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주도를 찾은 방문객이 1528만 명을 넘었다. 역대 두 번째다. 경남 도민이 4번 이상 다녀온 수치다. 5년 이내 재방문율은 70%를 넘었다. 쉬러 간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쉬러 가는 제주도에 음식이 빠질까? 청정음식, 향토음식을 먹으러 제주도에 간다는 연구결과도 최근 나왔다. 그런데 음식 때문이라면 꼭 제주도에 가야 하는 것일까? 추억을 살리면서 비용은 아끼고 맛을 즐기는 비법이 있다. 그것도 경남사람의 입맛에 맞춰 변신하는 제주음식이 경남에 있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고기국수·돔베수육
구수하고 깔끔한 맛 일품인 보양식
제주말로 ‘돗괴기국수’다. 돗괴기는 돼지고기. 집안 대소사에 손님 대접용으로 만들어 먹던 제주도 향토음식이다. 돼지뼈 곤 사골육수에 국수를 말아낸다. 돼지고기를 삶아 편육으로 썰어 국수고명으로 얹는다. 그래서 고기국수다. 멸치육수에 여러 가지 채소 고명을 얹어 내는 잔치국수와는 좀 다르다.
“간단하게 한 끼 후루룩 때우는 잔치국수하고는 차원이 다르지요. 보양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육수를 내는 데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 드시고 나면 기운 난다는 손님들이 많아요.”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제주할망돼지국밥’의 주방장인 이병익(60) 씨의 말이다. 이 씨의 말대로 뽀얀 국물은 곰탕처럼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이 씨는 좀 더 진한 맛을 내기 위해 돼지뼈만 고아서 육수를 내는 제주식 대신, 돼지고기 삶은 육수를 함께 섞어 만든다고 한다. 세 번 고아내는 삼탕법이다. 먼저 120㎏ 이상 나가는 덩치 큰 돼지의 뼈를 8시간 고아 육수를 낸다. 이어 다시 물을 부어 6시간 고아 재탕 육수를 만든다. 거기다 돼지고기 삼겹살과 앞다리살을 6시간 삶아 육수를 낸 후 세 가지를 한데 섞어 완성한다.
국수는 중면을 쓴다. 큼지막한 돼지고기 편육이 대여섯 점 국수 위에 얹혀 나온다. 보기만 해도 배가 두두룩해진다. 곰탕에 밥 대신 국수를 말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당근채와 달걀지단, 대파채, 김가루 고명이 고기국수 때깔을 화려하게 만든다. 멀겋게만 보이던 제주도 고기국수가 맛도 모양도 한층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고기국수 외 ‘제주할망돼지국밥’에는 제주식 수육 메뉴가 있다. ‘돔베수육’이다. 사장님이 제주도 출신이라 상호에 제주할망이 들어갔다는데, 고기국수와 돔베수육도 제주도 사람인 사장님 덕에 들어간 메뉴란다. ‘돔베’는 ‘도마’를 가리키는 제주도말, 뭉텅뭉텅 썰어서 도마 위에 차려내는 제주도식 차림법에 많이 들어가는 말이다.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노련한 이병익 주방장은 한방약재와 야채육수에 돼지고기를 삶아 고기 누린내를 깔끔하게 잡아낸다. 고기국수는 7000원, 돔베수육은 소 2만 원, 대 3만 원이다.
제주할망돼지국밥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1125-9 ☎ 055) 552-1002
갈치회·구이·조림
입안에서 살살 녹는 싱싱한 맛
빤닥빤닥 윤나는 은백색 갈치는 보통 제주갈치로 통칭한다. 갈치 어장이 제주도 근해와 서남해 일대에 형성되기 때문에 은갈치는 몽땅 제주산 갈치가 된다. 창원에 제주산 낚시갈치만 취급하는 갈치전문점이 있다. 주남저수지 길목에 있는 ‘주남낚시갈치명가’다. 낚시가 좋아 낚시를 밑천으로 식당을 차렸다는 박상협(57) 씨와 낚시 좋아하는 남편 덕에 갈치전문점 주방장이 됐다는 김영미(54) 씨가 공동 사장님이다.
“정말 제주갈치 맞냐?”고 물으니, 박 씨는 “직접 여수에서 출조해 낚는다”고 말한다. 식당이 잘 되면 물량만큼 다 대지 못해서 제주산 낚시갈치를 공수해 쓴다고 덧붙인다. 신선도를 보면 직접 낚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기에 음식을 청했다.
먼저 갈치회가 나왔다. 생선이 흔한 경남에 살지만 남해군 미조까지 가지 않는 한 맛보기 힘든 갈치회다. 눈부신 은빛 갈치회가 옥쟁반에 담겨 나온다. 일단 시각적으로 감동이다. 상처 하나 없는 금속성 은색이 틀림없는 낚시갈치다. 입안에서 살살 녹아 없어지니, 금세 한 접시를 먹게 된다. 비린내는커녕 고소한 뒷맛이 갈치의 정체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무조건 공기노출을 줄이려고 애씁니다. 싱싱할 때 손질해서 진공포장 후 숙성시킵니다. 경매 거쳐 시장 매대에 오르면 아무래도 신선도가 떨어지지요.” 박 사장은 내친김에 갈치 고르는 법도 알려준다. 지느러미 부분 살색이 붉은 빛을 띠면 싱싱한 갈치란다.
구이와 조림에 쓰인 갈치는 삼지짜리 한 마리가 1인분이다. 어른 손가락 3개를 붙인 굵기의 갈치를 삼지라고 한다. 맛보기 전에 크기에 놀라자 “전문점인데 이 정도는 돼야 안 되겠냐?”고 되묻는다. 식용유에 구웠다는데 고소한 맛이 버터 구이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부드러운 식감은 말할 것도 없다.
갈치조림은 경상도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매운 맛으로 식욕을 자극한다. 역시 생물 갈치답게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될 정도로 부드럽다. 독특하다면 무와 단호박을 깔고 조렸다는 것. 설탕을 쓰지 않고 슴슴한 단맛을 낸다. 갈치회 5만 원, 갈치구이 2만 원, 갈치조림 1만4000원이다. 갈치회는 4월까지 맛볼 수 있다.
주남낚시갈치명가 창원시 의창구 동읍로 233-5 ☎ 055) 295-1588
제주도 돼지고기
두툼하게 썰어 풍성한 육즙 특징
제주도 돼지고기가 맛있다는 이유는 뭘까? 제주도 출신 돼지는 특유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면서 육지 돼지와는 다른 형질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특별한 종으로 대접 받으면서 제주 흑돼지는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이라 못 먹는 것은 아니다. 제주축산진흥원의 사육 두수를 제외한 제주도산 흑돼지는 먹을 수 있다. 거기다 흑돼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백돼지도 있다.
고기 맛을 좀 안다는 고기보태기들은 제주 돼지의 식감이 육지 돼지에 비해 부드럽고 맛 또한 한층 고소하다고 한다. 미각이 무딘 사람은 도마 위에 두툼하게 세팅돼 나오는 ‘돔베고기’로 제주 돼지를 구분한다.
인근 식당과 공동구매로 제주산 돼지고기를 공수해온다는 거제시 ‘그리다 제주’는 고깃집만 18년째라는 김순애(40) 씨가 사장님이다. 제주도 여행에서 제주 돼지를 맛본 후 그 맛에 푹 빠져서 제주 돼지를 취급하게 됐단다.
상차림은 쌈채소와 무쌈, 마늘편, 쌈된장 등 일반적인 반찬류에 고사리와 꽈리고추, 대파, 토마토 등 구이용 야채가 많이 나와 인상적이다. 참숯 화로가 등장하고 이어 돔베고기가 나온다. 도마 위에 도도록하게 말아 담은 고기는 3cm 정도의 두께감이다. 오겹삽, 항정살, 가브리살, 갈비살 모듬이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고기가 불판에 올려지고, 제주식 소스인 액젓이 불판 가운데 자리 잡았다. 제주도에서는 멜젓이라는 멸치액젓을 내지만, 이 집에서는 갈치속젓을 쓴다. “쌉싸름하면서 독특한 비린 맛이 돼지고기의 기름지고 느끼한 맛을 잡아요. 콤콤한 비린내도 후각을 자극해서 고기를 더 맛있게 드실 수 있어요.” 김 사장은 손님이 고기 구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영업방침이라면서 집게를 집어든다. 두툼한 고기를 안팎 고루 익히고, 풍성한 육즙이 빠지지 않도록 절묘하게 굽는다. 잘 굽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짤막하게 ‘타이밍’이란다.
이 집에는 특별 후식이 있다. 달걀지단 위에 빨간 김치밥을 엎어 나오는 볶음밥이다. 이름하여 ‘화산볶음밥’. 고기 잘 먹은 손님들은 볶음밥의 등장에 ‘빵’ 터지고 만다. ‘화산볶음밥’이 제대로 제주도를 그린다. 생오겹살 200g 1만3000원, 통가브리살 120g 1만 원.
그리다 제주 거제시 아주1로 1길 20 ☎ 010-9735-7676
전복모듬물회
중독성 있는 맛, 바다냄새 ‘물씬’
싱싱한 횟감을 채소와 함께 푸짐하게 섞어먹는 물회는 여름철 별미다. 하지만 마니아들에겐 제철이 따로 없다. 마니아들 덕에 계절음식이라는 한계를 벗고 사시사철 물회를 내는 전문점이 늘고 있다. 삼천포 바다를 끼고 있어 사철 물 좋은 횟감을 구할 수 있는 사천에 ‘제주전복물회’라는 물회 전문식당이 있다.
수산물 유통업을 함께 하는 식당이어서 마당에는 제법 큰 규모의 대형 수족관들이 설치돼 있다. 한겨울인데도 팔팔한 활어와 전복, 멍게, 해삼, 가리비 등이 가득 차 있다. 양식기술의 발달로 해산물도 철이 없어지는 참이다.
이 집의 대표메뉴는 ‘전복모듬물회’. 전복을 포함해 5가지 해산물이 들어간다. 전복, 해삼, 멍게, 광어회 그리고 문어숙회다. 의외의 문어숙회에 이유를 물어봤다. “삼천포 돌문어가 유명하잖아요? 소문난 만큼 맛도 있거든요.” 이상석(53) 사장의 대답이다.
물회 사발은 횟감으로 수북하게 덮여 나온다. 야채와 육수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야채에도 독특한 부분이 있다. 실밥같이 가늘게 채 썬 노란 단무지다. 차가운 냉육수 때문에 쪼그라들어 꼬들꼬들하게 씹히며 단맛을 낸다. 물론 바다냄새 물씬한 회 맛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방장을 겸하고 있는 이 사장은 10년 전 제주물회를 메뉴화하면서 제주도에서 물회 비법을 배워왔다. “제주 물회의 비법은 육수양념인데요. 제주도에서는 된장양념을 쓰거든요. 된장에 보리밥을 발효시킨 식초를 씁니다. 구수하지만 경상도사람 입맛엔 텁텁한 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육수양념에 변화를 줬단다. 채소 육수에 사과·배즙, 매실청, 식초 그리고 고추장, 고춧가루를 쓴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를 썼는데 이 사장의 육수 맛에 반해서 단골이 된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다. 고운 주홍색 육수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혀끝에 착착 감긴다. 반찬으로 나온 전복내장조림이 물회와 단짠단짠 조합을 만들며 입맛을 돋운다. 전복모듬물회 2만 원.
제주전복물회 사천시 사천대로 762 ☎ 055) 835-9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