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더 자주 더 크게 웃어야 하지요. (16) 니체라는 철학자에 따르자면 웃음은 보다 높은 인간이 되려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요. (17) 웃음은 타자에게는 관대함을, 나에게는 여유와 달관을 키우게 합니다. 웃을 일이 없을 때 더 필요한 것이 웃음이지요. 마음이 삭막해질 때일수록 웃음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진정효과가 더 큰 법이지요. (17) 산에서 내려와 안성 시내의 우정집에 들러 냉면을 먹었습니다. 우정집의 냉면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제대로 육수를 우려내는 비법이 있는가 봅니다. (30) “많이 버는 것보다는 적게 쓰는 것이 더 낫다.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예가 되어야 하지만 적게 쓰고 지낼 수 있으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적게 쓰는 사람은 더 쉽게 자기 목적을 향해 매진할 수 있을 것이며, 필요한 게 많은 사람보다 대체로 더 풍요롭고 충실한 삶을 산다.” 프리초프 난센의 「핸드메이드 라이프」란 책을 읽고 있다가 몇 구절을 옮겨 적습니다. 인류의 오래된 지혜에 비추어 오늘의 삶을 돌아보고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을 찾는 일은 중요하지요. (34) 밥벌이로서의 일이 더럽혀지지 않으려면 일에 자발성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림을 받으며 하는 일은 영혼을 타락하게 합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으며 하는 일은 영혼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제 평생의 화두는 죽음의 진짜 의미에 대한 앎, 절대자, 탐미의 본능에 대한 탐구, 배움과 가르침, 저 자신을 영육 간에 기르는 것, 자연에 따르는 소박한 삶, 평생 직업 등이지요. (35) 스무 해 넘게 쓰던 의자를 인체공학적으로 제작된 듀얼백 구조 의자로 바꿨습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주문한 것인데, 방금 택배가 도착해서 풀어보니 조립방법도 간단했지요. 무겁고 둔중한 예전 의자는 창고에 갖다 놓고 지금 새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38) 물안개 자욱하게 올라온 봄날 이른 아침, 꽃핀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그윽하지요. 분홍 복사꽃을 구름처럼 피운 나무들은 하나님이 땅에 쓰는 시라는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42) 나무 그늘에 앉아 쉽게 끓는 조급증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지웁니다. (44) 우리가 불행한 것은 신이 우리에게 베푸는 행복의 조건들은 오감(五感)을 활짝 열어 맘껏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애 탓 아닌가요? (48) 햇빛은 눈부시고, 하늘은 옥양목을 잘 빨아 펼쳐놓은 듯 청신하고, 수목의 잎들은 바람에 찰캉찰캉 쇳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51) 재능만이 능사는 아니지요. 재능을 넘어서는 각고의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간혹 예술가들은 퇴폐와 광기의 너울을 타고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어갑니다. (58) 샐린저처럼 은둔해서 오래 살고 싶습니다. (60) 절망과 광기가 일으키는 너울도 힘입니다. 그걸 타고 넘어 가는 것도 삶이지요. (61) 살아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아울러 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61) 두브, 왜 갑자기 갓 구워낸 따끈한 크로와상이 먹고 싶어지고, 리 오스카의 ‘비포 더 레인’을 듣고 싶을까요? (63) 녹음 짙은 청산이 무슨 까닭인지 호수 위에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있지요. (66) 나무들이 한낮에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윗옷을 벗고,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캔맥주를 하나 딴 후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세 번째 읽기 위해 펼쳐듭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제 소설 따위는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쓰는 건 힘들고 괴로우니 그건 폴 오스터 같은 친구에게 맡기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71) 방금 나온 검푸른 여름 숲이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그런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지요. 다시 눈을 뜨자 햇빛에 하얗게 탈색된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이미 여름은 절정이고 저는 그 절정을 통과하는 중이지요. (73) 팔월 얘기들을 풀어놓으니 갑자기 지갑이 두둑해진 것 같습니다. 이빨이 시리게 차가운 맥주, 재즈, 죽부인, 수분이 많은 장호원 복숭아, 콩국수, 금방 다림질한 면남방, 반바지, 숲속 공기, 수련, 청개구리, 물푸레나무에 붙어 우는 참매미, 해남 대흥사, 제주도 협재 바닷가, 서해안 신두리 모래밭, 비오는 날 대숲 사운거리는 소리, 명상과 요가, 터크 앤 패티가 부르는 타임 에프터 타임, 러시아민요 백만송이 장미, 매운 낙지비빔국수, ‘새’에 관한 기억들, 석모도의 일몰 풍경, 곰소 염전, 여우비, 헬렌 메릴이 나른한 목소리로 부르는 렛잇비, 온더락으로 마시는 잭 다니엘 한 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 연어 버터구이, 함흥냉면, 그리고 두브 당신.... 그밖에 많은 것들.... 가족, 어머니, 일 년이 열 두 달이라는 것, 손가락과 발가락 다 멀쩡하다는 것, 마라톤, 오일 마사지, 온천, 팥빙수, 흰 도라지꽃,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읽기 등등 팔월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참 많습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 까뮈의「결혼 여름」다시 읽기, 카프카의 단편들, 뜨거운 수제비 먹기, 고스톱, 오솔길 걷기, 양재동 꽃시장 들르기, 남대문 시장 돌아다니는 것, 벌거벗은 채 글쓰기, 풀숲에서 뱀 잡아 놀기, 천렵, 옻닭 먹기, 시립도서관 가서 잡지보기, 아이스티, 집 안 청소, 스모키 노래를 들으며 서재 정리 삼매경에 빠져들기.... (74) 살갗 위에 촛농처럼 떨어져 내리는 태양의 빛들. (76) 번잡함에 몸을 내주었더니 마음이 잡스러워졌지요.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남의 척도에 적당히 맞추는 일은 비굴한 짓이지요. 번잡함 속에 있자면 자칫 비굴이 생활이 될 수도 있겠지요. 말이 바로 나가면 그 말을 받는 자들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말에 자꾸 당의정을 입히게 되고, 더 심하게는 말을 구부리고 아주 다른 것으로 변조하기도 합니다. 번잡함에서 몸을 빼면 마음은 보다 더 단순함 속에 머물 수가 있겠지요. (82) 앞으로 배우거나 더 해야 할 것들입니다. 택견, 서예, 가구 만들기, 요리, 연예,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여행하기, 불어공부, 공중부양, 위빠싸나 수행, 단식, 비가 오면 마음이 몸 밖에 나가 혼자 앉습니다. 마음은 중국 도자기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처럼 을씨년스럽게 앉아 나뭇잎 끝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83) 창밖을 보니 비를 품은 구름이 동편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구멍 뚫린 호주머니에서 구슬이 몇 개씩 떨어지듯 빗방울이 심심한 얼굴로 떨어집니다. (89) 바람이 빗방울 몇 개를 유리창에 실어오고, 유리창에 그 빗방울이 사막을 가는 대상(隊商)들의 낙타처럼 느리게 기어 내려가는 걸 보고 있습니다. (90)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비오는 금광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함께 비를 맞으며 뛰고 싶었겠지요. (91) 작고 여리고 하찮은 것들에게 마음을 열고 크고 강하고 굳센 것들에게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인격체로 양육하는 데 신명을 다 바치겠습니다. 고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왕처럼 즐겁게 누리는 단 하나의 심오한 사내로 키우겠습니다. (91) 모시조개를 넣은 시금치 된장국이 끓는 동안 전기밥통에서 김이 오릅니다. 생쌀들은 전기 밥통 속에서 눈 감고 열반에 드는 것이지요. 오호라, 밥 먹는 것은 아직 열반에 들지 못한 자가 이미 열반에 든 것들을 몸 안으로 모시는 일이었구나! (101) 담백한 음식은 몸을 즐겁게 하고, 몸이 즐거우면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세상을 순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102) 몸은 검소한 자산이지요. 흠 많은 인간에겐 몸뚱이 하나가 가진 것 전부니 이 몸이 곧 성전(聖殿)입니다. (104)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는 동안 밤하늘엔 집 나온 별들이 더 많아 졌습니다. (105) 지금쯤 신흥사 저녁 예불 알리는 범종(梵鐘)운 뒤 설악산 화채봉 능선 위로는 보름 지난 달 둥두렷이 떠올랐겠지요. (105) 이브 본느프와는 1923년 프랑스의 투르지방에서 기관차 조립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에 폴 엘뤼아르의 시에 빠지기도 하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신(神)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시지만, 늦은 가을밤 쓸쓸할 때 찾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113) 새벽 허공에는 뼈다귀를 무쇠솥에 오래 고은 물같은 안개가 자욱합니다. 안개의 축축한 입자들이 빽빽합니다. 밤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밤새도록 그 구멍들에서 스멀스멀 기어나는 게 안개지요. (115) 잠시, 일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창밖에 매단 편종이 저한테 오는 바람을 내치치 않고 그 바람을 안으며 챙캉챙캉 맑은 소리를 내며 우는 소리가 들리지요. (122) 새해가 되어 어른들께 드리는 세배도 새해 들어 처음 뵙는다는 뜻입니다. (124) “이 놈아, 네가 차를 가져오면 마시고, 밥을 가져오면 먹고, 인사를 하면 머리를 숙여 인사를 받지 않았느냐?” 도오 스님의 말뜻을 이해하셨나요? 깨달음에 별다른 것이 아니라 곧 평상심이란 걸 말하는 거겠지요. (142)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라는 말이 맞지요. 모호했던 몸과 영혼이 집에 돌아오니 확실하게 감미로운 감각들로 또렷해집니다. 대개의 여행자는 이기심, 천박한 욕망들, 노여움에서 놓여나 순연해집니다. 여행자로서 나는 햇살과 맑은 바람 속에서 착한 생물로 거듭나서 순간마다 정화되고 숭고에 다가가는 듯했지요. (143) 여행 중에 지나쳐온 풍경들이 물속 돌들처럼 제 안에서 저글럭저글럭 구릅니다. (143) 이런 날 가슴에는 외로움이 새 순(筍)처럼 돋습니다. 전능한 신은 이런 날 가까스로 능선 위에 벌건 김칫국물 같은 노을 한 자락을 걸쳐놓고 그걸로 위안을 삼으라 합니다. (158) 고독의 미덕은 자기를 깊이 돌아보게 하고,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고, 삶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비옥하게 합니다. (159) 천재에게 타고난 재능은 그가 쓸 수 있는 인간적 용량에서 한 방울의 물, 혹은 한줌거리밖에 되지 않지요. 그야말로 뼈를 갈아내는 노력이 천재 탄생의 원천인 것이지요. (172) 작가는 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산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지요. (174) 저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여 쓰고, 또 쓰기 위해 제주도로 거처를 옮길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고통의 극한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자에게 수려한 바다와 그 풍광들은 하나의 위안이 되겠지요. (175)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거꾸로 술은 사람을 마십니다. 그러니까 술 마시는 사람이 술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지요. 시인은 이 대목에서 절묘한 표현을 하나 꺼내 놓습니다. “몸 안으로 들어간 술은 모두 몸 밖으로 입만 내민다.” 취기의 관능이 타자를 향한 육체의 욕망으로 그토록 쉽게 바뀌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취기와 에로티시즘은 둘 다 무상의 유희라는 점에서 근친적 관계지요. 다섯 해 전에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명리를 멀리 하고 몸과 마음에 두루 이로운 고요와 평화를 구했습니다. 사교 생활은 멀어지고 숲과 새들은 가까워졌지요. 술은 멀어지고 차〔茶〕와 친해졌습니다. 산책과 명상의 삼매경에 드니 술 마시는 일은 드문 행사가 되었지요. 알고 보니 저는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술이 고조시키는 분위기를 즐겼던 사람이지요. (181) 아침나절엔 평택에 사는 권혁제 시인이 올해 수확한 쌀 한 가마니를 갖고 왔습니다. 사연이 있는 쌀이지요. 논이 미군부대에 수용되어 올해가 마지막 벼농사라 합니다. (187) 니체를 통해 은유와 비유를 써서 말하는 법을, 문체가 곧 몸이며 정신이라는 걸 배웠지요. (197) 두루 탐문한 뒤 “사랑해 보아야 미워할 만한 것을 알고, 미워해 보아야 아낄 만한 것을 안다.”(주석수,「유몽속영(幽夢續影)」)는 실감을 더욱 두텁게 할 수 있었지요. (200) 미처 쓰지 못했다고 그것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지요. 그걸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합니다. 앞으로 쓰면 되겠지요. 천천히.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이를테면 삼월의 눈, 모란꽃잎, 안 보는 사이에 노란 뿔을 세우는 감자의 눈들, 해진 후 들리는 벌레소리, 툇마루에 비치는 추분 뒤의 햇살, 앞날의 까마득함, 토종꿀같이 오는 여름 저녁 황혼, 벌판, 숲, 옛 책의 향기, 곶, 일체의 비유나 전고(典故)를 빌려 쓰지 않고 지은 글들, 가벼운 병(病), 이른 새벽의 새소리, 동틀 무렵, 섣달그믐, 친구, 고요한 것들, 여우비, 양치식물, 우산에서 뚝뚝 듣는 빗방울들. (200) 제 대표작은 아직 씌어 지지 않은 미래의 작품입니다. (201) 안성 칠장사 초입, 미잎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볼만했었지요. 그 잎들이 삐라처럼 우수수 떨어지는데, 저는 그 나무들 아래서 왜 내가 나무가 아닌 발 달린 짐승인가를 곰곰 생각해 봤지요. (205) 서운산 계곡의 찬 물길에 사는 도롱뇽과 가재들도 겨울을 나기 위해 땅속으로 숨겠지요. (205) 카프카를 읽던 시절은 지금보다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르고, 촛불들은 더 밝았습니다. 세상의 물들은 더 맑고 여자들은 성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듯 더 해맑게 웃었지요. (209) 노자는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224) 이 우주에 약동하는 기운을 받아 심장은 펄럭펄럭 뜁니다. 저는 주저함 없이 그 무상의 기쁨들과 입맞춤합니다. 오, 암초, 덫과 바위들이여, 실망하지 않겠노라. 그대들 때문에 사는 것이 조금 힘들었노라. 또한 그대들 때문에 살맛이 났노라! (230) 제 자신을 돌아보기를 자주 하여 몸은 오동나무처럼 강건하게, 마음엔 청품(淸品)과 미풍 이는 봄날 같은 온유한 인격이 담기도록 애써야겠습니다. (232) 당신에게 올해는 바다의 쾌청함과 더불어 새벽이슬 함초롬히 머금고 피어나는 꽃송이들의 기쁨이 함께 하길 빕니다. 장대비처럼 호쾌하게 일을 밀고 나가고, 붉은 석류 속처럼 꽉 차는 보람과 결실이 있어야겠습니다. (233)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238) 혈기방장함을 짜증과 근거 없는 분노로만 분출했으니 함께 사는 이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까요! (246) 모든 분노와 집착이 쓸데없는 것은 한 생이 한순간에 스러지는 이슬이요, 한순간에 스쳐가는 번개인 까닭이지요. 집착과 욕망을 끊고 비우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선방(禪房) 의 스님이나 우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비움은 빈곤이 아니라, 내면을 기쁨으로 채우는 풍요의 기회이며 본질에 다가서는 지름길이지요. (249)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폭력으로 다쳐서는 안 될 심연입니다. (253) 거친 음식이라도 정당하게 구하고 그것으로 제 몸을 부양한다면 그 몸이 바로 부처고 하늘이지요. 마음은 몸의 세입자이지요. 몸이 즐거우면 마음도 편안해 지지요. (258) 다이앤 애커먼이 쓴 「감각의 박물학」을 읽고 같은 저자의 새 책 「뇌의 문화지도」를 읽습니다. 그 폭넓은 지식도 지식이지만, 그보다 훨씬 돋보이는 게 애커먼의 빼어난 수사학이지요. (268)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류 역사는 음식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만 명료해질 수 있다.”(제레미 리프킨,「육식의 종말」)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270) 누군가 제게서 심신이 무엇엔가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명랑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래서 대화가 즐겁고 기분이 화창해졌다면 그것은 햇빛과 책의 혜택을 충분히 받은 까닭이겠지요. (275)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 밀려드는 벅찬 감동과 함께 세상의 무질서와 혼돈을 제압하고 이윽고 샘물처럼 괴는 고요와 평화가 좋았습니다. (276) 책읽기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고요하고 청청한 취미요. 자기에게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여름엔 모시적삼을 입고 숲속에 들어가 한나절 매미울음을 들으며 책을 읽다 돌아오는 것, 겨울철엔 발갛게 달아오른 난롯가에 앉아 바깥의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독서의 삼매경에 빠지는 것을 인생의 진미라고 여깁니다. (279) 영국에서 상금을 내걸고 ‘친구’의 정의를 공모했는데, 일등으로 뽑힌 게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다”라는 글이었지요. (282) “남자가 일생동안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세 사람밖에 없다. 그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지. 그러니까 만일 네가 앞으로 여러 여자를 만나서 사귄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잘못 고르기라도 하면 그건 모두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지. 그 점을 똑똑히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 「도쿄기담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94) 누군가의 열 명 안에 들어가기 위해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은 “약속은 잘 지켜야 한다” 는 것입니다. 크든 작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신뢰를 잃습니다. 신뢰를 잃은 사람은 가까이 두고 싶은 명단에서 가장먼저 이름이 지워지는 법이지요. (295)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온 지 일곱 해 동안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명상과 산책입니다. (297) 내게 인생이란 ‘짧게 타버리는 초’가 아니다. 삶이란 내가 잠시 붙잡은 훨훨 타오르는 횃불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 횃불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 전에 가능하면 환히 타오르도록 하고 싶다.-조지 버나드쇼 (299) 점심밥을 먹은 뒤 서재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이란 책입니다. (301) “한가로울 때도 바쁜 한순간이 있듯이 바쁠 때도 한가로운 순간이 있다” (302) 시골구석에 사는 사람이라고 바람인 듯 그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은 꿈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책 읽고 글 쓰고 시골 길들을 어슬렁거리며 사는 거, 인사동에서 삼청동에 이르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노점에서 주먹만한 불상도 하나 사고 화랑에 들러 그림도 보고 그렇게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거, 일 안 하고 한량처럼 노는 거 , 아무 때나 훌쩍 여행을 떠나는 거, 여행을 떠났다가 거기가 잘츠부르크든지 암스테르담이든지 쿠바의 아바나든지 뉴욕이든지 주저앉아 꿈인 듯 생시인 듯 몇 년 사는 거, 마라톤 풀코스 한번 완주해 보는 거, 한 해에 책 서너 권 만드는 일인 출판사 해보는 거, 금광호수 부근에 명상원 만드는 거, 출가해보는 거, 아무것도 쓰지 않고 살아보는 거, 무인도에서 한 달간 살아보는 것, 단식하는 거, 슬하에 말 안듣는 일곱 살짜리 아들 하나 두는 거, 벚꽃 필 무렵 진해 군항제 한번 가보는 거, 제주도에서 살아보는 거, 도보로 백두대간을 일주해보는 거, 집에 연못 파서 수련 심고 물고기 키우는 거, 그 연못가에 정자 짓고 고전음악 듣는 거, 가구 만들어 보는거.... 그것들이 제 소박한(너무 거창한가요?)꿈이지요. (304) 글쓰기의 절반은 기다림이다. 기다림과 머뭇거림의 흔적이 없는 글은 익지 않은 과일이다. 대개는 떫거나 시큼털털하다. 깊은 단맛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312) 무의식은 바다다. 그 위에는 햇빛이 번쩍이고 일렁이는 파도, 흉악한 기후들과 폭풍들이 산다. 그 무의식의 말들을 받아쓰기 위해 머리를 재워야 한다. (314) 제 무의식의 젖으로 키우지 않는 사유란 이 세상에 흔하게 떠도는 것들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314) 피로 쓴 글만이 읽는 자의 영혼을 두드린다.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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