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탁에서의 화제>
옛말에 식불언(食不言) 침불언(寢不言)이란 말이 있다. 밥을 먹을 때와 잠을 잘 때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명령이다.
우선 침불언에 대해 한 마디만큼만 살펴보자. 예컨대 전과 4범에 더하여 현재 여러 건의 형사사건에서 재판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에 기내에서 잠이 들어 피곤한 탓인지 잠꼬대를 했다고 가상해보자. 자신의 범죄사실을 자백하는 잠꼬대, 예컨대 “이부지사, 수고 많았어! 돈이 갔으니 초청장은 곧 오겠군.” 또는 “천 억대니까 스위스 은행이 좋겠지? 싱가폴도 좋다고?” 같은 잠꼬대를 했다면 그것을 들은 측근들에게는 참 민망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런 해프닝이 일어난다면 그 후 곧장 보건복지부가 잠꼬대를 심각한 질환으로 1급 법정전염병, 아니 정신질환으로 지정해 국비로 치료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지면의 주제는 침불언이 아니고 식불언이고 이하 식불언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식불언, 즉 밥을 먹을 때에는 말하지 말라고 해서 짐승처럼 아귀 아귀 밥만 처먹으면 그게 어떻게 문명인의 식사 광경이 되겠는가? 식사하면서 말을 너무 많이 하다가는 입안의 밥알이 튀어나가거나 반찬에 침이 튀기기도 하고 사레가 들리기도 하며, 오고 가는 말이 부딪혀 종내(終乃) 밥상머리에서 수저를 무기 삼아 대결을 벌일 수도 있으니, 가급적 적게 꼭 필요한 말만 하라는 충고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예컨대 간장이 필요하면 "간장 좀 건네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 "간장!" 한마디만 하고, 맛있는 음식이 올라왔으면 먹어보라고 권유하기보다 젓가락으로 집어 상대방 밥위에 얹어주는 행위(내가 가장 싫어하는 짓)가 바람직하다는 말씀이겠다.
우리 집 식탁에서의 식불언은 더 엄격한데 마누하님의 교시에 따른 것이다.
첫째,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트럼프를 위시한 일체의 정치 관련 화제는 금지된다. 밥맛이 달아나기 때문이고, 왜 밥맛이 달아나느냐고 묻는다면 그자는 개딸이나 정신이상자일 터이므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으련다.
둘째, 호랑이가 피똥을 싸고 죽은 이야기처럼 무섭거나 더럽거나 죽음과 질병을 운위하는 화제는 금지된다. 헤밍웨이가 파리 시절 기괴하게 생긴 추남(醜男)을 만난 이야기를 저녁 준비하는 아내에게 들려주려고 하자 그녀는 밥맛 없어진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출처:파리는 날마다 축제). 여자들의 이런 성향은 동서양의 구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모 재벌의 재산이 몇십조 원에 달한다거나, 누가 아파트를 100억 원에 팔았다는 부자 이야기도 기분을 잡치게 하므로 금지.
마지막으로 하품, 재채기, 트림이나 방귀 뀌기 금지가 확립되어 있다. 어느 문화권에서는 트림이 잘 먹었다는 표현으로 허용된다고 하는데 입으로 뀌는 방귀가 곧 트림이니 허용되기 힘들지 않을까? 하품, 재채기, 트림과 방귀는 비록 말은 아니지만 신체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점에서 말의 확장된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아 여기에서 다룬다.
부연설명하자면, 식불언이라는 금지명령은 인체의 소화활동이 기분에 크게 좌우되므로 식탁에서는 남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의 위장조직과 장내 미생물은 감수성이 예민하여 숙주의 기분이 악화되면 그 영향을 받아 활동이 약화되어 소화불량에 이르게한다. 혹자는 특히 일부 성인 남자들은 위장세포와 장내 미생물이 무슨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냐고 비웃으며 금기에 속하는 언행을 식탁에서 저지르면서 자신들의 왕성한 식욕과 변치 않는 소화능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허나 그렇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짓궂은 언행으로써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모욕을 당하거나 해서 기분이 상한다면 그들의 소화능력도 크게 떨어진다는 데에 본인은 500원을 선뜻 걸 용의가 있다.
이렇게 식불언은 식탁에서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소화활동을 저해하지 않고 그리하여 그의 건강에 해를 입히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본인은 위와 같은 어설픈 풀이로서 식불언의 타당성과 유용성을 입증 완료하였다고 스스로 만족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 집의 걍우, 그렇게 금지 영역이 넓어서야 무슨 화제가 남느냐는 의문이 자연히 생길지도 모른다. 수탕나귀에서 배 밑의 X 빼고 긴 귀 빼면 무엇이 남느냐는 푸념 말이다.
더욱이 본인은 평소 눌변으로 스스로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편이고, 남이 물으면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인간인지라 한층 더 화제에 쪼들리는 형편이니 그저 묵묵히 수저를 활발히 놀리고 저작운동에 일신현명(一身懸命) 집중함이 습관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무난한 화제라고 날씨 이야기를 꺼내 북태평양 고기압이 정체되고 남중국해 수온이 어쩌고 열돔 현상이 저쩌고 논하다가는 매일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한다고 지청구를 듣기 십상이다. 신문에서 얻은 예술계 동정을 운위했다가는 음악을 전공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아내가 좋아할 리가 없다. 그녀가 고시 합격한 사내들을 화제로 삼지 않으니, 나도 조수미 세계 무대 데뷔 40주년을 이야기하지 않음이 남편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제일 만만한 화제가 야구인데 KBO 리그 타자들에 대해 내가 약간 운을 떼면 아내는 즉시 이어받아 룩킹(looking) 삼진 먹는 애들은 벌금을 먹이고 즉시 2군으로 보내야 한다는 둥 엄격한 새도우(shadow) 감독의 면모를 드러낸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우리 선수들이 활약한 날 식탁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아내의 관전평이 펼쳐진다.
중국 드라마에 심취한 아내에게 방영 중인 드라마에 대해 슬쩍 물어보아 일장 해설을 듣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이렇게 식탁에서의 많은 금기와 극도로 제한된 화제를 꼽아보니 본인이 북녘땅에서의 인민들같이 억압과 강요 밑에서 울분과 서러움에 찬 생활을 한다고, 아니 최소한 그런 식사 시간을 가진다고 안타깝게 여기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아래에서 간략하게 밝혀보겠다.
첫째, 아내에게는 기관총이 없다. 아내는 식칼로 김치를 썰 때조차 1미터 이내로 접근을 금지하는 안전제일주의자이므로 나는 자상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손톱을 바짝 짧게 깎으므로 내 얼굴에 할퀸 상처가 생길 염려도 없다.
둘째, 아내는 귀가 아주 밝은 데다가 각종 소음을 무척 싫어하므로 나에게 박수를 강요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하기야 박수가 손바닥을 마주 부딪는 일종의 운동으로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하니 김정은 일당이 열렬한 박수를 강요하는 것은 인민의 건강을 위한 배려라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자가 종북분자 가운데에서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셋째, 이렇게 마누하님을 뒤에서 흉을 보다가 발각되어도 골방에 감금되어 굶는 처벌은 받지 않으리라고 나는 확신하니 이만큼 자유를 보장받으면 남편 생활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본인은 마누하님의 너그러운 보살핌 안에서 즐겁게 오월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소식이 없어도 친구분들은 염려 놓으시기 바란다. 친구 여러분께 80번의 뽀뽀를 보내며, 안뇽!!! (끝)
첫댓글 친구들 모임에서는 건강 이야기가 많은데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기분 상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건강과 몸아픈 이야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은 것같습니다. 죽림칠현의 청담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선이 되고 불로장생하는 비법을 화제로 했나요? 지금 그들을 따라 할 수도 없지 않아요? 그저 밥상머리에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여유도 없을 정도로 반찬이 맛있고 입맛이 있기를 바랄수 밖에요.
@munro 죽림칠현을 비롯한 위진 시대 문인들은 오석산 이라는 광물성 약재 배합물을 복용했다는데 五石散은 독성과 환각작용이 있었다고 하네요.
중국 동진 사대의 갈홍(葛洪, 283?~343?)은《포박자(抱朴子)》에서 단약(丹藥) 제조법을 설명했다는데 단약에는 수은 중독의 부작용이 있었다고 하네요.
예 그렇습니다. 마약을 복용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환상을 겪고 신선이 되었었다고 운위했을 가능성이 높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