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부어 발효시킨 앵두.
몇 년이나 된 앵두를 꺼냈다.
여기에 지난해 발효한 모과주 건더기, 미숫가루, 우유를 넣고 숭늉을 부은 뒤 저었다.
앵두는 입안에 넣고는 오몰조몰하면서 과피를 살살 먹고는 씨를 뱉었다.
뱉어낸 목질의 씨를 음식쓰레기통에 버리려고 검정비닐을 풀렀더니만 생잎 들깻잎이 덩어리채 잔뜩 들어 있다.
왜 버렸지?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차마 아내한테 물을 수는 없었다.
식재료가 상했으니까 버렸을 터.
서해안 산골마을에 주소를 둔 나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들깨잎을 재배한 농사꾼의 수고를 이렇게 허망하게 대접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아닐 게다.
추운 겨울철인데도 후덥지근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들깨를 재배하고, 깻잎을 한장씩 따고는 낱장의 갯수를 세어서 실끈으로 묶고는 공동판매소에 출하였을 게다. 최종 소비시장에 내왔을 터.
식재료를 샀으면, 이내 요리했더라면 식재료 보존기일을 넘겨서 썩히는 일은 없을 게다.
뭐 하려고 잔뜩 사다가 쟁여놓고는 다 먹지 못하고, 결국에는 쓰레기통에 쏟아서 버려야 하는지.
퇴직 전에도 그랬듯이 퇴직한 뒤에도 금전은 아내가 알아서 처리한다.
나는 가정 살림살이에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기에 생활비로 얼마큼 쓰는 지도 전혀 관심밖이다.
늙은 영감인 내가 그런 것까지를 알려고 하면? 늙은 아내는 눈살을 찌뿌릴 게다.
생활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 멀쩡한 식재료를 음식쓰레기통에 쏟아버려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조금은 씁쓸하다.
쥐꼬리보다 조금 더 긴 연금일 망정 알뜰하게, 절약하면서, 쓰면 얼마나 좋아?
생 들깨잎을 재배하고, 고개 숙여서 손으로 하나하나씩 낱장으로 따려면 얼마나 힘이 들고 고단하겠어?
또 그것을 수집해서 운반하고, 원거리 도시로 이동하고, 도매상과 소매상을 걷쳐서 최종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담으려면 얼마나 영농비, 투자비, 시간, 노력 등이 들어갔겠어?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퇴직한 뒤 귀향해서 텃밭농사를 짓는 체 한다.
귀향했어도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귀농인이 아니다. 그냥 귀향귀촌인이어서 농사를 조금만 짓는다.
영농기술도 없고, 영농비도 별로 들이지 않았기에 시장에 내다 팔만한 농작물은 전혀 생산하지도 못한다.
고작, 늙은 아내와 같이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짓는데도 무척이나 공이 많이 들어가고 힘도 부친다.
농촌 실정, 영농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나로서는 농작물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다.
그런데 대도시 소비생활에 길들여진 주부는?
쪼르르 걸으면 이내 시장에 도착하고, 지갑만 열면 모든 농산품을 금방 쉽게도 좋은 것만을 골라서 구입할 수 있다.
농사꾼, 유통업자, 상인들의 심정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할 게다.
이런 심리일까?
내 눈에는 멀쩡한 들깻잎을 내 식구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서 버렸느냐고?
아내한테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는 카페에 글 쓰는 내가 좀 그렇다.
이쯤에서 글 접는다.
2017. 1. 6. 곰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