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의 독서일지 (II)
(24.03.30~04.20)
봄(春), 그 눈부신 개화(開花) 속에서
-11일차
스위스의 신학자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이라는 책을 펴보다. 신(神)의 존재,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존재와 그 의미를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전작-<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백치>, <악령> 등-을 통해 재조명해보는 시간이다.
저자는 날카로운 지성적 잣대로 오늘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의 모순과 불합리한 점도 아울러 규명한다. 대학시절 밤을 세워가며 탐독했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신과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 의미를 처음 접하게 해주었던 놀라운 문학작품이었다. 그 이후로 기독교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으려 노력했는데,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문학작품들과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등이 특히 관심을 끌었던 것이 생각난다.
-12일차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로 아파트 단지가 들썩거린다. 단지내 마련된 투표소에 들러 한 표를 행사한다. 선거참관인을 비롯해 선거관리인단 대부분이 여성임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투표소 내부를 엄격하고 공정하게 지켜내겠다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가 등산하고 내려오는 길에 들러 투표를 종료하고 나올 때까지 숙연하게 느껴진다. 이곳은 진정 그녀들의 나라인 것이다.
이 지상에서 인간은 갈 때까지 너무 간 것이다. 자신만만한 인간이 이제 신의 위치까지 올라서려 하면서, 교회는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왜곡한 채 거짓 구원을 내세우고 있다.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 속속 세워지는 마천루들은 언뜻 ‘바벨탑’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에서 저자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은 현대 문명을 그렇게 진단하고 있다.
-13일차
스위스 신학자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이 쓴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를 차분하게 읽었다. 신의 존재와 인간의 신앙 그리고 종교에 관한 ‘종교철학서’이자, 한편으론 이런 분야에 관한 문학작품 발표로 유명한, 러시아 대문호인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문학비평론’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저자 특유의 진지한 문체로 말미암아 최근 들어 가장 진지하고 집중력 있게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독서몰입에 따른 기쁨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지음/손성현 옮김/김진혁 해제/포이에마 2018년판
우연한 곳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는 행운
1
이 책은 원래 읽고자 하는 도서목록에 대개 포함되지 않는 종류의 책이었다.
특히, 신학은 지루하고도 어려운 철학의 한 분야로 여겨, 구미가 동하면 문학작품을 통해 접하는 습관이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새롭게 대두된 전후 피폐하게 변화된 환경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고자 1921년 경 스위스의 아라우 대학에서 진행된 대학생 총회강연 행사에서 신학자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이 학생들 앞에서 강연한 자료들을 모아 정리하여 발간한 책이다.
책 표지에 ‘도스토옙스키’가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면 펴보지도 않았을 책이었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이란 부제가 언급되어 있어 급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떠올렸고, 내용 중 등장하는 ‘조시마’ 장로와 얼마간 관련이 있을 거란, 그것도 흥미롭게 대화형식으로 조목조목 따지는 장면이 연상되며 주의를 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2
-무엇이 악마인가? 인간-신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 저편의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정신이 다름 아닌 악마다. 하나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으며,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고자 거인·영웅적인 환상에 도취되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거짓말을 형상화한 것이 곧 악마다. (본문 중에서)
3
우연히 발견한 책에서 1902년대 어느 스위스 신학자의 눈으로 본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세계를 따라가 보는 행운을 누린다. ‘도스토옙스키’가 누군가. 그는 대학시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며칠 밤을 지새우며 단숨에 읽게 만들었고, ‘신과 인간’ 그리고 삶에서의 인생관 등을 새삼 진지하게 돌이켜보게 만들며 이마를 망치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준 그 러시아의 대단한 문학 작가가 아니던가.
부끄러운 일은 그렇게나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신도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4
-조시마 장로가 영혼을 돌보는 일 또한 놀랍게도 부정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사람들의 어깨에 놓인 짐을 벗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기 인생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그 문제 속으로 제대로 파고들도록 인도한다. 왜 그럴까? 그는 짐을 지는 것, 인생의 문제 속에서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5
-그는 전혀 다른 요구를 거듭 제시한다. 그것은 어린 아이처럼 되라는 요구이다.... (중략) ...그러나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낸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어른들보다 뛰어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무방비 상태로 인생 앞에 서는 것이다. (중략)
이것이 아직 때묻지 않은 어린이의 본질이다. 어린이가 이런 경탄과 경악과 환희를 잘 간직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교육의 유일한 목표다... (중략)... 왜 그런가? 그렇게 어린이로 돌아간 사람, 자신을 활짝 열고 깨끗한 양심을 회복한 사람, 내적인 움직임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사람 속에서는 수많은 경탄과 경악을 거쳐 서서히, 혹은 갑자기 가장 위대한 것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다. 이 감각은 어떤 도덕적인 상태나 종교적인 상태가 결코 아니다. 이 감각 자체가 이미 한 조각의 ‘부활’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바로 이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본문 중에서)
6
-그는 암시로 가득하고, 비유로 가득하고, 의미로 가득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이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허무하고 덧없는 요소들 속에서 ‘영원한 본질의 불멸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은 평생토록 그 불멸을 찾아 헤맸던 격정적인 탐구의 여정이었다. (본문 중에서)
그랬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을 위에 언급한 그대로 ‘신’의 존재를 놓고 인류의 모든 것을 걸어 평생 그 해답을 찾아 열정적으로 탐구하며 살아간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 당찬 포부와 거대한 야망과 압도적 스케일에 젊은 시절 경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고전’이라는 미명하에 길이 인류사에 명작으로 기억된다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은 영원히 녹슬지 않는 채 그 날카로움을 지성사에 길이 남기리라 여겨진다.
(2024.04)
-14일차
책상 위의 달력을 보니 ‘도서관의 날’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여러 다양한 책을 읽고 빌리기도 하는 도서관은 늘 특별한 곳이다. 지나간 시간을 잠시 반추한다면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많으리라 여겨진다.
가난하던 시절 도서관은 방과 후에 남아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고, 지루하면 서고에 가서 재미있는 책을 빌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던 곳이다. 그런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어느덧 책은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반려자가 되었고, 이젠 그런 책을 읽고 사색 한 결과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다. 그 말은 생각을 하고 변화하고 다듬어야 할 여지도 다분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의 인생도 생각의 변화만큼 바뀔 여지가 있고, 인생이 여물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도서관의 날’을 맞아 되새겨본다.
<서머싯 몸 단편선 2>와 중국의 여성 사회학자 ‘리인허’가 쓴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를 번갈아 읽는다.
-15일차
낮에 아내의 지인 측 자녀결혼이 집 근처에 있어서 훌쩍 다녀온다. 모두들 출산율 걱정을 하고 있지만 결혼식장에서는 많은 하객을 동반한 결혼식이 저녁까지 시간대별로 꽉 채워져 있다. 다녀와서 <서머싯 몸 단편선 2>를 마저 다 읽는다.
*서머싯 몸 단편선2
-서머싯 몸 지음/황소연 옮김/민음사 2023년판
세기말 제국주의의 달콤함이 곳곳에 배어있는 작품집
1
좋아하는 책을 음악과 함께 하루 종일 읽고, 간간히 이런저런 글을 쓰다가 마음이 동하면 집근처 봄꽃이 화려하게 피고 숲이 울창한 산을 오르며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까지 생각한 것 중 가장 만족스런 삶이지 않을까 싶다.
<서머싯 몸 단편선2>와 그런 생각을 나눌까 한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읽으며, 부드러운 선율의 클래식을 귓가로 들으며, 그러다 편안하고 달콤한 잠이 찾아오면 잠시 빠져들어 보기도 하는...
2
<춤꾼들>은 블랙코미디다. 20m 고공에서 깊이 1.5m 물탱크로 다이빙하기. 그것도 여자가. 강심장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공포가 매일 두 차례씩 시연되는 호텔 다이빙을 위해 대기 중인 스텔라에 엄습한다. 어느 날, 공포가 주는 스트레스에 견디지 못한 스텔라가 남편 시드에게 그만두고 싶다며 하소연을 한다.
지난 날 노련한 춤으로 삶을 연명했던 시드는 무도장에서 스텔라를 만나고 가난이 연속되던 비참한 시절을 떠올리며 어렵게 만든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시드는 아내를 사랑했고 사고로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아 그럼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며 근심을 덜어주려는데, 그런 남편의 마음을 읽은 스텔라가 다시 한 달만 더 일을 해보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자신의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삶의 굴레가 지닌 비참한 현실은 애틋한 남녀 간의 사랑조차 일상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왜곡시킨다. 그들은 지금 하는 이 일로 명성도, 미래를 보장받기도 원하지 않는다. 다만, 가난해서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었던 불행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도시 하층 계급의 출구 없이 내몰리는 삶에 애절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행복한 커플>은 사랑을 위해 거대한 유산을 가로채려는 살인에 가담한 두 연인의 이야기다. 둘은 재판까지 받았지만 배심원들의 판단 착오로 용케 형을 면한다. 둘은 연인사이가 아니라며 그 이유가 혼외정사를 가지지 않은 이유를 들었다는데...그러나 그들은 도피처에서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갔다가 우연히 그날 재판을 맡았던 작중 화자의 친구(당시 법관)에 의해 발각되는데, 그들 사이를 두고 연인이라며 혼외정사를 가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며 일축한다.
<비둘기의 노랫소리>, <사자의 가죽>,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탈출>, <심판대>, <척척박사>, <행복한 남자>, <낭만적인 아가씨>, <명예가 걸린 문제> 등을 읽어나간다. 단편소설의 제목들은 볼 때마다 흥미롭다. 시집을 펼쳤을 때 목차에 나오는 제목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시는 단편소설의 축소판이고, 단편소설은 시의 확장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3
작가 ‘서머싯 몸’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작가 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나오는 배경과 지역이 대륙별, 국가별로 다르고 그것은 작품 곳곳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 지금까지는 따뜻한 남프랑스와 뜨거운 스페인의 세비야가 자주 등장했다. 그것은 작가가 1928년 이후 프랑스 남부 카프페라에 정착해서 작품 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연표를 보니 평생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희곡, 장편소설, 단편소설 등을 왕성하게 발표했는데 그가 창작 중단을 선언한 84세까지 무려 60년 동안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여행을 많이 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생전에 그가 여행한 곳으로 치면 남아메리카에서 일본, 중국을 거치며 말레이와 보르네오의 동남아, 스페인과 프랑스, 러시아, 시칠리아의 유럽 등 아프리카와 중동을 제외한 전 대륙에 걸쳐 있는데, 견문을 넓히면서 여행 후 자신의 작품에 모두 반영된 것은 물론이다.
4
서머싯 몸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깊고 예리한 통찰력을 작품들 속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통해서 경험한 지리적, 지역적 환경이 인간 삶에 끼치는 영향 등을 작품에 반영시키기도 했는데, 여느 작가에서 보기 힘든 개성이 강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지중해의 뜨거운 기후의 나라인 스페인의 열정적인 민족성(<명예가 걸린 문제>),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중 점령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어느 독일군의 사랑과 프랑스인의 강인한 민족성(<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령 말레이 반도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새가슴>) 등의 일련의 작품들은 ‘서머싯 몸’이라는 탁월한 작가가 아니면 독자로서는 읽어볼 수 없는 개성이 강한 작품들이다.
대학시절 처음 그의 단편문학선을 접한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그때의 분위기로 돌아가서 내내 읽은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살아가면서 지나간 오래 전의 활력이나 기분을 되찾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기에 더욱 감명 깊었다.
(2024.04)
-16일차
책에 대한 욕심은 부릴 수 있어도 독서는 마음대로 진도를 낼 수가 없다. 어리석은 식탐과도 같은 것인데, 한 번 욕심을 부려 독서에 매진한다. ‘리인허’의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를 초저녁까지 다 읽고, ‘박완서’ 선생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밤늦게까지 읽는다.
‘리인허’ 저작의 요지는 여성에 대한 ‘인권회복’이 그 첫 번째고, ‘성’과 관련한 남녀관계의 다양성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소개 및 부연 설명이 그 두 번째다.
이제는 눈에 익은 ‘젠더’, ‘퀴어’라는 개념 외에 ‘사랑’과 ‘의식’이라는 4개의 주제별로 ‘결혼’, ‘동성애’, ‘동성의 합법적 결혼’, ‘독신’, ‘성적 쾌락’ 등 남녀 간 혹은 동성 간에 ‘사랑’이 생겨날 경우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들에 이 시대가 과거처럼 편견 없이 그 행복을 찾아 해결해주는 것은 이 시대의 정신이자 희망 있는 미래 사회로 가는 여정이라는 의견을 책 전체를 통해 ‘칼럼’의 형식으로 책 서두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하게 개진하고 있다.
-17일차
‘김봉진’의 <책 잘 읽는 방법>을 단숨에 읽는다. 오랜 독서 습관에 관한 일종의 중간점검이랄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무엇인지’, ‘책을 읽으면 달라지는 것들’ 등 독서의 목적과 효용에 관해 평소 독서를 잘 하지 않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을 향해 이해가 빠르고 쉽게 독서를 실천할 수 있도록 꾸며진 책이다. 부록에는 독서를 위해 추천할 만한 책들을 소개하고, 한켠에 교훈이 될 만한 문장들을 추려놓기도 했다.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리인허 지음/김순진 옮김/아르테 2020년판
여성에 대한 시각변화는 시대정신이자 대세
1
여성도 인간이다. 모든 논의는 먼저 이 말, ‘여성도 인간이다’로 시작, 출발해야 한다. 저자 ‘리인허’는 이 책에서 귀에 익지만 다소 낯선 단어를 선보인다. ‘남권(男權)’. 중국사회에서 수천 년간 지배적으로 이어져 온 가부장적 사회의 또 다른 말로, 중국에서는 이 말로 그 개념을 드러내는 것 같다.
중국은 2차 세계대전 후로 급격한 정치적 변혁을 거치면서 이념적으로 ‘사회주의 국가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공산당 1당 체제’를 굳혀오고 있다. 한때 낡은 봉건주의와 계급제도를 타파하겠다며 냉혹한 과거 청산에 올인했고, 내부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치며 지금은 외관적으로는 남녀평등과 공정한 사회를 이루었다며, 먹는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며 인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 내부에서는 여성의 인권신장 부분에서 여전히 오랜 과거의 구태의연한 인습적 시각을 떨쳐내지 못해 급격히 변화해가는 세계조류 속에서 혼란을 경험하는 중이다. 저자 ‘리인허’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된 요지는 ‘여성에 대한 시각변화’와 아울러 남녀가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남녀관계의 다양성에 대한 시각변화’를 아울러 요구하고 있다.
2
-서양은 성(性)을 ‘죄의식’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동양은 ‘수치심’의 입장에서 살피려든다. (본문 중에서)
여기서 동양은 중국을 말하지만 극동지방인 중국이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전부터 불교, 유교, 한자 문화 등을 공유하며 비슷한 정신문화를 계승해온 탓에 우리 역시 중국과 유사한 정서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서양이나 동양 모두 동일한 관점이 있다고 한다면 성(性)과 관련한 모든 행위는 남성에게는 비교적 자유를, 여성에게는 부정적인 책임감을 덧씌움으로서 희생을 강요하고, 삶에 억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뒤집어 본 관점에서는 서양의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성(性)은 자유롭고 긍정적이었으며, 동양인 중국에서도 성(性)행위는 장수와 건강과 직결된 것으로 역시 긍정적이었으며, ‘소녀경’과 같은 성(性)에 관한 경전이 발간될 정도로 존중받는 행위이기도 했다(인도도 마찬가지다).
그랬던 남녀 간의 성(性)은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전래되고, 동양에서는 유교가 창시되면서부터 음란하고 사악하며 불결한 의식으로 전락하는 동시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정치적 탄압의 대상이 되며 사회의 어두운 한 구석으로 쫓겨 나가게 되는데, 그 희생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이 경과하도록 지속 된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 이르러 성에 대한 의식이 눈에 띄게 혁명적인 변화가 수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녀평등을 통한 구태를 척결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이 문제에서 만큼은 대중의 지지를 못 받는 채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해프닝처럼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그것은 우리 한국도 그 근본적 기조에서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부부가 집에서 포르노를 보고 잠들었다 주변신고로 공안에 의해 구속되었는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구속했다는 판단에 나중 중국정부가 사과하고 보상금까지 지급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니 동성애에 관한 소동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저자는 동성의 합법적인 결혼에 대한 법안까지 마련되어야 진정한 인민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중국 인민이 행복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책을 관통하는 많은 현지 사례들과 저자의 논조를 보면 아직 요원한 모양이다.
3
밀레니엄이 지나며 다가온 지구촌 시대는 최근 100년 사이에 엄청난 변혁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정치조직인 왕정과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민주주의가 창궐하게 되었고, 새로운 이념인 공산주의가 동구권에서 석권하다 밀레니엄을 조금 앞두고 무너지는가 하면, 컴퓨터와 정보화 사회가 한 시대를 풍미하더니, 미래사회의 첨병인 인터넷과 AI시대가 향후 대세처럼 정치, 경제, 사회를 쓰나미처럼 뒤덮고 있다.
일부 학계에서는 벌써부터 AI의 급격한 대두에 따른 사이보그의 인류 멸종 시나리오까지 거론하며 불안한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여권신장’은 그 와중의 앞뒤에 ‘페미니즘’이라는 명칭으로 잠시 봇물처럼 터져 서구를 뒤덮었다가 잠시 소강상태를 벌이고 있지만, 처음 그 이론이 주창되었을 때의 충격여파가 워낙 지대했던 탓에 여전히 그 도도한 물결은 현재진행형 상태이다.
이제는 세계 각국에 성(性·SEX)문제 뿐만 아니라 젠더라는 명칭으로 그 권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으며, 남녀의 혁명적 의식변화를 유발시키는 각종 이슈-동성결혼의 합법화, 비혼, 동거, 포리아모리 등-에 대해 대대적인 캠페인뿐만 아니라 각국의 입법활동에도 적극적이고도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기회확대로 여성의 역할과 의식이 더욱 높아지며 갈수록 그 비중도 증대되면서 그 영향력이나 파급력도 확대될 것 같다.
4
저자 ‘리인허’는 물론 홀홀단신은 아니겠지만 지금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거주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특별한 이념체제 아래에서 ‘성에 대한 의식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여권신장, 남녀평등, 인류의 행복추구-를 열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라는 책 제목이 시사하듯 저자가 앞으로 투쟁해 나가야 하는 방향은 멀고 험란한 여정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중국의 체제 자체가 ‘남녀평등’을 강하게 주창하고 있고, 거대한 중국 사회의 교육기회도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그러나 평등하게 확대되어 과거 명·청 시대와 같은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일각의 움직임 속에서도 일사불란, 공명정대한 판단이 하부 층에서부터 형성, 고무되어 그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관측이다.
5
비록 성(性)과 관련한 여러 이슈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 사회의 내부와 그들의 의식 이면을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는 비슷한 환경의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며, 보다 발전적인 사회변화를 위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저자의 성(性)과 관련한 반복적인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학설과 이론, 사례들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그런 류의 지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여성이 약자로서 처한 현실은 그 개선에 있어서 녹록치 않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났던 거센 물결은 한 번에 걸쳐 명멸되었던 역사의 많은 사례와 달리 여성들의 의식 확대와 그 열정으로 계속 이어갈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하며, 많은 남성들도 결코 쉽지 않겠지만 의식변화와 실천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4. 04)
-18일차
박완서 선생의 장편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다. 4월의 때 아닌 따스한 날씨 속에 어딜 가나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일사 후퇴 전후 서울에서 힘겨운 피난살이를 하는 일가족의 이야기가 실감나게 펼쳐지는데, 독자를 향한 이야기 장악력이 대단하다.
주인공의 서울대 입학생이라든지, 미군 피엑스에서 일하게 되는 경험 등에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부분은 다른 장편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동일한 배경으로 기술되어졌기 때문이다.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현실은 모순투성이들로 아주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소설작품 속 상황이 진실해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이 간극 사이에 우리 삶의 비밀이 은밀히 놓여있는 것처럼 매혹되기도 한다.
-19일차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장편소설/웅진지식하우스 2022년판
그녀와 그녀들이 일구어가는 나라
1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줄 안 것은 작품 중반을 넘어서 ‘지섭’이라는 또래 친구를 만나 그의 집을 보고난 부분에서 자신의 작품 <나목>을 거론하는 문장을 읽고 난 후였다.
주인공이 서울의 미군 피엑스에 취직한 부분이라든지, 화가 박수근을 그 안에서 만난 일이라든지 등이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처럼 내용이 똑같이 겹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흥미롭게, 어쩌면 소설이라서 재미있게 읽어온 이 작품 안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진실이라는 점에 이르게 되는데, 이제 약관의,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전쟁이 주는 그 모든 고난을 극복하며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작가의 젊은 날 노정에 일말의 경악과 아울러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박완서’ 선생을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명성과 작품 일부, 그리고 사진의 모습을 보고 판단한 바로는 지적이지만 대단히 유약하고 감성적인 여성으로만 여겼던 것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선입견을 싹 정리하면서 사람 보는 눈의 형편없음을 처절하게 반성했다.
박완서 선생이 처음 작가로 데뷔하던 당시를 회고한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 알게 되었는데, ‘화가 박수근’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순수한 취지에서 출발되었다고 한다. 당시 ‘신동아’라는 월간지의 논픽션 부문에 응모하기 위해 ‘화가 박수근’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원고를 써 나가기 시작했는데, 응모 제한인 사백 매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 이르고는 체념에 이르렀다가 곧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써 나간 원고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소설가로의 출발을 다졌다고 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엿보게 되는 그녀의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순수한 열정 때문이다.
일부 문학 비평가는 그녀의 작품들을 두고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당시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기록물의 차원에서 진정성 있는 시각으로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대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2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 자신의 처절한 자전적 소설이어서 더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당시 세기말 전 세계적으로 요동친 격동의 역사의 한 현장을 살아온 세대뿐 아니라 이후 그 역사를 공부하며 그 세대의 손에서 자라난 우리들도, 이어지는 새로운 세대에게도 모두 공감될 수 있는, 저마다 가슴 한 가득히 따스한 공명이 가득한 한 편의 대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작가가 쓴 대부분의 작품 군들을 보면 이 땅에서 우리 어머니와 그녀의 딸들이 살아가는 강인한 면모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즉, 이 땅의 여성들의 면모를 세세하게 알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의 삶에 대한 시각과 의지는 세계 어느 지역의 여성들과 다름없이 대부분 보편적이고 한결같이 비슷하다는 것을 각종 문학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각 나라와 지역이 지형과 기후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이 땅의 여성에 대한 고유한 면모를 작가의 힘으로 잘 살려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큰 공명과 감명을 자아내게 했다는 점에 존경을 표하고 싶은 것이다.
이 작품은 좌우 이념의 극한 대립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전쟁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살아남기 위해 그 어떤 행위도 불사하는, 마치 화염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들의, 특히 작가 자신의 처절한 체험을 우선으로 하는 이야기다.
당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었던 가부장적 질서 체계 속에서 이념에 깊이 물든 오빠(인민군으로 갔다가 탈영하며 다리에 총상을 입어 운신이 불가능한)를 가장으로 엄마, 올케, 그리고 내가 조카 둘을 데리고 일사 후퇴 후 모두가 빠져나가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 적막강산과도 같았던 수도 서울에서 인민군을 맞아 이념 선택의 여지도 없는 채 국군이 다시 수도를 탈환할 때까지 긴박하게 살아냈던 시간들이 작품 전편을 이룬다. 그 후 먹을 것이 곤궁해 외국의 구호품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무기력하고 특히 비참했던 서울 생활 중에서 미군 피엑스에 직원으로 채용되어 근무하며 가족들의 가장 노릇과 엄마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까지 이르는 고난에 찬 여정들을 담담하게 구술하듯 밝히고 있다.
3
여성은 사회를 이루는 커다란 한 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잠시 잘못 보기에 따라서 남성 위주의 문화 산물에 현혹되어 제대로 된 시각을 갖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시각으로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기는커녕 자칫 삐뚤어지거나 잘못된 인식의 뿌리로 말미암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시각으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삶을 못 살아보는 불행한 우를 범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위기감이 자주 엄습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여성들의 이야기에 더 자주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매사에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상황이 더 자주 의식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이런 비유를 들먹이는 것이 다소 불합리한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지금까지 역사의 진보나 발전은 문화 변방 세력권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 논리가 지금껏 역사의 변방이자 비주류였던 ‘여성’에게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잘못된 견해일까. 요즘 들어 각계 여성들의 저작이나 문학작품들을 눈여겨 읽게 되는 이유이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을 보면 그녀와 그녀들이 지금껏 일구어왔고 일구어가는 나라의 면면들이 잘 들여다보인다. 이 작품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그런 맥락에서 읽혀진 소설이다.
(2024.04)
-20일차
‘이창후’의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를 펼친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독서란 일종의 과거에 대한 기억의 확인 작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어려운 ‘서양 철학’을 영화라는 장르를 활용해서 고전, 중세, 근세, 현대 등의 시대별로 나눠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시원한 게 오랜만에 머리가 다 맑아지는 느낌이다.
한편으로 우리네 삶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지식이면 지식, 기억이면 기억, 인생의 가치관이면 가치관 등 중요한 덕목들 전반에 관해 한 번쯤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이 적당한 때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덩달아 해 본다.
-21일차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
-이창후 지음/새문사 2020년판
생각한다, 고로 나는, 인간은 존재한다
1
-니체에 따르면,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주어질 때 거기에서의 가장 바람직한 삶이란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항상 새로운 상황에 맞게 자신을 재창조해나가는 삶이다. (본문 중에서)
2
-실존주의 철학은 각자에게 던져진 상황 속에서 각자에게 절실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실존’이란 ‘개개의 인간’을 의미한다. (본문 중에서)
3
서양 철학사의 흐름을 대중에게 이미 알려진 유명한 영화들의 줄거리를 사례로 이해시키고 있다는 점이 기존의 개론서와 달리 퍽 이채롭다. 철학은 그 내용을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현학적이고도 어려운 개념이나 용어를 선택함으로 해서 지루하고도 난해한 나머지 읽는 사람들로부터 쉽게 외면 받아왔다.
해서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스타워즈>, <에이리언> 등의 이미 유명세를 탄 영화들로 시대별 철학의 주요 개념이나 방향 등에 비유적 설명을 제시하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부터 철학의 암흑기이자 종교철학 시대인 중세를 지나, 데카르트, 칸트, 헤겔의 근세, 러셀, 비트겐슈타인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주요 조류를 개괄적이나마 알기 쉽게 설명한다.
4
학생시절 전공과 무관한 서양철학의 무조건적 이해는 지식인으로 행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고통스런 의례였다. 읽지 않으면서도 ‘헤겔의 변증법’과 관련된 철학책을 과시라도 하듯 옆구리에 끼고 모임에 나가면 주변의 부러움에 가까운 대접을 당시에는 용이하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칸트’나 ‘헤겔’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 ‘라이프니쯔’ 등의 철학자들은 좀체 넘어서기 힘든 장벽이었다. 읽었지만 도무지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철학은 오랜 독서경력에서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다.
세월이 흐르며 이리저리 여러 분야의 책들을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니 어려운 내용에 대한 독해와 이해력이 강화되었고, 더불어 복잡하고도 어려운 개념들에 대한 이해도 많이 개선되면서 독서에 탄력이 붙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어려운 분야의 책에 대한 도전의식도 점점 강해지면서, 읽고 나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세계에 대한 폭 넓고 근접한 이해가 주는 환한 성취욕에 잠시 흥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처음 선택하게 될 때면 습관적으로 순수 철학분야 쪽으로 쉬이 발길이 돌려지지 않으며 마음 한 구석이 채워지지 않는 채 허전한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늘 하는 말처럼 책도 인연이 있어야 읽어진다고 스스로가 지어 믿는 것처럼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5
철학은 삶을 바르게 이해시키는 학문으로 그 역할이 정해져 있다. 다른 말로 올바른 생각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길을 열어주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발을 들여놓고 사는 이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생각을 하며 사는, 인간의 숙명이라고도 할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미래를 책임져 줄 ‘열쇠’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가면 안 되듯, 생각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건강하고 올바르게 사유하는 방식이 있는데 그걸 철학이라는 학문이 가르쳐주는 것이다.
6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책에서 밝혀주고 있지만 현대인이 사유하는 방식은 고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하던 이천 년 전 시대와 크게 다름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날이 급격하게 변화해나가는 나머지 쉽게 따라붙을 수 없거나, 현재를 이해할 수 없는 채 급류에 떠밀려가듯 허둥지둥 급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로서는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대두된다.
이 책 한 권으로서 지금 지구상의 대세로 자리 잡은, 서구 문명이 주도하는 현대의 일상들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과거의 흐름과 지금의 방식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가 변화해 나갈 방향까지 희미하게나마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는 동시에 보다 차분한 의식으로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남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잘 해 나가는 것, 결국 혼자서 하는 일이다.
그렇게 철학은 길이고 여행이어라. (본문 중에서)
철학은 스스로 길을 찾는 여행인 것이다.
(24.04)
4월이 시작되며 읽을 요량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8권을 모두 읽었다. ‘김봉진’의 <책 잘 읽는 방법>은 다 읽었으되 독후감은 별도로 작성하지 않았다. 저자가 책을 읽히기 위해 독자들을 안내하는 책자라 독서를 습관으로 붙박아서 읽는 나로서는 따로 의견을 붙일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 전편에 흐르는 내용은 보기에 재미있고 흐뭇했다. 책 말미에 있는 읽을 만한 책 소개편도 퍽 유익했다.
4월 들며 아파트 단지 내 곳곳에 아름다운 봄꽃들이 화려하게 그 모습들을 드러냈는데, 책을 읽다 간간히 밖에 나가 그 모습들과 함께 봄을 만끽하며 사진으로 담아내느라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 눈이
부신다. 이건 해가 갈수록 더 하지 않을까 싶은 괜한 허무감도 감돈다.
화려한 봄날이 다 지나가기 전에 더욱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사치스런 고민을 해본다.
(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