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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18절 - 7장 5절)
<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살던 우리들 예배 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되고 어리석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나님, 모든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줄로 믿고
우리의 모습 이대로를 드리오니 하나님 이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성도들 가운데 사업 중에 어려움을 당해
원치 않는 곳에 있는 이도 있습니다.
회수해야 할 것, 막아야 할 것 때문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음과 인생을 걸었던 직장에서 나오게 된 사람들,
저들에게 만날 만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풀 것 풀게 하시며,
땀흘려 일할 일터와 일거리를 주시옵소서.
학생들이 부모의 부부애와 부모의 직장을 염려합니다.
부모로부터 받는 학비와 용돈이 끊길까봐 염려합니다.
하나님, 부족하고 연약한 목사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성도들이 일용할 양식 때문에 눈물 짓지 않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귀한 시간에도 군대, 객지, 외국에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병상에 입원한 환자들이 있습니다.
불의한 사고 때문에 다친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과 같이 계셔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의 설교에, 목소리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다른 사람의 장점이나 좋은 점을 보고 말할 줄 아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뜻도 되고 또 그 사람이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옆 사람을 보고 칭찬을 한마디씩 할텐데 미리
하지 마시고 그것도 잘 연구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칭찬은 들어도 별로 좋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그러면 내 옆에 앉은 사람이 좋아할까, 자기 아내가 앉았든지,
남편이 앉았든지, 뭐 친구가 앉았든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앉았든지, 인사를 한번씩
하겠습니다. 정 할말이 없을 때 하기 좋은 말이 '옷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제 넥타이가 멋있지요? 멋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이 이상한 사람이에요. 여섯 살인지 일곱 살된 여자아이가 제 사무실에 왔길래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굉장히 좋아하면서 아주 그냥 저를 되게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너도 선물을 받았으니까 나한테 줘야될 것
아니냐? 뭐 나 주고 싶은 거 있냐 그러니까 넥타이를 주겠대요. 일곱 살 된 아이에요. 오영해라는 아이인데, 정말 줄거냐고 그랬더니 줄거래요. 그러더니 며칠 뒤에 이걸 가지고 온 거에요. 저를 사랑하는 팬들의 층이 다양합니다. 우리 옆의 사람 넥타이가 멋있다고 해도 좋고 뭐
칭찬 한마디씩 하겠습니다.
지난 월요일(9월 7일)에 여선교회 회장들과 밤을 따러 갔습니다. 제 고향 선산에 밤나무가 많습니다. 참 많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낚시터가 있어서 낚시하러 온 사람들이 남의
밤나무인데도 자기의 밤나무인 것처럼 다 따갑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여선교회 회장들이
가서 따면 좋겠다 싶어서 함께 갔습니다. 가서 재미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떨어진 밤만 줍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땅만 보면서 떨어진 밤만. 어떤 사람은 나무에 올라가서 막
잡아 흔들고, 어떤 사람들은 가지가 부러지든 말든 막 때려서 설익은 밤을 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이 주워 놓은 밤만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에 올 때가 되어 보니 어떤 사람은 가방에 가득히 밤을 담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손에 몇 개 들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뱃속에다 담은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조건에, 똑같은 산에서
어떤 사람은 많이 줍고, 어떤 사람은 조금 주웠습니다. 이제 열매를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땀흘리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남보다 더 부지런하지 않고는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신앙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거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기도합니까? 삶의 가장자리에 살면서 중심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의 중심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잃어 버리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순간순간 생활속에서 "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은혜요, 기도할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기도했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祈禱) 하는 사람은 또 다른 기도(企圖)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꾀할 기(企), 그림 도(圖)자입니다. 일을 만들고, 그려내고, 시도하고, 계획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새로운 일을 위해서 움직이고, 새로운 일을 위해서 땀흘리고, 새로운 일을 위해서 꿈틀거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한 명상이 아닙니다. 학습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고 명상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祈禱)하는 사람은, 새로운 일을 기도(企圖)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우리의 응답과 반응과 행위를 요구합니다. "예배하라, 찬송하라,
기도하라, 전도하라, 빛되게 살라"는 이 '하라(do)'는 명령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라'는 명령과 함께 그에 따르는 '보상'과 '징벌'도 약속하셨습니다(히 11:6). 저는 기도하면서 이 어려운 때에 경제적으로
힘들고, 세상이 점점 악해져서 힘들고, 믿을 만한 사람이 점점 없어서 힘들고, 병들고
지쳐서 힘든 이 때에 하나님이 과연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과연 사랑을 베푸시고 능력을 주시는 그런 일을 만들어 봐야 되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도록 일을 만들어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일까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이 어려운 삶의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눈에 띄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나님께 건짐받는 비결이 무엇일까? 간단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였던 노아처럼, 하나님이 빼내고 싶고,
하나님이 건지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사람의 증거로 이제 죄악이 관영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죄만 생각하고
죄에 가득찼을 때 하나님이 온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삶을 살고 있는 노아에게 그 계획을 알리셨습니다.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고, 가르침 받고, 지시함을 받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의한 사람', '의로운 사람'을 구별할 때 의로운 사람의 무리에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⑵ 노아는 자기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준행하면서 불의한 시대에 의로운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지으라고 할 때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방주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자기만 방주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오늘 교회에 여러분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몇 사람이 왔느냐, 어떤 사람이
왔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내가 구원받아야 되고, 내가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야 됩니다. 노아는 자기가 구원의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노아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가정의 온 식구들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어 이룬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어야 됩니다.
⑶ 가장들이 노아처럼 잘 해야 합니다.
가정의 구원은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믿는 사람이 당연히 이루어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자기 혼자만 국회의원처럼 대표로 예수 믿는 사람은 잘 들으세요. 가정구원, 온 식구들이 구원받는 것,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온 식구들이 믿음으로 하나되고, 구원받는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참아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희생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정말 정말 잘해야 될 사람이 바로 가장입니다. 아버지, 남편입니다. 자식들과 아내가 인정할 수 있는 아버지, 인정할 수 있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식구들을 둘러 앉혀놓고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나를 보고 목사라고 하고 다른 사람이 다 나에게 좋은 말을 해도 내 아내와 내 자식들이 '지가 무슨
목사야'라고 하면 난 틀린거야,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지 내 아내가 인정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 내 자식들이 인정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다." 오늘 예배 드린 여러분들, 다른 사람이
다 뭐라고 해도 아내에게 인정받고, 자식들에게 인정받는 아버지, 남편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아버지, 여러분들의 남편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이 흔들리면, 가장이 존경받을 수 없으면 그집은 질서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에서도 어떤 모임이나 예배에서도 담임목사를 위해서 꼭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제 스스로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기둥교회를 큰 가정으로 볼 때 제가 나이가 어리든, 경험이 부족하든, 배운 것이 적든, 기둥교회라는 가정의 가장입니다. 그렇다면 기둥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따를 수 없고,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다면 기둥교회라는 이 가정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요청카드를 만들어서 나누어 드렸습니다.
혹 여러분들 가운데 못 받으신 분이 계시면 안내위원들이 가지고 계실 테니 예배 마치고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너무나도 가정의 가장이나, 교회의 담임목사나,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나
가장 어른인 사람이 존경받기 어려운 세대입니다.
어제같은 경우에는 아버지가 무너지는 날이었습니다. 세상에 돈이 필요하다고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 어떤 이유로 어떤 명분으로 그 아버지를 정당화 시킬 수 있겠습니까? 뉴스에 나오는 어떤 여자 아이가 "나도 우리 아버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부터 제 아들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지금 정신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무너졌습니다. 저는 한 신문 기사를 복사했습니다. 예수 믿는 청년, 20대 기독 미혼청년 181명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상처를 주며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람이 누구인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고 눈물 흘리게 했던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통계를 냈는데 '아버지, 어머니, 집안식구, 친구·선배,
이성친구, 회사사람, 친척, 선생님, 교회사람'중에서 아버지가 40.7%였습니다. 10명
중의 4명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는 말입니다. 가족들은 남편을 아버지로
신뢰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아버지는 아버지요, 남편은 남편입니다. 가정이라는 질서가 무너지면 사회라는 질서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무슨 남존여비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진리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들, 남편들은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들과 자식들은 남편과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희생이 따르더라도 가정의 평안을 유지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노아의 가정을 보세요. 노아 시대의 보통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다 죄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생각이 다 죄였습니다.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으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쓸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다 죽여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건져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노아는 의롭게 살았습니다. 혼자 힘으로 가능했겠습니까? 저는 불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노아가
아무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할지라도 노아의 아내가 따라 주지 않았으면 어려웠습니다. 노아의 자식들이 따라주지 않았으면 어려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멀쩡하게
잘 살았는데 방주를 짓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를 짓는데 3년 반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는 얼마나 큰 지 아십니까? 종합운동장만큼 큽니다. 그러니 얼마나 오랫동안 지었겠습니까? 그것을 보아서 노아는 굉장한 부자였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방주를 짓는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겠어요? '말이나 되는 소리냐 저게, 세상이 멸망한다고 배를 지어도 저게 뭐냐 저게, 크기가 보통 큰 거야, 미쳤다 아주 망령났구나'라고 손가락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식구들과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를 다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방주 속에 들어가라고 하니까
노아의 아내와 노아의 자식과 며느리들이 다 따라 들어갔습니다. 노아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아버지를 신뢰하고, 아버지가 하는 일을 따라갈 수 있을만큼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 아버지들은, 남편들은 노력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은 아버지와 남편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노아는 자기가 구원의 방주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기의 온 식구들이 믿음으로 하나되었고 온 식구들이 순종하는 그런 가정이 되도록 이루어나갔습니다. 노아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⑷ 노아의 구원받음으로 짐승들도 살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삶, 하나님 명령대로 방주를 짓는 삶, 그리고 방주 속에 들어가는 삶뿐
아니라 그 속에 짐승들까지 집어 넣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짐승까지 집어 넣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짐승까지 집어 넣은 노아가 주변 사람들이 '우리도 좀
들어가자'고 요청했을 때 노아가 거절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노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개, 돼지, 소, 양 …등 짐승들이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자신이 될
뿐 아니라 온 가족이 구원받고 한 식구가 되기 위해 애쓰되 정말 이 세상에 '사람같은
사람들이 구원의 소식을 듣지 아니하면', '짐승같은 사람들이라도 교회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개같은 사람, 양같은 사람, 소같은 사람, 돼지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버렸고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구원의 방주로 끌어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방주속에 있는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고, 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조금전에 찬양대원들이 찬양을 했습니다. 참 은혜로운 찬양에 감사드립니다. 찬양은,
합창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만이 합창을 할 수가 있습니다. 너무 목소리가 튄다든지,
너무 개성이 뛰어난 사람은 합창할 수가 없습니다. 악보대로 해야 합니다. 지휘자가
손 흔드는대로 해야 합니다. 못하면, 악보를 잘 볼 줄 모르면 귀로 잘 듣고 다른 사람의 소리보다 조금 작게 눈치껏 내야 합니다. 그런데 지휘자야 흔들든지 말든지, 내 옆의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자기 내고 싶은 대로 막 소리내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합창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간혹 보면 지휘자나 악보와는 상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독창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합창을 하는 곳과 같습니다. 젊은 목사가 담임자로 있다 할지라도 온 성도들이
교회 모든 조직속에 있는 일하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교회가 평안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인천에 있는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고목사님, 날 좀 도와줘", "뭘 도와드리나요", "날 좀 도와줘". 그 분이 어떤 일에 출마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도 표가 있고 우리 교회 장로님들도 아마 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장로님들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나 봅니다. 그랬더니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우리는 만날 수 없습니다. 담임목사님께 허락을 받아야지만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게 어디있냐고 만나자고 해도 절대로 안만나 주시더랍니다. 중부연회 700교회에 수많은 장로님들이 계시는데 그 수많은 장로님들 중에
기둥교회 장로님들만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만나지 말라고 했거든요. 전화를 끊고 얼마나 기분 좋고 감사하던지 그 목사님이 뭐라고 하며 전화를
끊은 줄 아십니까? "고목사, 부러워." 이 때는 아멘해도 되는 거에요. 저는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젊은 목사의 뜻을 따라 주는 장로님들이 감사하고, 한 마음이
됨을 보여 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가 평안하게 한마음 되어서 일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 기둥교회와 기둥교회의 성도들을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기둥교회를 통해서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모습을 보여 드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한마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구원받을 뿐 아니라 노아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른 짐승들까지 구원받은 것을 들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이웃, 주변에 사는 모든 사람들까지 구원의 방주까지
이끌도록 땀흘리고 애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한
생명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고, 가족도 들어가고, 남도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나 하나 예수 잘 믿기도 어려운 세상에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우리가 나서서 하면 하나님께서 일할 만한 조건을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거기에 더 이상의 설명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노아가 방주를 지을 수 있을 만한 경제적인 능력과 그 모든 도구들을 동원할
수 있는 힘과 방법들을 허락해 주신 것을 저는 믿습니다. 노아에게 그저 단순하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고 벌판에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에게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기도(祈禱)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위해서 새로운 기도(企圖)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응답을 위해서 꿈틀거리고, 움직이고, 일하고, 계획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방주에 들어가 있고, 가족들을 방주에 들이기 위해 애를 쓰고, 다른 사람들을
방주에 넣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이런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런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라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하나님, 응답해 주세요. 해결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겠습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전도하는데 도구로 쓰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가만히 자기 배만 채우려는 생각을 가질 때 응답하시지 않지요? "하나님, 하나님께 영광돌리겠어요. 감사하며 살겠어요. 하나님, 전도의 도구로 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기독교는 분명히 십자가를 말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강단에도 십자가가 있고,
천장에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무덤을 말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닫혀진 무덤을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고난을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무덤을 말합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두움 속의 무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열려진 무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지금 십자가의 고통 중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캄캄한 무덤 속과 같은 어두움속에, 절망속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도록 새로운 일을 위해 꿈틀거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과 그 축복과 그 은혜를 끌어내려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스스로 방주 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족들을 방주 안에 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방주에 넣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기독교는 십자가를 말하나, 십자가의 고난으로 그치지 않는 종교이며,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심을 말하나,
무덤의 캄캄함만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며,
부활의 아침을 믿는 종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십자가의 고난 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캄캄한 무덤 속에, 어두움속에, 절망속에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부활의 아침, 소망의 아침, 승리의 아침을 주시옵소서.
스스로 방주에 들어가며, 방주 안에 있으며,
가족도 이웃도 방주 안에 넣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일할 수 있게, 전도할 수 있게 능력 주시옵소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998년 9월 13일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