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서정희는 꾸준히 준세의 집을 들린다.
혜미와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주말이 되면 혜미는 서정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여자로서 몸의 변화를 느끼는 혜미는 할머니나 아빠보다는 서정희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혜미는 다른 아이들보다 첫 생리가 빨리 시작이 되었다.
다른 형제나 자매들이 없는 혜미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언니!
나 어떻게 해?“
”뭘?
무슨 근심이라도 있니?“
“.........저......생리를 시작했어요.”
“그랬어?
생각보다 빨리 시작을 했구나!
그러나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 만큼 혜미가 건강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마!
어떻게 처리하고 있니?“
”슈퍼에 가서 생리대를 사기는 했지만........“
혜미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이 빨개진다.
“혜미야!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 혜미도 완전한 여자로서 건강하다는 증거야.“
서정희는 생리에 대한 지식과 그것에 대처하는 몸가짐을 알려준다.
또한 생리를 시작하면 앞가슴이 부풀어 오를 것이다.
이제 아이가 아닌 여인으로서의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서정희는 혜미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간다.
혜미를 위해 브래지어와 생리 때 입을 생리 팬티를 구입해 주려는 마음이다.
혜미는 생전 처음으로 여자로서의 몸가짐을 위한 속옷을 준비해 주는 정희가 마치 언니처럼 의지가 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언니!
고마워요!“
“그래!
이런 일들을 아빠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릴 수 없는 것이지?
앞으로도 어떤 일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거나 의논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 말을 해!“
“그럴게요!
언니가 있어 정말 좋아요.“
혜미는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초등학교 사학년인 혜미는 다른 아이들보다 초경을 일찍 시작한다.
처음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던 혜미는 서정희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누구와 의논을 할 상대가 없는 혜미로서는 서정희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서정희하고라면 어떤 말이든 모두 해 오고 있는 사이었다.
서정희가 그런 혜미를 위해 이른 퇴근을 하고 곧장 준세의 집으로 와서 혜미의 당황스러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함께 쇼핑을 한 것이다.
조여인은 서정희의 그런 마음씨에 감탄을 한다.
“우리 혜미가 벌써 생리를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할미보다는 서실장이 더 편했던 모양이었나 보네.”
“어머니!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 문제를 말을 할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는 것이 그만큼 혜미가 저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안 그렇겠나?
어린 것이 속은 말짱해가지고 그런 문제는 이 할미보다는 서실장이 더 든든했던 모양이구랴!“
조여인은 서정희의 손을 잡는다.
“서실장!
고맙고 미안해요.
우리 준세가 어서 이런 서실장의 마음을 알고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서실장의 마음을 받아드렸으면 얼마나 좋겠소.“
“어머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어머님 또한 저를 밀어주시니까 준세씨 마음도 열릴 것이라 믿으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맙소!
내 반드시 우리 준세의 마음을 돌리도록 노력을 할 테니 기다려 주구려!“
조여인은 모든 것에서 정희가 마음에 드는 것이다.
혜미와 사이도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혜미를 잘 다독이며 혜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가끔씩 올 때마다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을 하기도 하고 집안의 청소를 하기도 하면서 잠시도 몸을 편안하게 쉬려고 하는 성품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여인의 마음에 드는 며느리 감이었다.
“어머님!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준세씨의 마음은 굳게 빗장이 질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말에 풀리는 그런 빗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제가 모든 정성을 다해서 그 빗장을 풀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조금씩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고맙소.”
“준세씨의 마음의 상처가 생각보다 너무 큰 것 같아요.”
“그렇지!
그 아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어린 것을 보내고 사라진 것 보다는 그 아이 주변에서 받은 모욕과 치욕들이 너무 컸겠지.
그 아이가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참아 받은 세월들과 시간들이 치욕스러웠겠지.“
“대단한 집안의 여자인 모양이지요?”
서정희는 조심스럽게 조여인을 통해 그 여인에 대한 것을 알아본다.
“대단한 집안이지.
감히 우리 같은 것들이야 어디 사람취급을 하는 것들이 아니지.
소위 말하는 갑부라는 것들이 어디 우리네 같이 가진 것 없고 홀시어머니 외아들을 사람처럼 생각이나 하나?
그저 여자 하나 물어서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것으로 밀어붙이면서 온갖 모욕을 준 모양인데 준세는 그것을 그대로 참았던 모양이더라고.“
조여인은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들이킨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마음뿐이었겠지.
어디 그렇게 아이를 팽개치고 모습을 감추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그것은 준세 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 아이를 그렇게 믿었으니까........“
옛일이 생각이 나는 조여인은 큰 한숨을 내 쉰다.
“우리 준세가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을 때 난 아들을 그대로 영영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정말 힘들었지.”
“왜 안 그러셨겠어요?”
“휴!
그때를 생각만 해도 지금도 가슴이 벌벌 떨려오지.
그때 저 어린것이 눈에 들어오기나 했었겠나?
울다울다 치쳐서 잠이 들곤 했었지.“
조여인은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혜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때는 솔직히 말해서 손녀보다는 내 아들이 더 걱정이 된 것이지.
내 아들의 어떻게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 하느라 어린것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야.
그러다 문득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나 싶어 저 어린것이 어미에게 버림받고 이 할미도 거두지 않는다면 불쌍해서 어쩌나 싶어서 어린것을 거두기 시작을 한 것이다.“
“어머님 마음을 이해를 합니다.
얼마나 암담하시고 마음이 아프셨을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에미 년이라고 어린것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어 보낸 것을 보니 더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더군!
신생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골고루 갖추어 보낼 마음이 있다면 어린 것을 데리고 살거나 결혼을 시킬 것이지 어디 그런 인간들이 있는지 지금도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조여인은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어머님!
이제는 어머님께서도 지난 모든 것을 잊으시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그래도 어머님이 계셨기에 혜미가 이렇게 맑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을 이다음에 혜미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고생하는 것이야 뭐가 대수겠나?
이제라도 우리 준세가 마음을 잡고 서실장과 결혼을 해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기만 한다면 내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어!“
“네!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서정희는 조여인의 손을 마주 꼭 잡는다.
이젠 준세의 마음의 빗장만 벗겨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준세의 마음에 자신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정희가 돌아가고 나서 조여인은 아들을 기다린다.
오늘 저녁 약속이 있다고 늦게 귀가를 하는 준세였다.
서정희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준세가 귀가를 한다.
준세가 간단한 샤워를 하고 나오자 조여인은 차를 가지고 준세의 방으로 들어간다.
“서실장이 왔다 방금 전에 돌아갔다.”
“서실장이 왜요?”
“그래!
그래서 너와 나는 아무래도 어미를 대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
“우리 혜미가 벌써 첫 생리를 시작한 모양이다.”
“네?
혜미가요?“
“그래!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첫 생리를 시작하고 나니 이 할미에게도 아빠에게도 말 할 수 없어 아마 서실장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더라.
혜미에게 자상하게 이것저것을 설명해주고 여자로서의 몸가짐이라든가 이제 생리를 시작했으니 가슴도 나올 것이니 데리고 나가 그에 맞는 속옷들을 사주더라.“
“그랬군요.”
“그래!
아무래도 여자아이들에게는 할미나 아빠보다는 엄마가 해 주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것을 서실장이 그렇게 자상하게 해 주고 있으니 그래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
혜미를 생각해서라도 서실장의 마음을 받아드리면 좋겠다마는.“
“어머니!
저는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혜미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비야!
그렇게 네 고집만을 부릴 일이 아니다.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이 어미가 얼마나 더 이 집안의 살림을 맡아서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어머니!
살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쓰세요.
이제 어머니 연세도 있으신데 스스로 하실 생각을 하지 마세요.“
”애비야!
살림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무리 도우미 아주머니를 쓴다고 해도 집안에 안식구가 없으면 불 꺼진 화로처럼 온 집안에 온기가 사라지고 만다.
집안에 온기가 없다면 가족들이 어떻게 되겠니?“
“......................”
“자꾸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지 말고 마음을 열도록 노력을 해다오.
이 에미가 너를 안고 그 많은 세월들을 살아온 것이 왜였는지 아니?
나도 여자이고 나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왜 없었겠니?
허지만 이 집안의 대를 이으려는 희망 하나로 너를 남 못지않게 키우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넌 이 집안의 대를 끊으려 하고 있다.“
“어머니!
요즘에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이 꼭 아들이어야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저는 혜미에게 제 모든 것을 물려줄 생각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집안의 대를 이을 사람은 딸이 아니고 아들이어야 한다.”
“어머니!
제가 결혼을 한다고 반드시 아들을 낳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딸을 낳을 수도 있고 또 아이를 낳지 않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그럴 수도 있다.
허지만 노력을 해 보지도 않고 네 마음만을 믿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혜미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혜미를 위해서도 그렇고 이 애미를 위해서도 또 집안을 위해서라도 네 마음을 바꾸어주는 것이 좋겠다.“
준세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한 말이 없다.
모든 것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머니!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준세는 어머니의 마음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대답을 한다.
준세 역시 서정희가 싫어서가 아니다.
누구보다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인 것은 준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허지만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는 자신이다.
더 이상 다른 여자들과의 인연을 만들어 갈 자신이 없다.
자신 곁에는 오직 어머니와 혜미만 있으면 족한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처럼 어머니가 언제까지 자신과 혜미를 지켜주시지는 못하실 것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세월이 어머니를 빼앗아 가 버릴 것이다.
준세는 어머니의 늙어 가시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이젠 어머니의 소망을 뿌리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