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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내장산국립공원을 다녀와서 ㅡㅡ
산 행 지 ㅡ 내장산국립공원
산 행 일 ㅡ 2017,11,18(토)
누 구 랑 ㅡ 통영축산농협산악회정기산행
산행코스ㅡ추령-유군치-장군봉-연자봉-신선봉-까치봉-신선봉삼거리-용굴암-은적암터-내장사-주차장
이동거리 14km 소요시간 5시간17분 이동시간 5시간12분 휴식시간 5분 평균속력 2.75km/h
오름 964m 내림 1,150m 출발점해발 325m 도착점해발 143m
ㅡㅡ 산 행 지 도 ㅡㅡ
ㅡㅡ 산 행 기 ㅡㅡ
요즈음 알바하는데 일이 많아 산행을 할수 없어서 지난달 28일 소백산을 답사하고 4주만에 산행에 나선다
본산악회는 안내산행을 맡아주어야 하기에 신경 많이 쓰인다 알바 하려 갈때도 새벽에 나가지만 오늘도 06:00 고려병원을 출발하여 죽림중앙매장앞에서 일행 태우고 어두운 고속도로을 질주한다 산청휴게소에 들려 잠시 쉬어간다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에서 88고고도로을 거쳐 담양 나들목을 빠져 백양사방향으로 일반국도를 따라 목적지 (09;05)추령에 도착하여 하차하는데 등산로을 폐쇄해벼렸다 다시 버스로 50여m이동 산행준비하여 (09:12)샛길로 접어든다 60여m 가니 추령에서 올라오는 옛길과 마주친다 산길은 뚜럿한데 무슨연유로 막아놓았는지 긍금증이 가시질 않는다 산길에는 낙엽으로 뒤덥혀 있어 푹신거려 좋고 낙엽 밟는 소리에 세찬바람에 손씨림도 잃고 환상속에서 산길을 걷는다 약간 오름이 시작되더니 430봉을 넘어선다 내림길이다 싶더니 다시 오름길이 어어지고 능선으로 접어들고 (09:44) 유군치에 도착한다 이고개는 북쪽의 내장사지구로부터 순창군 복음면을 거쳐 남쪽의 백양사지구로 연결되는 길목이다 임진왜란때 순창에서 진을치고 공격해오는 왜군을 승병장 희목대사가 이곳에서 머무르며 유인하여 크게물리친 사실이있어 유군치라 유래되었다 여기에서도 능선전체를 폐사목으로 막아 놓았다 그의문점이 이제 풀린다 몇일전 국립공원에 전화로 확인했을때 추령에서 산행이 가능하다는것을 확인 했는데 국립공원에서는 등산로에 편의시설도 해놓고 있는데 내장사에서는 매표(개인3,000원, 단체2,500원)를 하지 않고 추령에서 올라오는 산객들을 못오게 막아 놓은 것이다 능선길에 세찬바람으로 체감온도가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있어 쟈킷의모자근을 쪼아메고 가파른 조릿대가 무성한 오름길을 올라간다 내장산은 1971년 인근 백양사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정읍시와 순창군,전남 장성군에 걸쳐 있다 주능선상의 봉우리는 월영봉,세래봉,불출봉,망해봉,연지봉,까치봉,신선봉,연자봉,장군봉으로 이어지고 계곡으로는 금선계곡,백암계곡,남창계곡,과 폭폭는 도덕폭포,용수폭포,금강폭포,금선폭포,뭉게폭포등을 품고 있고 원적암 일대의 비자림은 백양사 비자림과 함께 천년기념물제153호로 지정되어있다 지리산,월출산,천관산,능가산(변산)과 더불어 호남의5대 명산의 하나이다 (10:11)장군봉에 올라선다 이봉우리는 추령에서 연자봉중간에 솟아있는 급경사의 험준한 봉우리로 수목이 울창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승병대장 희묵대사가 이곳에서 승병을 이끌어 활약했다고 하여 장군봉이라 부러오고있다 산정에는 지휘대가 있고 이곳을 장군대 또는 용바위라고 한다 건너편 연자봉이 빨리오라고 손짖한다 능선길따라 가는길엔 낙엽이쌓여 푹신거리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을 알려주는듯하고 (10:37)연자봉에 도착한다 연자봉은 제비명당이 있다고 하여 연자봉이라 하며 풍수지리상 연자봉을 중심으로 장군봉과 신선봉이 있는모습이 마치 제비날개를 펼친제비의 모양과 흡사하여 붙여졌다고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전망대가 있고 케이불카 상부역사가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붐비는봉우리이다 나무계단길따라 내려서니 내장사삼거리안부이다 여기서 신선봉 올라서는길이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산행이란 내발품을 팔지않고선 해결할수 없는것이고 가야할길이기에 힘들어도 간다 걸어서 마주처 공감하는 마음의 양식은 늘고 양식이 는만큼 자족해지기에 늘 새로운 기대를 지닌채 우리는 걷는다 걷는건 세상을 품는것이다 걸어서 오르고 올라 정상을 정복하면 광대한 미지는 또 다른꿈으로 다가서고 그꿈을 소유하려 또 오른다 꿈은 꾸는자에게만 불굴의 의지와 용기와 담대한 포용심을 선물받는다 오늘도 그선물을 받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올라본다 (11:07)신선봉정상을 정복한다 신선봉은 내장산의 최고봉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내장9봉을 조망할수 있는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선유하였으나 봉우리가 높아 그모습이 잘보이지 않아 신선봉이라 불리운다 봉우리아래 계곡 산벽에 유서깊은 용굴 과 금전폭포,기름바위,신선문등이 있고 남쪽으로 구암사로 통하며 그넘어로 백암사에 이른다 봉우리정상은 헬기장으로 넓은 공터라 산객들의 점심장소로 이용한다 신선봉을 뒤로하고 능선길을 따라 내려섰다가 오르고 반복되는 능선길엔 돌풍이불어 눈뜨기조차 힘들다 낙엽은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고 찬바람에 쉬어 갈곳조차 마땅치않아 계속 걷는다 경사가 완만하고 바람을 막아주는 봉우리밑에서 일행들은 점심상을 차리고 도시락준비를 못해가는 본인은 바로 직진한다 까치봉 오름길에 날카로운 돌뿌리들이 발길을 성가신다 (11:49)까치봉에 올라서니 내장산 9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금선계곡아래 내장사로 이어지는 계곡미를 자랑하고 건너편 서래봉아래 백련암의 모습은 따뜻한 명당자리잡고앉은 한마리의 호랑이의형상이로다 까치봉은 내장산 서쪽중심부에 2개의 바위봉우리로 바위형상이 까치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까치봉이라 한다 내장사의 제2봉으로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이며 내장9봉이 가치봉을 중심으로 동쪽을 향해 이어지면서 말발굽형을 이루고 있다 산행은 여기서 하산한다 계획은 종주 하는것으로 하였으나 강풍과 갑작스런 차가운 날씨 때문에 연지,망해,불출,서래봉은 다음으로 미루고 내장사로 하산하는 안내표시해두고 내려선다 양지바른곳에 앉아 커피와 빵한조각으로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고 내려서는 하산길이 급경사의 사나운 돌뿌리들로 괴롭힌다 바위너덜 급경사길은 조마조마한데 옆에서 거대한 거목들이 흉칙스런모습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하는모습이다 이놈은 몇백년을 살면서 흉칙스런 얼굴을 해야만 살아남는다는걸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곧게 잘빠진놈은 채 다성장하기도 전에 사람한테 붙잡혀싹둑 잘려가곤 햇었다 "못생겨서 미안 하지만 내장수의 비결인걸요"하고 나의 애정어린 눈길에 고백하며 춤추는 나무들이 쇼쇼쇼는 현란하고 내가 쇼에 눈팔다가 자빠져 병신될까봐 안절부절한 허벅지 근육통만 죽을 고생을 한다 1시간가까이 급경사로를 내려오니 내림길에서도 땀이난다 (12:42)신선봉삼거리에 도착하여 용굴을 찾아 보아야 하는데 안내 이정표가 없다 지도에 어슬프게 나있는 방향으로 신선봉쪽으로 올라간다 300여m 올라가니 용굴 이정표가 나타나고 나무계단으로 깔끔하게 설치해 놓았다 올라가다보니 보조금지원건립시설이란 안내표시가 있다 (12:54)용굴 도착 시설명:조선왕조실록보존터(은적암)탐방로 정비공사 보조금액:4억9천만원 공사기간:2017,7,10~2017,11,11준공 이시설물은 전라북도보조금을 지원받아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 시설물이 준공되고 1주일만에 내가 올라가 본것이다 올라가는 나무계단은 끝없는 오름길이고 만약계단이 없다면 이곳은 올라갈수 없는 아주 험준한 벼량의 한곳이다 안내도에는 용굴암은 용굴 또는 용굴사라 불려왔으며 여러문헌에는 신록과 어진이 함께 또는 용굴암과 은적암으로 이안된것으로 전한다 그런데 실록과 어진을 은적암에 이안하기로 결정하고 용굴암에 올라가서 살펴보았다고 한것으로 보아 은적암을 가기 위해서는 용굴암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실록과 어진이 모두 용굴암을 거쳐 이안된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정조때 실록과 어진을 보관한 봉안처를 찾기 위하여 현지조사를 실시한 기록이 전한다 이에 따르면 그당시 정읍현감 정동보는 용굴암까지 실사를 마쳤다 그결과 용굴암은 100여년전부터 나무꾼조차 다니지 않는 폐허가 되 었지만 그터는 영원사에서 서쪽으로 7리쯤에 있고 건물은 무너졌으나 20여척이 되는 정상에 위치하고있으며 바로 주변에 30~40명이 들어갈수있는 석굴(넓이8.5m,길이8m,깊이8m,높이2~25m)이 있다고 하였다 (12;59)은적암터에 도착 은적암은 전라북도 기념물제130호로 은봉암이라고도 불린 은적암은 정읍에서 남쪽으로 30리 덜어진 내장산 절정에 있었다 실록과 어진을 내장산으로 옮기려할때 맨처음 거론된곳으로 용굴암에서는 가히 바라볼수 있으나 오를수 없는 험지였다 임진왜란당시 실록과 어진을 처음부터 은적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과 실록만 은적암에 보관 하였다는 기록에 처음에는 실록을 용굴암에 봉안 하였으나 뒤에 은적암에 봉안 하였다는기록이 전한다 따라서 실록이 은적암에 보존된것은 확실하다 용굴암에서 바라본 은적암의 위치는 "위는 바로볼수없고 오직 높고높은 하늘이 보일뿐" 이라거나 "~~~끊어지고 이어지고 하여 진실로 오랬동안(실록을)보관할만하다"는 위치이 었다 은적암터와 용굴암을 잘보고 내려온다 계단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이라 고소공포증이 있는분은 올라가기 어러울것 같다 은적암부터 내장사까지를 실록길이라 명명하고 있고 길도 마닐라로프재료인 마포를 깔아놓아 부드럽고 안전한길을 걸어내려 선다 등로의 위쪽에 있는 수형이아름다운단풍나무을 확인하고 간다 수령;약280년,(2012년 한국임업진흥원검증) 수고;23m ,근원직경;1.12m, 흉고직경;0.87m , 특징;경사가있는암석지에서 서식하여 나무가35도 기울어져 있으나 내장산에서 수형이 가장 아름다운 단풍나무다 (13:33) 내장사에 들려 참배하고 느근한 마음으로 경내를 구경합니다 내장사는 백제무왕37년(636) 영은조사가 50여동의 대가람을 세우고 영은사라 부른이래 조선중종34년(1539) 사찰철폐령에 따라 불태워졌는데 이후 명종22년(1567) 희묵대사가 법당을 짖고정조3년(1779)영담대사가 대웅전을 중수 하는등 여러차례에걸쳐 중수 하였다 근세에는 배학명선사가 절을 크게 중흥시켰으며 어느때부턴가 영은사를 내장사로 부르게 되었다한국전쟁때인 1951년1,2일 불탄것을 1958년 주지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971년 국립공원지정과 함께 사찰복원사업이 이루어져 오늘날 내장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3:40)일주무에 도착하니 셔틀버스가 다니는데 줄서서 기다리는게 싫어서 내려선다 일주문은 산문이니 여기부터는 절안이다 속세와 불계의 경계역활을 하는 상징물로 일주문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온갖 번뇌와 망상,혼란한 생각을 여의고 깨달음의 일념으로 들어선다는것을 의미한다 "입차문내 막존지해" 이문안에 들어서면 밖에서 알음알이에의한 분별심에 의지하지말라! 나와남이 둘이아니고,부처와중생이 둘이아니며,반야와번뇌가 둘이아니다,재가와 출가가 둘이아니며 생사와열반이 둘이 아니다 일주문을 넘어108구루의 단풍숲을 걸으며 백팔번뇌를 말끔히 씻어 고운 염주알로 굴리며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라 , 1973년에 세워진 내장사 일주문은 두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위에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이쓴 "내장산내장사"라는 현판이걸려있다 (13:49)신선폭포에도착한다 신선제는 내장산성에있는 제방으로 승군과 왜군이 싸웠던 역사적 장소이다 제방이 오래되어 낡으면서 안전에대한 우러가 높아지고 주변경치를 해처 자연석을 쌓아폭포로 조성하였다 예전의제방의 안전성문제와 제방근처의 경관을 개선한후 신선폭라고 이름을 붙였다 (14:29)주차장에도착하고 산행종료한다
ㅡㅡ 산 행 사 진 ㅡㅡ
추령에서 출발하기전 단체 사진을 박고 출발합니다
내장사에서 추령에서유군치로 올라오는 등산로를 막아 놓았습니다
입장료을 받기 위해서 이겠지요
장군봉
연자봉 제비의 명당이 있다는 봉우리
신선봉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백암산의 모습
까치봉이 아로 앞에 다가옵니다
까치봉에서 바라본 금선계곡 과 건너편 서래봉
까치봉아래 암벽을 잡아봅니다
신선봉을 지나 까치봉을 잡아 봅니다
까치봉에서 바라본 신선봉
비자나무
용굴암
은적암과 용굴암 올라가는 계단과 진입로의 산책로 복원사업을 보조받아 했다는 설면문
은적암터 발굴하는 모습과 그연역을 보고갑니다
은적암터
이런흉칙스런나무도 있습니다
내장산에서 수형이 가장 아름다운 단풍나무 라 합니다 수령이280년
내장사경내의 분수
내장사 일주문
일주문아래에는 군데군데 단풍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