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 9일 오후 8시 평양 서문의 예배당에서 회집한 제27회 총회 이틀째 되는 날 오전 10시40분. 평양 평서 안주 3노회 연합대표 박용률씨의 신사참배 결의 급성명서 발표의 제안 건을 채용하기로 가결함에 따라 한국 교회는 수난의 암흑기로 들어섰다(동 회의록 1, 9쪽). 이 시기의 총회 결의 실상을 살펴 보자.
제27회 총회(1938) △신사참배 결의 및 성명서 △부회장(임원 대표)와 각 노회장(회원 대표)로 본 총회를 대표해 즉시 신사참배를 실행하다(동 회의록 9쪽) △신사참배 결의안을 조선 총독, 총감, 경무국장, 학무국장, 조선군사령관, 총리대신, 척무대신, 제 각하에게 전보를 발송키로 가결하다(동 회의록 10쪽) △국방헌금으로 500원을 하기로 가결하다(동 회의록 78쪽).
제28회 총회(1939)
△국가의식을 거행하다(동 회의록 8쪽) △국민정신 총동원 장로회연맹 결성식을 거행하다(동 회의록 16쪽) △황군 위문금 의연하기로 가결하다(동 회의록 45쪽).제29회 총회(1940)
△황기 26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0월 20일을 애국주일로 정하다(동 회의록 73쪽). 제30회 총회(1941) △국방 헌금 가결하고 헌금하니 203원이더라(동회의록 9쪽). 제31회 총회(1942) △대동아공영권 선언문 가결하다(동회의록 1쪽) △전승기원 예배를 드리다(동 회의록 26쪽) △애국기(장로호) 헌납(동 회의록 27쪽)조국 교회에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