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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의 비전과 남북통일
1986.03.18 (화), 한국 부산 웨스턴 비치호텔
제가 목이 쉬어서 미안합니다. 그동안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꽉 잠겼어요. 실례가 되겠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정보세계에 있어 첨단에 서야 세계를 움직일 수 있어
박보희씨가 나를 소개를 했는데 굉장히 엄청난 내용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선 내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선생이 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사람,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냐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으로 소개를 했는데, 여러분은 일생 동안 단상에서 많은 말씀을 하는 분들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하실 때, 높은 자리에 서 가지고 높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이와 같이 높은 자리에 올라간 내 위치가 상당히 불안한 위치이니만큼 여러 선생님들이 전부 다 일심동체가 되어 주셔서 끌어내려야 되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발 아래까지 끌어내려 주셨으면 하는 것이 본인의 소원입니다. 그럴 수 있어요? 그렇게 하시겠다면 말을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말을 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줄 것으로 믿겠습니다.
소개한 것과 같이 저라는 사람은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가까이 따르는 사람들까지도 모르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발판은 소련 모스크바로부터 위성국가, 뻬이징, 공산국가 치하에까지 뻗어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세계에 있어서 모든 첨단기준을 파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러한 조직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워싱턴 타임즈 같은 우리 신문사는 미국의 CIA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깊은 정보까지 캐내고 있고, 또 전세계가 미국정부의 CIA보다도 워싱턴 타임즈를 더 믿고 그 나라의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모든 정보를 통고하고, 그것을 세계적인 언론기관인 워싱턴 타임즈가 발표해 주는 것이 정책수행에 이롭다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즈 같은 신문들은 좌경적인 신문들이기 때문에 민주세계의 선진국들이 아무리 공산세계의 비밀을 발표해 주기를 바라도 전부 다 깔아 뭉개는 것입니다.
그러나 워싱턴 타임즈는 그와 정반대로 세계적인 사건이라면, 소련이 불리하고 공산세계가 불리한 얘기라면 즉각 발표해 주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정보처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 워싱턴 타임즈 내에는 일반 기자들과 우리 통일교회 기자가 있습니다. 그래 정보를 보고하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기자의 이름을 써 가지고 보고해야 즉각 발표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금후의 자기 국가의 소련에 대한 외교정책 비밀을 전부 다 통일교회 기자에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IA라든가 FBI가 정보를 종합해 가지고 레이건 행정부에 보고할 때는 반드시 워싱턴 타임즈 편집국장의 검열을 받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보세계의 첨단에 서 있는 입장을 유지하지 않고는 세계적인 조직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21세기의 비전은 통일된 하나의 세계
자, 이러한 일들을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물론 금후 인류의 소망, 20세기의 비전보다도 21세기의 비전, 한국에 대한 비전보다도 세계에 대한 비전을 추구하고, 아무리 한국적인 21세기의 비전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 비전이 세계의 21세기 비전과 상치되고, 상극이 될 때는 한국의 비전은 세계의 비전 앞에 흡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 대한 비전을 논하기 전에 세계에 대한 비전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세요. 나이가 많으니까 말하려면 침이 말라요. (물을 마시심) 나이 많으신 분들이 잘 아실 거예요. 용서하세요.
그래, 저라는 사람이 세계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에서는, 한국의 유명하고 고명한 교수님들은 모르실 거예요. 그렇지만 세계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있다면 레버런 문밖에 없다'고 보는 겁니다. 미국을 지도하고 있는 위정자들도 미국을 중심삼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세계를 중심삼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손해가 된다고 할 때는 공산주의도 불사하고 타협할 수 있는 자리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문제를 걸고 일하는 사람은 레버런 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사실일 거라고 봐요.
자, 그러면 이제 21세기의 세계의 비전이라든가 한국의 비전이 무엇이냐? 그것은 평화의 세계다, 통일된 하나의 세계다, 즉 이상세계의 실현이 이루어진 차원 높은 유토피아적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40억 인류가 각각 국가라는 한계선 내에 있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든지 그런 소원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만 가지고 이러한 소원이 달성될 수 있느냐? 인간의 지식, 인간의 사고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상체계만을 가지고 이것이 가능하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신이 있다면, 그 절대적인 신과 절대적인 사람이 하나된 사상적 관계를 거치지 않고는 그런 세계를 펴 나갈 수가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신인합덕(神人合德)을 이루지 않고는 그런 세계를 이루지 못한다는 거예요.
지금 그렇잖아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야말로 민주와 공산으로 대치된 상황하에서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세계정세를 해결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세계정세를 해결하지 못한 입장에서 아무리 국가정세를, 갈라진 남북한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세계를 소화할 수 있는 통일된 대한민국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를 하나 만들기 전에 남북이 하나돼야 되겠고, 남북이 하나되기 전에 우리 개개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남북이 아무리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대한민국이 통일된 평화의 나라라 하더라도 우리 사람, 우리 개인들이 하나 못 돼 있을 때는 우리 자체와는 상관을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 내 자신이 고민 가운데 있고, 내 자신이 불안 가운데 신음하고 있다면 자신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그 나라가 아무리 행복한 평화의 나라요, 세계가 아무리 행복한 평화의 세계라 하더라도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고 볼 때 오늘날 세계도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우리 한국도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우리 사람도…. 우리 사람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40억 인류가 살지만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의 평화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것은 20억의 여자, 20억의 남자가 합한 소원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우리를 대표한 남자 여자의 소원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평화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남자인 나 자신, 여자인 나 자신이 하나된 자리에서 그것을 추구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나라가 하나되고 세계가 하나되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이 투쟁을 하고 고심하는 그런 자신이라면 그 평화의 나라와 평화의 세계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 만들기에 앞서 내 몸 마음을 하나 만들어야
그러면 오늘날 인류 역사라는 것이 이상적 출발을 했느냐? 현재 우리 자신들을 중심삼고 생각하더라도 물론 그렇지만 완전히 몸과 마음이 통일된 사람으로서 역사가 출발했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 자체를 보게 되면 우리 자체는 선조들에 의해 가지고 계승되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우리 선조들의 맨 종지 선조가 되는,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 해와의 출발은 어떠했느냐? 절대적 신이 있다면 절대적 신의(神意)에 일치될 수 있는 아담 해와로 출발했느냐?
성경에는 말하기를 타락했다고 했습니다. 타락이 뭐냐? 불완전한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 통일되지 못한 것, 완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완전하지 못한 인류 조상이 심어져 낳아져 가지고 세계적으로 확대된 것이 오늘날의 인류이기 때문에 그 세계사적 결실로 나타난 것이 오늘날 양대 진영이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공산주의는 뭐냐? 물질을 중심삼고 우리 몸뚱이를 연결해서 세계의 판도로 결성된 하나의 무리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뭐냐? 마음의 세계를 대표한 개인의 판도를 세계적으로 확대시켜 가지고 수확기에 나타나 결실될 수 있는 최후의 결과로 나타난 주의입니다. 그래서 유심사상, 유물사상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말들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 오늘날 공산주의는 백 년 가까운 역사를 중심삼고 되어졌습니다. 그 역사는 우리 인간시조로부터 심어져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가 갈라지고 나라가 갈라졌다고 통일을 운운하고, 평화의 세계, 하나의 세계를 운운하기에 앞서서 우리 자체의 몸과 마음을 언제 하나로 만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우리 인생사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마르크스 같은 사람들도 모순 논리를 탐구해서 변증법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는 거예요. 마음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마음 가운데에 투쟁 개념이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 이 개념이라는 것은 나만이 아니고 우리 선조로부터 쭉 계속되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분명히 투쟁 개념 가운데서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변증법 논리를…. 이것이 헤겔을 통해 가지고 나왔지만, 헤겔 같은 양반이 그러한 문제에 고심한 사람이예요. 그러니 모순된 인간의 출발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철학은 무엇을 해 나왔느냐? 완전한 사람, 도대체 완성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참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걸 추구해 나왔습니다. 오늘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참사람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화의 자리에서 하나되어 가지고 그 하나된 자리에서 세계를 포괄하고 세계와 더불어 공히 기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행복한 그 무엇을 지닌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역사 이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왔다 갔지만 '나는 역사과정에 인간의 양심과 몸의 싸움을 휴식시켰으니 완전히 통일된 나로서 세계에 선포하노라'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바울은 기독교를 새로이 수습해 가지고 현대에 세계사적인 기독교로 만든 주역, 대표자입니다. 그는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있어 그 둘이 싸우면 마음의 법이 몸의 법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몸의 법이 마음의 법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신음하는 자신을 두고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라고 한탄했던 거예요. 안 그래요?
밥을 못 먹어서 슬픈 것보다도, 내가 잘 못살아서 고통스러운 것보다도 투쟁하는 마음과 몸을 하나로 못 만드는 사실이 인간생활의 과제 중에서 보다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런 사람들이 무슨 주의 주장을 세워 놓았다고 하더라도 자기 선생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 인간들이예요. 선생보다 더 높아지겠다고 하는 인간이예요. 어떠한 사상 체계를 세워 놓으면 그 부하들은 서로 싸워 어떻게든지 높은 조건을 가지고 자기의 논리를 세워서 세계적으로 명예를 다투는 거예요. 이런 변화무쌍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들로서 엮어지고, 그러한 인간들로서 구상된 사상 체계가 이 세계에 행복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해
그래서 우리는 이제 21세기의 모든 비전을 해결하기 이전에, 미래의 모든 비전을 해결하기 이전에 오늘날 당면한 우리 자체의 비전을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각도에서 통일된 자신, 참된 자신을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해결 안 됩니다. 철학은 참사람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참사람이 되려면 이 변하는 인간들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자고로 모든 사람들이 말하지 않았어요? 성현들이 말하기를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다.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 만물 중에 인간이 제일 귀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은 조석변이라고 했어요. 전부 다 갈래를 못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나' 이것이 문제라구요. 참된나를 어디서 발견하느냐? 철학이 아무리 노력을 했지만 참된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참된 세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나'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오늘날 살아 있는 인간 자신들이 원인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고명하신 교수님이라 하더라도 '아, 나는 고명한 교수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라고 의식해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럭저럭 부모님의 사랑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태어난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못 된다구요. 제 2의 결과적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결과적 존재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원인적인 존재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원인, 원인을 추구해도 결국 그 신 자체도 불완전한 신으로 귀결되고 마니 그런 불완전한 신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이 성서 가운데 한 가지 참 좋은 복음이 있다면 그것이 뭐냐? '인간은 타락을 했다'는 말입니다, 타락을 했다는 말. 타락하지 않았다면 참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참의 제2의 존재가 되었더라면 참의 제1의 존재와 원인과 결과로 결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의 존재에 미치지 못하고 고장났다는 사실은, 우리가 노력해서 참과 일치될 수 있는 기반을 회복하는 날에 다시 참의 원인과 일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원인과 결과는 과정을 거치지만 서로 통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되기 마련이고, 돌기 마련입니다. 순환작용을 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사에 있어서, 우리 인류 역사에 있어서 타락이라는 명제는 논리적인 기준에서 참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에게 완전한 신이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놀라운 복음이라는 거예요.
자, 그러면 보자구요. 여러분, 사람은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을 좋아해요? 선생님이 어제는 요렇게 말했다가 오늘은 이렇게 말한다면 학생들이 좋아해요? 십 년 전에 한 말과 십 년 후의 말과 백 년 후의 말이 변하지 않아야 누구나 존경하는 거예요.
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한 보물이 있잖아요? 다이아몬드 하게 되면 굳은 데 있어서 그 어떠한 힘의 침범도 받지 않아요. 변치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보물이라고 해요. 굳은 데 있어서는 절대적이예요. 또, 황금하게 되면 다이아몬드처럼 굳지는 않아요. 손톱으로 금을 쭉 그으면 금이 그어진다구요. 그러나 24금이라는 그 금은 누런 빛에 있어서는 절대적입니다. 역사를 극복하고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시간성을 초월해 가지고 자기의 권위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진주, 아내들은 진주를 좋아하지요? 진주는 뭐냐 하면 조화의 빛깔, 화합의 빛깔, 하모나이즈 칼라(harmonize color)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갈고 갈더라도 밑에 들어가나 겉에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도 그 빛을 점령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변치 않는 불변의 내용, 절대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유일적인 특성을 가진 것들을 인간들은 보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우리 인간의 본성은 변치 않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우주 가운데 제일 귀한 것은 사랑
그러면 이 우주 가운데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물건과 인간을 비교하게 될 때, 인간이 귀하다는 것은 뭐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 인간세계에서 인간이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보석이예요? 따지고 보면 생명이라구요. 생명이 귀하지요? 더 나아가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나도 모르겠는데…. 자, 그러면 사랑은 어떨까요? 사랑이 귀해요, 생명이 귀해요?교수님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이 평화교수아카데미를 만들어 가지고 지금까지 가르쳐 온 말이 뭐냐? 세계 국경을 넘어서 우리 교수협의회에 들어온 교수님들은 전부 다 아카데미 패밀리(academy family;학술 가족)라는 말을 써요, 아카데미 패밀리. 그러니까 오늘은 높고 낮은 것 다 제쳐놓고, 뭐 선생이고 무엇이고 다 제쳐놓고 형제와 같은 자리에서 문답하면서 말해 보자구요. 형님과 같이 혹은 동생과 같이 이러면서….
생명이 귀해요, 사랑이 귀해요? 「어느것 하나 안 귀한 것이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딱 조건을 세워 놓고 물어 보는 것이 아니예요? 둘 다 귀하기 때문에 그중의 하나를 선택하자는 거예요. 교수님이 그렇게 대답하면 시험 점수 그거 안되겠는데…. (웃음)
자, 내가 답변해 줄께요. 젊은 청소년들, 20대가 되기 전 청소년 시대에는 마음이 붕― 뜬다는 거예요. 그때는 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달려서 한들한들하다가 떨어져서 딸랑딸랑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고 그러는 시대라구요. 모든 면에 동화(同化)할 수 있는 시대예요. 거 무슨 마음이 그렇게 만드느냐? 사랑이 움직이기 때문이예요. 그때는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시인. 문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름을 봐도 신비롭고, 매일같이 보던 해인데도 사춘기에는 전부 다 입체성으로 느껴진다는 거예요. 전부 다 신비로워요. 나무를 봐도 그렇고, 꽃을 봐도 그렇고….
그러면서 무엇을 추구하느냐? 그 느끼는 감정과 더불어 주파가 가는 데는 상대를 추구하게 된다는 거예요. '아, 상대는 저렇게 아름답겠지. 상대는 저렇게 훌륭하고 놀랍겠지. 그 상대가 나를 이와 같이 마음으로, 내가 시를 읊듯이 불러 주겠지' 이런 생각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여러 선생님들도 사춘기 시절에 잘 느꼈을 거예요.
그래 가지고 얌전한 아가씨들도…. 사대부 집안에서 담 너머 세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춘기만 되면 부모가 아무리 구박을 해도 쓰윽 목을 뽑아 가지고 세상 구경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이거예요. 생명이 그렇게 만들어요, 사랑이 엉킴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작용이 그렇게 만들어요? 이것은 틀림없이 사랑이라는 작용이 조화를 부려 가지고 그렇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안 그래요?
그러면 사랑이 뭐가 귀하냐? 사춘기의 젊은 청춘들은 서로 눈이 맞고 마음이 맞고 그다음에 불이 붙게 되면, 뭐 아버지 말이든 할아버지 말이든 아랑곳없이 가서 부딪쳐 가지고 문제가 폭발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생명이 '스톱!' 하고 브레이크를 건다 하더라도 깨진 주렁박처럼 생명이 떨렁떨렁 굴러 떨어져 나가더라도 그 길을 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좋아요. 그럼 내가 하나 묻겠어요. 생명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국민학생들한테 묻는 것처럼 이래야 재미있지, 나 혼자 얘기하면 목도 쉬고 말하기도 힘들어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할 때에도 달걀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이렇게 해야지요. 그렇게 물어야지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가 아니예요. 내가 묻는 것은 달걀이 먼저냐, 어미 아비의 사랑이 먼저냐 이거예요. 숫놈 암놈의 사랑이 먼저냐 하는 걸 묻는 거 아니예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중요하지요. 어떤 것이 먼저냐고 묻잖아요?
자, 그러면 결론을 짓겠어요. 뭐 그러다 보면 내가 할말을 못하겠어요. 이것 가지고 자꾸 싸우다 보면, 이것을 풀이하다가 보면 시간 다 보내겠으니 넘어가자구요.
그래서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묻게 되면, 사랑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이 사랑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늘과 땅을 합한 대표적인 사랑이예요. 참된 사랑은 우주가 흡수되는 것입니다. 우주가 화합하려고 하는 거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춘기 시대에 마음이 붕― 뜨고, 우주를 품고 노래를 할 수 있고, 걸음걸이 거동거리가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는 그런 신나는 마음과 그런 경지에 왕래할 수 있도록 요사스러운 작용을 하는 것은 사랑의 마음 외에는 없습니다. 생명의 힘 가지고는 못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에 앞서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내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풀지 못한다구요. 풀리지 않는다구요. 전후가 잘못되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이 되고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거꾸로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교수님들 이런 말을 처음으로 나한테서 듣겠지요. 생명에 앞서 사랑이 먼저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사랑에 뿌리를 두었어요. 그 사랑의 조화에 동참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왜 귀하냐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생명은 다 마찬가지인데 왜 내가 귀해요?
여기 오신 교수 선생님들은 명예가 제일 아니예요? 자기를 누가 조금만 무시하면 높은 명예와 권위의식으로 일보도 양보를 안 해요. '한 마디 단어라도 내가 더 아니 너는 나한테 굴복해야 된다' 그런 게 아니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사랑에는 우주가 화합할 수 있고, 우주를 끌고 다닐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만우주 하나님까지도 갖고 싶어해
내가 왜 귀하냐? 여러분 자신을 절대시하려는 그런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 이거예요. 그런 작용하지요? 그건 무엇이 하는 것이냐? 그걸 알아야 돼요. 그 근원은 내가 절대적인 참된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자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이예요. 여기에 인간의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고귀한 여러분 부모님의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그 동참의 권위를 가지면 우주 전체를 당당코 대해 가지고 주체성을 지닐 수 있는 내연의 본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몰랐지만 그러한 우주적인 동기에 의해 가지고 부모님의 절대적 사랑을 중심삼은 동참자의 권위를 가지고 나를 절대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뿌리가 자라 가지고 복중에서 자라며 부모의 사랑에서 키움을 받는 거예요. 그다음에 낳아 가지고 오줌 똥 묻혀 가면서 키운다구요. 그건 부모님이 싫어하면서 억지로 그러는 게 아니예요.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하는 겁니다. 오줌 싸고 뒤를 본 진자리 마른자리, 그것을 사랑으로 소화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럽고 귀찮으면 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뿌리를 박고 태어난 나는 복중시대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가면서 10개월 보호받다가 난 후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서 자란다는 거예요. 그 사랑의 울타리에서 자라는 거예요. 사랑에서 자라다가 철이 들게 되면 사랑의 대상을 만나 가지고 온 천지와 화답할 수 있는 참된 인간으로서 사랑에서 하나될 수 있는 가운데 살다가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짓고 인간을 지어 놓을 때, 얼마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었다는 것을 인간 자체들 앞에 체휼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한 놀음을 해야만 하나님의 대상자가 되겠으니 그 놀음을 시키는 것인데, 그것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사랑하다가 그다음에는 그 사랑 가운데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가운데서 늙어 가지고 본연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생명의 기원이 출발이 아니예요. 첫 출발이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 사랑을 전부 다 열매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완숙한 하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인격을 완성하여 본연적 사랑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먼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도 가능한 것이예요. 또,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 하는 말도 맞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뭐가 최귀냐 이거예요. 가장 귀하니까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보석은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지요? 최고로 귀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우주가, 만물 만상세계도 마찬가지이고, 영계가 있다면 영계도,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까지도 그것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귀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생명도 아닙니다. 돈도 아니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참의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면 그가 원하는 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그가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는 얼마든지 만들면 돼요. 안 그래요? 지식? 지식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지식의 왕이예요. 권력? 권력에 있어서도 우주를 창조하신 전지전능의 주인공이신데, 권력이 필요해요? 지식이 필요해요? 뭐가 필요해요?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걸 알아야
그러면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이냐? 이제 그런 문제에 들어가는 겁니다. 참된 하나님으로서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가 참된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무엇을 제일 좋아하시는가를 알아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내가 여기서 지금 딴 얘기로 공산주의는 어떻고, 무슨 사상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안 해도 된다구요. 근본문제에 들어가는 거예요. 내가 얘기하는 것이 그저 적당히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나는 이 혼란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40억 인류가 도탄 중에 신음하는 모든 시련과정을 겪으면서 누구보다도 신음하고 고통을 당하면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영계가 있나 없나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돼요.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돼요. 참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돼요.
그런 것을 전부 다 더듬어 가지고 그 정수로 빼낸 얘기를 귀하신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지금 이 시간에 만나 보고 또 언제 만날지 알아요?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는데 40년이 걸렸다구요. 40년 동안 서로 그리워하다가 만났으니 나로서는 여러분에게 최고의 것을 줘야 되겠다구요. 실험을 필한 내용이요, 사회적인 내 생활철학의 내용이요, 영계가 있다면 영계에 갈 수 있는 하이웨이, 직선 코스로 갈 수 있는 내용이요,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행복의 직선 궤도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 오지 않았어요? 그 문서방이라는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나 보자 하고 말이예요. 여기 손해보러 오지는 않았다구요. 그러니까 비판은 나중에 하고, 처음 듣는 얘기이니까 보자기를 크게 해서 싸 가지고 가요. 알록달록한 보자기든 무슨 보자기든, 흘리지 않으면 무엇이든 좋아요. 싸 가지고 가서 연구하면서, 한 가지 두 가지 생각하면서 재탕을 해야지요.
그러면 참된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을 왜 지었느냐? 지어 가지고는 왜 무책임하게 버려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느냐?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기에도 철학한 사람들이 있겠구만요. 철학은 무엇이냐? 참된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참된 신을 발견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해 가지고 지금까지 수많은 철인들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신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전부 다 벽에 부딪쳐서 낙제를 한 것이예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친 거라구요. 그래서 인본주의니 물본주의,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세계가 나왔다구요. '신이 어디 있어?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지' 이런 퇴폐적인 사상을 전부 다 갖고 있습니다. 교수님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미안합니다.
진화적 발전이냐, 창조적 조화의 발전이냐? 이 문제는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라는 거예요. 이 문제 때문에 저도 고심하는 사람 중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등등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어야 된다구요
자,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시간이…. 벌써 얼마나 지났나요? 30분밖에 안 남았구만요. 30분 안에 결론을 못 내렸다고 평받아도 할 수 없지요 뭐. 「끝에 가서 저희들도 조금 말씀드릴 수 있는 시간을 주셔야겠습니다」 아, 그것은 다음에요. 「오늘 말고 다음 기회에 말입니까?」 지금은 내가 얘기하는 시간인데, 왜 자꾸 그래요, 이거? (웃음) 「이 기회가 아니면 선생님 만나뵙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3백 명 이상의 교수들이 전부 다 나 만나겠다고 한다면 어디 한 사람 얘기만 들을 수 있어요? 이거 답답하구만요. 자기들 집이 아니고, 자기들 교실이 아니예요. 이 시간에는 싫든 좋든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웃음)
지금 이것은 학교 수업 시간과 마찬가지인데, 안 그래요? 교실에 가 있으면 선생이예요, 선생. 「이 양반이 가장 존경하는 어른인데…」 아, 글쎄 알아요, 알아. 「선생님 만났을 때 얘기 좀 해야 되지요」 언제요? 시간이 없잖아요, 시간이. 「내일 아침까지 하시면 되잖아요?」 (웃음) 자, 이거 답답하구만. 그건 자기 생각이지요. 「안 됩니까?」 공약을 정했으면 그 공약 기간 내에 끝내고 2차적으로 나가야지요. 술을 마신다고 해서 한꺼번에 죽을 때까지 먹어요? 취할 때까지 먹으면 그만둬야지요. 「그럼 교회 오실 때 말씀하겠습니다」 예, 좋아요, 좋아. 훌륭한 선생님의 말씀이 옳지요.
사랑은 주체 대상의 상응관계에서 성립돼
자, 참된 사랑을 찾기 위해서 참된 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철학자들이 상고하고 연구했어요. 또, 모든 학자들이 번대머리가 되고 지팡이를 들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어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인본주의, 사람이 하나님 대신 하자는 주의도 실패했고, 물질을 중심해서 하나님 대신 하자는 주의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종교는 뭐냐? 종교와 철학의 다른 점은 뭐냐? 철학은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자는 것이고, 종교는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하나님과 이상적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지금 어떻게 됐어요? 그런 종교가 있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돼 버렸다구요. 종교도 거기에 전부 다 부딪친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지 않으면 이상세계니 뭣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문제를 제시하노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자, 신·구약 성경 66권의 핵심으로써 그것을 전부 다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뭐 그 성경의 구체적인 얘기는 안 하겠지만 말이예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한 거예요. 누가 지켜야 할 계명이냐? 사람이….
자!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께서 떡 버티고 앉아 가지고 '잘한다' 하면서 사랑받으시겠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아니예요. 사랑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상응관계에서 사랑이 성립되는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신 말은 하나님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사랑하니 그게 첫째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 요한복음 3장 16절을 기독교인들은 다 알지요. 주일학교에서부터 똘똘하게 외우는 그 귀한 말씀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했어요. 하나님은 감리교를 이처럼 사랑하고, 장로교를 이처럼 사랑하고, 천주교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안 했다구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세상은 빼놓고 믿고 있다구요. 매일같이 외우면서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이거예요. 독생자를 죽음의 자리까지 내놓게끔 세상을 사랑한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듯이 세상을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될 텐데 전부 반대의 기독교인들이 되었으니 끝날에는 전부 다 멸망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원하는 게 뭐예요? 사랑이예요. 돈이 아니예요. 지식이 아니예요. 권력이 아닙니다. 무슨 사랑?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것하고 사람이 제일 원하는 게 뭐냐? 그다음에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는 것이 둘째 계명이니라' 그게 전부이더라 이거예요.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 인간세계에 있어서 둘째 계명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뭐냐?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고 그다음에는 사람을 절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고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이 나왔어요.
참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을…. 그렇지 않아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목을 내놓고 사랑하는 거지 목을 접어 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에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했어요. 이웃 사랑하기 위해서는 생명도 던지는 겁니다. 이웃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던져 가면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참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사랑관계를 맺으면 동위권에 참석해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랑입니다. 이 둘이 하나되게 될 때,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면 나도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됐다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맺은 그날부터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사랑의 관계를 맺은 그날부터는 동위(同位)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가진 그 모든 소유가 내 소유가 되는 겁니다.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 유명한 교수님들도 그렇잖아요? 훌륭한 교수님, 남자로 말하면 아주 미남자로, 호남자로 생겼고 지식으로 봐도 천하에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고명한 학자님인데 사모님을 가만히 보게 되면 시골에서 아무 공부도 안 하고 순박한 여자로 상대가 안 되는데…. 그 교수님이 어디 가게 되면 떡 옆자리에 앉더라도 '아! 사모님 뒷자리에 좀 떨어지소' 그래요? '우리 고명한 학자들만 모이는데 사모님은 동참하지 말라' 그래요? 절대적으로 동위권에 동참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은 사랑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집사람도 나하고 사랑관계를 맺었으니 여기에 와 앉잖아요? 안 그래요? 레버런 문만큼 노력도 안 하고 그냥 그저 따라다니면서 시중 좀 해주고 복은 다 같이 받는 것 아니예요. (웃음) 사랑관계에는 그런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서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 되시는 절대적인 하나님과 사랑관계를 맺었다 할 때는 어떨까요? 어떻겠어요? '너희는 피조물이고 나는 창조주이니 창조주는 신성한 것, 피조물은 속된 것' 그래요? 오늘날 기독교 신학이 여기에서 암적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는 거예요. 속되다고 하면서 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그래요? 그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구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사랑관계를 맺은 그 시간서부터 하나님과 같은 동위권에 동참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거 부정할 수 있어요?
이러한 논리적 관점에서 추리한다면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에 갈 때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사랑하던 것은 영원불변의 절대적인 것이니까 우리 생명을 가진 인간도 영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여기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영생해야 돼요. 당당코 영생해야 돼요. 믿음 가지고요? 생명 가지고? 아니예요. 사랑으로, 사랑으로 다 해결하는 겁니다. 이것은 위대한 말이라구요.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자의 사랑과 일체돼야
자, 그러면 몸과 마음이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언제 하나되었느냐? 못 됐어요. 그게 타락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랑을 이 몸뚱이가 모르게끔 돼 있겠어요? 우리 마음이 그것을 모르게 돼 있겠어요?
오늘날 현대 자연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이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 라는 말을 하고 있어요, 힘으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힘이 그런 주먹구구로 밤에 불쑥 이렇게 나오나요? 그러면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선후를 가려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 생각 해봤어요? 우리 윤박사님, 물리학 박사로 유명하신 분! 힘이 먼저예요, 작용이 먼저예요?
전기의 힘이 먼저예요, 작용이 먼저예요? 어떤 거예요? 작용이 먼저지요? 그 작용은 맹목적으로…. 모든 세계에 작용하는 작용체가 그냥 두루뭉실하지 않아요.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규정을 인정해야 되는 거라구요. 플러스 마이너스, 주체 대상이 있어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작용에 의해서 힘이 나오지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나오기 전에 작용이, 작용이 나오기 전에 주체와 대상 관계를 인정하라 이겁니다. 이러한 목적관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한 것이 오늘날 철학적으로 근거가 미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양심작용이라는 것은 우리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마음속에서 한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이겁니다.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아이구, 배가 고파! 아무 데에 무엇이 있는데, 먹을 것이 있는데 나가서 주인이 없으면 훔쳐다 먹고 싶어' 그러면 마음은 어떻게 해요? '네, 이놈!' 하며 사정없이 제재를 합니다.
천년 만년, 억만년 인간세계를 떠나지 않고 이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라! 높은 데 가라! 더 높은 데 가라!' 하는 마음의 작용은 그냥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작용이 있기 전에 주체와 대상의 마음 앞에 주체 될 수 있는 우주 목적의 근원이 이 관계를 중심삼고 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 작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관계적 작용이 없는데 성사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 시장에 가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 손해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양심은 그렇게 손해나는 작용을 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냐? 그것은 논리적 모순이예요.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이익보기 위해서, 몸뚱이를 제재해서 일보 일보 전진하여 선에 도달하기 위한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양심작용을 인정하려는 그 배후에는 주체 대상 관계에서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어떤 주체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세계를 점령하여 그걸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그것은 천년 전 사람이나 만년 후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허사의 마음 작용이 아니예요. 그것은 주체에 도달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어디에? 욕망을 전부 다 완성시키기 위해서 정착시킬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절대자가 있다면 절대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절대자의 사랑과 일체가 되는 날에는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다 끝난다는 거라구요. 그런 놀라운 것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한테 소개합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말이예요.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사랑의 뿌리를 중심삼고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사랑을 하면서 살다가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 사랑의 본연인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상대를 위해 태어났어
이거 15분 동안에 다 끝내야…. 뭐 박사님들한테 더 얘기할 필요도 없지요. 이만했으면 다 냄새맡고 잴 텐데요, 뭐. 결론 안 지어도 되지 않아요?
자, 그러면 잊어버리지 않게 실감나는 얘기를 해보자구요.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왜 태어났어요? 또, 하나님이 왜 사람을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장난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예요. 사랑의 대상자가 필요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지금껏 몰랐다는 거예요.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어요. 레버런 문에게도 사랑이 있어요. 나 혼자 '아이구 좋아라! 아이구 사랑 좋구만! 아이구 감사하고…' 그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미친 녀석이예요. 그래도 예쁘장한 여편네를 대하게 될 때 '아, 좋아' 그래야 만사가, 천지가 흐물흐물 화동하고 화합하잖아요? 그 말이 꽃을 피우기도 하고, 노래 같은 음성이 여기 숨어 있다 하는 것도 다 실제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 사랑의 조화에서 있는 거예요. 안 그래요?
사랑이 싫은 교수님들 한번 손들어 보소. 그런 교수는 때려죽여도 괜찮아요. 뭐 없으니까. (웃음) '저렇게 폭언을 하고도 당당하구만' 하겠지만…. 사랑이 그렇게 귀한 겁니다. 사랑 싫은 사람 없지요? 나이 많은 교수님들, 저 할머니 교수님, 사랑 싫어요, 머리 하얀 할머니? 사랑이 필요하지요? 대답은 안 하고 '흐흐흐' 이러고 있구만요. (웃음)
물 한 모금 먹고 하자구요. 나는 솔직한 사람이예요. 젊은 사람들, 미국 사람들도 잘못하면 정면에서 소총으로 쏴서 안 넘어가면 기관총으로 쏴 대는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까지 갔다 왔지만…. 감옥 갔다 와서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가 가지고도 목덜미를 타고 눌러서 내가 승리의 깃발을 꽂고 돌아왔지요.
사람이 왜 태어났는냐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기 위해서예요. 이거 참 놀라운 말입니다. 인간이 왜 태어났는지 몰랐지요? 사랑 때문에 태어났어요.
자, 그러면 이제 여기에서 그만큼 해 두고 또 한번 물어 보자구요.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게 뭐예요? 사랑이 제일 귀하지요. 사랑에 앞서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게 무엇이냐? 사랑인데, 사랑을 혼자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가 사랑을 찾으려면 무엇이 필요해요? 「여자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그렇지요. 오늘 제일 시원하게 답변 잘 했다구요. 그래, 남자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여자예요, 여자.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전부 다 집토끼 집에 두고 산토끼 잡아먹겠다고 말이예요…. (웃음) 그 놀음 했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 좀 알았지요?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지식도 아니예요. 명예도 아니예요. 명예를 가져서 뭘해요? 사랑을 못 찾았는데, 명예가 밥 먹여 줘요? 자기에게 평화롭고 영원한 세계의 행복을 노래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줘요? 죽으면 그만인데. 잘났다는 양반들, 나도 잘난 사람 중의 하나로 들어가지요, 사실은. (웃음) 잘났다는 레버런 문도 내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집사람입니다. 누가 반대하겠어요? 여자예요, 여자. (박수)
그러면 또 그 반대로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게 뭐예요? 남자지요. 이걸 갈라놓을 수 없어요. 이것은 천지의 법입니다, 공법이예요. 공식적으로 공증된 법이예요. 공증된 법이라구요. 이것을 어기는 사람은 패도자요, 이것을 무시하는 자는 반역자입니다.
자, 한걸음 더 들어가서 남자들에게 제일 귀한 것이 여자이고, 그다음에는 남자가 왜 태어났소?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웃음) 그거 웃지 말고, 여자 때문에…. 그걸 알아야 돼요. 내가 왜 태어났어요? 철학이고 뭣이고 다 집어치우고 간단한 내용입니다. 국민학교 2학년 이상이면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왜 태어나긴 왜 태어나?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지!' 할 거예요.
여기에서 나는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자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어요. 근원적 발원이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남자들은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줄 알았다구요. 이게 사고라는 거예요. 여기서 역사가 뒤넘이치는 거예요. 전후가 싹 돌려졌다는 겁니다.
그래 우리집사람은 내가 훌륭한 교시를 한다고 언제나 좋아하지요. 북을 칠 거라구요. '아, 그렇지, 그렇지' 하고 말이예요. (웃으심) 그게 그렇지 않아요? 우리집사람이 세상에서 레버런 문 유명하다고 그러는데 말이예요, 가만이 앉아 가지고 '아이구, 레버런 문 무엇 때문에 태어났소?' 할 때, 자기(어머님)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하면 얼마나 기분 좋겠어요. 그 불행한 여자겠소, 행복한 여자겠소? 「행복한 여자」행복한 여자지요.
하나님의 사랑에 종횡으로 접붙이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어
요즘 사춘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소!' 그럴 때 그 상대가 좋아하는 거 아니예요? '당신은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나는 당신을 위해 안 태어났소' 그러면 좋아해요? (웃음) 그것은 사랑의 천리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님들, 태어나기를…. 뭐 고명하신 교수님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수님이 태어난 것은 자기 집의 사모님을 위해 태어난 겁니다. 사모님을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인생문제에 있어서 그 이상 중요한 문제가 어딨어요? 남자가 태어나서 '내가 왜 태어났나?' 하는 게 다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왜 태어났느냐, 왜? 위해서 태어났는데 왜 위해서 태어났느냐? 사랑을 찾기 위해서, 영원한 가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서로가 위하는 자리가 아니고는 참된 사랑이 깃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마음은 하늘편에 가깝기 때문에 언제나 몸을 위해 있는데 이놈의 몸뚱이가 마음을 위해 있지 않다구요? 그게 사고예요. 그래서 종교가 나와 가지고 몸뚱이에게 마음 위하는 데 절대 복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 하자는 데는 전체 반대하는 거예요. 브레이크를 걸고 '금식해라! 수행을 해라! 고행을 해라!' 하고 야단인 겁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몸뚱이를 무력하게 만들어 가지고 본연의 일치권을 찾게 하기 위해서 제재를 거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이제는 알았어요, 왜 남자가 여자를 위해 태어났느냐 하는 것을.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우주의 대복(大福), 우주의 행복의 그 근원지를 찾으려니 혼자는 안 돼요. 남자 여자가 서로 위하여 사랑해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이것을 옮길 수 없게끔 완전히 하나돼야 합니다. 그 하나된 후에는 뭐냐?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대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남녀의 사랑은 횡적인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입니다. 남자 여자가 동서의 극에서부터 사춘기가 되어 가지고 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이 중앙지에 오게 되면….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종적인 수직의 사랑의 천리가 성립 안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의 축이 인간세계와 관계를 짓지 못했다는 겁니다. 참사랑만이, 완전히 서로 위하는 참사랑만이…. 하루 이틀이 아니예요. 억만년 위할 수 있는 사랑의 기준이 틀이 되어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입장이 되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 중앙에서 축이 되는 거예요, 축. 영원한 축에 달라붙는 거예요, 하나되었다 하면.
그 누구의 몸뚱이가 마음하고 갈라질 수 있어요? 완전히 동화된 일치권에서 우리 마음이 영원히 몸과 하나될 수 있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천리의 사랑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명이 필요 없어요. 그 사랑의 줄을 당기면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느끼게 되어 있다구요. 하나님이 슬퍼하면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쁜 데 가면 벌써 알게 되어 있는 거예요, 마음이. 하늘이 벌써 아는 겁니다. 배에 있는 쥐새끼도 배가 파선될 것을 알고 전부 다 줄타고 육지로 도망가요. 미물들도 그런데 사람이 모르게 되어 있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왜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불변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예요. 서로서로가 하나된 그 사랑을 찾아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종횡으로 접을 붙이는 것입니다. 접붙이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을 소유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것이 되고 하나님의 소유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 본성의 본질로서 부여된 창조원칙이 있으니 타락했을망정 그본질은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지남철 앞에 철분이 있어 가지고 아무리 거기에 절연체가 가리워져 있더라도 작용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주의 상속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랑에서 강조하는 것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백만장자가 있다고 하자구요. 아들이 많지만 그 아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상속을 받느냐? 부모를 위함과 동시에 형제를 위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자동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상속받지요? 마찬가지 이치예요.
오늘날 젊은 청년들이 20세기 이때에 자기를 위하는 싸움에 있어서도 전부 다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판국인데, 남을 위해 가지고 어떻게 하겠다? 천만에요. 위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아야 돼요. 끝까지 위하는 사람은 중심존재가 되고 그 위하는 환경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를 어떻게 통일할 수 있어요? 미국을 어떻게 통일할 수 있느냐? 미국이 반대하는 것보다 내가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게 된다면 미국이 포위될 것입니다. 우주력이 전부 다 포위해 버릴 겁니다. 10년 반대하거든 나는 20년 위해 주는 거예요. 여기에서 자동적으로 소화되는 거예요. 기성교회가 40년 나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나 레버런 문은 기성교회를 대해 한마디도 반대 안 했어요. 결국은 두고 보라는 거예요. 기성교회가 큰가, 통일교회가 큰가 두고 보라는 거예요. 보다 위하는 자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데 보다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10년 20년 몇 대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족속, 씨족은 그 나라를 움직이게 되는 거예요. 그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맞고 빼앗아 나와요. 위해 준 사람이 억울함을 당했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해 가지고 커 나온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나를 때려잡으려고 했지만 때리고 나서 몽땅 역사 후대에까지 레버런 문 앞에 무릎을 꿇을 거예요. 미국의 현대 문화사에서 레버런 문을 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동서문명의 순위가 교차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는 사랑의 대상자를 위한 완전한 자기 투입
그러면 참된 남편은 어떠한 남편이냐? 영원히 위하는 사랑을 가져 가지고 위하려고 하는 남편이 참된 남편이예요. 참된 아내는 뭐냐? 영원히 남편을 위해 사랑하면서 하늘나라 사랑까지도 상속받기 위해서 참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참된 아내예요. 또, 참된 스승이 어떤 스승이냐? 그래 여러분들은 스승들이지요? 단(壇)에 서서 큰소리들을 하지만 교수님 자신을 위해서 했느냐, 학생들을 위해서 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분명히 학생들을 위해서 했습니다」 그러면 됐어요, 참된 선생이예요. 당신 같은 선생이 많지 않다구요.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아, 자기는 그렇지만 전부 그런가요? 자기 혼자 들고 나와 가지고 얘기할 게 뭐 있어요. 보편적으로 얘기하는데 가만이 있지요. 학교에서도 저러면 선생들이 좋아하지 않겠구만요. (웃음)
나 통일교회 문 아무개도 마찬가지예요. 수백만의 통일교회 신자가 나를 따르지만 나는 지금도 밤이나 낮이나 그들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아는 거예요. 자기 나라의 주권자, 자기 부모들은 전부 다 그렇지 못하지만 '레버런 문만은 그렇다' 하기 때문에 대양을 넘고 국경을 넘어 내가 가는 대로 따라다니려고 그런다구요.
햇빛이 생명의 요소이니만큼 푸른 빛을 가진 모든 식물들의 그 순은 그것을 따라다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이상적인 요소가 사랑이예요, 참사랑이예요. 참사랑의 모체가 빛을 가지려면 우리의 생명의 순은 그것을 향해서 박자를 맞추는 거예요. 그것은 어떻게 해도 부인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가르쳐 줘서 하나요, 자연히 되어야지. 그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 하나님을 내가 만질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자,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고명한 교수님이라고 믿을 수 있어요?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믿을 수 있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내 몸이 믿고 마음이 믿음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거예요. 그러면 몸보고 '야, 너 몸! 무엇하고 하나되고 싶어?' 할 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예요. '참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고 싶다'라고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마음보고 '너 마음, 무엇하고 하나되고 싶어?' 하고 물어도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싶다' 하는 겁니다. 답이 그것밖에 없다구요.
오늘날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발원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자아를, 심각한 자체란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이론적으로 추구해 가지고 실험 선상에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을 때부터 자기의 진가, 가치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이상권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원하는 이상적 세계와 현실적인 모든 것을 주관 관리할 수 있는 권내의 특권적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그 이상 행복이 어딨겠어요? 없다구요. 더 원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 가지고 다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불신풍조가 있는 것이 왜 그래요? 전부 다 자기 중심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오늘날 악한 세계는 자기 위주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하나님 중심삼고 지은 게 아니라 사랑의 대상자를 위한 자기 투입이예요, 완전 투입이예요. 완전히 투입해 가지고 사랑의 대상자로서 만들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을 대해서 사랑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찾게 될 때는 온 우주가,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도 좋고 땅이 하늘로 올라가도 좋아요. 그것은 뭐냐? 공동 소유권을 중심삼고, 높고 낮음이 사랑의 핵을 중심삼고 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이 뭐예요? 서로 위할 수 있는 사랑의 부부를 중심삼고 부부 위에 있는 부모님들이 서로가 위할 수 있는 사랑권이예요. 위할 수 있는 자녀들을 품고 서로서로가 전후좌우를 위할 수 있는 사랑권이 행복 아니겠어요? 그것을 누가 파괴하겠어요? 참사랑으로 하나된 것은 파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세계에서는 위하면 위할수록 더 큰 사랑이 온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사악된 악마세계의 주관권 내에 있는 인간세계에서도 첫사랑을 지배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거라구요. 본연적이고 고차원적인 위치에 있는 사랑과 하나된 그 힘을 누가 제재하고, 누가 분립시키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역학세계에서 입력과 출력 할 때, 출력은 언제나 입력보다 작은 거예요. 그러나 참된 사랑의 세계에서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위하면 위할수록 더 커져요. 위하면 위할수록 더 큰 사랑이 온다는 것입니다.
자, 이런 놀라운 것이….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70이 가까와 오지만 매일같이 몇 시간 안 자더라도 버텨 나가는 겁니다. 왜? 사랑의 위대함 때문이예요. 그 경지에 쑥 들어가 정신통일하면 피곤한 것도 순식간에, 몇 초 내에 다 풀어지는 거예요. 그것을 누가 지배하겠소? 감옥에 갖다가 가두어 목을 친다고 했댔자 굴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 이럴 수 있는 사랑으로 형제지간에 그렇고, 집안 집안이 위할 수 있는 종족, 위할 수 있는 민족, 위할 수 있는 국가, 위할 수 있는 세계, 위할 수 있는 하늘땅이 벌어지게 될 때, 그 세계가 유토피아적 세계가 아니겠어요? 그 세계가 천국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산 사람은 영계에 가면…. 여러분, 영계는 위하고 산 사람이 가는 곳이예요. 가 보라구요, 내가 거짓말하나. 그 세계의 똥싸개까지 다 들추어 가지고, 발기발기 찢어 가지고 분석해서 해결한 사나이가 여기 서 있어요. 보다 위하고 간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거예요, 보다 위하는 사람이.
성경에도 있잖아요? 사랑장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랬어요. 그게 왜 그러냐 하는 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설명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여러분의 세포가 4백조 개 정도인데, 몸이 그런가 하면 마음의 영도 그런 세포를 가졌습니다. 그 영과 몸이 백 퍼센트 완전히 하나될 수 있으면 그게 뭐냐? 참사랑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 하나된 걸 갈라놓을 수 있어요. 왜 남자가 여자를 위해 태어났느냐? 그럴 수 있는 남자 여자를 만나야 참된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찾아가려니 위해 태어난 겁니다. 남자 여자가 가진 그 부부의 사랑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곳에 참사람, 참사랑이 깃든다
하나님의 사랑을 왜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에 하나된 자리에는 우주의 상속권이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내가 태어난 것은,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여자와 남자는 그런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사랑을 왜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소유권,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욕망의 모든 것을 충당 완성시킬 수 있는 자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한한 행복이 있다는 거예요. 그 행복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가 되었으면 하나님이 절대적이니 그 사랑도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자도 절대적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영생하는 것은 예언적인 결론으로 딱 결정짓고 가는 거예요.
이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 이제부터 생활을 그렇게 한다면, 부산직할시에서 그래도 최고의 수준에 있는 여러분들이 그런 운동을 한다면 그 영향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래서 부산의 모든 학생들이 그런 권(圈)을 중심삼고 하고 집안 집안에서 그렇게 한다고 하면 부산이 망하겠어요? 흥하지 말라고 해도 흥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인류역사상에 이상적 봄철이 찾아오는 세계가 위할 수 있는 사랑권을 빼놓고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치광이 같다는 소문이 났던 레버런 문이 미치광이로 사라지지 않고 당당코 세계에 득세를 해 가지고 만민이 추앙하는 자리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적 길을 가다 보니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까지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고, 이제 여러분들이 돌아가셔서 여러분이 처해 있는 곳에서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곳에 참사람이 있고, 참사랑이 깃드는 것입니다.
이런 이론적 기반 위에서 사신다면 여러분의 장래는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망하지 않습니다. 패륜자가 될 수 없어요. 그 가정에는 행복이 깃들고 그와 관계맺는 사회에는 행복이 찾아들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소망의 세계, 천국이 문을 열고 환희의 함성으로 여러분을 환대할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모여 가지고 여러분들 앞에 이 길을 가기를 부탁하면서 여기 나타난 사나이의 말씀을 끝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자, 이 한마디를 더 하겠는데 말이예요. 남자 여자 사랑 얘기를 했으니 얘긴데 남자의 귀한 사랑의 기관은 여자가 갖고 있고, 여자의 귀한 사랑의 기관은 남자가 갖고 있어요. 엇바꿔 갖고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것을 함부로 주인 몰래 썼다가는 벌받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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