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8회 유교와 불교의 회통 1 – 3
그 다음에는 논어와 노자를 서로 비교하시면서 말씀하셨던 내용이
많습니다. 그것을 제가 도표로 정리를 해봤거든요.
모든 경전을 볼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첫 시작되는 부분이랍니다.
1장이 중요하대요. 1장이...
모든 경전의 처음 부분에 결론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지
요.
“유교의 논어도 그렇고, 노자 도덕경도 그렇고,
제 1장에서 두 종교ㆍ두 사상. ←이런 내용이ㆍ철학이 극명하게 비교되
면서 드러난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교와 노장의 어떤 경전을 비교하면서 “첫 번째 구절이 뭐냐?”
라는 겁니다.
유교의 논어의 첫 번째 구절이 “學而時習(학이시습)”이라고 나오지요.
“배우고 늘 익혀야 된다. 평생공부 해야된다.” ←이것이 처음이라면,
노자 도덕경에는,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요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이라.
도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항상된 도가 아니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그것은 항상된 이름이 아니다.
도는 언어문자가 끊어진 세계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學으로 시작되고, 道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노장사상과 유학사상의 성격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탄허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에 배대해서 본다면 논어같은 경우는,
우리 80000대장경 교학사상 같은 겁니다. 좀 수승한 근기가 아니어도
상근기ㆍ중근기ㆍ하근기, 누구나에게 다 해당하는 보편적인 가르침.
언어문자로 설명할 수 있는 가르침에 해당하는 교학이라고 한다면,
노자의 제 1장 같은 것은 선법문 같은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언어문자가 끊어진 세계! 진리는 말로 할 수 없어.
이름은 다 항상된 이름이 아니야.
도라고 하는 것은 언어문자에 달려 있지 않아.
불립문자의 세계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으로 차이를 말씀하셨지요.
유교는,
“공자가 아주 높은ㆍ어려운 난해한 그런 법문들을 못해서
안 한 것이 아니고, 상근기ㆍ중근기ㆍ하근기를 다 아울러서,
유치원생부터 대학원생 학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해서 설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
공자가 노자나 우리 부처님 보다 훨씬 못하거나 절대 그러하지
않다.”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유교와 도교의, 노장의 사상을 제대로 보려면,
불교를 좀 더 이해하면 더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儒ㆍ佛을 회석하셨습니다.
“회통해서 해석한다.”는 것이 ‘회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자 1장의 내용과 논어 1장의 내용은 결국,
“天下에 無二道(천하무이도)다. 천하에 두 도가 없다.” 그 다음에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 공자나 노자도 “聖人에 無兩心(성인무양심)이다. 성인에게
두 마음이 없다.” ‘공자나 노자나 석가나 다 성인은 두 마음이 없다.’
그러면 두 마음이 없는 것은 뭡니까?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감정이 똑 같습니까? ←이 뜻이 아니고,
聖子라고 하면,
聖人이라고 하면 생각이 끊어진 無心을 증득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생각이 끊어진 세계를 증득하고 있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두 마음이 없다고한 것이다.’ 이 말입니다.
“항상 無心을 증득해서 마음을 空의 상태로 잘 유지할 수 있고,
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다시 空의 세계로ㆍ無心의 세계로ㆍ
未發(미발)의 세계로 이렇게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선정력을 갖추고,
그런 마음을 잘 부동심을 유지할 수 있는 분이 聖人이다.”
성인에게 두 마음이 없다는 것은, 無心을 증득했다는 것으로 탄허스님은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學而時習이고,
노장에서는 道可道非常道이긴 하지만,
여기서 學이라는 말과 道라는 말이 ‘노장의 경지가 훨씬 높고,
유교는 수준이 떨어진다?’ 그렇지 않다.
결국은 學과 道라고 하는 것이 不二다.
둘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
있음의 세계를 끊임없이 배우고,
아는 것을 다시 비워서 空의 이치로 다시 돌리는 것.
만법을 귀일해서 근본으로 돌리는 것.
배우고 익혀서 또 空의 이치로 돌아가고,
또 다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익혀서 또 空의 이치로 돌아가고,
무심으로 돌아갔다가 유심의 세계에서 배우고,
무심과 유심을 왔다 갔다하면서 자유자재로 不二하는 것이 바로
공부의 근본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결국 교학이나 선이나 탄허스님은 “선교일치다.”
定慧雙修(정혜쌍수)를 강조하셨듯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모든 것이 근기에 맞추어서,
“대기설법을 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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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18-1-3. 儒敎와 佛敎의 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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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人無兩心"
공자나 노자나 석가나 다
성인은 두 마음이 없다.
고맙습니다 _()()()_
儒敎 : 배우고 늘 익혀야 된다. 평생공부 해야된다. (學) 八萬四千法門.
道敎 : 도는 언어문자가 끊어진 세계다. (道) 禪.
學과 道는 不二. 禪과 敎는 대기설법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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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을 귀일해서 근본으로 돌리는 것....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 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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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양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말씀이
편안함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