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5: 24.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25. 여자가 와서 26. 자녀의 떡을 27.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마 15: 24.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시니
이 구절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 6)고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의 선교 명령의 반복으로서 예수께서 맡으신 사명이 어떠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결코 유대인에게서만 영원히 국한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하는 요 4: 22 말씀처럼
(1) 예수께서는
자신의 민족의 구원 문제를 일차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의 전개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엄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도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 10)고 하였다.
(2)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했어도
유대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보여준다.
(3) 예수께서는 유대인 사역에 힘쓰시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전도할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셨으므로 제자들은 예수의 뒤를 쫓아 힘써 선교해야 할 것이다.
* 요 10: 16 -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행 1: 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란 표현은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양'이라 표현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 겔 34: 6 -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참 목자 되신 예수를 오히려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잃어버린 양'이 된 것이다.
* 요 10: 11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마 15: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
그러나 그 여자는 와서 예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을, 자기를 도우실 수 있는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1]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가나안 여자는 예수 자신의 무시(無視)와 냉대(冷待)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무릎을 꿇고 예수께 경배하였다.
* 마 2: 2 -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 마 8: 2 -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22절과 관련하여 언급된 두 가지 즉 그 여자의 경건한 자세와 쓰라린 고통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마태는 '절하다'(*, 프로세퀴네이)의 미완료형을 사용함으로써 그녀가 예수의 발 앞에서 계속 연이어 절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주여, 저를 도우소서.
'도우소서'의 헬라어 '보에데이'(*)는 '부르짖음'의 뜻인 '보에'(*)와 '메어 달리다'의 뜻인 '데오'(*)에서 합성된 '보에데오'(*)의 명령형으로 긴급한 구조를 요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예수의 침묵하시는 의도를 알지 못하는 가나안 여자는 더욱 간절하게 그의 도움을 구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을, 자기를 도우실 수 있는 신적인 존재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마 15: 26. 자녀의 떡을 취하여 -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
예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들에, 이방인들을 개들에 비유하셨다.
그것은 영적 특권에 있어서 사실이었다.
1]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서'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그 우선권이 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배타적(排他的) 특권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을 말씀하셨다.
* 호 1: 9-10 –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그러나 복음 전파는 먼저 유대인이고 다음이 이방인이었다.
* 롬 2: 9-10 –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바울도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먼저 받은 종교적 특권을 인정하였고, 민족적 구원의 문제가 중요한 과제임을 인정하였다.
* 롬 3: 1-2 –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 롬 9: 1-2 –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2]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개'(*, 퀴온)라고 하는 말은 모두 악한 것을 상징하고 그것을 야유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 출 11: 7 –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 삿 7: 5 -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 마 7: 6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 빌 3: 2 -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인 이방인이나 이단자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 시 59: 6 - 그들이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예수께서 사용하신 '개'라는 말인 헬라어 '퀴나리온'(*)은 경멸적 의미에서의 '들개'나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사납고 악한 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기르는 '애완용 개'나 '강아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개'라는 표현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부를 때 사용했던 경멸적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이방인들이 '자녀' 곧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것은 영적 특권에 있어서 사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하셔서 친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으셨다.
* 출 19: 5-6 –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계명들을 순종치 않는 이방인들은 도덕적으로도 인간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마 15: 27.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
그 여인은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대 자신이 이방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주시기를 간구했다.
1]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반의 접속사(but even) '마는...도'(*, 카이 가르)는 '그러나...조차도'의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앞사람의 말을 일단 긍정하면서도 그 말에 완전히 승복(submission)하지 않고 또 다른 의견을 개진(改進)하는 경우에 사용되었다.
가나안 여자는 하나님의 질서에 의해 유대인들보다 이방인인 자신들이 선택되지 못한 족속이요 권리를 갖지 못한 자, 즉 개들임을 인정했다.
이처럼 자신을 개로 인정하는 것은 성경에서는 가장 큰 겸손의 행위로 여겨졌다.
* 삼상 24: 14 –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 왕하 8: 13 - 하사엘이 이르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더라.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더라.
특히 사람들은 자신을 극도로 비하(卑下)시켜 표현할 경우 바로 '죽은 개' 또는 '개 같은'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 삼하 9: 8 -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 삼하 16: 9 -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2]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팔레스타인 근방의 지역들에는 식사하는 주인 곁에서 부스러기를 얻어먹기 위해 개들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고 한다.
특별히 그 지역들에서의 식사법을 보면 주로 손으로 찢어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 부스러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나안 여인은 사실상 자신이 개의 취급을 받는 이방인으로서 메시아가 베푸시는 구원과 은혜의 식탁에 참예(參預)할 수는 없다고 하여도 최소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일부를 힘입을 수는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tasker, Schlatter).
그녀는 자신에게 적용된 비유를 놓치지 않고 유효 적절히 선용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의역해 보면
“주님 당신이 저를 개로 취급한 것은 결국 저의 요구를 당신께서 들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정녕 당신은 당신의 법을 어기지 않고도 충분히 저의 요구를 채울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정당한 일에 따를 뿐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는 아무런 권리 주장도 못할 뿐 아니라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다만 가장 비천한 피조물의 몫으로 할애(割愛)된 것만을 위하겠습니다. 진정 당신은 그것이 없다 해도 아무런 손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Pulit Commentary)로 풀어볼 수 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가 비록 적으나마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임을,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독점된 하나님이 아니라 만민의, 열방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었다.
* 롬 3: 29 -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