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이 사회복지사가 되끼까지...
혜정은 부산에서 1남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건축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개인 사업을 벌이다 부도를 내는 바람에 그의 어린 시절은 긴 터널처럼 가난이 이어졌다. 형제들이 각각 친척집에 흩어져 살아야 했고 어머니는 계란 행상과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다듬는 일 등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가난과 싸워야만 했다. 초등 시절 혜정의 자존심을 크게 자극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하필이면 같은 반 친구 집 창고에 세간살이를 두어야 했던 일, 온 가족이 그 곳에서 수제비를 끓여 먹어야 했던 아픔이었다. 옷 방이 따로 있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사는 아이들에 비해 공동 화장실과 좁고 허름한 방에 사는 자신의 처지가 마냥 싫었다. 장래의 꿈이 의사 또는 약사였는데 친구들의 참고서를 빌려 공부를 해야 했던 그의 가정 형편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국립이었던 부산대 의류학과에 진학하여 그 분야에 전념하려 했으나 오히려 실습과 전시회 참여 비용이 더 들어야 해서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처럼 오랜 시간 계속되는 궁핍의 시간을 돌파하기 위해 그는 결혼을 선택했다. 환경 좋은 집안에 시집가면 만사형통이라 여겨 대학 졸업과 함께 만화가 매니지먼트로 잘 나가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딸 둘을 낳고 서울 강남으로 올라와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 속으로 들어왔다. 혜정이 바라는 대로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여가활동과 자원봉사에도 흥미를 갖게 되면서 긍정과 활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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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두 딸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
“제게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90년대 말 서울 수서에 밀알학교를 건립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제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이 결사 반대운동을 벌였지요.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저도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 베란다에 학교 건립 반대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님비 현상의 주최로 나선거죠.”혜정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신이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장애인들과 친근하게 지냈던 그였기에 마음이 무거웠고 책임감도 컸다. 뒤이어 고양시로 이사한 혜정은 특수학교 고등부 졸업생들이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을 접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된다. 서강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전문 과정을 마치고 애덕의집에 시간과 능력을 내 놓으며 본격적인 자원 활동에 나서게 된다.
김혜정은 가난 때문에 어려움을 알았고 고생을 통해 견디는 힘을 길렀으며 서울 강남에서 범한 오류로 인해 바로 서는 깨달음을 얻어 선한 사회복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느끼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41명의 장애인 제빵사들의 아침을 노동으로 행복하게 열어 사회에 이바지하도록 기회를 부여했다는 사실은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김혜정은 소울베이커리 원장이라는 직책보다 사회복지사 김혜정으로 부르면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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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울베이커리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