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는 지금, 2022년 5월까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도망으로 넘어온 제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나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도망이 운명인 거겠지.
나와 맞는 주파수를 가진 제주.
나는 현재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
나는 '이방인'이다. 말 그대로 제주는 내 고향이 아니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다. 처음 제주에 정착했을 땐 난감했고, 힘들었다. 어떠한 인맥도, 누구에게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오롯이 내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 것이다. 어떻게 제주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한 나는 결국 나를 믿고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처음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아쉬운 결과를 날 때도 있었지만 지금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 괜찮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클 때면 위로의 공간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다. 나는 오늘 그 위로의 공간이 되어준 장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제주스럽다 말할 수 있는 곳. 말들이 뛰놀고 안개 낄 때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는 '제주 마방목지'를 말이다.
마방목지를 뛰노는 말들
마방목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516로 2480
516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한라산의 넓은 초원지대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뛰어노는 평화로운 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풍경을 보고 고수목마라 불리는 이곳. 한라산 중턱쯤에 위치한 마방목지는 봉긋한 오름과 푸릇 빛깔 들판이 넓게 펼쳐져 영화 '각설탕'을 연상시키는 이색적 풍경을 만나게 한다. 그곳에 뛰노는 말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제주의 특별함마저 느낄 수 있다.
물론, 문호재 보호 구역으로 목장 내부는 출입이 불가능하고, 겨울에는 방목이 제한적이어서 말을 보기 어렵지만, 날씨에 따라서 맑은 날에는 넓디넓은 푸른 초원에 풀을 뜯으며 뛰노는 말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인생 샷을 남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마방목지이다. 또한 흐리면 흐린 대로 안개가 끼어 운치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제주마
마방목지는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를 방목하는 곳이었다. 흔히 제주도 조랑말이라고 하는데 이 제주마의 유래에 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제주대학교 농과대학부설 축산문제연구소는 석기시대부터 제주도에서 재래마가 사육되었다 말하고 있다. 또한, 제주마는 농경문화에 크게 기여한 역축으로서 한때 사육두수가 2만여 두에 달하였다. 하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1985년에는 1,000여 두로 감소했다. 따라서 그 보존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198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마방목지 여행기
마방목지를 처음 안 건 2020년도인 것 같다. 한창 적응하기 힘들었던 그 시절.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향하는 5.16도로를 따라 여행을 자주 했고, 그때마다 만났던 마방목지는 내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 번은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잠시 주차를 해 마방목지의 말들을 구경했고, 어느 순간 이 장소에 푹 빠졌다는 걸 알게 됐다. 한 시간, 두 시간 그 이상을 머물며 말을 구경한 나. 초록빛 초원을 뛰노는 말의 모습을 보고 힘들었던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마치 나도 저 말처럼 제주에서 뛸 수 있을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마방목지는 내게 그런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힘들 때면, 지칠 때면 찾는 곳. 뛰노는 말에게서 응원을 받는 곳으로 말이다.
제주마가 뛰노는 마방목지
오랜만에 다시 찾다
그렇다면 마방목지를 찾은 건 언제일까. 아마 작년 초가 마지막인 거 같다. 2020년도엔 그렇게 자주 찾았던 마방목지가 2021년도엔 한 번뿐이었고, 올해는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하자니 제주에 제대로 정착을 하고 난 뒤, 쉼 없이, 또 바쁘게 일했고, 그러다 보니 지칠 틈도 없었다. 오롯이 일에만 몰두한 1년. 그렇기에 마방목지는 내가 찾던 여행지에서 조금 멀어진 것이다. 그러다 최근 다시 이곳을 찾게 됐다. 일에 대해 슬럼프가 찾아왔고, 조금은 지친 것이다. 꽤나 힘들었던 올해 초. 코로나에도 걸리고, 무기력증이 찾아와 번아웃 증세까지 보인 나는 1년간 쉼 없이 달려온 것에 대해 쉼이 필요했나 보다. 그래서 몸이 먼저 반응했고, 한 달 정도를 그렇게 힘들게 지냈다. 하지만, 계속 이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나는 2020년도 주야장천 찾았던 마방목지로 여행을 떠났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풀을 뜯어먹는 말
그대로 있어줘
다시 찾은 마방목지는 그대로 있었다. 역시나 사랑스럽게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수 백 마리의 제주마는 여전히 풀밭을 뛰놀고 있었다. 어린 조랑말부터 시작해 다 큰 말까지 초원을 열심히 누비는 모습에 나는 요즘의 내 상태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상반되는 모습에 오히려 힘이 생겼다. 나도 다시 저렇게 달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고, 평화로운 분위기 덕에 불안정했던 내 모습에 평안을 다시 찾게 됐다. 또 언제 마방목지를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그대로 있어주었으면 하는 곳. 마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밍기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곳이 내겐 마방목지인 것에 틀림없음을 깨닫게 됐다.
초록빛의 사랑스러운 마방목지
초록빛 초원의 마방목지. 만약 제주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5.16도로를 탄다면, 꼭 이곳 마방목지를 들러보자.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제주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마방목지니까. 또한 말이 뛰노는 모습과 함께 사진 찍기에도 좋은 곳. 그곳이 바로 마방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