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6(토) 대림절 열넷째날(갈라디아서 2:21)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겸손하게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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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이 짧은 성경 한 구절에는 “하나님의 은혜”, “율법”, “의로움”, “헛됨”, “그리스도”, “죽음”과 같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 각각의 단어들 하나하나 입으로 되뇌며 깊이 묵상해 볼만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드러난 바울의 주장과 논리 자체가 그리스도교 복음의 지니는 깊이를 보여 줍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안식처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한 글자라도, 특히 철저한 바리새파는 모든 구전 전통의 세부규칙까지도 지켜 하나님께 다가서고자 했습니다. 그 노력과 치열함은 본받을 만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더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정말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절실하게 깨닫는 것은 역시 우리의 한계입니다. 성실하게 애쓰는 마음처럼 소중한 것이 없지만 동시에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합니다. 말은 꼬이고, 손과 발은 맘처럼 되지 않고, 굳센 다짐도 어느새 희미해진 나를 발견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깨달아 실천해야 하는 것은 바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입니다.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하늘만 바라지 않고 할 일은 하려는 다짐, 이 모두가 필요합니다. 마치 인간이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서만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늘만 쳐다보아서도 안 됩니다.
모든 행위의 보답으로 사랑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하나님 사랑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조건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 그냥 쏟아 부어지는 것입니다. 아래의 조건과 아무 상관없이. 그래서 놀랍고 감격스럽습니다. 자격이 없지만 받아들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배워서 나 자신과 내 형제 자매와 이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조건 없이 품을 수 있다면,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이 바울 사도가 말씀하셨던 푯대이고, 예수께서 보여 주셨던 경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겸손하게 서는 자만이 실행할 수 있습니다.
* 기도 : 하나님, 내 뜻을, 내 생각을, 내 감정을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먼저 하나님 앞에 서고, 그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소서.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삶의 적용 : 1. 일정한 시간을 내어 정기적으로 기도하기 2. 3.
* 함께 기도할 내용 : 1. 내 힘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도록 2. 3.
(비어 있는 삶의 적용과 기도 제목들은 스스로 채워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