본을 조달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곤란성은, 잉여가치를 생산함에 있어 고정자본 요소들의 규모가 점차 증대하지 않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은행신용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의 화폐자본만을 공급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곤란성은 만약 고정자본 요소들에 투하된 화폐자본이 그것을 회수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산업자본의 순환 외부에서 회수될 수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식회사의 출현에 필요한 조건들은 1. 산업자본이 대규모의 고정자본을 설치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는 점. 2.산업자본에 대한 소유권 또는 그 산업자본이 획득한 이윤에 대한 청구권이 상품으로 매매될 수 있게끔 신용제도가 발달하였다는 점 등인데 이런 소유권 또는 청구권의 자유매매는 독립적인 이자 낳은 자본의 존재와 일반적 이윤율의 형성을 전제하고 있다. 왜 그 소유권의 가격은 이자 낳은 자본이 대부(이자취득)와 그 소유권의 구입(배당취득)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함으로서 형성되기에.
주식회사에 투자하는 화폐소유자는 주주로 된다. 주주는 이자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윤에 분배에 참가한다. 주식은 실제로 기능하는 산업자본에 대한 소유권을 대표하고 있다. 단순한 화폐대부자와 다른 점들. 따라서 주식발행은 스스로 산업자본으로 기능할 수 없는 소규모의 자본들로 하여금 산업자본의 기능을 담당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소수의 대규모 자본들로 하여금 다수결 방식에 의하여 거액의 사회적 자본을 통제(관리)할 수 있게끔 해준다.
주식의 유통시장의 중요성. 증권시장에서의 주식의 유통에 의하여 주주는 불특정의 제3자로부터 그의 자본을 회수할 수 있기때문에 주식은 주식회사 또는 산업자본에게 무기한 대부 또는 상환할 필요가 없는 신용을 제공한 셈이다.
의제적인 주식자본의 형성과 주식유통은 사실상 주식자본과 대부자본의 구별 그리고 배당과 이자의 구별을 모호하게 한다. 대부자본과 마찬가지로 주식자본은 M...M′의 순환을 나타내는 이자 낳은 자본의 형태을 띠게 된다. 주식자본의 형성과 주식 유통은 상이한 산업분야들 사이의 이윤율 균등화에 기여하게 된다. 만약 신주 발행을 고려하면 주식은 잠재적 화폐자본을 더욱 수익적인 산업분야로 유도함으로써 산업분야 간의 자본이동을 용이하게 하며 따라서 이윤율 균등화 기여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주식은 이자낳은 자본의 형태-왜 주식은 일정한 수입 보장, 투하된 자본가치는 주식매각에 의하여 상환. 주식축적이 철도.광산.기선 등의 축적-현실적인 재생산과정의 확대 표현.
주식회사의 형성을 통한 자본의 사회화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과도기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이윤은 순수하게 이자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그런 기업들은 단지 이자만 벌어들여도 되며 바로 이것이 일반이윤율의 저하를 억제하는 한 요인이다. 즉 그것은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이 엄청나게 큰 기업들이 반드시 일반이윤율의 균등화에 참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들이 주식회사의 형태라면 그들 이윤율 격차는 그들의 주식가격의 변동에 반영될 것이며 따라서 고이윤율의 기업은 신주발행을 통하여 더욱 큰 화폐자본을 조달, 반면 저이윤율의 기업은 추가자본 조달 곤란. 이런 잠재적 화폐자본의 불균등화 배분은 산업분야들간의 이윤율균등화에 기여하게 된다.
주식회사가 비주식회사와 나란히 발달하면 주식자본이 이자 낳은 자본이라는 성격 때문에 주식회사와 비주식회사 사이의 자본이동이 저해된다. 이자 낳은 자본은 대부를 통하여 이자를 취득하든 또는 주식소유을 통하여 배당을 취득함으로써 가치증식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자 낳은 자본은 스스로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와 주식소유 어느 하나에만 몰두하게 이자낳은 자본은 이자취득에 상응하는 배당을 얻은 한에 있어서는 주식회사의 이윤율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주식회사의 형성과 발달은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하여 분명히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가속화시키지만, 그 반면에 사회적 총자본 중 주식자본(곧 이자낳은 자본)의 증가는 주식자본이 산업자본들의 이윤율 격차에 무감각하기 때문에 가속화된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일반적 이윤율의 현실적 저하로 실현되는 것을 저지하기 때문이다. 평균이하나 평균이상일 때도 타당하다.
주식회사의 발달은 이윤율 저하경향과 상쇄요인들 사이의 내부모순을 더욱 촉진하게 된다. 이 자본의 발달은 어떤 특별한 자극이 있을 때는 사회적 부의 큰 부분을 추가자본의 형태로 생산분야에 동원-기존산업확장, 새 산업 형성 및 새 고도로 생산적인 생산방법 도입을 가능. 이 자본발달은 경쟁기업의 다수 주식 구입방법 제공-산업자본집중 용이. 주식거래는 투기의 완전한 발달 내포.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을 자극, 특수한 국면에서 갑자기 중단-공황
신용은 개별자본가에게 일정 범위내에서 타인자본과 타인소유 그리고 그럼으로써 타인 노동에 대해서까지 하나의 절대적인 처분권을 제공한다. 자기자본이 아닌 사회적 자본에 대한 처분권은 그에게 사회적 노동에 대한 처분권을 부여해준다.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거나 혹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그런 자본 그 자체는 아직 신용이란 상부구조에 대한 하나의 토대일 뿐이다. 그 결과 모든 가치척도들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부에서 아직 많든 적든 정당화되고 있는 모든 논거들이 여기에서는 사라져버린다.
자본주의 등장이 절제의 윤리에 근거한다는 베버의 신화와은 이제 결별이다. 자본가는 단지 차입을 하는 사람일 뿐이며 타인의 저축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사람일 뿐이다. 신용제도는 (약탈에 의한 축적) 본원적 축적을 현대에도 나타내는 주요 수단이 된다. 오늘날 금융귀족들이 금융귀족의 공학으로(다른 자본가도 포함) 타인의 수탈해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가?
화폐거래자본의 역사에서 고리대와 이자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특수하게는 산업자본의 규제를 받고 거기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문장은 자본주의의 신용제도가 총체적으로 통제를 벗어나 있으며 오늘날 자본의 세계와 잉여가치 생산을 치명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용제도는 생산에서 노동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약탈에 의한 축적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것은 비록 옛날 고리대와는 다르긴 하지만 고리대가 사용하던 수법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 만일 신용제도가 과잉생산과 상업부문의 과잉투자의 주된 지렛대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단지 원래가 탄력적인 성격을 지닌 재생산과정이 이 경우 그 극한까지 강행됐기 때문이며, 그렇게 강행된 이유는 사회적 자본의 대부분이 그 자본의 소유주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신용제도가 보여주고 잇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립적 성격에 기초해 있는 자본 가치증식은 실제로 그 자유로운 발전이 일정한 지점까지만 허용되고, 따라서 그것은 사실상 생산의 내재적인 속박이자 한계를 이루는데, 이 속박과 한계는 끊임없이 신용제도에 의해 파괴된다. 즉 신용은 자본축적이 모든 한계를 돌파하는 본원적인 수단이다. 왜 신용화폐는 무한히 창출될 수 잇기 때문이다. 신용제도는 생산력의 물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형성을 촉진하는데, 이런 세계시장의 형성을 위한 새 생산형태의 물적 기초로서 일정한 수준까지 이루어낸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임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용제도는 가치와 잉여가치 생산에 강력하게 기여한다. 동시에 신용은 또 이런 모순의 강력한 폭발(공황)을 촉진하고, 그럼으로써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촉진한다. 신용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추동력과 타인노동의 착취에 의한 치부방식을, 순전히 대규모의 도박과 협잡제도으로 발전시키고, 사회적 부를 착취하는 사람의 숫자를 점점 더 소수로 제한한다. 그것은 한편 새 생산양식으로의 과도적 형태를 형성한다.
주식회사는 생산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부의 사회적 성격과이 부가 사적소유라는 자본주의적 장애물 속에 갇혀 있는 방식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 사회성은 해방될 수 있을까?
맑스는 결합된 자본을 협동조합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관리하도록 하자는 관점을 제기한다. 맑스는 이런 노동자 협동조합이 기존 자본주의체제의 많은 결함을 그대로 재생산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최소한 나라 전체에거 걸쳐 협동조합 운동이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리라고 생각햇다. 체제가 변화지 않은 상태에서 협동조합의 한계
공장의 경영권을 인수해 민주화하고, 다른 협동조합 형태와 네트워크를 구성함으로써 대안적인 연대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 자체 정치적.경제적 생활을 반자본주의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하나의 경로라고 생각하는 운동이다. 신용제도와 자본의 사회화는 협동조합과 노동자에 의한 통제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협동조합은 자본~양식의 공장제도와 신용제도가 바탕)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은 자본~부터 결합된 생산양식으로의 이행형태로 간주- 전자는 자본과 노동 대립이 소극적으로 철폐되고 후자는 적극적으로 철폐. 그러나 이들 논의에서 노동자가 장악한 국가에서 모든 신용을 집중하자는 요구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들어 있지 않다.
제3권 제28장: 유통수단과 자본
자본으로서의 화폐와 통화로서의 화폐를 구별하는 투크 등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소득의 유통으로서의 유통과 자본의 유통으로서의 유통 사이의 구별을 통화와 자본사이의 구별로 전환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유통수단으로서 화폐와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 사이의 차이를 통화와 자본 사이의 차이로 전환. 은행권-통화와 자본구별
맑스는 생산에 사용하기 위해 자본가가 사용될 상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화폐와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빌리는 화폐 사이의 구별이다. 이 구별은 수입의 화폐형태와 자본의 화폐형태로 나타난다. 두 화폐의 사용은 산업자본의 유통에 통합되어 있다. 동일한 금화와은행권은 소비자자격으로서 국민전체에 의하여 소득의 화폐형태로서 은행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공장주가 임금 지불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인출되어 있으며, 이리하여 소매상에게 끊임없이 환류하여 소매상을 위하여 그의 자본의 일부와 동시에 그의 소득 일부를(상품은 자본가치와 잉여가치를 포함) 새로이 실현하고 있다. 투크는 이점 완전히 간과. 생산된 자본은 자본가치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도 포함한다. 그 상품은 자본자체일 뿐만 아니라 이미 가치증식된 자본이며 소득원천이 합체되어 있는 자본이다. 따라서 소매상이 자기에게 환류하는 화폐와 교환으로 내놓은 상품은 그에 대해서 자본+이윤이며 자본+소득이다. 주로 지불수단(사업계)와 노동자들은 유통수단(구매수단) 구별은 화폐에 속하는 구별이다.
신용이 풍부하고 유동성이 과잉인 조건에서는 (주택같은)필수적인 상품의 공급과 수요는 투자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는 이자 낳은 자본이 공급과 수요조건 모두에 자유롭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유통영역은 한편으로는 수입액은 소비의 크기를 나타내고 다른 한편은 생산부문과 상업부문에서 유통되는 자본크기는 재생산과정의 크기와 속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하나의 내적 연관속에 있다.
제3권 제29장: 은행자본의 구성(은행과 가공자본의(그 배후에 현실자본존재x) 문제)
은행업자의 경제학에서는 화폐자본이 이자낳은 자본과 혼동되고 있다. 화폐자본은 산업자본의 기타형태들-상품자본과 생산자본-과 구별되는 통과형태(산업자본이 일시적으로 취하는 형태)-에 불과하다.
은행자본을 구성하는 것은 1.현금화폐(금이나 은행권) 2.유가증권이며 유가증권은 다시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상업증권(어음)으로서 이것은 떠돌아다니다가 차례차례 만기에 다다르며, 이것의 할인은 곧 은행가의 고유한 임무이다. 둘째는 공적 유가증권으로 국채,국고증권, 온갖 종류의 주식들로서 여기에는 담보증서도 포함된다. 은행이 보유한 자본은 은행가 자신의 자본과 (은행이 발행할 권리가 있는 은행권과 함께) 다른 사람의 화폐로 이루어진 자본(예금)으로 이루어진다. 주식시세? 1.배당금 크기 2.이자율에 의존-주식액면가 5000원:배당금 1000원→은행이자 10% 만원예금⇒이자소득기준 만원에 판매. 이자율8%-주식시세 12500원. 12%-8300원
국채이자율이 5%이면 연간 수입 25만원은 500백만원이란 자본의 이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환상적인 표상이라고 지적한다. 수입의 배후에는 어떤 현실적인 화폐자본도 없음이 분명하다. 국가는 채권자에게 차입자본에 대해 매년 일정액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 경우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해약을 통고할 수 없으며 단지 청구권(그것은 대한 소유권)만을 판매할 수 있을 뿐이다. 자본 그 자체는 국가가 먹어치우고 지출해버린다. 그것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지불을 자신의 새끼(이자)로 간주하는 자본은 여전히 환상적이고 가공의 자본으로 머물러 있다.자본으로서 투하되었더라면 자기를 유지하는 가치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맑스는 국가에 대부된 자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은 물론(그것은 이미 지출됐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지출되거나 투자되도록 규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국가행동을 통해서는 어떤 잉여가치도 생산되지 않지만, 마치 추가적인 가치가 생산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국가가 자신의 차입한 화폐에 대해 이자(아마도 다른 곳에서 생산된 잉여가치 일부)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채를 매매하는 거래는 마치 자본원금이 회수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심지어 수요>공급이면 초과이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거래는 여러 번 더 똑같이 반복될 수 있지만 국채라고 하는 자본은 계속해서 순전히 가공의 자본으로 남으며, 이 채권이 일단 판매불가능한 순간이 되면 그때부터 이 자본의 허상은 소멸되고 만다. 이 가공자본의 고유한 운동이란 주식과 채권시장에 매일(매시간)보고 있는 가치변동 같은 것이다.
이자낳은 자본은 모든 전도된 형태의 어머니로 나타난다. 이런 전도는 부르주아 이론가가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을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노동자로 체화된 가공자본을 만들면서 더욱 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노동자 가치는 연간 지불된 임금의 가치를 자본화한 것으로 계산된다. 임금이 이자로 간주되고 따라서 노동력은 이 이자를 낳은 자본으로 간주. 연간 임금이 50원이고 이자가 5%이라면, 연간의 노동력(노동자 한 사람)은 1000원의 자본과 동등하다고 간주. 이 이론은 노동자가 자신에 대한 교육과 숙련의 습득에 투자함으로써(이 모든 것보다 보다 높은 임금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인적 자본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적자본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본가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본의 가치증식이 노동력의 착취로부터 설명되는 대신 거꾸로 노동생산성이 노동력 그 자체가 이 신비한 물건인 이자낳는 자본이란 사실로부터 설명됨으로써 자본주의 사고방식의 전도된 성격이 그 극에 이르게 된다. 낮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자신의 책임인데 그것은 자신의 인적의 자본에 투자하기를 소홀히 했다는 뜻이다. 두 가지 곤란. 1.노동자는 이자-노동 2.노동력을 타인에게 양도-그것의 자본가치를 화폐로 전환 불가능→노동력의 연간가치는 연평균임금, 구매자에게 이 가치와 잉여가치를 자기 노동에 의해서 보상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단순하고 핵심적인 원리 즉 자본화의 원리가 있다. 가공자본의 형성을 우리는 자본으로의 환산(자본화)이라 부른다. 우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모든 수입을 평균이자율에 의해 계산함으로써 즉 그 수입을 이 이자율로 대부된 어떤 자본이 벌어들이게 되는 수익으로 환산함으로써 그것을 자본으로 환산한다. 이 수익 흐름에 따라 소유권은 자본화된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다. 이리하여 자본의 실제 증식과정과 관련된 것은 모두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는 존재라는 생각(표상)이 굳어진다
그 자본은 이중으로 -소유권(주식)의 자본가치로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기업에서 실제로 투자됏거나 혹은 투자될 수 있는 자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후자의 형태로만 존재하고 주식이란 단지 그 후자에 의해 실현되는 잉여가치에 대한 일정 비율의 소유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상 잉여가치(이 가운데 일부가 이자,즉 순수한 소유권에 대한 보수다)를 생산하게 될 미래노동에 대한 청구권이다.
이런 채권 및 주식시장은 변동한다. 이들 소유권 가치(시장가격)의 자립적인 운동은 그들 소유권이 자본이거나 혹은 소유권을 가능하게 하는 청구권임과 동시에 현실자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는 허상을 확증해준다. 이들 증권시장가치는 부분적으로 투기적 성격을 갖는데 왜? 그것이 현실의 수입뿐만 아니라 기대수입(즉 사전에 계산된 수입)에 의해서도 정해지기 때문이다. 가격은 미래 잉여가치 생산에 대한 전망에 따라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국채(자본존재x)가정-증권가격은 이자율과 반비례 관계. 이자율이 5%→10%이면 5원의 수입을 보장하는 증권은 지금 50원 자본 대표할 뿐이다. 이자율이 2 1/2%로 하락하면 동일한 증권은 200원 자본 대표. 증권가격은 항상 수입의 자본화(즉 수입을 현행의 이자율로 나눈 환상적인 자본)에 불과. 화폐시장이 핍박 시기-증권가격 하락.1.이자율 상승 2.증권들을 화폐로 전환→증권들 대량으로 시장에 방출. 증권들의 가격등락이 현실적 자본가치 운동과 무관- 한 나라의 부는 가격변동 전과 후에은 전혀 차이가 없다.
가격의 하락과 공황은 자산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지만 일단 태풍이 지나고 나면 이 증권은 원래 가격으로 다시 회복한다. 이런 증권들은 모두 사실상 미래의 생산에 대한 축적된 청구권(법적 권리)를 나타내는 것 이외은 아무것도 아니며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모든 나라들에서는 엄청난 양의 이른바 이자낳은 자본(혹은 화폐자본)이 이런 형태로 존재한다. 화폐자본의 축적이란 대부분 생산에 대한 이들 청구권의 축적이나 이들 청구권의 시장가격(이들 청구권의 가공자본가치)의 축적을 의미한다.
이자낳은 자본과 신용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모든 자본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두배로 혹은 세배로 나타나는데 그 여러 가지방식이란 동일한 자본이나 채권이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여러 사람의 수중에 잇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이런 화폐자본의 대부분은 순전히 가공의 것이다.
은행자본의 대부분은 순전히 가공의 것으로 채권(어음),국채(과거자본대표),주식(미래수익에대한 지불지시권)등으로 이루지는데 증권들의 화폐가치는 철저하게 가공적이며 현실자본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규제된다는 것이다. 혹은 그것이 수익에 대한 청구권은 끊임없이 변동하는 가공의 화폐자본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가공은행자본이 대부분 자기자본이 아니라 이자가 있든없든 은행에 예금한 대중의 자본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신용제도에 대한 맑스의 종합적인 견해
신용제도 밑바닥에는 중앙은행이 자리를 잡고 있고 중앙은행 아래에는 상품화폐(금과은 등)가 깔려있다. 이들 상품화폐는 가치를 대표하고 가치는 다시 세계시장에 나와 있는 인간노동의 사회적 성격에 기초해 있다. 맑스는 이런 수직적인 위계적 구조의 화폐제도를 상정했다.
단단히 맞물린 체계의 형태인 신용제도의 움직임은 상품화폐를 중개하는 층과 중앙은행이 요구하는 가치에 의해 매우 강력한 규제를 받는다.신용 움직임은 가치생산으로부터 자립적이다. 신용제도 내부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중앙은행의 계획과 행동은 화폐상품으로 대표되는 실제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맑스도 화폐상품이 가치를 대표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심각한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금과 같이 특수하고 구체적인 사용가치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적 필요노동을 츢정하는 데 사용된다.)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끊임없이 겪는 변화에 따라 가치관계도 역시 불안정하게 변동한다. 이 수직적인 위계력은 곳곳에 존재하긴 하지만 이들 규제력 사이의 연결은 매우 약하다.
맑스가 신용제도를 독립적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자본의 일반적 운동법칙에 여전히 종속된다고 했던 까닭이 있다. 10대들 예-독립과 자율에 대한 자신의 권리 주장/한편 재정문제에는 부모에 의존적. 신용제도와 가치생산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기적으로 화폐제도 내부에서 중앙은행과 다른 규제적인 요인들을 급격히 개혁하고 재배치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공황기에는 제도적 질서를 회복하는(가치관계의 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규제적인 힘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맑스도 역시 신용제도 내부의 신뢰와 기대가 위기를 맞으면 가치와잉여가치 생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상품화페는 무한히 축적의 장애요인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투기와 가공자본의 광란에 대해 강력한 규제력을 발휘한다. 상품화페의 폐기는 화폐족쇄로부터 무한한 자본축적을 해방해주만 동시에 신용규제의 책임을 중앙은행같은 인위적인 기구에 넘겨준다. 중앙은행과제는 잉여가치생산의 조건을 파괴하지 않고 신용제도 내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지만 이과제는 불가능해 보인다. 위계적 구조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
화폐자본,현실자본, 그리고 산업순환
맑스는 화폐,은행,신용의 세계에서 특징을 이루는 투기적이고 변덕이 심한 불안정성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기적인 호황과 파국의 배후에 숨겨진 논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햇다. 이것은 명백히 자본의 재생산을 위협하고 많은 유통자본의 가치를 주기적으로 하락시킨다.
이 근저에는 보다 일반적인 물음이 놓여있다. 즉 부채의 축적과 부의 축적은 어느 정도로 서로 결합되어 있는가? 이는 가공자본의 형태가 급격히 증가한 것에 대한 물음이기도 한다.
약속어음(가공자본)의 축적이 현실의 화폐자본으로 전화할 수 있고 따라서 가공자본을 현실자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는 약속어음이 거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가공자본이 과거처럼 계속해서 유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하지 않은 자본의 명목상 대표인 주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충분한 창업자본을 얻기 위해 많은 이들이 주택경기가 좋을 때 자신의 주택을 저당으로 대부를 받았지만, 공황이 발발하고 나서 이들은 자신이 주택에서 뽑아내어 투자한 가공자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이 현재 지고 있는 빚이 현재의 주택가격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만일 그 사이에 그들의 사업이 성공햇다면 그들은 처음의 가공자본에서 현실자본으로 변신한 부분을 모두 변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택모기지 시장에서 가공자본의 협잡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가짜 청구권을 현실화폐로 전환함으로써 엄청난 부자가 됐다.
이는 맑스가 각 범주를 상대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특수한 사용가치가 용도변경을 통해 하룻밤 사이에 고정자본에서 유동자본(혹은 소비재원 일부)으로 변경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어떤 순간 가공자본이던 것이 단숨에(자본이나 소비를 용도로 하는)현실의 화폐권력으로 변할 수 있다. 모기지증권이 부채담보부증권으로 묶이면 이중적인 가공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헤지펀드 매니저가 이들을 어수룩한 투자자에게 판매하고 10억 달러를 만들면 그는 불행히도 전혀 가공적이지 않은 실제 화페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
맑스는 이런 형태의 부의 축적이 계급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신랄한 방식으로 고찰한다.
이들 소유권증서가 가격변동에 의한 이익과 손실, 그리고 이런 소유권증서가 철도왕과 같은 극소수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것 등은 사태의 본질상 점점 더 투기의 결과로 나타나며, 그런 투기는 노동을 대신하여 자본소유의 본원적인 수익획득 방식으로 나타나고 이런 유형의 가상의 화폐자산은 개인뿐만아니라 은행자본가에서도 그 화폐자산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신용제도의 엄청난 확대(신용전체)가 이들 은행가들에 의해 그들의 사적자본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 은행가는 자본과 수입을 언제나 화페형태로 소지한다. 이 계급의 자산축적은 현실의 축적과 매우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어떤 경우이든 이 현실의 축적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이 계급이 챙겨 넣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본가계급의 행동-다른 사람의 돈을 사용하여 행하는 협잡과 투기, 그리고 심지어 산업자본가에 대한 착취-은 혹독한 비판의 대상
맑스는(자본가들 상호 간에 확대되는 상업신용에 관한)신용제도 작동에 내적.외적으로나 존재할 수 있는 한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이 한계는 산업가와 상인의 부에 의해 그리고 대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원래 자리로 환류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시장이 확대되고 점차 생산지와 멀어질수록 신용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투기적 요소가 점점 더 거래를 지배하게 된다.는 의미다. 생산이 대규모화하고 원격지 시장을 상대로 하게 되면 신용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신용의 규모는 생산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증가하며, 신용기간은 시장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함께 길어진다. 맑스는 이것을 상호적인 관계로 받아들인다. 신용발달은 세계시장을 만들어내고 상업의 지리적 범위의 확대는 신용의 확대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식으로 지구적 공간관계의 창출과 혁신는 신용제도의 발전과 긴밀하게 결합한다. 신용제도는 자본이 시간을 통해 공간을 제거하는 일차적 수단이다.
핵심은 산업(경기)순환의 상승을 유발하는 신용의 역할이다. 화폐자본의 수요와 공급, 화폐자본가(은행가와 중개업자)의 독자적인 행동와 의제들이 이 순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면서 산업순환의 전형적인 경로를 일반적인 형태로 설명했다. 그는 화페 및 신용제도내에서 다양한 요인들(중앙은행의 정책과 상품화폐의 역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주의의 기울인다.
대부자본의 축적은 정상적인 자본축적으로부터 촉발될 수 있다. 현실적인 축적이 계속해서 확대될 경우 이런 화폐자본축적의 확대는 한편으로는 그 현실적 축적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현실적 축적을 가져오는 것이면서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여러 계기들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생산적 기업들의 주식가치 상승 경우- 마지막으로 현실적 축적이 정체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축적은 현실적 축적과는 상당히 다른 계기들을 나타낼 수도 있다.(국채 혹은 소비자채권의 자본화 혹은 가공자본 형성을 통해 자산가치가 상승할 경우) 이 전체적인 결과는 순환의 일정 국면에서 화폐자본의 계속적인 과잉이다.
그 결과 신용은 수축하는데 그 이유는1.이 자본이 운용되지 않기 때문에 2.재생산과정의 원활한 흐름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기 때문에 3.이런 상업신용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신용부족으로 상품을 신용으로 구입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공황이 한창인 시기에는 판매도 할 수 없고 유휴상태에서 투자할 것을 찾는 자본이 아니라 자신의 재생산과정속에 묶여 있는 자본은 신용부족이 극도에 달하는 바로 그 순간에 최대 규모에 도달한다. 그런 시기에는 이미 투자된 자본이 재생산과정의 정체로 인해 대량으로 유휴화된다. 이런 시기는 생산자본은 과잉상태에 있는데 즉 그것은 일면 정상수준이지만 외견상 수축된 재생산규모에 비해서 과잉이며 또 다른 한편 마비되어버린 소비와 관련지어 볼때에서도 과잉이다.
과잉자본의 역할과 과잉자본을 흡수할 수익성 있는 수단을 찾아내는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된다. 사회전체가 산업자본가들과 임노동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가격변동이나 신용제도에 의해 촉진되는 가공거래와 투기적 거래들도 무시하자. 그럴경우 공황은 단지 여러 부문들 간의 생산 불균형과 자본가 자신의 소비와 그 축적 간의 불균형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생산에 투자된 자본의 보전은 대부분 비생산적 계급의 소비능력에 의존한다. 노동자들의 소비능력은 한편으로는 임금 법칙에 의해 제한을 받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사용이 자본가계급에게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경우에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제한을 받는다. 모든 현실적 공황의 궁극적인 원인은 항상 자본주의적 생산의 추동력에 대비되는 대중의 빈곤과 소비의 제약에 있으며, 이 추동력은 사회의 절대적 소비능력만이 생산력의 한계를 이루는 것처럼 그렇게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신용제도는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자본으로 하여금 그런 직접적 소비의 제약을 뛰어넘게 해준다. 여기에서 신용의 최대한도는 소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산업자본의 최대한의 운용이다. 1980년 이후 임금이 억제되던 신자유주의 시기동안 그리고 소비자 신용이 확대되던 시기에도 역시 개인적 소비는 전반적으로 억제됐다. 맑스는 경기하강도 신용의 도움으로 역전될 수 있다고 본다. 공황이 발발할 때 형성된 대량의 유휴 대부자본과 화폐자본의 재원들이(낮은 이자율과 함께) 복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낮은 이자율은 고정자본에 대한 장기적 투자와 완전히 새 투자에 대한 매력을 높여준다. 호황의 초기국면에는 이자율은 전형적으로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데 이 시기에는 풍부한 신용이 가장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국면이기도하다. 이를 통해 세계시장의 통합과 확대가 용이해진다.
재생산과정의 전체 연관이 신용에 기초해 있는 생산체계에서, 만일 신용이 갑자기 중지되고 현금지불만이 통용된다면 공황은 명백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 즉 지불수단에 대한 물밀듯한 요구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핏보아 공황은 단지 신용.화페공황으로만 나타난다. 문제가되는 것은 어음의 화페로의 현금화뿐이다. 그러나 이 어음은 여러 번의 현실적 매매를 대표하고 이런 매매가 사회적 필요를 훨씬 초과하여 팽창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전체공황의 기초를 이룬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엄청난 양의 이들 어음은, 완전히 백일하에 드러난 그 단순한 협잡거래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다. 그들 어음은 타인의 자본으로 운영하다가 실패해버린 투기들을 나타내며, 마지막으로 가치하락을 당하거나 전혀 판매되지 못하는 상품자본을 나타내기도하고, 이제는 불가능해진 환류를 나타내기도 한다. 재생산과정을 강제로 팽창시킴으롞써 이루어진 이 인위적이 전체 체계가 이제 어느 한 은행이 자신의 지페로써 이들 협잡꾼들에게부족한 자본을 채워주고 또 가치가 하락한 상품을 모두 원래 명목가치대로 구매해준다고 해서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전도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왜 이런 종잇조각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실제가격이나 그런 가격의 실제 계기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며, 단지 지금地金,경화,은행권,어음,유가증권 등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황이 어디에서 발발할지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연발사격 같은 것이다. 자본은 공황을 일으키는 자신의 경향을 결코 해소하지 못한다. 단지 한 곳에서 세계의 다른 곳으로 공황을 옮길 수 있을 뿐이다. 그들 나라에서 공황이 나타나는 기한이 언제인가 하는 그 순서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공황의 ‘뿌리는 과잉축적을 향하는 자본의 본질적 경향과 과잉화폐자본이 스스로의 계산에 따라 만들어내는 자립적인 운동이 뒤섞인 결과다.
대부자본의 축적이 현실적 축적과는 무관하지만 현실적 축적의 계기들에 의해 증대된다는 점에서 순환의 일정국면에서 화폐자본의 계속적인 과잉은 나타날 수밖에 없고, 또 이런 과잉은 신용의 발달과 함께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생산과정을 그 자본주의적 한계 이상으로 추진해야 할 필연성, 즉 과잉거래.과잉생산.과잉신용 등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것은 항상 그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결합은 과잉자본처분 문제이다. (화폐형태의) 과잉자본을 만들어내는 이 경향이 모든 공황의 뿌리라는 명제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잇다. 이들 과잉자본이 쉽게 가공자본의 형성과 유통경로 속으로 흡수된다는 사실은, 화폐형태의 자본이 순전히 화폐자본가의 힘을 빌려 축장의 필연성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경우, 피할 수도 없도 유보할 수도 없는 중심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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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강 제6편 신용제도에 대한 맑스의 견해 -[자본]제3권 제27장~제37장
이 장들은 자본주의 생산 하 신용의 일반적인 역할에 대한 개요을 이야기한 다음 맑스는 다음 두 개장에서 자본의 생산과 실현을 위한 유동성(현금 혹은 은행권)을 공급하는 데 은행과 은행가가 하는 역할을 본다. 그 다음 화폐.현실자본에 관한 세 개 장은 가공자본의 생애 동안 벌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데 여기에서는 잉여가치생산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도 없는 방식으로-잉여가치생산은 금융제도 내에서 과도한 부분에 대해 배후에서 징벌적인 힘을 행사하기 하지만-온갖 종유의 투기와 세력관계의 역전 등을 다루고 있다.
맑스는 신용제도가 계급의 공동자본에 합병하면서 빚어내는 본질적인 결과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자본일반을 재생산하는 자본의 흐름을 이끌며 일종의 중앙통제소같은 역할을 하는 화폐자본 유통의 위치를 바꾼다. 또한 그것은 자본의 성격이 급격히 변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본의 사회화를 함축한다. 예) 주식회사는 집단적이고 결합적인 자본의 등장을 용이하게 하는데, 이런 자본은 자본가의 사업규모와 범위 그리고 형태를 엄청나게 확대시키는 한편, 세계시장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보다 많은 장소에서 결합노동과 집단적 소유가 생겨날 수 있게 한다.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투입하여 만인의 복지를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이를 위해서는 사회내에서 소규모로 분산되어 낭비되고 있는 자본을 결합적 형태로 끌어모을 필요가 있었다.
모든 화폐자본을 생산에 봉사하도록 강제하고 한편으로는 순환의 어떤 국면에서 금속준비를 최소한도로 축소하는 것이 바로 신용제도와 은행제도의 발달이다. 전체구조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만든 것도 바로 발달된 신용제도와 은행제도이다. 중앙은행은 신용제도의 기둥이다. 그리고 금속준비는 이 은행의 기둥이다. 신용제도가 화페제도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정량(총생산에 비하면 보잘것없은 양)의 금속이 제도를 받쳐주는 기둥이란 점도 인정되고 있다. 금속(혹은 상품)화폐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꾸몄던 세계신용 및 화페제도는 1970년대 초에 포기됐지만 세계금융제도의(미제의 달러중심)위계적인 기둥구조를 가진다.
화폐가 가치의 자립적 형태로서 상품에 대립되어 나타나거나, 혹은 교환가치가 화폐라고 하는 자립적 형태를 취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기초다. 일반적 등가물로서 상품화폐가 자립적 형태다. 만일 상품화폐 대신에 신용화폐와 신용창출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어떻게 될까? 신용이 위축되거나 혹은 완전히 중단되어버리는 자금 부족시기, 화폐는 갑자기 유일한 지불수단으로 그리고 이 시기에는 상품의 일반적 가치하락이 나타나고, 상품의 화폐(상품자신의 순수하게 환상적인 형태)로의 전화는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해진다. 이것인 물신성 이론을 암시한다. 신용화폐 그 자체는 그것이 자신의 명목가치만큼 절대적으로 현실화폐를 대표하는 한에서만 화폐다.
신용과 현실화폐 사이의 긴장은 오래전에 이미 충분히 알려졌다. 신용과 현실화폐 사이의 긴장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비로소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어이없는 모순과 역설의 가장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왜. 1.자본주의체제에서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위한 생산이 완벽하게 폐지되어 있고, 따라서 부는 오직 생산과 교환의 착종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과정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2.신용제도의 발전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러한 부와 그것의 운동에 대한 이 금속적 제약을 끊임없이 폐기하려고 노력하고, 또 끊임없이 반복해서 이 제약에 머리를 부딪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화폐는 신용화폐가 극복 혹은 회피하려는 생산확대를 가로막은 걸림돌이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면 신용화폐의 질과 신뢰가 오로지 상품화폐와의 교환 가능성에 의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만일 자본축적이 이처럼 신용화폐와 신용수단의 동시적인 축적에 의존해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신뢰와 기대에 의지하여 주기적으로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갈지자 행보를 하는 물신적 괴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신용화폐는 금속화폐를 그냥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용제도와 화폐개념을 완전히 새 차원으로 변경해 신용제도가 품고 있는 물신성을 제거하기보다는 적극 수용한다. 신용의 거품,자산버블,투기적인 호황과 파국 등은 모두 자본이 화폐자본의 제약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대신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신용제도의 핵심은 그것이 무한한 성장의 세계로 향하려는 축적의 모든 화폐적 장애물을 부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은 종이화폐(채무증서)창출에 있다. 2001년 미국에서 주택거품이 만들어지면서 함께 벌어진 현상이다. 만일 금속 기둥이 화폐제도 전체에 걸쳐 사라져버린다면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답은 정부와 결합되어 있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다.(국가재정결합체) 이것들은 오늘날 세계화폐 신용제도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 상품생산(금과 은의 생산)에 기초한 규제 메카니즘을 인위적인 기구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신용창출에 행사되는 유일한 규율은 인간판단이다.
2007~2008년 대공황은 미국의 연준위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규제의 실패가 최근 사태에 영향을 미치어서 공황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규제제도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인플레이션만을 잡도록 위임받은 유럽중앙은행이 그리스의 채무위기를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더욱더 강화된 긴축만을 요구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위적인 기구들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온갖 방식의 사회적 세력관계와 충돌하는 선택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상품화폐가 중앙은행의 정책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을 당시와는 전혀 다른 규제 메커니즘을 창출하고 있다.
지속적인 자본축적의 확대경향이 화폐적 차원에 맞추어지기 위해서는 신용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금속본위제(그리고 은행권의 태환성)로 이루어진 장애물은 극복되어야 하는데 왜 금과 은의 양이 적절하게 조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상품산출의 변동에 맞추어 유연하게 양을 조절할 수 없기에) 아니라 궁극적으로(한정되어 있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온갖 형태의 자본투자(이 모든 투자의 가정은 결국 보다 많은 잉여가치 생산에 맞추어져 있다.)의 투기적 성격은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에 불가피하게 개입한다. 각기 다른 유통기간(특히 고정자본)에서 비롯하는 다양한 변이들은 오로지 적극적인 신용제도의 개입에 의해서만 조장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용도로 축장되어 있는 죽은 자본을 끌어냄으로써 축적을 지연하는 대신 축적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프의 빼레르 형제 15년간 유휴상태의 자본과 노동을 성공적으로 흡수했고 급격하게 변모된 건축환경을 남겼다. 이것은 신념과 믿음 그리고 심리상태에 대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신용제도는 표면적으로 법칙이 없고 혼돈스러우며 제어가 되지 않은 능력으로, 투기열풍과 주기적인 파국을 함께 배양한다. 이자가 특수성의 범주에 속하고 이런 특수성을 규제하는 요인은(만일 규제가 된다면) 다른 특수성들-특히 서로 다른 자본 분파들 사이의 경쟁과 화폐자본의 공급과 수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적이고 무법칙적이며 결합적이다. 신뢰에 의존해 있다. 맑스는 자본의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자본과잉)을 향한 경향이 자본의 일반적 운동법칙의 핵심적인 모습이며, 그 경향은 주기적으로 신용제도를 와해시키는 신뢰위기를 유발하는 방아쇠이자 근본원인이라고 이야기했다. 화폐본위제의 카톨릭주의는 실제의 가치가 화폐상품에 의해 대표된다고 생각하는데 맑스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투기열풍을 가로막는 실질적인 장벽이라고 규정했다. 자본축적의 일반적 운동법칙과는 반대되는 모습으로 현실을 꾸며나가는(은폐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 투기적인 가공자본의 역할이다.
제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신용제도의 전사
이자를 낳은 자본(낡은 형태인 고리대자본)은 상인자본과 함께 자본주의 생산양식 이전에 존재했다. 상품과 화폐 구매와 판매는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것들이다. 여분의 화폐(축장)는 전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그리고 반드시 존재했다. 그러나 자본이 되는 것은 오로지 화폐축장자가 고리대업자로 전화할 때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폐가 자본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고리대자본의 발전은 상인자본(특히 화폐거래자본)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다.
전 자본주의 시기에 고리대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1.낭비를 업으로 삼는 귀족(토지소유자)에게 화폐를 대부하는 고리대이다. 2.자신의 노동조건을 소유하고 있는 소생산자에게 화폐를 대부하는 고리대이다. 이 소생산자는 수공업자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농민이다. 그리하여 고리대는 한편으로는 고대적.봉건적 부와 소유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작용을 하며, 다른 한편 소농적.소부르주아적 생산을 훼손하고 파괴한다. 그것은 본원적 축적과정을 완수한다. 화폐와 상품의 탁월한 이동성 때문에 상인자본은 토지에 기초한 봉건세력을 지배하게 된다고 햇던 말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모든 생산양식에서 고리대가 혁명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오직 고리대가 소유형태를 파괴하고 분해하는 한에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나머지 조건이 존재하는 장소와 시기에 비로소 고리대는 한편으로는 봉건영주와 소생산자의 몰락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론 자본으로 노동조건이 집중하는 것에 의해 새로운 생산양식을 형성하는 수단의 하나로 나타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규모 화폐자본의 집적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어떻게 출현시킬 것인지는 전적으로 역사적 발전단계와 그것과 함께 주어진 갖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정해진다. 고리대자본은 생산양식을 변경x-직접적 생산자의 모든 잉여노동을 실제로 취득하며, 생산자에 의한 노동조건의 소유 또는 점유(그것에 대응하는 분산적인 소규모 생산)가 본질적인 전제이며, 그리하여 자본은 노동을 직접적으로 종속시키지 않으며 따라서 산업자본으로서 노동자와 대립하지도 않는다. 고리대는 생산양식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기생충처럼 그것이 달라붙어 그것을 곤궁하게 한다. 고리대는 생산양식을 착취하고, 그것을 쇠약하게 하며, 재생산이 더욱더 비참한 조건 아래 이루어지도록 제약한다.
고리대의 화폐집적-영주 사치(화폐조세로)→평민착취 강화, 소생산자 화폐의 지불수단 필요. 전쟁이나 재해 우연사건, 소 한 마리 죽음 등-소생산자 재생산 위협-고리대 채무에 종속. 고리대 이런 파괴적인 힘은 대중의 혐오-카톨릭 교회는 19세기 말까지 이자와 함께 고리대를 금지했다. 루터는 고리대와 공정하고 정당한 이자율 구별. 자본주의 내에서도 고리대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도시빈민 지역의 전당포나 인도 곳곳에서 농민들에게 기생하고 있는 대부업자들이다. 자본주의의 이자 낳은 자본이 과거의 고리대자본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기능하는 조건들이 달라졌다는 것(화폐대부자와 마주하는 차입자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에 있다. 차입자는 아무 재산없이도 잠재적인 자본가로서 신용을 얻는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가장 뛰어난 인물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지배는 더욱더 강고하고 위험한 것이 된다. 그래서 무일푼이 갑부가 되는 자본의 신화는 이런 계급관계을 영속화하기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으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자본가계급에게 신선한 피를 공급하고 그것의 활력과 힘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사용된다.
고리대자본과 이자낳은 자본이 산업자본에 의해 어떻게 예속됐고 거꾸로 산업자본이 다시 이자 낳은 자본에 어떻게 예속됐는지를 간단하게 살핀다.
맑스는 신용제도에 내재하는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별도로 알려준다. 은행제도는 자본~양식이 만들어낸 가장 인위적인고 정교한 산물이다. 그래서 상업과산업에 대해서 거대한 권력을 행사. 은행은 사회적 규모에서 생산수단의 일반적 부기와 분배의 형태(비록 형태뿐)를 제공한다. 개별자본가는 평균이윤은 총자본의 총잉여노동에 의해 결정되며, 총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자기의 분배몫을 받는다. 자본의 이런 사회적 성격은 신용과 은행제도의 충분한 발전에 의해서 비로소 매개되고 충분히 실현된다. 이 제도는 모든 이용가능한 자본, 잠재적 자본을 산업.상업자본가의 처분에 맡기며, 따라서 자본의 대부자도 사용자도 이 자본의 소유자도 또는 생산자가 아니다. 그럼으로써 이 신용과 은행제도는 자본의 사적 성격을 지양하고, 따라서 잠재적으로 자본 그 자체의 지양을 포함한다. 은행과 신용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그 자신의 제약을 뛰어넘도록 밀어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고 또 공황과 협잡을 매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가운데 하나가 된다.
맑스는 고리대가 자본주의 초기에 선구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면서도 화폐시장의 사회화와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을 위해 변혁을 겪어야 했던 것처럼, 이자낳은 자본 역시 사회주의 이행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할 운명임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로의 유기적 이행은 다른 많은 요인에 의존한다.
신용 역할과 은행제도-[자본]제3권 제27장 이후-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의 신용의 역할
왜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에 신용이 필요할까? 금융부문의 활동이 가치 그리고(혹은) 잉여가치에 생산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능할까?
1.신용은 이윤율을 균등화하는 방식으로 각 산업부문들 사이에 화폐자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신용이 계급의 공동자본으로 기능하다고 스스로 언급했다. 자본이 취하는 나비와 같은 형태는 서로 다른 산업,활동,장소 등에서 얻는 수익률을 표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2.신용은 a)금을 종이로 대체하고, 상품교환의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금(축장화폐)의 필요성을 줄이고,(유통수단의 감축, 자본 중 항상 화폐형태로 존재하는 부분의 감축) 상품화폐의 사용과 함께 제공됨으로써 b) 또한 회전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유통비를 대폭 줄인다. 이런 유통촉진은 자본재 생산과정 일반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요컨대 신용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다른 한편 신용은 구매와 판매행위를 오랫동안 서로 분리시킬 수 있으며 이리하여 투기 바탕으로서 역할한다)
3.신용은 주식회사를 가능하게 하는데 주식회사는 생산규모를 대폭 확대하게 해주고 형식적인 정부기능을 사유화하며 자본의 집중을 도와준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개인적인 성격보다 사회적 성격을 표방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의 한계 안에서 사적 소유로서 자본을 철폐하는 것이다. 주식회사-일정한 분야에서 독점을 낳아서 국가의 간섭. 다른 한편 새 종류의 기생층 재생산(금융귀족 재생산하고 발기인이나 투기가, 명목상의 임원) 회사설립이나 주식발행이나 주식거래과 관련된 투기와 사기의 제도전체를 재생산한다. 주식회사는 사적 소유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사적 생산이다. 이 전화가 반드시 역사발전방향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전화는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만일 관리자가 단순히 감독임금만을 받은다면 이제 자본은 관리인부터 제일 밑바닥의 일용근로자에 이르기까지 실제 생산에 종사하는 모든 개인들에 대해 이자를 추구하는 순순한 화폐자본의 소유에 근거한 소유권으로 나타난다. 잉여가치 생산은 그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단순한 수단으로 나타난다. 직접적 생산자인 자본가는 타인의 화폐자본의 관리자가 된다. 주식회사들에서는 생산기능이 자본소유와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이 거기에서는 생산수단과 잉여노동의 소유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주식회사는 자본~양식 그것 안에서 자본~양식을 철폐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기를 철폐하는 모순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고도로 발전된 결과 주식회사는 자본이 생산자소유로 재전화- 소유는 생산자들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 결합된 생산자들의 소유(직접적인 사회적 소유)로서의 생산자 소유다-하기 위한 필연적인 통과점이다.
산업자본이 은행신용을 통하여 잠재적 화폐자본을 조달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곤란성은, 잉여가치를 생산함에 있어 고정자본 요소들의 규모가 점차 증대하지 않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은행신용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의 화폐자본만을 공급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곤란성은 만약 고정자본 요소들에 투하된 화폐자본이 그것을 회수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산업자본의 순환 외부에서 회수될 수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식회사의 출현에 필요한 조건들은 1. 산업자본이 대규모의 고정자본을 설치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는 점. 2.산업자본에 대한 소유권 또는 그 산업자본이 획득한 이윤에 대한 청구권이 상품으로 매매될 수 있게끔 신용제도가 발달하였다는 점 등인데 이런 소유권 또는 청구권의 자유매매는 독립적인 이자 낳은 자본의 존재와 일반적 이윤율의 형성을 전제하고 있다. 왜 그 소유권의 가격은 이자 낳은 자본이 대부(이자취득)와 그 소유권의 구입(배당취득)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함으로서 형성되기에.
주식회사에 투자하는 화폐소유자는 주주로 된다. 주주는 이자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윤에 분배에 참가한다. 주식은 실제로 기능하는 산업자본에 대한 소유권을 대표하고 있다. 단순한 화폐대부자와 다른 점들. 따라서 주식발행은 스스로 산업자본으로 기능할 수 없는 소규모의 자본들로 하여금 산업자본의 기능을 담당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소수의 대규모 자본들로 하여금 다수결 방식에 의하여 거액의 사회적 자본을 통제(관리)할 수 있게끔 해준다.
주식의 유통시장의 중요성. 증권시장에서의 주식의 유통에 의하여 주주는 불특정의 제3자로부터 그의 자본을 회수할 수 있기때문에 주식은 주식회사 또는 산업자본에게 무기한 대부 또는 상환할 필요가 없는 신용을 제공한 셈이다.
의제적인 주식자본의 형성과 주식유통은 사실상 주식자본과 대부자본의 구별 그리고 배당과 이자의 구별을 모호하게 한다. 대부자본과 마찬가지로 주식자본은 M...M′의 순환을 나타내는 이자 낳은 자본의 형태을 띠게 된다. 주식자본의 형성과 주식 유통은 상이한 산업분야들 사이의 이윤율 균등화에 기여하게 된다. 만약 신주 발행을 고려하면 주식은 잠재적 화폐자본을 더욱 수익적인 산업분야로 유도함으로써 산업분야 간의 자본이동을 용이하게 하며 따라서 이윤율 균등화 기여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주식은 이자낳은 자본의 형태-왜 주식은 일정한 수입 보장, 투하된 자본가치는 주식매각에 의하여 상환. 주식축적이 철도.광산.기선 등의 축적-현실적인 재생산과정의 확대 표현.
주식회사의 형성을 통한 자본의 사회화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과도기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이윤은 순수하게 이자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그런 기업들은 단지 이자만 벌어들여도 되며 바로 이것이 일반이윤율의 저하를 억제하는 한 요인이다. 즉 그것은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이 엄청나게 큰 기업들이 반드시 일반이윤율의 균등화에 참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들이 주식회사의 형태라면 그들 이윤율 격차는 그들의 주식가격의 변동에 반영될 것이며 따라서 고이윤율의 기업은 신주발행을 통하여 더욱 큰 화폐자본을 조달, 반면 저이윤율의 기업은 추가자본 조달 곤란. 이런 잠재적 화폐자본의 불균등화 배분은 산업분야들간의 이윤율균등화에 기여하게 된다.
주식회사가 비주식회사와 나란히 발달하면 주식자본이 이자 낳은 자본이라는 성격 때문에 주식회사와 비주식회사 사이의 자본이동이 저해된다. 이자 낳은 자본은 대부를 통하여 이자를 취득하든 또는 주식소유을 통하여 배당을 취득함으로써 가치증식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자 낳은 자본은 스스로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와 주식소유 어느 하나에만 몰두하게 이자낳은 자본은 이자취득에 상응하는 배당을 얻은 한에 있어서는 주식회사의 이윤율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주식회사의 형성과 발달은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하여 분명히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가속화시키지만, 그 반면에 사회적 총자본 중 주식자본(곧 이자낳은 자본)의 증가는 주식자본이 산업자본들의 이윤율 격차에 무감각하기 때문에 가속화된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일반적 이윤율의 현실적 저하로 실현되는 것을 저지하기 때문이다. 평균이하나 평균이상일 때도 타당하다.
주식회사의 발달은 이윤율 저하경향과 상쇄요인들 사이의 내부모순을 더욱 촉진하게 된다. 이 자본의 발달은 어떤 특별한 자극이 있을 때는 사회적 부의 큰 부분을 추가자본의 형태로 생산분야에 동원-기존산업확장, 새 산업 형성 및 새 고도로 생산적인 생산방법 도입을 가능. 이 자본발달은 경쟁기업의 다수 주식 구입방법 제공-산업자본집중 용이. 주식거래는 투기의 완전한 발달 내포.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을 자극, 특수한 국면에서 갑자기 중단-공황
신용은 개별자본가에게 일정 범위내에서 타인자본과 타인소유 그리고 그럼으로써 타인 노동에 대해서까지 하나의 절대적인 처분권을 제공한다. 자기자본이 아닌 사회적 자본에 대한 처분권은 그에게 사회적 노동에 대한 처분권을 부여해준다.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거나 혹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그런 자본 그 자체는 아직 신용이란 상부구조에 대한 하나의 토대일 뿐이다. 그 결과 모든 가치척도들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부에서 아직 많든 적든 정당화되고 있는 모든 논거들이 여기에서는 사라져버린다.
자본주의 등장이 절제의 윤리에 근거한다는 베버의 신화와은 이제 결별이다. 자본가는 단지 차입을 하는 사람일 뿐이며 타인의 저축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사람일 뿐이다. 신용제도는 (약탈에 의한 축적) 본원적 축적을 현대에도 나타내는 주요 수단이 된다. 오늘날 금융귀족들이 금융귀족의 공학으로(다른 자본가도 포함) 타인의 수탈해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가?
화폐거래자본의 역사에서 고리대와 이자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특수하게는 산업자본의 규제를 받고 거기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문장은 자본주의의 신용제도가 총체적으로 통제를 벗어나 있으며 오늘날 자본의 세계와 잉여가치 생산을 치명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용제도는 생산에서 노동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약탈에 의한 축적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것은 비록 옛날 고리대와는 다르긴 하지만 고리대가 사용하던 수법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 만일 신용제도가 과잉생산과 상업부문의 과잉투자의 주된 지렛대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단지 원래가 탄력적인 성격을 지닌 재생산과정이 이 경우 그 극한까지 강행됐기 때문이며, 그렇게 강행된 이유는 사회적 자본의 대부분이 그 자본의 소유주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은 사회적 생산의 발달에 따라 사적 생산의 수단이나 생산물이기를 멈추며 결합된 생산자들의 사회적 생산물임과 동시에 그들의 수중에 있는 생산수단, 이리하여 그들의 사회적 소유만으로 존재. 그러나 자본주의체제 안에서는 이런 수탈은 소수인에 의한 사회적 소유의 취득이란 반대 형태를 취한다. 신용은 이 소수인에게 수순한 사기꾼성격을 점점 더 부여. 소유권은 이제 주식의 형태로 존재-소유권의 동향과 이전은 증권거래소의 투기의 결과일 따름-작은 고기들은 상어의 밥이 된다. 주식으로 전환은 사회적 부의 성격과 사적 부로서의 부의 성격 사이의 대립을 극복은커녕 이 대립을 새 형태로 전개.
신용제도가 보여주고 잇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립적 성격에 기초해 있는 자본 가치증식은 실제로 그 자유로운 발전이 일정한 지점까지만 허용되고, 따라서 그것은 사실상 생산의 내재적인 속박이자 한계를 이루는데, 이 속박과 한계는 끊임없이 신용제도에 의해 파괴된다. 즉 신용은 자본축적이 모든 한계를 돌파하는 본원적인 수단이다. 왜 신용화폐는 무한히 창출될 수 잇기 때문이다. 신용제도는 생산력의 물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형성을 촉진하는데, 이런 세계시장의 형성을 위한 새 생산형태의 물적 기초로서 일정한 수준까지 이루어낸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임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용제도는 가치와 잉여가치 생산에 강력하게 기여한다. 동시에 신용은 또 이런 모순의 강력한 폭발(공황)을 촉진하고, 그럼으로써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촉진한다. 신용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추동력과 타인노동의 착취에 의한 치부방식을, 순전히 대규모의 도박과 협잡제도으로 발전시키고, 사회적 부를 착취하는 사람의 숫자를 점점 더 소수로 제한한다. 그것은 한편 새 생산양식으로의 과도적 형태를 형성한다.
주식회사는 생산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부의 사회적 성격과 이 부가 사적소유라는 자본주의적 장애물 속에 갇혀 있는 방식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이 사회성은 해방될 수 있을까?
맑스는 결합된 자본을 협동조합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관리하도록 하자는 관점을 제기한다. 맑스는 이런 노동자 협동조합이 기존 자본주의체제의 많은 결함을 그대로 재생산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최소한 나라 전체에거 걸쳐 협동조합 운동이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리라고 생각햇다. 체제가 변화지 않은 상태에서 협동조합의 한계
공장의 경영권을 인수해 민주화하고, 다른 협동조합 형태와 네트워크를 구성함으로써 대안적인 연대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 자체 정치적.경제적 생활을 반자본주의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하나의 경로라고 생각하는 운동이다. 신용제도와 자본의 사회화는 협동조합과 노동자에 의한 통제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협동조합은 자본~양식의 공장제도와 신용제도가 바탕)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은 자본~부터 결합된 생산양식으로의 이행형태로 간주- 전자는 자본과 노동 대립이 소극적으로 철폐되고 후자는 적극적으로 철폐. 그러나 이들 논의에서 노동자가 장악한 국가에서 모든 신용을 집중하자는 요구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들어 있지 않다.
제3권 제28장: 유통수단과 자본
자본으로서의 화폐와 통화로서의 화폐를 구별하는 투크 등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소득의 유통으로서의 유통과 자본의 유통으로서의 유통 사이의 구별을 통화와 자본사이의 구별로 전환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유통수단으로서 화폐와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 사이의 차이를 통화와 자본 사이의 차이로 전환. 은행권-통화와 자본구별
맑스는 생산에 사용하기 위해 자본가가 사용될 상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화폐와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빌리는 화폐 사이의 구별이다. 이 구별은 수입의 화폐형태와 자본의 화폐형태로 나타난다. 두 화폐의 사용은 산업자본의 유통에 통합되어 있다. 동일한 금화와은행권은 소비자자격으로서 국민전체에 의하여 소득의 화폐형태로서 은행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공장주가 임금 지불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인출되어 있으며, 이리하여 소매상에게 끊임없이 환류하여 소매상을 위하여 그의 자본의 일부와 동시에 그의 소득 일부를(상품은 자본가치와 잉여가치를 포함) 새로이 실현하고 있다. 투크는 이점 완전히 간과. 생산된 자본은 자본가치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도 포함한다. 그 상품은 자본자체일 뿐만 아니라 이미 가치증식된 자본이며 소득원천이 합체되어 있는 자본이다. 따라서 소매상이 자기에게 환류하는 화폐와 교환으로 내놓은 상품은 그에 대해서 자본+이윤이며 자본+소득이다. 주로 지불수단(사업계)와 노동자들은 유통수단(구매수단) 구별은 화폐에 속하는 구별이다.
신용이 풍부하고 유동성이 과잉인 조건에서는 (주택같은)필수적인 상품의 공급과 수요는 투자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는 이자 낳은 자본이 공급과 수요조건 모두에 자유롭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유통영역은 한편으로는 수입액은 소비의 크기를 나타내고 다른 한편은 생산부문과 상업부문에서 유통되는 자본크기는 재생산과정의 크기와 속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하나의 내적 연관속에 있다.
제3권 제29장: 은행자본의 구성(은행과 가공자본의(그 배후에 현실자본존재x) 문제)
은행업자의 경제학에서는 화폐자본이 이자낳은 자본과 혼동되고 있다. 화폐자본은 산업자본의 기타형태들-상품자본과 생산자본-과 구별되는 통과형태(산업자본이 일시적으로 취하는 형태)-에 불과하다.
은행자본을 구성하는 것은 1.현금화폐(금이나 은행권) 2.유가증권이며 유가증권은 다시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상업증권(어음)으로서 이것은 떠돌아다니다가 차례차례 만기에 다다르며, 이것의 할인은 곧 은행가의 고유한 임무이다. 둘째는 공적 유가증권으로 국채,국고증권, 온갖 종류의 주식들로서 여기에는 담보증서도 포함된다. 은행이 보유한 자본은 은행가 자신의 자본과 (은행이 발행할 권리가 있는 은행권과 함께) 다른 사람의 화폐로 이루어진 자본(예금)으로 이루어진다. 주식시세? 1.배당금 크기 2.이자율에 의존-주식액면가 5000원:배당금 1000원→은행이자 10% 만원예금⇒이자소득기준 만원에 판매. 이자율8%-주식시세 12500원. 12%-8300원
국채이자율이 5%이면 연간 수입 25만원은 500백만원이란 자본의 이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환상적인 표상이라고 지적한다. 수입의 배후에는 어떤 현실적인 화폐자본도 없음이 분명하다. 국가는 채권자에게 차입자본에 대해 매년 일정액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 경우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해약을 통고할 수 없으며 단지 청구권(그것은 대한 소유권)만을 판매할 수 있을 뿐이다. 자본 그 자체는 국가가 먹어치우고 지출해버린다. 그것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국가지불을 자신의 새끼(이자)로 간주하는 자본은 여전히 환상적이고 가공의 자본으로 머물러 있다. 자본으로서 투하되었더라면 자기를 유지하는 가치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맑스는 국가에 대부된 자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은 물론(그것은 이미 지출됐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지출되거나 투자되도록 규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국가행동을 통해서는 어떤 잉여가치도 생산되지 않지만, 마치 추가적인 가치가 생산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국가가 자신의 차입한 화폐에 대해 이자(아마도 다른 곳에서 생산된 잉여가치 일부)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채를 매매하는 거래는 마치 자본원금이 회수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심지어 수요>공급이면 초과이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거래는 여러 번 더 똑같이 반복될 수 있지만 국채라고 하는 자본은 계속해서 순전히 가공의 자본으로 남으며, 이 채권이 일단 판매불가능한 순간이 되면 그때부터 이 자본의 허상은 소멸되고 만다. 이 가공자본의 고유한 운동이란 주식과 채권시장에 매일(매시간)보고 있는 가치변동 같은 것이다.
이자낳은 자본은 모든 전도된 형태의 어머니로 나타난다. 이런 전도는 부르주아 이론가가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을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노동자로 체화된 가공자본을 만들면서 더욱 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노동자 가치는 연간 지불된 임금의 가치를 자본화한 것으로 계산된다. 임금이 이자로 간주되고 따라서 노동력은 이 이자를 낳은 자본으로 간주. 연간 임금이 50원이고 이자가 5%이라면, 연간의 노동력(노동자 한 사람)은 1000원의 자본과 동등하다고 간주. 이 이론은 노동자가 자신에 대한 교육과 숙련의 습득에 투자함으로써(이 모든 것보다 보다 높은 임금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인적 자본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적자본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본가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본의 가치증식이 노동력의 착취로부터 설명되는 대신 거꾸로 노동생산성이 노동력 그 자체가 이 신비한 물건인 이자낳는 자본이란 사실로부터 설명됨으로써 자본주의 사고방식의 전도된 성격이 그 극에 이르게 된다. 낮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자신의 책임인데 그것은 자신의 인적의 자본에 투자하기를 소홀히 했다는 뜻이다. 두 가지 곤란. 1.노동자는 이자-노동 2.노동력을 타인에게 양도-그것의 자본가치를 화폐로 전환 불가능→노동력의 연간가치는 연평균임금, 구매자에게 이 가치와 잉여가치를 자기 노동에 의해서 보상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단순하고 핵심적인 원리 즉 자본화의 원리가 있다. 가공자본의 형성을 우리는 자본으로의 환산(자본화)이라 부른다. 우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모든 수입을 평균이자율에 의해 계산함으로써 즉 그 수입을 이 이자율로 대부된 어떤 자본이 벌어들이게 되는 수익으로 환산함으로써 그것을 자본으로 환산한다. 이 수익 흐름에 따라 소유권은 자본화된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다. 이리하여 자본의 실제 증식과정과 관련된 것은 모두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는 존재라는 생각(표상)이 굳어진다
그 자본은 이중으로 -소유권(주식)의 자본가치로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기업에서 실제로 투자됏거나 혹은 투자될 수 있는 자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후자의 형태로만 존재하고 주식이란 단지 그 후자에 의해 실현되는 잉여가치에 대한 일정 비율의 소유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상 잉여가치(이 가운데 일부가 이자,즉 순수한 소유권에 대한 보수다)를 생산하게 될 미래노동에 대한 청구권이다.
이런 채권 및 주식시장은 변동한다. 이들 소유권 가치(시장가격)의 자립적인 운동은 그들 소유권이 자본이거나 혹은 소유권을 가능하게 하는 청구권임과 동시에 현실자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는 허상을 확증해준다. 이들 증권시장가치는 부분적으로 투기적 성격을 갖는데 왜? 그것이 현실의 수입뿐만 아니라 기대수입(즉 사전에 계산된 수입)에 의해서도 정해지기 때문이다. 가격은 미래 잉여가치 생산에 대한 전망에 따라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국채(자본존재x)가정-증권가격은 이자율과 반비례 관계. 이자율이 5%→10%이면 5원의 수입을 보장하는 증권은 지금 50원 자본 대표할 뿐이다. 이자율이 2 1/2%로 하락하면 동일한 증권은 200원 자본 대표. 증권가격은 항상 수입의 자본화(즉 수입을 현행의 이자율로 나눈 환상적인 자본)에 불과. 화폐시장이 핍박 시기-증권가격 하락.1.이자율 상승 2.증권들을 화폐로 전환→증권들 대량으로 시장에 방출. 증권들의 가격등락이 현실적 자본가치 운동과 무관- 한 나라의 부는 가격변동 전과 후에은 전혀 차이가 없다.
가격의 하락과 공황은 자산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지만 일단 태풍이 지나고 나면 이 증권은 원래 가격으로 다시 회복한다. 이런 증권들은 모두 사실상 미래의 생산에 대한 축적된 청구권(법적 권리)를 나타내는 것 이외은 아무것도 아니며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모든 나라들에서는 엄청난 양의 이른바 이자낳은 자본(혹은 화폐자본)이 이런 형태로 존재한다. 화폐자본의 축적이란 대부분 생산에 대한 이들 청구권의 축적이나 이들 청구권의 시장가격(이들 청구권의 가공자본가치)의 축적을 의미한다.
이자낳은 자본과 신용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모든 자본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두배로 혹은 세배로 나타나는데 그 여러 가지방식이란 동일한 자본이나 채권이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여러 사람의 수중에 잇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이런 화폐자본의 대부분은 순전히 가공의 것이다.
은행자본의 대부분은 순전히 가공의 것으로 채권(어음),국채(과거자본대표),주식(미래수익에대한 지불지시권)등으로 이루지는데 증권들의 화폐가치는 철저하게 가공적이며 현실자본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규제된다는 것이다. 혹은 그것이 수익에 대한 청구권은 끊임없이 변동하는 가공의 화폐자본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가공은행자본이 대부분 자기자본이 아니라 이자가 있든없든 은행에 예금한 대중의 자본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1.신용창조의 한계-.금본위제도 하:10만원 은행권은 금1돈과 태환, 상품가격30만원은 금3돈가치와 동일, 일정 기간 유통되는 상품가치총액이 100돈의 가치와 같고 은행권 회수가 5번→은행권 수량은 20만원. 만약 국가가 40만원 불환지폐 발행하여 유통영역에 투입-상품가치는 불변이나 상품과의 교환비율은 곧 상품가격은 두 배로 상승(유통수단 금은 여전히 20만원)
.금본위제하-많은 또는 적은 화폐가 유통영역에 있기 때문에 상품가격이 높거나 또는 낮은 것이 아니라 상품가격이 높거나 또는 낮기 때문에 유통영역에 많은 또는 적은 화폐가 있다. 상품가치와 금가치가 생산조건에 의존. 화폐는 무엇보다도 상품가치를 금량의 화페단위로 표현, 상품이 유통과정에 들어갈 때 이미 가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및 화폐는 특정한 가격을 지닌 상품들을 유통시킬 뿐이다.
.신용공황은 화폐의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의 지불수단로서의 기능에 의거하고 있으며, 더욱이 은행권의 금으로의 태환요구는 맑스의 신용공황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화폐공황은 지불의 순차적인 연쇄와 그 결제의 인위적 제도가 충분히 발달된 곳에서만 일어난다. 공황이 폭발하자 이제는 지불수단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가 각자는 이 지불수단을 입수함에 있어서 타인에 의존하고 잇으며 그 타인이 만기일에 지불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에 존재하는 지불수단에 대한 곧 은행궍에 대한 굉장한 쇄도가 일어난다. 각자는 입수할 수 있는 만큼의 은행권을 퇴장하며 그리하여 은행권은 그것의 대한 수요가 가장 절실한 바로 그 날에 유통으로부터 사라진다. 신용이 수축되거나 또는 전혀 없어지는 핍ㅈ박기에는 돌연히 화폐는 유일한 지불수단 및 가치의 진정한 대표물로서 모든 상품과 절대적으로 대립한다. 이로인해 상품의 전반적인 가치감소가 일어나며 상품ㅇ를 화폐로 전환하기 곤란해지며 심지어는 불가능하게 된다.
2.투기-모든 다른 사정이 불변일 때 임금과 이윤사이의 분배상의 변화가 어떻게 상품의 생산가격을 변동시키는가만을 고찰. 호황말기의 가격상승 설명-직접적 적용x.
가격상승원인을 임금에서가 아니라 산업자본순환에 투입된 화폐자본증가가 자본축적율(잉여가치생산과 실현에 의존한다)에 의하여 정당화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한다. 이 주장은 이윤율저하 법칙의 내부모순들과 결합될 때 더욱 구체성. 이윤율저하와 이윤량 증대라는 모순적 경향은 개별자본들로 하여금 신용제도를 통하여 화폐자본의 확대를 강제하지만 이 확대된 화폐자본은 그에 상응하는 잉여가치 증가와 자본축적율의 확대를 초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 또한 자본집중과 잠재적 화폐자본의 과잉이란 모순적 경향은 새 독립적인 자본의 형성과 새 기술도입을 제한하는 경향-이에 자본집중과정이 생산분야의 축소를 야기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경제전체로서 화폐자본의 확대율과 자본축적율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여 인플레이션 야기할 수 잇다. 공황직전과 공황기에서의 이자율상승은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정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자본가들이 지불수단으로서 화폐(또는 화폐자본)를 강력하게 수요하기 때문이다.
신용제도에 대한 맑스의 종합적인 견해
신용제도 밑바닥에는 중앙은행이 자리를 잡고 있고 중앙은행 아래에는 상품화폐(금과은 등)가 깔려있다. 이들 상품화폐는 가치를 대표하고 가치는 다시 세계시장에 나와 있는 인간노동의 사회적 성격에 기초해 있다. 맑스는 이런 수직적인 위계적 구조의 화폐제도를 상정했다.
단단히 맞물린 체계의 형태인 신용제도의 움직임은 상품화폐를 중개하는 층과 중앙은행이 요구하는 가치에 의해 매우 강력한 규제를 받는다. 맞물린 체계가 느슨 생각하다.
신용의 움직임은 가치생산으로부터 자립적이다. 신용제도 내부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중앙은행의 계획과 행동은 화폐상품으로 대표되는 실제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맑스도 화폐상품이 가치를 대표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심각한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금과 같이 특수하고 구체적인 사용가치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적 필요노동을 츢정하는 데 사용된다.)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끊임없이 겪는 변화에 따라 가치관계도 역시 불안정하게 변동한다. 이 수직적인 위계력은 곳곳에 존재하긴 하지만 이들 규제력 사이의 연결은 매우 약하다.
맑스가 신용제도를 독립적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자본의 일반적 운동법칙에 여전히 종속된다고 했던 까닭이 있다. 10대들 예-독립과 자율에 대한 자신의 권리 주장/한편 재정문제에는 부모에 의존적. 신용제도와 가치생산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기적으로 화폐제도 내부에서 중앙은행과 다른 규제적인 요인들을 급격히 개혁하고 재배치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공황기에는 제도적 질서를 회복하는(가치관계의 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규제적인 힘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맑스도 역시 신용제도 내부의 신뢰와 기대가 위기를 맞으면 가치와잉여가치 생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상품화페는 무한히 축적의 장애요인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투기와 가공자본의 광란에 대해 강력한 규제력을 발휘한다. 상품화페의 폐기는 화폐족쇄로부터 무한한 자본축적을 해방해주만 동시에 신용규제의 책임을 중앙은행같은 인위적인 기구에 넘겨준다. 중앙은행과제는 잉여가치생산의 조건을 파괴하지 않고 신용제도 내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지만 이과제는 불가능해 보인다. 위계적 구조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
1)대부자본
화폐는 생산자에게 대부되어 잉여가치 생산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불변자본과 불변자본을 구매하는데 사용된다. 실제 가치생산과 잉여가치 생산에 사용되는 대부자본이다. 거기에는(물론 이런 종류의 모든 투자는 본질적으로 투기적인 성격이지만) 가공의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폐가 주식을 구매하는 데 사용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주식은 사실상 순수한 화페소유권에 부가된 재산권이다. 그것은(화폐가 생산적 소비에 사용되긴 하지만) 만기일이 없는 미래의 잉여가치 생산 가운데 일부에 대한 법적인 청구권이다. 주식은 그것으로 구매된 기계가 모두 마모되기 전에 훨씬 전에 매매될 수 있다. 주식가격은 잉여가치 생산에 대한 미래의 기대에 의존한다. 그것의 가치변동은 온갖 투기적인 요인에 영향를 받으며 완전한 협잡같은 방식으로 조작될 수 있다. 주식은 가공자본의 한 형태이지만 그 가공의 성격은 이들이 가치 및 잉여가치 생산과 느슨하게 결합돼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분적으로 은폐되기도 한다.(주식가치는 화폐를 척도로 하고 있고 기업의 수익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2) 실현을 위한 대부
화폐는 이미 생산된 상품(수확하기 전인 작물이나 완성되기 전인 주택에 대해서도)의 가치 실현하기 위해 대부될 수 있다. 할인율은 아직 만기가 되지 않은 어음의 이자율과 동일하다. 은행가는 상품가치의 실현을 위한 화폐를(할인을 통해) 공급하며, 어음의 만기에 전체 가치를 회수할 수 있으니라는 기대를 품고 어음을 인수한다. 이런 활동은 생산자본가가 회전기간을 단축하고 회전을 원활하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온갖 종류의 협잡이 개입한다. 어음을 어음으로 결제하는 것은 상업공황의 전조가 된다. 실현을 위한 대부(구매수단)는 신용이(주택같은) 동일한 하나의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모두 관리할 경우 생산을 위한 대부(지불수단)와 통합될 수 있으며, 이것이 자산거품을 만듬.
3) 국가 혹은 국가채무에 대한 대부
국가는 자신의 힘을 담보로 자본을 차입하여(세금이나 수수료를 통해) 자신의 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다. 국가는 미래의 예상 수입 가운데 일부를 일정 자본액에 대한 수익으로 약속할 수 잇다. 국채는 차입된 화폐가 아직 모두 사용되기 전에 거래될 수 있다. 국가가 지출하는 화폐가운데 상당 부분은 잉여가치 생산과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탁월한 가공자본이다. 국가는 일반적으로 아무런 가치나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조세수입은 이자지불의 흐름으로 전환되어 일정액의 자본으로 환산되기 하고, 그런 다음 미래수입에 대한 청구권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국가지출 몇몇 범주는 잉여가치 생산과 관련되어 있다. 국영기업은 반드시 이윤을 창출할 필요가 없지만 다른 기업들에 낮은 가격으로 투입재를 제공함으로써 전반적인 이윤율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는 또한(고속도로,상하수도 등)생산에 필요한 물리적 인프라에 투자한다. 국가는 이 불변자본 투입을 이자만 돌려받는 형태로 제공함으로써 이윤율저하경향을 완화할 수 잇다.
4)비영리기관에 대한 대부
사립병원,대학,교회,박물관,갖가지 문화기관들이 포함된다. 이들에 대한 대부도 가공자본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왜(대학이나 병원 가운데 일부는 혁신이나 연구개발을 통해 잉여가치생산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지만)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5)소비자대출
미국에서 소비자 대출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주택모기지인데 맑스는 이를 명시적으로 가공자본(주택은 일반적으로 가치와 잉여가치 생산에 사용되지 않다.)의한 형태로 분류하고 있다. 이자 지불에 사용될 수입은 임금과 국가의 소득재분배였다. 가정에서는 가치나 잉여가치 생산에 직접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노동력가치를 결정하는 데 가사노동의 역할은 명백히 잉여가치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대출은 오늘날 거대한 사업이며 총수요관리는 물론 착취의 부수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6)자산과 수입에 대한 청구증서을 구매하기 위한 대부(자연자원 특허, 지대 등에 대한 로열티 등) (예술,토지,자원 등을 망라한)자산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최근 자본주의 역사의 중요한 특징이며 이 시장에는 엄청난 양의 과잉 화폐거래자본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신용의 흐름을 보면 은행과 신용분파들(계급)이 가공자본의 다양한 흐름을 유지하는데 –이 흐름을 비교적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상태로-강력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가 소비자 일반의 수중에서 자본가에게고, 그리고 노동자로부터 자본가에게로 이전되는 가장 본원적인 방식이다. 생산활동과는 반대로 신용시장에서는 약탈적인 방식이 오랫동안 지배적인 형태엿다. 은행제도 내부에는 잉여가치 생산에 대한 대부와 잉여가치 실현을 위한 대부, 그리고 가공자본 시장에 대한 대부사이에 아무런 차단막이 존재하지 않는다.
화폐자본,현실자본, 그리고 산업순환
맑스는 화폐,은행,신용의 세계에서 특징을 이루는 투기적이고 변덕이 심한 불안정성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기적인 호황과 파국의 배후에 숨겨진 논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햇다. 이것은 명백히 자본의 재생산을 위협하고 많은 유통자본의 가치를 주기적으로 하락시킨다.
제3권의 이 장들에서 맴돌고 있는 문제는 이것이다 즉 산업자본의 유통이 처하는 모순의 본질이 주어진 상태에서 이것이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금융제도의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측면이 자본의 운동법칙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과잉유동성이 넘쳐날 때 이것을 과연 현실자본의 과잉축적에 대한 징표로 볼것인가 아니면 그냥 잠재적 대부자본인 화폐가 과잉인 것일까? 거꾸로 화폐부족은 어느 정도까지 현실자본(상품.생산자본)의 부족을 나타내는 것일까? 혹은 그것은 단순히 유통수단의 부족을 나타내는것일뿐일까? 화폐공급의 축소와 은행 간의 신용의 동결은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이 가하는 금융핍박의 징표인가 아니면 수익성있는 투자기회의 부족때문인가?
이 근저에는 보다 일반적인 물음이 놓여있다. 즉 부채의 축적과 부의 축적은 어느 정도로 서로 결합되어 있는가? 이는 가공자본의 형태가 급격히 증가한 것에 대한 물음이기도 한다.
약속어음(가공자본)의 축적이 현실의 화폐자본으로 전화할 수 있고 따라서 가공자본을 현실자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는 약속어음이 거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가공자본이 과거처럼 계속해서 유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하지 않은 자본의 명목상 대표인 주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충분한 창업자본을 얻기 위해 많은 이들이 주택경기가 좋을 때 자신의 주택을 저당으로 대부를 받았지만, 공황이 발발하고 나서 이들은 자신이 주택에서 뽑아내어 투자한 가공자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이 현재 지고 있는 빚이 현재의 주택가격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만일 그 사이에 그들의 사업이 성공햇다면 그들은 처음의 가공자본에서 현실자본으로 변신한 부분을 모두 변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택모기지 시장에서 가공자본의 협잡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가짜 청구권을 현실화폐로 전환함으로써 엄청난 부자가 됐다.
이는 맑스가 각 범주를 상대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특수한 사용가치가 용도변경을 통해 하룻밤 사이에 고정자본에서 유동자본(혹은 소비재원 일부)으로 변경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어떤 순간 가공자본이던 것이 단숨에(자본이나 소비를 용도로 하는)현실의 화폐권력으로 변할 수 있다. 모기지증권이 부채담보부증권으로 묶이면 이중적인 가공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헤지펀드 매니저가 이들을 어수룩한 투자자에게 판매하고 10억 달러를 만들면 그는 불행히도 전혀 가공적이지 않은 실제 화페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
맑스는 이런 형태의 부의 축적이 계급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신랄한 방식으로 고찰한다.
이들 소유권증서가 가격변동에 의한 이익과 손실, 그리고 이런 소유권증서가 철도왕과 같은 극소수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것 등은 사태의 본질상 점점 더 투기의 결과로 나타나며, 그런 투기는 노동을 대신하여 자본소유의 본원적인 수익획득 방식으로 나타나고 이런 유형의 가상의 화폐자산은 개인뿐만아니라 은행자본가에서도 그 화폐자산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신용제도의 엄청난 확대(신용전체)가 이들 은행가들에 의해 그들의 사적자본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 은행가는 자본과 수입을 언제나 화페형태로 소지한다. 이 계급의 자산축적은 현실의 축적과 매우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어떤 경우이든 이 현실의 축적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이 계급이 챙겨 넣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본가계급의 행동-다른 사람의 돈을 사용하여 행하는 협잡과 투기, 그리고 심지어 산업자본가에 대한 착취-은 혹독한 비판의 대상
맑스는(자본가들 상호 간에 확대되는 상업신용에 관한)신용제도 작동에 내적.외적으로나 존재할 수 있는 한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이 한계는 산업가와 상인의 부에 의해 그리고 대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원래 자리로 환류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시장이 확대되고 점차 생산지와 멀어질수록 신용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투기적 요소가 점점 더 거래를 지배하게 된다.는 의미다. 생산이 대규모화하고 원격지 시장을 상대로 하게 되면 신용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신용의 규모는 생산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증가하며, 신용기간은 시장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함께 길어진다. 맑스는 이것을 상호적인 관계로 받아들인다. 신용발달은 세계시장을 만들어내고 상업의 지리적 범위의 확대는 신용의 확대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식으로 지구적 공간관계의 창출과 혁신는 신용제도의 발전과 긴밀하게 결합한다. 신용제도는 자본이 시간을 통해 공간을 제거하는 일차적 수단이다.
핵심은 산업(경기)순환의 상승을 유발하는 신용의 역할이다. 화폐자본의 수요와 공급, 화폐자본가(은행가와 중개업자)의 독자적인 행동와 의제들이 이 순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면서 산업순환의 전형적인 경로를 일반적인 형태로 설명했다. 그는 화페 및 신용제도내에서 다양한 요인들(중앙은행의 정책과 상품화폐의 역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주의의 기울인다.
대부자본의 축적은 정상적인 자본축적으로부터 촉발될 수 있다. 현실적인 축적이 계속해서 확대될 경우 이런 화폐자본축적의 확대는 한편으로는 그 현실적 축적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현실적 축적을 가져오는 것이면서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여러 계기들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생산적 기업들의 주식가치 상승 경우- 마지막으로 현실적 축적이 정체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축적은 현실적 축적과는 상당히 다른 계기들을 나타낼 수도 있다.(국채 혹은 소비자채권의 자본화 혹은 가공자본 형성을 통해 자산가치가 상승할 경우) 이 전체적인 결과는 순환의 일정 국면에서 화폐자본의 계속적인 과잉이다.
그 결과 신용은 수축하는데 그 이유는1.이 자본이 운용되지 않기 때문에 2.재생산과정의 원활한 흐름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기 때문에 3.이런 상업신용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신용부족으로 상품을 신용으로 구입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공황이 한창인 시기에는 판매도 할 수 없고 유휴상태에서 투자할 것을 찾는 자본이 아니라 자신의 재생산과정속에 묶여 있는 자본은 신용부족이 극도에 달하는 바로 그 순간에 최대 규모에 도달한다. 그런 시기에는 이미 투자된 자본이 재생산과정의 정체로 인해 대량으로 유휴화된다. 이런 시기는 생산자본은 과잉상태에 있는데 즉 그것은 일면 정상수준이지만 외견상 수축된 재생산규모에 비해서 과잉이며 또 다른 한편 마비되어버린 소비와 관련지어 볼때에서도 과잉이다.
과잉자본의 역할과 과잉자본을 흡수할 수익성 있는 수단을 찾아내는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된다. 사회전체가 산업자본가들과 임노동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가격변동이나 신용제도에 의해 촉진되는 가공거래와 투기적 거래들도 무시하자. 그럴경우 공황은 단지 여러 부문들 간의 생산 불균형과 자본가 자신의 소비와 그 축적 간의 불균형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생산에 투자된 자본의 보전은 대부분 비생산적 계급의 소비능력에 의존한다. 노동자들의 소비능력은 한편으로는 임금 법칙에 의해 제한을 받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사용이 자본가계급에게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경우에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제한을 받는다. 모든 현실적 공황의 궁극적인 원인은 항상 자본주의적 생산의 추동력에 대비되는 대중의 빈곤과 소비의 제약에 있으며, 이 추동력은 사회의 절대적 소비능력만이 생산력의 한계를 이루는 것처럼 그렇게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신용제도는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자본으로 하여금 그런 직접적 소비의 제약을 뛰어넘게 해준다. 여기에서 신용의 최대한도는 소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산업자본의 최대한의 운용이다. 1980년 이후 임금이 억제되던 신자유주의 시기동안 그리고 소비자 신용이 확대되던 시기에도 역시 개인적 소비는 전반적으로 억제됐다.
맑스는 경기하강도 신용의 도움으로 역전될 수 있다고 본다. 공황이 발발할 때 형성된 대량의 유휴 대부자본과 화폐자본의 재원들이(낮은 이자율과 함께) 복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낮은 이자율은 고정자본에 대한 장기적 투자와 완전히 새 투자에 대한 매력을 높여준다. 호황의 초기국면에는 이자율은 전형적으로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데 이 시기에는 풍부한 신용이 가장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국면이기도하다. 이를 통해 세계시장의 통합과 확대가 용이해진다.
재생산과정의 전체 연관이 신용에 기초해 있는 생산체계에서, 만일 신용이 갑자기 중지되고 현금지불만이 통용된다면 공황은 명백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 즉 지불수단에 대한 물밀듯한 요구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핏보아 공황은 단지 신용.화페공황으로만 나타난다. 문제가되는 것은 어음의 화페로의 현금화뿐이다. 그러나 이 어음은 여러 번의 현실적 매매를 대표하고 이런 매매가 사회적 필요를 훨씬 초과하여 팽창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전체공황의 기초를 이룬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엄청난 양의 이들 어음은, 완전히 백일하에 드러난 그 단순한 협잡거래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다. 그들 어음은 타인의 자본으로 운영하다가 실패해버린 투기들을 나타내며, 마지막으로 가치하락을 당하거나 전혀 판매되지 못하는 상품자본을 나타내기도하고, 이제는 불가능해진 환류를 나타내기도 한다. 재생산과정을 강제로 팽창시킴으롞써 이루어진 이 인위적이 전체 체계가 이제 어느 한 은행이 자신의 지페로써 이들 협잡꾼들에게부족한 자본을 채워주고 또 가치가 하락한 상품을 모두 원래 명목가치대로 구매해준다고 해서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전도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왜 이런 종잇조각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실제가격이나 그런 가격의 실제 계기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며, 단지 지금地金,경화,은행권,어음,유가증권 등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황이 어디에서 발발할지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연발사격 같은 것이다. 자본은 공황을 일으키는 자신의 경향을 결코 해소하지 못한다. 단지 한 곳에서 세계의 다른 곳으로 공황을 옮길 수 있을 뿐이다. 맑스의 관점에서 이 일반성으로부터 1.금유출은 공황은 한 현상일 뿐이며 그것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 2.금유출이 여러 나라들에서 차례로 나타나는 그 순서는 그들의 결산일이 언제인가 하는 그 순서, 그들 나라에서 공황이 나타나는 기한이 언제인가 하는 그 순서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공황의 ‘뿌리는 과잉축적을 향하는 자본의 본질적 경향과 과잉화폐자본이 스스로의 계산에 따라 만들어내는 자립적인 운동이 뒤섞인 결과다.
대부자본의 축적이 현실적 축적과는 무관하지만 현실적 축적의 계기들에 의해 증대된다는 점에서 순환의 일정국면에서 화폐자본의 계속적인 과잉은 나타날 수밖에 없고, 또 이런 과잉은 신용의 발달과 함께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생산과정을 그 자본주의적 한계 이상으로 추진해야 할 필연성, 즉 과잉거래.과잉생산.과잉신용 등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것은 항상 그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결합은 과잉자본처분 문제이다. (화폐형태의) 과잉자본을 만들어내는 이 경향이 모든 공황의 뿌리라는 명제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잇다. 이들 과잉자본이 쉽게 가공자본의 형성과 유통경로 속으로 흡수된다는 사실은, 화폐형태의 자본이 순전히 화폐자본가의 힘을 빌려 축장의 필연성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경우, 피할 수도 없도 유보할 수도 없는 중심문제가 된다.
제2권에서 제3권으로, 그리고 다시 제2권으로: 결론적 논평
맑스가 제2권의 자본의 내적 본질문제로 되돌아온 의미의 배경이 있다. 맑스가 찾고자 한 것은 신용제도의 모순적인 광란이 왜 그리고 어떻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지를 해명해줄 자본의 내적 본질에 대한 일종의 엑스레이 사진이었다. 자본의 근본적인 모순이 항상 금융 및 상업 공황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제2권의 자본의 축적과 유통에 대한 연구에서 신용제도와 이자낳은 자본의 유통을 배제하고 화폐자본의 자립적인 기능과 신용을 그렇게 필연적이게 하는 자본의 유통과 축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2권에서 자본이 왜 신용제도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지, 왜 부의 축적이 필연적으로 부채의 축적과 병행하는지, 그리고 가치와 화폐적 표현 사이의 본질적 모순이 자본주의적 잉여가치 생산의 내부에서 끊없는, 그리고 필연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내재화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보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은행과 금융을 비생산적활동으로 간주했다. 3권의 설명에서 맑스는 화폐자본의 기생적 성격과 금융제도 내부에 존재하는 비이성적 성격이 실제 부와 가치의 생산과는(비록 치명적인 부담은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다음과 같은 의문 즉 자본주의는 왜 이것을 용인하는가? 2권에서 보여주는 것은 가치생산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만 아니라 잉여가치를 직접 창출하고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신용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1권 기계역할이 도움이 된다. 기계는 불변(대개 고정)자본이며 따라서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맑스는 이 기계가 개별자본가(나만의 우수한 기술은 초과이윤)는 물론 자본가계급전체(임금재 생산의 생산성 증가는 노동력 가치를 감소시켜 자본가에게 잉여가치를 증가시켜준다)의 상대적 잉여가치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신용도 그 자체로는 비생산적이다. 그러나 축장의 필요성을 감소시킴으로써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이 엄청나게 확대할 수 있게 한다.축장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2권의 연구로부터 분명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만일 신용제도 없다면 고정자본의 유통과 각기 다른 유통기간에 대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본이 축장될 필요가 잇고 자본축적은 기껏해야 매우 빠듯하게 이루어지거나 최악의 경우 진행 도중에 멈춰버리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축장에서 풀려난 화폐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화폐자본으로 전화할지 여부는 물론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이용 가능성, 그리고 다른 모든 자본순환을 지배하고 있는 조건(유효수요의 크기를 포함)에 의존한다. 그러나 축장화폐가 풀려나지 않는다면 사용가능한 화폐자본은 매우 적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