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든 것같은 행복감을 느꼈다. 조그만 무대에서 어설픈 몸짓으로 노래를 불러도 그에게 박수를 쳐주고 비록 얼굴을 많이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간혹 알아봐주고 반가워하는 팬들이 있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가수의 커다란 숙원인 독집앨범을 내어 정식가수로써 한걸음 내딛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유모를 공허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진정 음악을 위한 길인가'하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꼬리표처럼 그의 생각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다시 방황을 하며 거리를 헤매이던 시기 신촌에서 옷가게를 경영하던 김경자氏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외롭고 쓸쓸한 서성임 끝에 만나게 된 사랑이었고 허전한 마음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고 믿은 그 두사람은 82년 봄 명동의 YMCA 강당에서 잘아는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막상 사랑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앨범 한장을 낸 무명가수가 현실을 지탱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부인의 솜씨를 빌어 피자가게를 내게 되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최신식 설비를 갖춘 대형가게에 밀려 문을 닫게 되??그에게 음악만이 삶을 다시 개척하는 길이었다.
그때가 84년이었다.
김현식은 2집 준비를 위해 서라벌에서 동아기획으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동아기획은 들국화를 방송에 의지하지 않고 라이브무대만으로 대단한 인기를 모우고 있던 의식있는 프로덕션이었다. 동아기획은 무명이지만 김현식의 음악적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었고 김현식은 동아기획이라면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세계를 가장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동아기획과 김현식은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었고 그런 서로의 생각은 기대 이상이였다. 데뷔앨범에서도 몇편의 자작곡을 발표한 바 있는 김현식은 2집에서 10곡 중 9곡을 작곡해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그 중 <사랑했어요>는 많은 대중들에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어둠 그별빛>,<바람인줄 알았는데>,<아무말도 하지말아요> 등도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김현식은 이처럼 자신의 인기가 급속도로 오르자 본격적인 자신의 그룹을 결성해 보다 활동적인 무대를 갖게 되었다. 그는 평소 함께 음악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모았는데 그 ?繡測?현재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전태관과 '빛과 소금'의 박성식,장기호,그리고 <지난날>,<사랑했기 때문에>라는 명곡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유재하였다. 그는 자신의 데뷔앨범에 있는 곡명을 그대로 딴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 팀명을 정하고 그들과 함께 방송보다는 콘서트와 라이브 무대에서 생생하고 살아있는 음악을 들려주었고 콘서트 문화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86년 4월부터는 개인적인 음악활동 뿐아니라 이정선,엄인호,한영애,정서용 등 실력있는 가수들과 뜻을 같이해 연대 앞에 위치한 '레드 채플린'에 모여 잼 형식의 공연을 갖기도 하였다. 정해진 형식에 갇혀있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이 타 가수들처럼 방송에 얽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펼쳐 이른바 '얼굴없는 가수'로 유명해졌으며 이러한 가수들을 통칭하는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는 것도 이즈음이었다. 방송을 타지 않고 음악만으로 대중과 교류를 이루는 실력파 가수들의 대명사처럼 쓰인 '언더그라운드'의 대부분은 동아기획의 가수들이었고 그 중 김현식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연출하는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 나아갔다. 그의 활발한 활동이 지속되면서 이어 86년 3집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도 많은 음악관계자나 대중들에게 명곡으로 평가 받으며 김현식의 대표곡이라고 꼽힐 수 있는 <비처럼 음악처럼>,<빗속의 연가>,유재하 작사.곡인 <가리워진 길> 등이 수록되어있다. 이는 음악성과 대중성을 적절히 조화된 앨범으로 그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높은 음반판매량,작사,작곡,녹음,쉴틈없는 연습 그리고 수차례의 라이브 공연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음악열정을 가진 그에게 있어 최고의 전성기였고 가장 바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생활은 잠시,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을 공허감이 있었다. 노래를 하면 할수록 그 공간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늘 그런 공허감과 이유모를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끝내 그에게 다시 대마초를 접하게 하였고 87년 10월 김현식을 비롯한 들국화의 전인권,허성욱 등 마약상용혐의인 차디찬 철창이 내려졌다. 그의 미래를 단절시켜버린 듯한 침침한 철창안은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그는 헤어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비록 2개월 남짓한 시간이었으나 그에게 있어 그 기간은 2년도 넘는 긴 세월처럼 느껴졌다. |
첫댓글 김현식의 삶을 잘 정리해놓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