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래 <부용산>을 아시나요
이곡의 작사가인 박기동은 벌교 출신으로
목포 항도여중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박기동에게는 박영애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당시로선 고치기 힘든 병이었던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24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박기동은 여동생을 그리워 하며
시를 한편 썼는데 그 시가 바로 부용산이었다.
부용산의 진짜 창작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가 이후 1998년에서야
박기동의 제자인 경기대 김효자 교수가 부용산의 원본을 발굴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일보 김성우 논설위원이 이틀에 걸쳐서 부용산의 사연을
기고하면서 세상에 사연이 알려지게 되었다. 😪
부용산 산허리엔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호주로 이민가 있던 박기동은 부용산이 재조명되면서 2002년
일시 귀국해 산문집 "부용산"을 출판했고 창작 배경을 정리해주었다.
이후 2004년 호주 생활을 청산하고 영구 귀국해 2005년
서울에서 87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부용산은 본래 1절만 있었으나,
1998년에 원로 연극인 김성옥이 호주로 박기동을 찾아와
2절을 짓는게 어떤가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에 박기동은 자신의 한많은
삶을 회고하는듯 2절을 완성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