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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창조주신'을 하나님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면 큰 코 다친다.
옛날에는 '유대인'만 사랑했을 것 같고,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인'만 사랑할 것 같이
착각하면 정말 큰 코 다친다.
'성경'을 자신들이 썼다는 우월감과, 창조주 신을
여호와, 야훼, 엘로힘 등으로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고 떵떵거렸다가 큰 코 다친게 유대인이다.
'창조주 신'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과 전 인류의
창조주 신이시며, '성경'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
특히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앞으로 태어나 죽을 전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창조주 신의 법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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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문제다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는 큰 착각을 하는 것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라고 했다고 그리스도의 말씀 외에 또 다른 말씀이 있다고
생각해서 문제다.
그 그리스도의 믿음의 말씀은 또 오직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관장하기 위함 만이라고 생각해서 문제다.
예수의 말씀이라고 했다고 또 성경말씀 만이라고
생각해서 문제다.
예수는 성경에 관련되고 기독교에 관련된 말씀만 하신다고
생각해서 문제다.
이 세상의 모든 언어, 모든 단어, 모든 문장, 모든 말 등
모든 것이 창조주신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예수가 창조주신이시라면 모든 것이 예수로부터
나온 것이다.
좋은 단어는 창조주신으로부터,
나쁜 단어는 사탄으로부터라고 생각해서 문제다.
선이든 악이든 모든 것이 오직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신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바벨탑 사건 때 "우리(복수)가 내려가서(창세기 11:7)"
하시면서 신께서 내려오셔서 사람들의 언어를 수백갈래,
수천갈래, 수만갈래로 갈라놓으셨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 옆에 사탄께서도 같이 내려오셔서
이런 말까지는 창조주신이 관장하시고, 저런 말까지는
사탄이 관장하시기로 의논하셨다고 착각하면 아주
대대적인 오산들이다.
유대교든 기독교든 불교든 천주교든 이슬람교든 어느
종교든 무신론이든 특정인이든 일반인이든, 어른이든
아기이든, 아이들이든, 청소년이든,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은 오직 창조주신께로부터
나온 말들이다.
사람인 누가 더 좋은 말을 많이 사용하고
누가 더 나쁜 말들을 많이 사용하느냐 일뿐이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람이 기독교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신 이라고 한다면 정말 기독교의 믿음을 좌우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가 맞다.
하지만 예수가 창조주신이라고 한다면 내가 어떤 믿음을
소유하든 하지 않든, 무슨 학문이든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가 맞다.
일반적으로 선생을 세우시고 선배를 세우시고 부모를
세우시고 공부하도록 하는 모든 공부도 창조주신의
말씀이시다.
(전도서 12:11) "지혜 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니라"
예수가 창조주신의 친 아들이라고 오산하면 안 된다.
창조주신이 예수고 예수가 창조주신이시다.
예수는 기독교의 신이 아니다.
예수가 기독교의 신이라고 주장하려면 예수가 전지전능,
오직 유일한 창조주 신이라고 주장하지 말라.
하지만 '성경 속의 예수'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 신이시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용서의 제물이 되기 위해
창조주신의 명령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셨던 것 뿐이다.
이것을 사람으로 표현하자면 본인이 본인에게 명령하신
것이고, 본인 스스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그것이 믿어지면 믿어지는 것이고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지는 것일 뿐이다.
■ 많이 듣다보면
믿음은 정말로 들음에서 난다. 듣는다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듣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듣는 것인데,
죽을 때도 다른 부위가 먼저 죽고 ‘귀’가 제일 나중에
죽는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듣는 것이 중요한데 들으면서 교육이
되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죽을 때도 전도한다고 귀에다 대고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는데, 그렇게 죽기 전에 "아멘" 하면 천국에
갔다고 좋아들 한다.
그렇게 해야 꼭 천국에 가는지는 모르겠다.
성경은 죽으면 자기 열조에게 돌아간다고 하는데.
(전도서 9: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성경은, 천국에 보내시는 전권이 창조주신께 있다는데
기독교인들이 죽기 전에라도 예수를 전한다고 천국
가는지는 모르겠다.
천국도 창조주신이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보내고 있다.
전권을 부여받았나?
그러면 예수를 몰랐던 과거 전 인류는 어떻게 됐다는
말인지, 정말 예수를 모르는 불신자들은 어쩌라는 것인지,
기독교인이 창조주신인 것인지 창조주신이 기독교인인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우리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제사상을 거나하게 차린다.
이웃 사람들이 볼 때 "아! 이집 자녀들은 그래도 부모를
잘 모셨나보다. 저런 음식도 드리는 것을 보면" 하는
과시용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죽어서라도 잘 드시라고 살아계실 때 잘 모시지
못한 뉘우침으로 제사상을 거나하게 차리기도 한다.
우리가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을 늘 한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잘해드리고,
부부간에도 서로 살아 있을 때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가족도 살아 있을 때 서로
돕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즐겁게 살고.
살아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것이다.
"돌아가시고 나서 제사상 잘 차려 드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서로 사랑하고 나눠 먹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사람들이 해야 할 본분이다.
■행함 없는 예수 이론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이 죽을 때 찾아가서
예수를 이론적으로만 전하라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을 때도 이론으로만 전하지 말고
사랑하면서 나의 삶으로 마음으로 눈길로
물질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돕는
행함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생전 찾아다니지 않고 무관심하고 도와주지 않다가
죽기 전에 예수만 영접하면 천국에 간다고 착각하고
있지 말기를 바란다.
개나 소나 천국에 가는 것은 오직 창조주신의
주권이시다. 전권이시다. 기독교인이 예수 이론을
전하고 천국에 보내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행실로 창조주신을 보여주고, 예수님을 보여주고,
성경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몸으로 행함으로 예수를
전하는 것이고 성경을 전하는 것이고 기독교를 전하는
것이다.
이론이 아니다.
듣는 것은 여러 가지를 듣는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말씀을 듣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친구의 말을 듣고, 사회에서의 말도 듣는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설교라는 것을
들으면서 산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절에가서 불공도 드리고 좋은
말씀도 듣고 산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좋은 말씀도 듣고 산다.
모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 종교자리에 가서
예배하고 절하고 좋은 말씀도 듣고 산다.
일반적인 것들을 들었을 때 알아지고 믿어지는 것은
믿는 자나 불신자나 다 똑 같다. 역사나 세계사를
공부하는 것은 신자나 불신자나 똑 같이 외워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것도 알아지고 외워지고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내가 관심이 있고 공부를
좋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분야도 참 다양하다. 창조주신은 참으로 다양하신
분이시다. 하나도 빠짐이 없이.
설령 알아지고 외워지지 못한다고 해도 그 역사나
세계사의 사실들을 누구나 다 믿는다.
"내가 못 봤는데 어떻게 알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는지 안했는지?"
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못 배워서 모를 수는 있다.
■ 많이 듣고 외웠는데
하지만 창조주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누구든지
듣는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알아지고 외워질
수는 있다. 그것을 내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조주신에 대해서 믿어지는 것은 신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실 때 생기는 것이다.
신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알아지고
외워지고 하는 것도 각 사람마다 다르다. 아주 다양하다.
그것은 교육에 의해서 외워지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신께서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공부하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주시는 믿음이 있다.
나같은 경우는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의 주입식
교육으로 알아지고 외우기는 했어도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 있었는데 '진화론' 이었다.
내가 교회를 다녀도 학생이었던 신앙 초급이었기 때문에
'창조론'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했을 때라 둘 중에 하나
골라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공부시간에 시험을 보느라고 외우기는 했지만
정말 절대로 믿어지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그것도 내가 기독교적으로 영성이 뛰어나고
똑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께서 주신 믿음
이었던 것이다.
지금 목사들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것
말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기독교도 말고, 어디서든
기독교 종교를 공부해서 생긴 믿음이 아니라
기독교를 접하기 전에 제사를 지냈던 무신론 집안에서,
진화론을 공부했을 때 "정말 '진화론'은 거짓말이야!
'창조론'이 절대적으로 맞아" 하고 진화론을 믿지
않았던 목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런 믿음은 신께서 주시는 것인데 말이다.
과학자들의 기본이 '진화론' 이라고 한다.
'진화론'을 거부하면 과학자로 입문할 수가 없으며,
과학자였을지라도 '진화론'을 반대하면 쫓겨난다고
한다.
나는 아예 과학자가 될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교생이 무엇을 안다고 ‘진화론’이 절대 아니라고
선생님한테 "우리의 조상인 원숭이가 왜 '창경원'에
앉아서, 그것도 '우리'에 갇혀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느냐?"고 질문을 했나.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그냥 수업을 진행하시고...
■'진화' 같은 창조
그런데 정말 창조주신의 역사하심을 보면 진화 같다.
얼마나 정밀하게 문명이 진보되는지 정말 진화 같지
창조하신 것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원래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정말 우연 같고 진화 같긴하다.
(이사야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아무리 신께서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사람들이 안 믿으면 그만인 것이다. 안 믿는 믿음도
신께서 허락하신 것일 뿐이다.
성경을 믿는 믿음? 그것도 신께서 주신 것일 뿐이지
내가 잘라서 믿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사람이 탄생하는 것이 난자와 정자가 만났을 때이다.
그야말로 '단세포'가 배가분열해서 올챙이 같이 생겼다가,
뼈도 생기고, 팔이 나오고 다리가 나오고 눈과 귀가
형성이 되고, 신경 근육 살 피부 머리카락도 나오고,
탯줄에 의해 영양분을 공급 받고, 코는 있어도 코로
숨 쉬지 않고, 탯줄로 산소를 공급 받고, 10달 동안
양수라는 곳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아기'로 자라고,
그 좁은 문을 통하여서 죽기 살기로 세상에 나와서는
누워서 젖을 주는 대로, 기저귀를 갈아주는 대로,
안아주는 대로, 키워주는 대로 있다가, 점점 엎어지고,
일어나고, 걷고, 뛰고, 학교도 다니고, 직장이라는
곳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늙어서 죽고 하는 이런
모습을 보고 '진화' 라고 한다면 이해는 된다.
http://tvpot.daum.net/v/6LafRhsYh9M%24
당신이 어떻게 진화하면서 태어났는지 알려주는 영상
이 영상을 보니 정말로 '우연히' 어떤 세포는 사람으로
형성되고, 어떤 세포는 원숭이로 형성되고, 어떤 세포는
물고기가 되고, 어떤 세포는 새가 되고, 어떤 세포는
동물이 된다고 진화된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그 '세포' 그 '모체'에서 발생된다.
인위적으로 동물 박사가 세포를 집어넣어주고 새끼를 낳아
만물이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아니다.
누가 만들었다. 누가 프로그램 해놓았다.
창조주신을 모를지라도 누군가 있다.
■ 몸 밖에서? 몸 안에서?
하지만 원래 사람의 탄생이 단세포에서부터는 아닌 것이다.
창조주신께서 단세포로 인간을 만드신 것이라면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이 이 세포가 자랄 수 있는 인큐베이터 같은
기구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창조주신께서는 아예 성체를 만드셨다.
남자와 여자로, 수컷과 암컷으로.
그리고 스스로 충만하라고 하셨다.
'단세포'는 뱃속에서의 모습이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닭이 먼저'다.
무엇이 먼저냐가 문제가 아니라 닭이든 알이든 무엇이든
처음 것을 누가 만들었냐? 누가 갖다 놓았냐? 누가 낳았냐?가
문제인 것이다.
단세포 스스로가 세상 밖 어디에선가 정착하고 자라서
사람이 됐다고 우기지 말자. 어떤 단세포든 배가 분열해서
아메바가 되고 아메바가 진화해서 무슨 초등 동물이 되고,
초등동물이 진화해서 무슨 고등동물이 되고, 조류가 무슨
동물이 되고, 원숭이가 되고 무슨 사람이 됐다고 우기지 말자.
아메바는 그냥 아메바이고, 초등동물은 그냥 초등동물이고,
양서류는 그냥 양서류이고, 강장동물은 그냥 강장동물이고,
파충류는 그냥 파충류이고, 포유류는 그냥 포유류이고, 조류는
그냥 조류이고, 물고기는 그냥 물고기이고, 원숭이는 그냥
원숭이이고, 치타는 그냥 치타이고, 말은 말이고, 호랑이는
호랑이이고, 사자는 그냥 사자이고 사람은 그냥 사람이다.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이고, 흙은 흙이고, 물은 물이고,
별은 별이고, 달은 달이고, 해는 해고, 지구는 지구이다.
그냥 갸는 갸고 갸는 갸다. 얘가 쟤가 되고 쟤가 얘가 되지는
않는다. 수 억 년을 기다려봐라. 지렁이가 뱀이 되나.
비둘기가 모이 먹다가 날지를 않아서 날개 근육이 힘을 잃어
날개를 못 쓰게 돼서 걸어만 다닐지라도 곧 죽어도 비둘기는
비둘기이지 닭이 되지는 않는다.
세상에 동물류만 존재한다고 하면 그나마 아메바가 인간으로
진화됐다고 주장해도 그럴싸하겠지만,
수많은 종류의 꽃들,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 바닷물, 민물,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수많은 종류의 곤충들, 수많은
종류의 새들, 흙, 흙만 있으면 저절로 생겨나는 잡초들,
수많은 별들, 밤에만 훤하게 존재하는 달,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지구가 존재하지 못하게 되는 태양,
그런건 어떻게 진화된 것일까?
과학자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의 그 '단세포(수정난)'를
집 안이든, 밖이든, 산이든, 나무이든, 아무 곳이든 밖으로
빼놓고 자라나 테스트 해보면 알 수가 있다.
■ 두개 중 골라라
어떤 동물의 것이든 그 단세포를 세상 밖 아무 곳이나
던져놓고 자라나 테스트 해보자.
그 단세포 보이지도 않겠지만 말라죽기밖에 더하겠냐.
그렇게 주장하는 진화론 과학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창조주신께서 두 길을 놓으셨는데
한 길은 '창조'이고 한 길은 '진화'이다.
신께서 알려주시고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아예
처음부터 누구나 '진화'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누가 잘라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신께서
정하신 시스템일 뿐이다.
신께서 진화론 과학자를 그대로 두시면 그대로
진화론 과학자로 있는 것이고, 진화론 과학자 중 어느
누구에게 창조주신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
그 과학자는 '창조론 과학자'로 전향하는 것이다.
창조론 과학자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냥 신의 뜻일 뿐이다.
나도 과거에 '창조주신의 시스템'에 대해서 잘 몰랐을
때는 어지간히 전부 사탄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진화론 과학자들에게도 "창조지 그게 어떻게
진화냐?"고 "세상을 보면 알지 어떻게 그걸 진화라고
우기냐"고 하면서 어지간히 바보들이라고 정죄하고,
사탄에게 쓰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의 '문명' 이라 할지라도 좋게 쓰면 좋은 것을
사람들이 나쁘게 쓰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쁘게
쓰임 받거나 하면 사탄이 만들었다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런 사람들은 지옥간다고 알고 있었고 가족에게
가르쳐 가면서 잘난척을 많이 했다.
기독교에서 그렇게 안가르쳤는데 나혼자 생긴 믿음인가?
신께서는 모든 인생에 과거에도 두 길을 놓으셨고,
현재에도 두 길을 놓으셨고, 앞으로도 놓으신다.
하나는 ‘복이 되는 길’ 하나는 ‘화가 되는 길’,
하나는 ‘창조주신의 것’ 하나는 ‘세상의 것’,
하나는 창조주신’ 하나는 ‘이방신’.
그 어떤 것이든 하나는 창조주신께서 만드셨고
하나는 사탄이 만드셨고(?)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오직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신께서
만드시고 놓으셨다.
"두 길 중 하나를 골라라!"
사람 스스로 고를 수 있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들이다.
도덕적인 것, 바른생활, 정직, 성실, 착함, 의로움, 구제
등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창조주신을 믿을 수 있는 것, 복으로 가는길,
화로 가는 길, 무엇을 할 수 있는 비전, 성취 등은
신께서 고르신다. 신께서 고르게 하신다.
신께서 그 길로 들어가게 하신다.
■ 할까 말까 '두 길'
이 "두 길 중 하나를 골라라"라는 '길' 이라는 것은
사람의 '의지'를 사용해서 하던지 하지 않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길은 태초부터 있었다.
‘선악과’를 먹던지 먹지 않던지...
애당초 먹지 않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럴 것 같으면 ‘선악과’ 라는 것이 없었다)
나의 모습대로 나의 형상대로 나의 복제품을
만들어놨는데, 이게 얼마나 나 같은지, 지혜와
능력과 실력이 똑같다. 내가 봐도 잘 모르겠다.
이럴때 복제품이 나 원본을 이기지 못하도록
'키'를 걸어놓은 것이 '선악과'이다.
사람 스스로 먹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만
하도록 되어있었다.
이것은 역으로 보면 먹을 수도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먹는 길, 먹지 않는 길...
지금 육의세계에서도 사람 의지를 사용해서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이 있다.
이 길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활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화를 낼까 말까, 짜증을 낼까 말까, 참을까 말까,
도둑질 할까 말까, 싸울까 말까, 술을 먹을까 말까,
담배를 필까 말까, 도와줄까 말까, 죽일까 말까,
좋아할까 말까, 먹을까 말까, 화장실을 갈까 말까,
이 공부를 할까 말까, 이 직장을 다닐까 말까,
이 친구를 사귈까 말까, 어른 말을 들을까 말까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선택의 길로 창조주신께
복도 받고 징계도 받는다.
하지만 "내가 창조주신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내가 창조주신을
믿을까 말까" "내가 창조주신을 사랑할까 말까"의
두 길은 없다.
선악과 사건 이후로 창조주신께 저주를 받은 인생에게는
오직 '세상의 길' 한 길 밖에 주어진 것이 없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94
누구든지 태어나는 순간 '세상의 것(죄의법세계)'이
되어버린다. 누구든지 태어나는 순간 이방신으로
가던지 무신론으로 가던 지의 길 밖에 없다.
■ 선택자나 비선택자나
신과 관련된 길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선택하신다.
누구든지 신께서 ‘신의 것’을 알고 믿으라고 선택하시지
않으시면, ‘신의 길’로 들어서게 하시지 않으시면,
전부 자동으로 ‘세상의 것’으로 가게 설정되어
있고, 무신론자나 이방신으로 가게 설정되어 있다.
너는 잘났고 나는 못나서가 아니다.
오직 창조주신의 뜻으로다.
신께 선택된 대로 너는 그 길을 살고
나는 이 길을 살고 하면 된다.
그것도 막살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착하다’ ‘바르다’
‘정직하다’ ‘성실하다’ ‘모범적이다’ ‘본 받고 싶다’ 라는
칭찬을 들으면서 제대로 사람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창조주신께 선택된 너도 제대로 못 살면 창조주신께
매도 맞는데 일도 안 되고, 사업도 망하고, 직장도
안 되고, 돈도 없고 가난하고 사고도 나고 죽기까지
한다.
창조주신께 선택되지 않은 너도 제대로 못 살면
창조주신께 매도 맞는데 일도 안 되고, 사업도 망하고,
직장도 안 되고, 돈도 없고 가난하고 사고도 나고
죽기까지 한다.
창조주신께 선택된 네가 제대로 살면 창조주신께서
일도 잘 되게 해주시고, 사업도 잘 되고, 직장도 잘 되고,
돈도 많아지고, 부하게 되고, 사고도 나지 않고,
높이시기도 하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복도 주신다.
창조주신께 선택되지 않은 네가 제대로 살면 창조주신께서
일도 잘 되게 해주시고, 사업도 잘 되고, 직장도 잘 되고,
돈도 많아지고, 부하게 되고, 사고도 나지 않고, 높이시기도
하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복도 주신다.
■ 많이 들어서 생긴 믿음
창조주신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은 신이 주시는 '선물'
이라고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셔도 우리는 그냥 내가
믿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신이 주신 것이라고 말은 해도
"그래도 그 믿음은 내 것" 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너는 로고스로 믿고 있지만 나는 곧 죽어도 레마로
믿고 있다"고 얼마나 철썩 같이 알고 믿고 자랑하고
있는지 그 믿음은 신도 못 거둬 가실 것 같다.
나도 신을 믿는 믿음이 내 것인 줄 알았다.
"나는 신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데 저 사람들은
그런 믿음이 왜 없을까?" 했다.
나의 형제들이 똑 같이 전도를 받았는데 나 혼자
믿고 있으니 말이다.
"왜 나의 형제들은 이런 믿음이 없어서 지옥가나?"
"나는 이렇게 믿어지는데 그들은 왜 안 믿어질까?"
했다.
내가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니 믿음이 없거나
적거나 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게 된다. 판단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런 것이 그 사람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지 않으신 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이런 믿음이 있어서 천국에 가야 하고,
저 사람은 이런 믿음이 없으니 지옥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신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재판하고 있었다.
신께서 주신 믿음을 내 스스로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사람 스스로 신을 알 수가 절대적으로 없다.
사람 스스로 신을 사랑할 수가 절대로 없다.
사람 스스로 신을 믿을 수가 절대로 없다.
사람 스스로 예수가 창조주신 이라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
사람 스스로 성경이 창조주신 말씀이라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날때 창조주와 동급이었던
지혜나, 신의 존재 등 다 기억에서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숭이가 조상이라고 할 정도로
구석기 동물처럼 살았다.
무엇이든지 신께서 조금이라도 알려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누구에게 몇 퍼센트를 주셨느냐의 문제다.
■ 천국 보내는 기독교
"나는 믿음이 좋아서 천국에 갈 것인데, 나의 남편은
아직 믿음이 없으니 큰일이야. 나의 자녀는 믿음이
모자라서 큰일이야! 지옥 가게 생겼어!"
"너는 너의 남편도, 너의 자녀도, 너의 부모도,
너의 형제도, 너의 친척도, 너의 친구도, 너의 직장
동료도 '구원'을 못 시켰냐?"
"그들이 지옥에 가도 너는 상관이 없냐?" 하고 있으니...
차라리 그냥 네가 그 사람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구원을 시켜라.
그러면 너는 믿음도 주고 구원도 주고 천국도 보낼 수
있는 전능의 창조주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 믿어야 할 것 같으면 그냥 신께서
요술램프 지니처럼 '뿅' 하신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신다.
기독교인들일지라도 내가 신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명심하길 바란다. 예수님이 창조주신
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은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그렇게 교육되어져 왔다는 것을 꼭 깨닫기를
바란다.
내가 믿었다고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그런 믿음이 없다고 핀잔하게
되기도 하고 불쌍하게 여기기도 한다.
신의 뜻에 의해서 누구는 믿음이 있고 누구는
없고 하면서 살고 있는데 잘못하면 기독교인인
네가 불쌍해지게 되기도 한다.
그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신을 향한
잘못된 생각이다.
결과적으로는 누구는 믿음을 주시고 누구는 믿음을
주시지 않으신 신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말 불쌍하면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주면
되는 것이고, 내가 신께 받은 사랑을 주면 되는 것이고,
내가 갖고 있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불같은 사랑을 주면 되는 것이다.
정말 굳건한 믿음이 생기는 것도 그냥 신께서
일부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일 뿐이다.
물론 신께서 누군 주시고 누군 주시지 않으시는
것도 영의세계에서 보면 공평하신 것인데,
육의세계의 모습으로 보면 다양성으로
나타나는 것 뿐이다.
창조주신의 뜻에 대해서 잘 모르는 우리는
'그냥' 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로마서 10: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 믿음이 생기는 '교육'
하지만 일반적인 것들은 정말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알겠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들음인데, 계속 듣다보면
알아지고 외워지고 이해가 되어서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역사나 세계사나 수학이나 과학이나 마찬가지다.
역사나 세계사는 그 때 당시 누가 태어났는지,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가 왕이었는지, 누가 선왕이었고 누가 악한
왕이었는지 안 봐서 모른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다가 돌아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기록해 놓은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부라는 것을 통해 그 때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 당파에 좋게 쓰였을 수도 있고 그 왕에 좋게
쓰여졌을 수도 있고 나쁘게 쓰여졌을 수도 있다.
일반인들 중에 특출 나지 않으면 역사 기록이 없다.
그들은 그냥 역사 속에 흘러갔던 티끌이었던 것이다.
사람 모두가 티끌이라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사람들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것을 공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지만 오래 공부하다보면 그들을 직접 만난 것처럼,
그 때 당시 살았던 것처럼 알게 된다.
외워진 것이다. 그래서 잘 안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구약에 대해 심취하고 있을 때 구역강사를
담당했었다. 구역예배 때 구약에 대해서 막힘 없이
강의를 하니 어느 권사님이 그러신다.
"강사님은 구약시대에 살다 오신 분 같아요~"
하지만 그 역사는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똑 같이 못 본 사실이다. 가르치는 자는 머리가 좋아서
기억을 잘하고 공부를 잘하고 해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고,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가르침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 도자기나 간장종지나
가르치는 자라 할지라도 역사 속의 그 사실을 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냥 공부에 취미가 있어서, 잘 외워져서, 공부를 잘해서
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냥 선생이 된 것이다.
영의세계에서 보면 신의 선택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다.
타임머신 타고 그 때로 갔다 온 것이 아니라 지금 현 시대에서
배운 것을 다시 가르치는 그냥 선생일 뿐이다.
누구는 선생으로 세우셨고 누구는 과학자로 세우셨고
누구는 종교인으로 세우셨고 누구는 교인으로 세우셨고,
누구는 대통령으로 세우셨고, 누구는 정치인으로 세우셨고,
누구는 사업가로 세우셨고, 누구는 일반인으로 세우셨고
할 뿐인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시다.
(로마서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이 말씀을 또 누구는 천국에 갈 자를 만드시고,
누구는 지옥에 갈 자를 만드시고 했다고 떠들지 말자.
영의세계법의 하나님은 무조건 공평하시다.
(전도서 9장)
■ 교회에서 들은 믿음
"내가 창조주신을 믿는다" "내가 예수님이 창조주신인
것을 믿는다" 하지 말라.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많이
배워서 아는 것이다.
특히 목사들은 아예 신학교에 들여보내서 성경 역사를
많이 배우게 하는 것이다. 신학교도 선배들의 주석이나
논문이나 설교집이나 책자를 공부하지 직접적으로
성경을 많이 공부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사람이 풀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교회' 라는 곳으로 보내서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해서
많이 알게되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정말 한글을 창제했는지 그때 당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몰랐을 것이다. 나중에 역사를 통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
"세종대왕께서 모든 백성들이 글이 없어서 불편하고
힘들다는 것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학자들로 하여금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하시고 중국의 위협을 이기셨다"는
것을.
만약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정말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것이 맞다는 것에 너의 목숨을 걸 수 있냐?"
라는 위협이 왔을 때 정말 내가 확실하게 두 눈으로
보아서 알고 믿는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 "그렇다!"고
할 수가 있다.
그것도 목숨을 내 놓기 싫으면 "잘 모르겠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정말 잘 모르는 사람은 "글쎄~그렇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나는 직접 보지 못했으니 잘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확실하게 믿으나, 어정쩡하게 믿으나, 믿지 않으나 그때를
못 본 것은 똑 같다. 그렇다고 그 때 그 사실이 변하지도
않는다.
내가 기억하고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할 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확실하게 그 때 못 보았다는 것일 뿐이다.
잘 배우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배웠는데 기억이 안 난다거나.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똑 같이 못 본 현대 사람들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구는 목숨을 거는 것이고
누구는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이 창조주신이신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지 지금의 사람들보다 더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미쳤다"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질병에서 고침 받은 사람들은 좋아서 뛰었을 뿐이다.
그 사람들은 멍청이라서 그런 믿음이 없었을까?
그 똑똑한 율법학자 바리새인 조차도 몰랐는데?
아니다.
우리는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전달받아서
알아졌고 다시 반복해서 듣게 됐고 그로인해 외워졌고
믿어졌던 것일 뿐이다.
역사공부를 통해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대승
했다는 것을 안 것이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을 안 것이나, 연산군이 수많은 백성들을 무참하게
죽였다는 것을 안 것이나,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안 것이나, 아담과 하와가 모든 인류의 조상이라는
것을 안 것이나,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닌 전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안 것이나 같은 것이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55
그러니까 똑 같이 못 본 현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해
누구는 목숨을 거는 것이고
누구는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이다.
■ 자랑하지 말라
그러니 신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알고 외우고 해서
믿어진 목사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교인들 앞에서
절대로 잘믿는 척 하면서 설교를 할 때
"네가 믿느냐?" "왜 그런 믿음이 없느냐?" "아! 답답하다"
"너희들의 신앙상태는 왜 그 모냥이냐?"고 다그치지 말라.
그렇게 있어야 하는 교인들도 답답하다.
설교를 듣겠다고 앉아있는 교인들은 성경을 제대로 모른다.
그래도 좋은 소리겠지 하며,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
교인들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아멘" 해야 한다는 소리에
그저 "아멘" 하고 있는 것이다.
행함은 없고 이론만 가르치니 더 모른다.
교인 수가 많은 것을 자랑하고, 설교를 잘하는 것을
자랑하니 교인들은 더 모른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소경은 더 모른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성경공부를 무지 많이 하고,
일반적인 것도 많은 것을 알아서 설교시간에
아는 척을 하면서 대답을 척척하면 목사 본인이
가르칠 것이 없다고 싫어한다.
그리고 믿음이 충만하고 싶은데 믿음이 들어오지
않는 교인들은 자기들을 자책하게 된다. 자포자기 한다.
영의세계에서 보면 믿음을 주시지 않는 창조주신을
원망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왜 믿음이 없을까?" "나에게는 왜 저런 믿음이
안 생길까?" "나는 무슨 죄가 많아서 그럴까?"
"무슨 회개를 안 해서 그럴까?" "목사들은 죄가 없는 걸까?
장로들은 죄가 없는 걸까?" "교회 봉사를 많이 안 해서
그럴까?" "헌금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나?" "성경을 많이
안 읽어서 그럴까? 나도 나름대로 읽고 사는데 얼마나
더 읽어야 하나?" "나도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창조주신은 누군 주시고 누군 주시지 않으시는
불공평한 창조주신이셔" "나는 틀린 것 같아"
"창조주신께서 나는 안 사랑하시는 거 같아"
하면서 죄책감에 빠지고 자포자기 한다.
알려줄 수 있는 권세는 있지만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권세가 없는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려고 하니 역효과만 나는 것이다.
무슨 믿음이든 믿음을 심어주는 권세는
창조주신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알려줄 뿐이다.
■ 주시는 대로 거두시는 대로
창조주신께서 믿음을 아직 덜 주시는 것이고
안 주시는 것이다.
내가 믿음이 충만했다가도 창조주신께서 조금 거둬
가시면 시험 들고, 믿음이 흔들리고, 좋았던 마음이
시들해지고 냉냉 해지고 하는 것이다.
내가 믿음이 맨땅이었다가도 창조주신께서 어느 날
믿음을 조금 선물로 주시면 또 울고 불고 찬양을 드리고
사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선물을 받는 것은 좋은 설교를 들어서도
아니다. 창조주신께서 어느 날 그냥 주신다.
그러면 그냥 다 좋아진다. 같은 설교를 매번 들어도 좋다.
시험 들게 되면 맨 날 똑 같은 설교를 한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한다.
변덕이 죽 끓듯 하면서 살고들 있다.
목사들은 정말로 신학교에서 선배 교수들에게 많이
배웠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많이 안다고 믿음이 충만한 척 하지 말자.
정말 믿음이 충만하다면 창조주신께서 주신 것이므로
자기 자랑을 하지 말자.
■ 사람이란?
사람이란, 누구든지 왕이든, 대감이든, 정치가든, 종교인이든,
교인든, 타 종파든, 무신론이든, 연예인이든, 스포츠맨이든,
사업가든, 주부든, 학생이든, 어린아이든, 자기에게 맡겨진
운명대로, 달란트대로, 아무도 모르는 창조주신의 밧데리를
사용하면서, 창조주신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창조주 신의
지헤를 사용하면서, 창조주신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스스로들 잘나서 좋은 곳에 태어나고, 스스로들 못나서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나서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
똑똑한 대로 연구하고 발명해 내고 가르치고 리더하고,
부족한 대로 가르침 받고 리더 당하고 살면서,
울고 웃고 떠들고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창조주신께서는 ‘티끌’로 보신다.
창조주신께서 ‘훅’ 하고 부시면 티끌들은 사방으로
날라가 버린다.
그리고 창조주신의 밧데리가 다 떨어지면 사람들은
죽는다. 창조주신께서 밧데리를 빼셔도 죽는다.
그러니 자기 자랑을 절대로 하지 말라.
깊은 수렁에 빠진다.
창조주신께서 그 사람의 ‘수명의 밧데리’를 만지시면
오래 살기도 하고, 일찍 죽기도 하고, 창조주신께서
그 사람의 생각과 정신의 밧데리를 만지시면 미치기도
하고 정신이 나가기도 하고 혼미해 지기도 하고,
멍해지기도 하고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야’ 라는
소리를 하게 된다.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사고가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다.
창조주신의 징계시스템에 의하여.
(다니엘 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 목숨을 거는 믿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다시 살아나셨던 것을
직접 본 제자들과 몇 사람들은 이를 증명하라는 칼에
그들의 목을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 제자들 뿐 아니라 수백 명이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을 내어 놓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나중에 전도를 받고 자기의 알고 있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죽을 수 있는 믿음도 창조주신께서 주시는 것이다.
지금 현재 예수를 보지는 못했고 공부만 했을 뿐인데
예수를 잘 모른다고 해서 믿음이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배우고 외우고 한 목사들과, 교회에서 늘
듣고 살던 교인들과, 대충 다니고 대충 듣고 한 교인들과,
아예 듣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한 일반인이 있는 것이다.
너는 똑똑해서 깨달은 것이고, 나는 무식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께서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
(누가복음 8: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학교로 치자면 우등생이 있고, 중상류층이 있고,
중간층이 있고, 중하류층이 있고, 하류층이 있고
낙제생들이 있고 꼴찌가 있는 것이다.
■ 역사를 보고
과학도 마찬가지다. 선배들이 밝혀놓은 것들을 공부하고
있지만 그것을 토대로 해서 내가 더 발전된 과학문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계속 연구하는 공부인 것이다.
이전 것을 토대로 해서 과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단번에 되는 것은 아니다. 실수와 실패의 연속일
수가 있다.
그럴지라도 그들을 바보나 멍청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문명을 통해서 사람들을 편리하게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역사나 세계사도 그것을 토대로 해서 좋은 것은 본 받고
나쁜 것은 배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사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본다.
역사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살았더니
그런 축복과 징계가 왔다는 것이다.
역사대로 하면 역사대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성경대로 살면 성경대로 축복을 받을 것이고,
성경대로 살면 성경대로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배울 때 축복을 받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면 징계가 왔다는 것을 잘 배우고 피할 것은 피하고
따를 것은 따르고 살아야 한다.
창조주신께서는 역사보다 먼저 성경에서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성경은 일부 사람들이 믿는 것이므로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창조주신께서는 성경대로
축복하시고 심판하신다.
성경을 몰랐던 나라나 지금도 모르는 나라는 그 나라의
법이나, 관습이나, 풍습이나, 환경이나, 미신이나,
성품으로 판단하시지만
기본적으로는 착하고 도덕적이고 바르고 정직하고
속마음과 겉 행동이 같으냐와 구제와 선행에 뛰어나냐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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