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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전선 폐선 부지를 활용해 경남 진주시 천전동~내동면 4㎞ 구간에서 레일바이크가 운행되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
- "복선화 과정 생긴 폐선부지 활용"
- 선로 지나는 지자체 협의회 구성
- 정부에 국책사업으로 채택 촉구
- 국토부 최근 무상활용 근거 마련
- 성사땐 2018년 착공 2020년 완료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의 도입부다. 이 시는 경전선을 소재로 한 절창으로 꼽힌다.
경전선은 국토의 동맥 역할을 하며 서민의 애환을 껴안았고, 미래로 향한 꿈을 실어날랐다. 삼랑진~마산 구간이 처음 개통한 1905년 5월 이후 110년, 경부선 삼랑진역과 호남선 광주 송정역을 잇는 현재 경전선 철도(300.6㎞)는 이제 소임을 다하고 새로운 역할을 하고자 한다. 바로 '동서통합 남도순례길'이다.
고속철도(KTX) 확대는 경전선 복선 전철화로 이어졌다. 경전선 가운데 삼랑진~진주, 광양~순천 구간은 이미 운행이 중지된 상태이며 진주~광양 구간은 오는 2017년 말까지 폐선될 예정이다.
이에 영호남 8개 시·군과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경전선 복선화로 남는 삼랑진~순천 168.97㎞의 폐선 구간을 활용해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영호남을 하나로 묶으며 난개발을 막고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물려주자는 뜻을 담았다.
■새로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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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진주시 경상대학교 주변 경전선 폐선 부지를 활용한 자전거도로를 시민이 질주하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
경전선 복선 전철화로 폐선된 삼랑진역과 순천역 사이 168.97㎞ 구간이 '동서통합 남도순례길'로 되살아난다. KTX 노선 확대에 따라 현재 이 구간 복선 전철은 내년 말 완공 예정인 진주~광양 구간을 빼고 삼랑진~진주, 광양~순천~광주 구간에서 운행 중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경남과 전남 시민단체 대표 등이 2012년 경전선 복선 복선화 이후 폐선 부지를 활용하고자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추진위원회(경남 공동대표 허정도·전남 공동대표 강용재)를 결성했다. 같은 해 10월엔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추진위원회와 경전선 폐선 구간 내에 있는 경남 6개 시·군 및 전남 2개 시가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몸집을 키웠다. 김해~창원~함안~진주~사천~하동~광양~순천을 잇는 경전선 폐선 구간 내에 있는 8개 시·군이 영호합 화합을 외치며 손을 잡은 것이다.
동서 갈등시대를 마감하고 지자체별 폐선 부지 난개발을 막아 새로운 생태·레저·관광·문화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진주시의회 등 8개 시·군 의회는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프로젝트를 국책 사업으로 지정해 달라고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했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지난해 국회에서 남도순례길 조성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이 프로젝트가 동서 통합의 상징물로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문화적·경제적 가치 역시 탁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남도순례길 조성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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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함안군 경전선 옛 함안역 주변. |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행정협의회가 이달 중으로 구성되면 경전선 폐선 부지를 활용한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조성 사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남 김해 창원 함안 진주 사천 하동 등 6개 시·군과 전남 광양 순천 등 2개 시가 이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해 행정협의회를 구성한다. 이 협의회는 회장 1명, 위원 7명, 자문위원 10명 등으로 구성된다. 첫 회장은 이창희 진주시장이 맡을 예정이다. 앞서 경남과 전남 8개 시·군의회가 행정협의회 구성을 승인했다.
행정협의회는 이 사업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고자 용역을 거쳐 오는 12월 기본 구상 및 사업계획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안할 계획이다. 또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기본 및 실시설계를 추진할 계획이다. 협의회는 이 같은 절차를순조롭게 밟아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조성 사업을 2018년 1월 시작해 2020년 12월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진주시 관계자는 "남도순례길 조성 사업이 타당성이 있고 의미가 남다르다는 긍정적 신호를 지난해 정부로부터 받았다"며 "8개 시·군이 똘똘 뭉친다면 국책 사업으로 선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폐선 부지 무상 사용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공동협의체는 앞서 이와 관련해 국토개발원에 정책제안서를 제출한데 이어 국민대통합위원회와 대통령직 인수위에 청원서를 냈다. 이후 8개 시·군은 민관 공동 건의문 채택, 국회 세미나 등을 통해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조성 사업을 국책 사업으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또 지난 2월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때 이 내용이 대통령에게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주무부처가 명확하지 않고 국유지 무상 사용이라는 난관에 부닥쳐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동서통합 남도순례길 조성 사업에 드디어 청신호가 켜졌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철도 폐선 부지가 증가하고 있지만 활용도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점을 고려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철도 폐선 부지를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지침을 만들어 지난 7월 17일부터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 지침은 철도 유휴 부지를 주민 친화 공간으로 활용할 때 국유재산법에 따른 기부채납 요건을 갖추면 무상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폐선 부지는 국유지여서 무상 사용이 힘들었으나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린 것이다. 그동안 진주를 비롯한 8개 시·군이 정부에 폐선 부지 무상 사용을 줄기차게 주장한 노력의 결과다.
# 경전선 역사
- 올해로 운행한 지 110년…일제시대엔 수탈 도구로
- 산업화 땐 경제발전 한몫, 서민의 애환 오롯이 간직
우리는 36년간 일제의 수탈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경전선도 일제 강점기에 건설되었기에 이 같은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철도 건설 과정에서 그들은 우리의 토지를 강탈했고, 우리 선조들을 강제동원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경전선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 철도라는 뜻에서 양 도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현재 경전선은 경남 밀양시 경부선의 삼랑진역과 광주시 호남선의 광주 송정역을 잇는 철도로 전체 길이 300.6㎞이다. 마산선(삼랑진∼마산), 진주선(마산∼진주), 광주선(송정∼광주)경전선(진주∼순천) 등이 합해진 철도이다.
삼랑진∼마산 구간은 1905년 5월 26일, 마산∼진주 구간은 1923년 12월 1일 개통됐다. 또 송정∼순천 구간은 1922년 7월 1일, 진주∼순천 구간은 1968년 2월 7일 각각 개통하면서 삼랑진∼송정 구간이 완전히 연결됐다.
광복 후 일본이 남기고 간 철도는 우리의 유일한 광역교통 수단이었다. 특히 1960년대 말부터 본격화한 산업화 및 경제 발전기의 열차는 농촌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가기 위해 몸을 실었던 애환의 교통수단이기도 했다.
군부 독재 시절인 1970년대 열차는 젊은 학생들에게 저항과 자유, 그리고 낭만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진주역에서 출발하던 입영 기차는 당시 징집 대상 젊은이들에게 공포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처럼 경전선은 우리의 애환과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를 지닌 경전선은 영호남을 잇는 유일한 철도이고 올해는 경전선을 첫 운행한 지 110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하지만 KTX 운행을 통한 전국 일일생활권 연결이라는 국가 정책에 따라 복선화가 추진되면서 경전선 단선철도의 일생이 종착점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