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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아주 바쁜 은퇴자의 하루
농촌사람들은 밭에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밭에 서서 나만의 방식으로 철학적 사고를 하지요. 소와 함께 앉아 있을 때에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록 쓸데없는 하찮은 것일지라도 사고를 합니다.
농부들의 손은 ‘더럽히는 데 시간을 사용’합니다. 농부들의 투박한 손에는 주근깨가 가득합니다. 추위와 노동으로 항상 트고 메말라 있죠. 사람들이 시골뜨기에게 무례하게 구는 이유는 분명 항상 소 엉덩이에 머리를 처박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삽과 같은 두툼하고 더러운 손이 없다면, 사람들이 삶은 풍요롭지 않겠지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합니다. 나뿐만이 아닙니다. 2007년 <라 프레스 드 라 망슈> 신문의 독자들이 나를 ‘올해의 인물’로 뽑았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나에게 표를 던져준 사람들에게 매우 고마웠습니다. 나를 뽑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는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통해 비바람을 맞으며 땅을 일구고, 가난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스스로를 비롯하여 같은 처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화장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화장을 하면 작은 단지 안에 뼛가루를 보관하니 꽃을 꽂을 곳이 없잖아요.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리 집은 묘비를 세우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인색하고 쩨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무덤에 값비싸고 무거운 돌덩이를 세워야 하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 무덤에는 하얀 십자가뿐입니다. 이름이 새겨진 작은 나무 십자가죠. 동생들과 10년 마다 번갈아가며 새로 만들어 꽂는 십자가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평소 옷차림으로 천국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내 몸은 소중합니다. 몸은 정신과 교리로는 정의할 수 없는 영혼이 깃든 곳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타인의 믿음이 아닌, 우리의 믿음에 의해 살아갑니다.
가을이 되면 날씨가 약간 쌀쌀해지긴 하지만 평균 15도 이상이라 움츠릴 정도는 아닙니다. 항상 기압계와 온도계를 확인하고 나갈 채비를 합니다. 기온에 따라 스웨터를 걸치기도 하지요.
은퇴하기 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4시에 일어나 작업장에서 울타리도 만들고 덧문도 만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나는 나무를 정말 좋아합니다. 세상을 떠나면 내가 쉴 안식처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 겁니다.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6시 반이 되면 커피를 마시러 부엌으로 갑니다.
방문객들이 모두 떠난 저녁시간을 기다렸다가 달밤에 씨앗을 뿌리러 밭으로 갑니다. 달이 뜨고 자정까지 달과 함께 둘이서 밭에 있습니다. 여동생들은 ‘기괴한 일’을 겪은 후로 한밤에 나 혼자 밭에 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프랑수아즈와 함께 보았습니다. 하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을 내는 주황빛 공처럼 생긴 둥근 물체가 떠 있었죠. 그런 것은 난생처음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후로 매일 생각했습니다. 제발, 죽기 전에 누구라도 그것에 대해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달밤에 낚시 가는 것처럼 당시에는 밤중에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밤이 되면 만물은 낮과 전혀 다른 모습을 띱니다. 어두운 대지에 홀로 서서 사색을 하고, 삶에 관한 질문을 되새깁니다. 점점 땅이 힘에 부칩니다. 종종 한 손으로 가볍게 땅을 갈아엎던 젊은 시절을 떠올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땅을 가는 것이 버겁습니다.
내가 농부임을 부인할 수 없게끔 언제나 흙이 신발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달빛 아래 있으면 언제나 젊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교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달빛 아래 나는 아이이고, 청년이고, 장년이고, 노인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나 혼자뿐입니다. 원한다면 재빨리 내 무덤을 파놓을 수도 있지요.
밭에서 아름다운 밤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방문객들 덕분입니다. 그들이 나의 삶의 방향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바꿔 주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밤이 주는 절대적 고요를 결코 느껴보지 못했겠지요.
내 수첩들의 용도는 무척 다양합니다. 수첩을 통해 전날 무엇을 했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주소와 전화번호 등 이것저것을 적어두죠. 수확 후, 감자의 수확량도 수첩에 적습니다. 물론 감자의 개수를 일일이 세서 적지는 않고 감자를 담아두는 자루의 수를 적습니다. 때때로 파와 아스파라거스의 양을 적을 때도 있습니다.
수첩들은 모두 손바닥만 한 크기입니다. 그래야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독일점령군들’의 상자에 넣어둘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면 가정과 농가의 1년 회계관리는 종이 2장이면 충분합니다. 일주일에 2시간씩 회계장부에 매달릴 일도 없지요.
나는 사는 것이 거의 없고 파는 것도 아주 조금입니다. 아버지도 내 것과 같은 작은 크기의 메모지철을 가지고 있었는데,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나와 달리 부엌 식기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감히 누구도 그것을 볼 엄두를 못 냈습니다. 메모지철 옆에는 언제든 쓸 수 있게 칼로 투박하게 깎아 놓은 아주 두꺼운 심이 박힌 커다란 연필이 있었습니다.
수첩들은 나의 삶입니다. 나의 재정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기도 하죠. 내 상속인들은 수첩을 통해 내 재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첩에 관해 많은 질문을 합니다. 수첩들은 밭에서 주운 녹슨 상자 안에 쭈욱 보관해왔습니다. 공책들도 있습니다. 내 책들을 정리하는 데 길라잡이 역할을 해 주었던 기억노트들입니다. 저녁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사소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나는 아주 소중한 기억들로 여겨 공책에 적어 넣습니다. 공책들은 수첩들보다 더 꼭꼭 숨겨두었습니다.
두 해에 걸쳐 수첩을 살펴보았더니, 두 해 연이어 1월12일에 수리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1년 간격으로 같은 날, 커다란 폭풍우 2개가 지나갔습니다. 나는 수첩들을 들여다보며 여러 해에 걸쳐 기록된 내용들을 분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을 쓰면서 보니 순무처럼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던 것이 지금은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바닷가에서 흔히 잡을 수 있던 가재와 전복은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거저 주고받던 감자와 순무와 당근과 양배추는 돈을 줘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해 봤을 때, 유로를 선택한 것은 잘못이며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농사와 관련된 행정서류를 위해 1960년대 말 아주 훌륭한 비서를 채용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미스 마틴입니다. 세금, 농업장려금 등등, 한꺼번에 모든 서류를 맡겨도 그녀는 아주 깔끔하게 일처리를 했습니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요. 나의 비서는 아서 마틴 사제품의 우리 집 화덕이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습니다. 서류를 활활 타서 재가 되어버렸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신분증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보험은 의무지만 지문, 인명부 등등의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사생활까지 코를 들이미는 행정적인 삶이 없는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수수하고 소박한 폴’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장려금도 요청하지 않았고 세금도 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풍요로운 생활을 강요하며 돈을 벌고 소비하게 만들죠.
요즘은 돈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입니다. 돈이 대체 어디서 생기는지 버는 것에 비해 펑펑 씁니다. 부자들은 내야 할 세금을 피해 도망을 갑니다. 나라를 떠나죠. 스위스를 비롯해서 돈을 숨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꼭꼭 숨겨둡니다. 그리고 돈을 숨기기 위해 정치인들과 거대합니다. 당연히 정당한 거래는 아닙니다. 검은 돈들이 오고 가지요.
부자들과 함께 있으면 영 불편합니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아 아주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합니다. 요즘과 같이 경제적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상들이 물려준 지혜와 처세로 스스로 살아간다면, 밤에도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발전, 필요합니다. 다만.....
요즘은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계와 약이 굶주림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 가족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빨리 기계화했습니다. 전쟁 전부터 사이먼형제표 탈곡기와 기계 갈퀴를 사용했으니 말입니다. 단지 아버지가 산 농기구와 곡식을 소량의 다발로 묶는 기요틴처럼 내가 산 기구들을 요즘 것으로 바꾸지 않은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에게서 땅을 물려받은 뒤에 땅이 더 늘어나지 않았으니까요.
1961년 중고로 ‘기요틴’에서 나온 다발을 묶는 기계를 샀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28~30헥타르의 땅을 경작했습니다. 딱 그뿐이었습니다. 현대화된 커다란 기계가 우리 가족에게는 필요가 없었던 거죠. 사람들은 가난을 무서워합니다. 빚도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가난도 빚도 무섭지 않습니다. 우리는 빌리지 않고 우리가 일해서 번 만큼 먹고 사니까요.
세상에는 항상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고 늘 물가가 치솟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땅을 빼앗기고 풀 대신 화학사료를 먹습니다. 땅은 화학사료를 먹은 동물들이 싼 배설물을 견디지 못합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병원에 입원해 각종 주사를 맞으며 항생제가 들어간 약을 먹습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의 배설물로 망가진 흙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비료를 뿌리고, 벌레들을 쫓으려고 온갖 살충제를 뿌려댑니다. 사람처럼 땅도 병에 걸리면 셀 수 없이 많은 약들을 뿌립니다. 나라고 발전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까지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개발도 윤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지요. 어쨌든 요즘은 모든 것이 과잉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타는 것도, 병을 치료하는 약도, 모든 것이 과잉입니다.
전후에 지력을 되찾는 데 2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런 도움 없이, 땅이 지력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땅에서 사는 버섯, 곰팡이, 설치동물, 박테리아, 지렁이 등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었지요. 인위적으로 지력을 회복하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줄여서도 안 됩니다. 쟁기를 사용해 땅을 갈면 땅이 너무 깊이 패여 박테리아가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게 되고 그들의 무덤을 만드는 꼴이 됩니다. 상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악수가 돼버리는 것입니다. 박테리아의 죽음은 우리 자신의 죽음이나 다름없습니다. 유기물이 사는 땅이면 풀도 사는 땅입니다. 풀이 사는 땅이면 그 땅은 사람들을 위한 땅입니다.
요즘 트랙터를 사는 사람이라면 시동도 걸기 전에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이 탁 막힐 것입니다. 은행에 돈도 없는데 그 비싼 기계를 샀으니 앞이 막막하겠죠.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돈이 산처럼 앞을 탁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지금 내 나이가 서른 살이라면 난 무척 절망할 것입니다.
그 돈을 갚으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에 온갖 작물들을 심습니다. 익숙한 작물들 대신 돈이 되는 작물들을 마구잡이로 심죠.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낯선 식물이 줄기를 이상하게 뻗으며 자라납니다. 낯선 기계들이 밭을 누비고 다닙니다.
밭의 땅이 한 줌이라도 상하면 해묵은 상처가 되어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립니다. 언제부턴가 생선가루가 슬그머니 소 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가 다른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것을 본 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젠 소들이 사료로 둔갑한 동물의 사체를 먹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언젠가는 우리 인간이 인간을 먹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광우병은 인간의 욕심이 부른 재앙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병이에요.
대지의 풍요로움의 근원은 외야안의 황금, 퇴비라고 난 확신합니다. 땅에 퇴비가 뿌려지면 땅 속의 지렁이는 퇴비를 영양분 삼아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요즘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그들의 몸속에 화학제품이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먹는 음식 속에도 화학제품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미확인비행물체나 전쟁처럼, 요즘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유전자조작식품입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 밭에는 해충이 없었습니다. 대신 조화와 균형이 있었죠. 만약 밭작물을 망가뜨리는 두더지들을 없앤다면 해충은 급속도로 번식할 것입니다. 해충을 없애는 방법 중의 하나로 땅을 깊이 갚아 엎는 법이 있습니다. 그래도 해충은 다시 생길 것입니다. 눈에 띄는 해충을 모두 없앨 수는 있지만 땅 속에 있는 해충은 제거할 수 없습니다. 살아남은 해충이 아주 적더라도, 이목을 끌기 위해 온갖 여론을 조성하는 정당들처럼 자신들이 내세우는 것이 먹힐 때까지 억지와 떼를 쓰며 악착같이 달라붙어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무서운 속도로 그 수가 늘어나지요.
유전자조작식품을 조금 사용한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인류의 지식을 초월해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땅을 경작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암반층에 토마토를 심고, 거대한 삼림을 깎아내 밭을 만들어 옥수수를 심고.....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동물과 식물들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헛된 욕망을 가진 인간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자연은 곧 파괴되겠지요.
요즘 내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가축농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축들의 분뇨냄새입니다. 거기서는 각종 양과 화학약품의 냄새가 납니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알싸하게 콧속이 아립니다. 풀도 꽃도 먹지 않는 가축이 싸는 똥과 오줌에서는 더 이상 자연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예전에 한 달치 쓰레기를 통에 담아 말에 실어서 야외 쓰레기장인 들에 갖다 뿌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갖 사소한 것들을 들판에 갖다 버렸지요. 하지만 그것들은 자연이 소화할 수 있는 쓰레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봉투에 싸인 환경오염물들이 들에 버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각종 산업폐기물들이 들판에 버려지고 있지요.
나도 기계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기계들은 모두 가까운 쓰레기장에서 가져온 폐품들로 만든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가전제품들이 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매일 그곳에 버려집니다. 하지만 난 쓰레기더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어렵지 않게 구합니다. 안목이 뛰어나다고나 할까요!
“학생 말처럼 우유 생산량은 적겠지. 하지만 풀을 먹고 자란 우리 소의 우유로 만든 버터 맛은 노르망디 지방에서 제일이야. 공장에서 만든 사료를 먹고 자란 소에서 짠 우유는 화학비료나 사료의 냄새가 나서 그걸 없애려고 우유를 소독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거든. 네 말대로 소에게 옥수수를 먹일 수도 있을게다. 하지만 소가 싼 똥이나 오줌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고, 우유 맛 또한 풀을 먹고 자란 소에서 짜낸 것보다 신선하고 고소하지도 않을 거야. 가축사육장에서 자란 소들은 들판에서 풀을 먹고 맘껏 뛰어다니며 자란 소들보다 훨씬 일찍 죽어. 경변 때문에 말이야.”
“보조약품을 먹이면 되죠!”
그 말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건 연구소나 기업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짓이야. 사육장의 송아지들이 먹는 우유를 아이들과 어른들도 먹고 있지. 모유가 가장 좋은 것처럼 여기고 있거든. 하지만 우유를 생산하는 소들이 무얼 먹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해. 사람들은 소에게 커다란 알갱이들을 먹이는데,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을 게다. 가축을 키우는 데에는 풀이 필요하지. 풀은 땅과 물이 있으면 어디서든 자라.”
“학생은 젖소가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이 몇 년이라고 생각하지?”
“글쎄요. 어림잡아 최대 8년!“
“그건 옥수수를 먹는 젖소에 해당하는 거겠지. 옥수수를 먹는 소들은 소화불량이 생겨서 일찍 늙어버리거든, 하지만 우리 소들은 그럴 염려가 없어서 여러분의 나이만큼 우유를 생산하지. 어디 그뿐인가? 열여덟 살이 넘어서도 새끼를 낳을 수 있어. 내 장담하지. 들리는 이야기로는 서른 살까지 장수하는 소도 있다고 하더군.”
“꼬리도 없고, 뿔도 없는 소들의 시대군요. 우유를 생산하는 불쌍한 기계라니....., 협소한 공간에서 서로 상처 낼까봐, 사육사를 공격할까봐, 뿔까지 뽑힌 채 갇혀 있다니..... 2009년 농업박람회 포스터에 아주 괴상한 외계인이 등장했죠. 비뚤어진 얼굴에 뿔이 없는 아주 못생긴 소였어요. 그런데 그 포스터에 더 황당한 장면이 있었어요. 소들이 튜브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사료를 먹는 거예요. 뿔이 있었다면 서로 목이 걸렸겠죠. 그런데 뿔을 없애는 방법이 아주 잔인해요. 불로 태우거나 잘라내는 거예요. 소의 꼬리도 자료죠. 위생이라는 명분을 내새워서 말이에요.”
축사에서 사육되는 소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전혀 관심이 없지요. 가까이 다가가도 꼬리를 흔들지 않아요. 사료를 주어도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축사의 소들에게 일부러 꼴을 줬습니다. 소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밀가루를 묻힌 깻묵 사료에 코를 쳐 박고 게걸스럽게 먹더군요, 사육당하는 소들은 우울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알게 되는 것
등대수의 업무는 고단합니다. 일하는 중에는 뭘 마시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불빛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등대의 불빛은 생명의 불빛이자 희생의 불빛이었습니다. 등대수는 절대 일어나는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뭍에서 사람들이 지켜보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등대수들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뭍의 사람들이 등대수를 지켜주었던 거지요.
뭍에 사는 등대수의 아내들은 집 안의 커튼을 이용해 등대에 있는 남편들과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신호였죠. 요즘은 전화가 생겨 굳이 커튼으로 신호를 보내지 않습니다. 아니, 신호를 보내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등대에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동화된 성당의 종처럼 등대도 자동화되어 자동으로 경적이 울리고 불이 켜집니다.
안개가 예상되거나 눈이 올 것 같으면 등대에서 소리가 울립니다. 어렸을 적, 안개가 끼거나 눈이 올 때면 구리의 등대가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북동풍이 불고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눈이 내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을 할 때, 나지막한 등대소리가 길잡이를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갈을 던지지는 않습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아무 것도 던지지 않아요. 그런데도 항상 밭에는 돌이 널려 있습니다. 누가 던진 돌이 아니라 땅에서 솟아 나온 돌들입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농작물만 땅에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돌들도 땅에서 싹을 틔우 듯 쑥쑥 자라납니다. 줍고 또 주워도 계속해서 돌이 새로 나타나죠.
우리 밭을 둘러싼 돌담의 돌들도 밭과 바닷가에서 얻었습니다. 돌이 눈에 띄는 족족 담에 쌓아 올려놓습니다. 그렇게 쌓아두면 언젠가 반드시 사용할 날이 오겠죠.
주운 돌들은 절대 다듬지 않습니다. 못 생기고 보기 흉한 담벼락을 보면 볼수록,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담벼락을 돌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모든 돌들의 아귀가 딱 들어맞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 어느 순간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멀리서 봐도 돌담은 아름답습니다.
요즘 담을 쌓는 사람들은 접착제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담을 아름답게 쌓으려면 접착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접착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전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요. 아귀의 진짜 아름다운 담은 울퉁불퉁합니다. 허리가 굽고 코가 큰 아귀사람들처럼 촌스럽습니다. 우리의 돌담은 풍경적인 면에서 아귀만큼 멋지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호의적입니다. 돌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담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평범한 베델 가의 삶을 추구합니다. 지식인들을 좋아하고 존중하지만 그들이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은 프레베르를 좋아합니다. 시인도 아귀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프레베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무척 울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아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실제로 무엇일까요? 우리 집 우유를 마신 시인은 우리 가족의 노동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산한 것을 시인이 먹다니,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솔직히 시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난 잘 모릅니다.
한 번도 프레베르가 쓴 시를 읽어 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로 도시와 외떨어진 곳에 살고 있지만 호기심은 있었습니다. 우리가 불필요한 도움과 발전을 거부한 것뿐입니다. 우리 가족이 아주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는데, 도시 사람들은 머리가 좀 돈 것 같다는 겁니다.
프레베르의 시는 시인의 언어입니다. 폴의 말은 농부의 언어입니다. 폴의 언어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갈고 닦은 자연의 언어입니다. 프레베르도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언어는 자연을 관찰하고 느끼며 생성된 자연의 언어입니다. 나의 짐작이지만, 프레베르는 자신이 쓴 시를 읽은 독자들과 교류하며 마음을 치료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수평선 위의 오리니섬이 보입니다. 오리니섬의 색깔이 흙빛에 가까우면 비가 내립니다. 오리니섬이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 이미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 것입니다.
내륙에서 바람이 불면 번개가 치고 하늘은 붉게 물듭니다. 비트이파리가 낙엽처럼 마르면 비가 온다는 징조입니다. 허리에 대상포진이 재발했다면 비가 올 거라는 뜻이고요.
수확기에 개구리의 색깔은 무척 진합니다. 그런데 별안간 개구리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고 두꺼비 색깔이 그대로면 비옷을 챙기러 가야 합니다. 제비가 땅바닥 가까이 날면 비가 옵니다. 청딱따구리가 ‘딱딱’ 노래를 하면 비옷을 챙겨야 하죠.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물웅덩이가 생기고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질녘 하늘이 붉으면 그다음 날은 화창합니다. 조부르 성당 종소리가 집까지 들리면 구름 속에 습기가 가득하여 비가 옵니다. 성당 종이 저절로 울리면 반드시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고 난파의 위험이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은 하늘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전날 하늘에 노란 해가 뜨면 서풍이 불 것이고, 붉은 해가 뜨면 상류(북풍, 북동풍)에서 바람이 붑니다. 해와 달이 같이 떠 있으면 하류바람(서풍)이 붑니다. 달이 흐리면 안개가 끼거나 상류바람(동풍)이 붑니다. 구리의 등대가 물에 비치면 동풍이 불고 비가 옵니다.
기상상태는 바다와 급류 소리와 일치합니다. 우리 우물에서 에칼그랭 해협의 바다소리가 들리면 바다물결은 남쪽으로 밀리며 철썩철썩 요란하게 자갈들을 때립니다. 그래도 다음날은 화창할 것입니다. 서광이 비출 때 서리가 끼면 북쪽에서부터 짙은 안개가 낄 것입니다. 영국에 있는 등대들의 불빛이 보이면 3일 후에는 어김없이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영불해협에 있는 영국령의 한 섬에 있는 등대가 아니라, 바다 건너 영국 본토에 있는 등대들의 불빛이 보이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의 밤하늘은 아주 맑아서, 바다 건너편의 등대가 비추는 불빛이 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국 본토 북서쪽에 위치한 등대들입니다. 한번 깜빡, 두 번 깜빡, 세 번 깜빡, 다른 등대가 두 번 깜빡하더니 깜빡임이 멈춥니다.
우물을 통해서도 날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오기 전, 우물이 포효하며 안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킵니다. 물이 솟구치며 위로 올라오지요. 우물의 격렬한 몸부림을 보며 우리도 동요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폭풍우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폭풍우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채 느끼기 전에 우물 속에서는 폭풍우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폭풍전야는 언제나 그렇듯 고요합니다.
하늘은 아주 화창하죠. 그와 반대로 우물 속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작고 투명한 새우가 우물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새우들이 점프를 하고 순식간에 우물의 물이 흐릿해지면서 부글부글 용솟음칩니다.
원래 하늘과 바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파도가 거세게 치고, 사람들과 건물들은 무기력하게 땅에 내팽개쳐집니다. 물이 자신의 위력을 인간들에게 확실하게 과시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면 나는 불 옆에서 조용히 버들가지로 바구니를 만들며,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죠.
은퇴와 더불어 농사를 그만두고 길고 긴 휴가에 들어가자 생활의 리듬이 깨졌습니다. 그제야 내가 땅을 경작하고 가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경작하고 가꾸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땅은 농부로서의 사람을 평가하고, 언젠가 나를 대신해 누군가 감자를 재배할 것이라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겠지요.
힘들고 배고픔에 허리띠가 조여도 농사를 계속 짓습니다. 농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농부가 땅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은퇴를 하고 난 뒤, 우리의 삶이 온통 일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밤낮으로 일에만 매달렸다는 것을 깨닫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밤낮으로 일에 매달린 삶에 만족하며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건 여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생들도 자신들이 살아온 삼에 지극히 만족해합니다.
은퇴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몇 년 전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를 했음에도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난 조용한 삶을 꿈꿔본 적이 없습니다. 조용한 삶은 아무런 영감도 주지 않으니까요.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 공식, 비공식으로 은퇴를 하고 연금 재단에 서류를 제출하면, 난 훨씬 많은 돈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은퇴를 했건 안 했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의 일은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합니다. 난 내 일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고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조용한 사람을 꿈꾸지 마세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조용한 삶이길 바라는 겁니까?
나는 지상에 잠깐 머물렀다 가는 통행인입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고,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누군지 모르지만 죽음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난 다른 데 갈 시간이 없네, 할 일이 너무 많아, 죽을 시간도 없다고.”
아주 오랫동안 내 삶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발전을 거부한 나를 ‘바보, 멍청이’ 취급했죠. 그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건,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나의 신념을, 아버지의 유산을, 할아버지의 자산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밭에서 자라는 밀과 밭에 뿌리는 거름에 대한 나의 신념을 아주 철저히 지켰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 - 그렇다고 내일 당장 내가 죽는 것은 아닙니다 - 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여동생들과 행복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트랙터를 타고, 갈매기 소리를 듣고, 기도를 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농한기에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 소소한 행복들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움직여 울타리를 만들고, 돌담을 쌓고,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기타 등등 유익한 일을 하면 뿌듯함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 한가로울 때에는 생각에 빠져 보세요. 아주 느긋하고 편안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간혹 ‘왜 죽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답은 ’살아 있었기에‘입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나의 것은 단순한 삶이었지요. 나의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선택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단지 힘들게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조상들이 일궈놓은 땅을 지키려고 개인의 삶을 희생한 바보라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내 의지로 내 삶을 선택했고, 그 삶 속에서 여유롭고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자유는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자유를 침범당하면 고개를 숙이고 걷게 될 터입니다.
단순한 삶을 선택하고 자유를 선택했기 때문에 난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우리의 땅과 우리의 마을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땅의 노예가 되어 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시간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난 우리의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어요. 나는 늘상 땅이 그립습니다. 땅은 나와 하나입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땅, 나의 대지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단순한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것,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아주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생각에 의해, 최초 발명에 의해 만들어진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좀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 변화와 발전을 꾀하는 순간, 아름다움은 사그라집니다.
나의 이야기는 가족의 이야기이자 트랙터 이야기이자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밭과 씨앗과 동물들의 이야기입니다.
거대한 부는 아니지만 내가 일구고 가꿔 쌓은 부입니다. 새싹을 틔우기 위해 어떠한 가공도 필요하지 않은 생명력 강한 우리 집 재래 품종은 나와 우리 가족을 건강하게 지켜줍니다. 건강한 곡식을 먹고 자란 우리 집 닭들은 아침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튼실한 알을 낳아 줍니다. 빵을 찍어먹는 계란은 소박한 농부의 밥상에서 풍요로운 자양분입니다.
나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깨우치거나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배웠지요.
옛날이 훨씬 더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간혹 요즘처럼 일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땅과 멀어지고 흙 한 줌에 기대 살고 있습니다. 이건 옳지 않아요. 기본을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무지한 촌옹의 단순한 향수가 아닙니다.
요즘보다 훨씬 더 좋지는 않았지만 일이 더 힘들었던 것도 아니었고, 요즘처럼 정신없이 눈 돌아가게 일한 것도 아니었고, 쓸데없는 서루들에 치이지도 않았습니다. 몸을 써서 일을 했고 계절에 맞춰 일을 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연에 맞춰 일을 했습니다. 오늘날과 달리 날짜 개념 없이 일했습니다. 우리는 고랑을 다라 움직였습니다. 땅을 따라가면 되었죠.
요즘 농부들은 여우도 없고 자유도 없습니다. 온갖 서류와 장려금에 얽매여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땅을 바라보면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낄 여유가 있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쉬엄쉬엄 무밭의 김매기도 했습니다. 한창 자라던 무들이 메말라 시들어가도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습니다.
요즘은 밭에 살수기를 설치해서 가뭄이 지면 간단히 버튼 한 번 눌러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밭에서 일하느라 하늘에 뭉게구름이 지나가는지, 새털구름이 지나가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들에게 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