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남자의 손
본문 딤전 2:8
고대로부터 남자란 힘과 용맹을 떨치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에도 남자다움은 역시 힘과 용기였습니다. 21세기인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어깨가 쫙 벌어진 근육질의 남자, 호기가 있는 그런 남자를 상남자라고 합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그리스도인 남자는 어떠해야 할까요?
기도하는 남자
8절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돈 많은 남자, 힘센 남자가 아니라 기도하는 남자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힘과 용맹을 자랑하는 남자와는 다른 요구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분위기는 기도는 힘없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지 강한 남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입니다. 남자가 기도하는 것은 ‘나는 힘이 없고 능력도 없는 약한 자.’라고 공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힘과 능력을 과시하던 세상 남자들이 볼 때 기도하는 남자는 남자답지 못한 자로 여겼습니다. 마치 조선시대에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거나 아이를 업어주면 남자답지 못한 일로 여김과 같습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남자가 기도하는 일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 남자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나약한 자처럼 기도하기를 바랐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낮추는 일이지만 실상은 강해지는 길입니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기도하는 존 낙스를 가장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신앙을 주도했던 자들이 대부분이 기도하는 남자들입니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와 아론, 다윗, 히스기야,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등등. 오늘의 남자들도 앞장서서 신앙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뒤를 따르고 협력하는 것이 창조질서에도 합당합니다.
기도하는 남자가 진짜 남자이며, 강한 남자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남자는 남자답지 못한 자입니다. 기도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남자의 수치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전도회 회원 여러분! 세상 남자들을 따라 헬스클럽에 갈 것입니까? 아니면 예배당에 나아와 기도하겠습니까? 남자다움을 기도로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노와 다툼을 버리라
기도하는 사람이 되려면 분노와 다툼을 버려야 합니다.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기도할 것을 말합니다. 분노와 다툼은 기도와 상극입니다. 분을 품고 다투는 입술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주먹으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분노는 기도를 막히게 합니다. 가인은 분노하므로 피 흘리는 손이 되었습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고 할 때 이를 금하는 제사장에게 화를 내다가 나병이 생겼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분노는 마귀에게 틈을 내어 주고 기도를 막습니다.
남자의 힘은 분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는 약하고 비겁한 남자가 하는 행동입니다. 겁이 많은 강아지는 사납게 짖어댑니다. 힘센 황소는 웬만한 일에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파리가 콧등에 앉아도 내버려 둡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분노하지 않습니다.
분노는 이방 남자와 같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다툼은 분노는 짝이 되어 따라다닙니다. 남자의 입은 다툼의 도구가 아니라 기도하는 도구입니다. 다투는 입으로는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에 분노와 다툼을 뒤섞여지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분노와 다툼을 멀리하는 남자가 되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분노와 다툼을 멀리하는 자가 남자가 강한 남자입니다.
거룩한 손을 들라
“거룩한 손을 들어”라고 합니다. 남자들의 스캔들 대부분이 돈과 여자입니다. 남자들은 욕심이 생겨 검은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 가룟 유다도 은 삼십에 스승을 팔았습니다. 정치인들도 수억의 현금 상자를 보면 뿌리치지 못합니다. 한몫을 잡으면 인생이 날개를 달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세상의 남자들은 실패한 원인은 손에 검은돈을 쥐기 때문입니다.
돈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돈이면 미인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 죄의 문제만 빼고는 다 해결이 됩니다. 돈이 많으면 의사를 고용하여 병원을 차릴 수 있고, 학교를 세워 박사들까지 부하직원으로 뽑아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돈의 위력이 크다 보니 돈뭉치를 보는 순간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손을 더럽히면 반드시 망합니다. 뇌물을 받는 손, 여자의 몸에 손을 대는 자는 패가망신을 합니다.
남자의 손은 기도하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아말렉 군대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강한 남자는 권력과 돈을 쥔 자도 아닙니다. 거룩한 손을 가진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이고, 기도하는 손을 가진 남자가 강한 남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손을 사용하여 세상을 움직이시며, 기도 하는 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박력이 있고 돈 있는 사람을 통해 일하지 않고 거룩한 손, 기도하는 손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약해 보여도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남자가 진짜 강한 남자입니다. 기도하는 남자가 아름답습니다. 기도하는 아빠, 기도하는 남편이 강한 자입니다. 돈이 없어도 기도하는 아빠가 진짜 좋은 아빠입니다. 더러운 큰 손보다 기도하는 작은 손이 더 강하고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요? 신자들은 기도에 대해서 오해가 많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내 자식이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무속 종교인들의 기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를 필요를 구함도 좋으나 그에 앞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헤아리며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장래에 주실 복을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해야 기쁘시게 할까를 구해야 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기도를 넘어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또 교우들이 겪는 어려움을 헤아리고 기도로 섬겨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마음에 두는 기도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기도의 정신입니다.
결론
근육질의 남자가 아니라, 기도하는 남자가 되십시오. 돈을 쥔 남자가 아니라 빈손 들고 기도하는 남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을 과시하며 남자보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힘은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손, 기도하는 손에서 나옴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황금을 쥔 손이 아니라 기도하는 거룩한 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