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31(월)_사39.1-8_보라 날이 이르리니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다시 새아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영의 주인도 주님이시요, 나의 몸의 주인도 주님이시니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이시간 주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주옵소서. 주의 양식을 먹고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죽을병을 치유해 주시자 그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또한 이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바벨론 사절단으로 인해서도 기뻐하게 됩니다.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이 자신에게 존경을 표하자 마음이 크게 높아진 것입니다(Alexander). 그는 이제 바벨론을 강력한 군사 동맹국으로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Leupold). 간절히 주님을 바라보며 애통해하던 히스기야가 순식간에 땅의 관점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과연 어떠한 가능성이 있을까요? 오늘은 이러했다가 또 내일은 저러하듯, 우리는 늘 종잡을 수 없는 생각에 흔들립니다. 우리 사람이 참으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죽을병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와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금방 그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그리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생명 없는 세상의 것에 자신을 내어주고 맙니다.
히스기야는 기뻐하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의 보물을 자랑하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임을 까마득히 잊은 채, 거대한 바벨론의 힘 앞에 사실상 굴종하고 말았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 사건을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마음을 시험하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바벨론 사신들이 와서 그에게 나타난 기적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중심이 어떠한지 그 마음을 시험하고 계셨던 것입니다(대하 32:31).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수많은 은혜로 채우시며 친히 인도해 가십니다. 때로 주님은 환경과 사람을 통해 우리를 시험하시는데,이는 우리의 마음이 진실한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히스기야는 그 시험에 실패합니다.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신이 취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역대하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하32:25, 쉬운성경] 그러나 히스기야는 교만해져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게 노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의 방문을 크게 기뻐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이미 교만해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강대국의 인정을 반기며 기뻐한 모습은, 죽을병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까마득히 잊었음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하나님보다 세상의 힘과 자랑거리를 의지하는 태도가 바로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을 찾아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히스기야를 죽을병에서 살리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은, 언제든 그 생명을 다시 거두어가실 수도 있는 분이셨습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었던 모든 금과 은, 그리고 무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바벨론으로 빼앗길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히스기야 자신은 살아남을지라도, 그의 자손들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며 매섭게 책망합니다.
히스기야의 이 교만한 죄로 말미암아 결국 유다의 비극적인 멸망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심판을 통보받은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생전에는 ‘평안함과 견고함’이 있을 것이니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나만 포로로 끌려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나온 말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영적 배경이 역대하 32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32:26, 개역개정]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히스기야는 즉시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쳤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טוֹב)”라는 히스기야의 고백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고가 지극히 타당하고 정당하다는 엄정한 인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동시에 징계의 때를 늦춰주신 하나님의 크신 긍휼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Alexander, Calvin, Delitzsch, Leupold, J. Watts, Lange).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는 경고는 반드시 이루어질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다음 세대가 결국 멸망에 이르렀듯,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때 역시 점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한 사람의 죄로 인해 나라가 멸망의 길을 걸었듯, 이 세대의 끝이 오는 것 또한 바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의 죄만으로도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마땅합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그리고 죽을병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던 히스기야의 모습은 훌륭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쇄신하고자 했던 그의 결단은 참으로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직접 경험하고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하고 비참한 본성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아무런 가능성이 없습니다. 24시간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늘 감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길뿐입니다. 주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생명의 양식인 이 말씀을 먹고 붙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침,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멘. 아멘.
나의묵상.
이 아침 내가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주님 한분으로 만족하는가? 주님 한분만이 나의 기쁨인가? 우리 더함교회의 기쁨은 무엇인가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 한분인가? 아니면 그 외 다른 추가적인 것들인가? 이 아침,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주께서 나와 우리 더함교회에 말씀을 통한 명확한 문화를 만들어주시기를 원한다. 이 아침 우릴 가르쳐 주시길 원한다.
묵상기도.
주님, 사람은 한계가 많습니다. 하늘의 삶, 영적인 삶을 살고 싶으나, 이 육체의 정욕으로 인해서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 육체는 너무도 세상을 사랑해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날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 양떼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양들을 주의 지팡이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