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타령 - 경기민요, 대우합창단 에헤, 남문(南門)을 열고 파루(罷漏)를 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이 밝아온다 에헤 에헤 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에헤, 덜커덩 소리가 왠 소리냐 경복궁 짓느라고 회(灰) 방아 찧는 소리라 에헤 에헤 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을축 사월(乙丑四月) 갑자일(甲子日)에 경북궁 이룩일세 에헤 에헤 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 이헤이에이야 단산봉황(丹山鳳凰)은 죽실(竹實)을 물고 벽오동 속으로 넘나든다.
에헤 에헤 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이 경복궁 타령은 경기 선소리의 하나로서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 노역 인부들이 수고로움을 잊기 위한 일종의 노작가요이다. 경복궁은 조선 때의 궁궐로 서울 북악산 남록에 위치허여 1394년(태조3넌)에 준공 입궁하였고 1592년 임진회란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1867년 (고종 4넌)에 대원군이 재건하여 1872년에 고종이 입궁하였다. 경복궁은 조선의 궁전중 본궁으로 태조가 창건한 것인데 임진왜란때 소실된 후 국가 재정이 부족하여 중건을 못하고 순조 때와 헌종 때 계획은 하였으나 실행을 못하였다. 대원군은 1865년 경복궁 중건의 계획을 발표하고 영건도감을 두어 대원군이 그 총책임을 맡고 추진하였다. 처음에는 백성들의 부역에 신중을 기하고 관리, 백성, 종친들에게 고루 원납전을 바치게 했으며 대원군도 부역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위로금을 지급하고 무중대 농악대 남사당패 등을 동원하여 격려, 고무하여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그러나 공사를 추진하는 동안 점점 경비가 많이 들어 차차 옹색해 지자 원납전을 받고 벼슬을 파는가 하면 세금을올리고 서울의 성문 출입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당백전을 발행하는 등 무리한 일을 강행 하였다. 그리하여 1872년(고종 9년)에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었고 경제적인 파탄을 초래하여 대원군 몰락의 한 원인이 되었다. 가창방식은 다른 민요와 같이 도입부가 없이 선창자가 원마루를 독창으로 부르고 나면 여러 창자들이 제창으로 후렴을 부른다. 이렇게 장절형식으로 된 이 소리의 장단은 잦은모리 8분의6박자에 맞추어 부른다. 이 작품을 공유하여 볼수있게해주신 벗님께.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