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와 함께 ~~
반갑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뒤숭숭한 때 이지만 스님을 모시고 일심사상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는
일상의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여여함이 더 없이 감사한 때이다.
바로 인과동시의 좋은 예이다, 늘 바른 因 으로 마주할 때 바른 果를 만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모두가 인과동시의 바르고 좋은 예로 COVID-19 도
거뜬히 이겨내고 삶의 질을 높여가는 걸음이길 두 손 모음니다.
천년의 향기를 머금은 법회는 시작되고~
대승의 수 많은 경전중에 법화경 해설서는 특히 많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법화경 해설서는 천여 가지나 됩니다. 많은 숫자에 상관없이 우리 불자들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왜냐 깊이 보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主를 이루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 조사가 설한 것이 원효의 법화경종요입니다.
우리나라 것이면서 법화경을 해설한 것 중에 가장 뛰어나고 가장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것을 보길 원하지만 내용이 어렵기 때문에 혼자서 보기는 어렵고 지금처럼 같이 해야 됩니다.
번역서는 더욱 보기 어렵고 여러분은 福받은 줄 아세요.
(혼자 고개를 주억거린다. 틀림없이 맞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백송정목스님께서 이렇게 해설해 주시 않으셨다면 천년의 향기도 그냥 땅 속에 묻힌 돌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원효사상을 공부한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문화수준이
낮은 소치입니다. 분명한 것은 밥이 나옵니다. 씹어서 먹는 것만 밥이 아닙니다.
기분이 좋으면 밥을 적게 먹어도 엄청나게 활력소가 생겨나고 에너지가 업됩니다.
밥을 단식(덩어리)이라고 합니다, 덩어리로 된 것만 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인간(범부)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사식을 합니다. 여러분이 정성들여 올린 갖가지 공양물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합니다. 이것은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촉식은–-촉감으로 만져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로 사상을 잘 익히면 먹는 양이 적더라도 배가 부르고 힘이 생깁니다. 잠을 적게 자더라도 피곤이 덜 합니다. 도인은 그래야 합니다.
(뇌 인지과학의 설명을 빌리면 긍정과 열정의 감동은 다이돌핀의 대량방출로 무한 에너지가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방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법화경의 12 종류의 문단이 있습니다. 4번 째 문단은 원효가 방편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법화경은 方便문을 열어서 진실상을 보이는 것이 대의입니다.
방편과 진실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장황합니다.
방편은 소승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까지 수 많은 방편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쓰는 무작위로 사용하는 생활 방편 (속옷 태워서 삼재풀이)같은 것들은
진실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현대인들이 대승이 어쩌고 방편으로 어쩌고 하는 것은 정확한 개념도 모를뿐 그렇게 사용하는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방편은 진실에 오르기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念佛. 止觀. 주력 모두 방편입니다.
방편에 대해서 원효는 대표적으로 3가지만 설명을 따로 합니다.
첫 번째; 문 밖의 세 수레
두 번째: 변화의 성
세 번째; 여래의 무량한 수명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
먼저 문 밖의 세 수레는 사슴 수레 양 수레 소 수레라는 말입니다.
사슴.양. 소는 비유를 한 겁니다. 짐을 싣는 것을 수레라고 합니다.
수레는 우리 불교에서 가르침을 즉 경전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수레를 매일 타고 다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하철,버스,승용차 등 보이는(물리적인) 수레도 타고 다닙니다.
보이는 수레들은 우리의 몸을 싣고 다닙니다. 여러분들이 타고 다니는 수레는 거의 같은 것을 타고 다닙니다. 비슷 비슷합니다.
여러분들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법의 수레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상의 수레를 또 하나 타고 다닙니다. 이 수레를 잘 타셔야 합니디. 맑고 밝은 수레를 타셔야 몸이 가볍습니다.
맑고 밝은 대표적인 수레가 일심사상의 수레입니다. 수레의 기본 바탕(재질)이 다릅니다.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소의 수레 재질은 각기 다릅니다.
양의 수레는 성문의 법, 사슴 수레는 연각의 법, 소의 수레는 보살의 입니다.
성문의 법(수레)은 사성제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연각의 법(수레)은 12연기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보살의 법(수레)은 육바라밀을 중심으로 가르칩니다.
여기에서 이 세 수레는 방편이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수레는 조금만 타고 가야 됩니다. 계속 수레를 타고 놀면 안 됩니다. 방편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라고 한계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면 서슴없이 타고 온 수레는 버려야 합니다, 아깝다고 들고 다니면 안 됩니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분명히 거기에 걸맞는 수레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욕심이 많아서 남방에 가서 사성제 십이연기 많이 배워 오지만 한국은 일심사상을 가지고 超대승으로 가고 있는데 필요도 없는 수레 끌고 다닙니다.
심지어 정토원까지 끌고 와서 수레 구경시켜주고 자랑하고 인정 받기를 원합니다.
성문의 법, 연각의 법을 공부하던 사람도 보고 싶어도 내용이 어렵기 때문에 조금 하다가 포기를 바로 합니다. 성문의 수레, 연각의 수레는 버려야 할 수레라고 하니까 더욱 보기 힘들죠.열 받는 겁니다. 심지어 보살의 수레도 평생 타고 있으면 진짜 좋은 수레는 탈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도 보살을 최고로 알지만 보살에만 머물러 있으면 있게 되면
우리가 늘 합장하고 "성불합시다"라고 인사하듯이 우리가 가든지 못 가든지 우리의 목표는 부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무상보리라고 봐야지 보살에만 국한시키면 안 됩니다. 금생에 도달하기는 요원하지만 목표는 부처님,그리고 무상보리로~~
보살행을 하는 사람들이 한 방에 여래지에 오르고자 하는데 보살도 방편이라고 하니까 허탈감이 들겠죠. 10년 앉으나 20년 앉으나 그 경계는 묘관찰지 밖에 안 된다고 말하니까 앉아 있던 사람들이 허무할 겁니다. 묘관찰지라는 걸 우리 아미타파 회원들은 다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 있는 줄 알고 그러는데 그건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묘관찰지입니다.
정리하면 성문의 법과 연각의 법과 보살의 법은 방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해설)
① 문 밖의 세 수레: 문 밖의 세 수레는 녹야원에서 보인 성문의 교법(사성제), 연각의 교법(십이연기), 영취산에서 보인 보살의 교법(육바라밀)을 수레에 비유한 것이다. 본래 일승밖에 없는데, 근기에 따라 닦아 나아가도록 세 교법으로 나누어 구별해 보인 것은 방편이라는 것이다.-
지금 남방에서 이승에 목숨을 걸고 열반을 얻어서 아라한이 목표인 사람은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절대 물러서 설 수 없기 때문에 묘안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아함경만 진짜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더욱 화합이 어렵습니다.
화합은 어렵고 우리가 못 먹더라도 이왕이면 큰 것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도 세 가지 방편 중에서 선택의 기회가 온 다면 이왕이면 보살의 수레를 선택하세요.
저는 감당 못 하니까 작은 것 주세요. 하지 마시라구요.
큰 것으로 보살행을 하면서 일심사상을 하세요.
(베짱이라는 것은 양은을 쇠 망치로 두들기 듯 크기를 키우더라도 거기에는 일심사상이 바탕이 되어 있을 때 에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학의 중요성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법문입니다. 퍼즐처럼 하나 둘씩 제자리를 잡고 모양을 갖춰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분명하게 산더미같이 수북한 밥상을 차려 놓은거나 다름없습니다.)
공부는 아래에서 차근차근 밟아 오면 끝이 없습니다. 위에서부터 하세요.관망이 쉽습니다.
② 변화의 성입니다.
먼 길을 나설 때 저기 가면 엄청난 보배성이 있다고 함께 가자고 동행을 권합니다.
한 참 가다가 힘이 드니까 애들이 보배성도 마다하고 주저 앉습니다. 그 때 老人이 놀이터를 재현해 냅니다. 아주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줍니다.
거의 보배성입니다, 실컷 놀게 하다가 조금만 더 가면 더 좋은 보배성이 있다고 더 맛있는 걸 준다고 회유하니까 신나게 놀다가 놀이터도 버리고 금방 또 따라나섭니다.
할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는 어린애들이나 부처님이 가르치는 여러분이나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70살이 아니고 7살입니다.
(법랍을 따지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구나. 우리들이 나이 먹는 것이 자랑이 아닌 이유는 분명해진다, 살아온 만큼 지혜와 경륜이 쌓이지 않는다면. 부끄러울 뿐~)
철 없는 애들에게 보여주는 변화의 보배성은 그것을 소승의 열반에 비유했습니다.
인간이 성불하기까지 엄청난 고난과 수행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소승에서 열반을 맛보게 하고 –이걸 아공진여라고 하죠.
아공진여를 얻으면 우선 마음이 편안하고 불법의 묘미를 알게 되겠죠.
그래서 소승의 열반이라는 단계를 만들어 놓았다고 원효가 말합니다.
남방에서는 아라한이 되면 대통령의 대우를 받습니다. 굉장한 성인 대우를 받습니다.
그것을 아라한의 경지는 소승의 열반과 비슷하고 잠시 쉬는 것일 뿐 진짜가 아니라고 하면
누가 원효의 법화경종요를 펼쳐 보겠어요.
소승의 열반 보다 실제의 보배성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건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게 아니고 내가 생각할 때 청춘을 버리고 출가를 해서 앉아서 내가 空하다는 아공진여만 증득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다면 인간의 가치를 너무 평가 절하 하게 되고 심지어 허무하기 까지 합니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분노에 휩싸여 성질을 낼 때도 힘이 엄청나고 善한 일을 할 때도 힘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보살의 힘이라도 얻어서 한 지역이라도 변화를 시켜야 하는데 소승의 열반만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원효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결국 방편이라고...... 방편이라고 하니까 남방에서는 싫어합니다.
(니밋다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비선들에게 그것은 인식 대상의 마지막 단계이고 삼매로 넘어 가기 위한 거라고 말해주면 대단한 신통력인 줄 알고 있는데 오히려 화를 낸다.
가까이서 우리 불자들도 방편적인 수행과정에서 얻어지는 잠깐의 경계에 탐닉하고 머물고 싶어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법화경에서 다 가르쳐 놓고 나중에 방편이라고 말해 줍니다.
처음부터 방편이라고 결정하면 경전을 보지 않겠죠.
일단 사성제도 십이연기도 좋은거라고 말해주고 마지막에 뒤통수 치듯이 진실을 말합니다.
(정정취에 목말라 하지만 실제로 도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일심사상을 공부하는 우리들은 몇이나 그렇게 생각할까. 그래서 성소작지의 대비력을 믿고 염불해야 한다고 늘 스님께서 힘 주어 말씀하신다.)
정리하면 변화의 성은 방편입니다. 실제 있는 것은 아니고 소승의 열반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소승에서 추구 하는 열반은 평생 걸려서 도달하든 말든 방편이라는 겁니다.
성문의 법,연각의 법이 방편이니까 소승에서 추구하는 果도 방편입니다.
果는 열반을 말하는데 그것도 방편입니다. 이것은 대승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번째는 원효가 수 많은 방편중에 세 개만 예를 들었습니다.
①문 밖의 세 수레--성문 연각 보살의 법을 이야기하는 일승만 있는데 보살을 이야기한 것은 방편이라는 것을 말하고
②소승에서 추구하는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방편이라고 했습니다.
③ 인간은 죽으면 죽은 것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죽어도 안 죽었다고 하는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원효가 일갈을 날립니다.
원효 생전에 부처님이 진짜로 죽은 것이냐 아니냐로 천 년 동안 ~~~
3번에 대한 설명은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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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필경님 수고하셨슯니다
강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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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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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님의 신심을 찬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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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님 강의록으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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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님의 강의록을 보면 스님의 가슴속에 들어갔다 나오신분의 글을 읽는 기분입니다. 늘 환희심으로 필경님의 글을 애독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일심광명화신 일체경계본래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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