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 고란사는 낙화암과 의자왕의 삼천궁녀,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약수로도 유명하다. 보일 듯 말듯 저 멀리 삼성각(①)을 바라보며 강을 건너면 성급하게도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약수 생각에 고란정(②)도 그려보고 삼천궁녀의 넋이라도 위로 하려는 듯 우뚝 서 있는 영종각(靈鐘閣, ③)도 떠 올려본다. 경내는 극락보전(④)을 큰법당으로 위엄을 갖추고 있다. 처마 끝 이름 모를 꽃 한 송이(⑤), 백화정(百花亭, ⑥)도 순례길에 볼거리다. |
삼성각(①) |
“백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백제 부처님의 미소는
변함이 없다
중생을 향하여
아무런 걱정 말고 어서 오라고
자비롭게 웃으며
걸어오시는 부처님이
백제의 부처님이다
중생을 주눅 들게 하는
위엄이나 권위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중생의 입장을
다 들어주실 것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처님이다”
마지막 밤이 있었다. 거대한 어둠이었다.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너무나 참혹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재가 되었다. 백제가 무너졌다. 피멍든 공포를 잉태한 부녀자들만 오들오들 땅바닥에 떨고 있었다. 한 뼘도 설 땅이 없다. 오직 한 가지 소원…. 동이 트기가 무섭게 낙화암을 향한다. 모두가 꽃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백화정(百花亭, ⑥) |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 궁녀를
전쟁에 지면 이긴 자의 기록이 역사가 된다. 그렇다고 진실이 묻히는 것만은 아니다. 부여는 작은 도시다. 그 옛날 사비성도 지금과 비슷했을 것이다. 오랜 기간을 전쟁 중에 있던 사비궁에 궁녀가 3000명이나 있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노래는 불리고 있다. 정복자는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차원에서 왜곡된 정보가 필요했을 것이다. 3000 궁녀는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일 가능성이 높다.
고란정(②) |
고란사를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부소산성을 걸어가는 방법이 있고, 배를 타고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갈 때는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좋으리라. 일곱 명이 되어야 출발한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스피커 안내양’이 백마강에 얽힌 수많은 아픔과 전설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유람선을 탔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런저런 설화들에 당나라 소정방의 얘기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뱃머리가 낙화암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거기 없으리라. 천상에서 노닐고 있으리라.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꽃으로 남아 있다.
고란사에는 생명의 샘물이 있었다 한다. 샘은 지금도 있다. 옛날 어떤 노부부가 살았다. 이 노부부는 자식이 없었다. 하지만 평생소원이 자식을 얻는 것이었다. 한번은 탁발을 나온 스님께 할머니가 하소연을 하였다. 그 날 밤 할머니 꿈속에 노승이 나와서는 어디어디에 가면 고란초가 있는 바위틈에 샘이 있는데, 그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선몽을 하였다. 호기심 많은 할아버지가 다음날, 아침 일찍 그곳을 찾아갔다. 과연 바위틈에 고란초가 있었고 작은 옹달샘이 있었다. 자식을 낳겠다는 일념으로 샘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해가 저물어도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는 횃불을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한참을 찾다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웬 갓난아기가 할아버지 옷을 입고 누워 있었다. 그때서야 할머니는 아차! 싶었다. 한 바가지에 3년씩 젊어진다는 주의사항을 듣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길을 나섰던 것이다. 할머니는 갓난 애기가 되어버린 할아버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전설을 임금님이 들었나 보다. 꼭 고란사에서 물을 길어 와야만 했다. 고란사에서 물을 떠왔다는 표시로 고란초를 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영종각(靈鐘閣, ③)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샘물을 떠 마신다. 이제는 더 이상 고란초를 띄울 수는 없다. 천연기념물과 동급의 귀한 식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은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이왕 고란사에 와서 샘물을 마시고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뉘우칠 것은 뉘우치고, 새로 세울 것은 새로 세우고 한다면 3년 아니라 30년도 젊어진 인생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절집에는 대체로 건물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부처님 일대기나 나한도(羅漢圖) 또는 연꽃이나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고란사 벽화는 좀 다르다. 마치 그림을 전시하듯 위, 아래로 벽면 가득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중에는 일본의 소녀 셋이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너 이곳 고란사로 왔다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진 벽화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교육적 역할을 할 것이다.
고란사에서 5분 정도만 올라가면 낙화암이다. 백마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강 상류 쪽으로 새로 생긴 다리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강이다. 잠시 고요하게 앉아 본다. 마침 저녁 예불시간이라 고란사에서 범종이 울린다. 낙화암에서 범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보통 인연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복을 많이 쌓았던 사람이거나 앞으로 복을 많이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범종각을 영종각(靈鐘閣)이라 하더니만 영혼들을 위로하는 듯 한 소리가 난다. 마음의 평화 속에 사라진 백제의 꿈을 생각해 본다.
극락보전(④) |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 곧 백성의 운명이 되고 말았다. 불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불교의 수준 높은 사상을 내세워 백성들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대형사찰을 세우고 대형 법회를 하였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니 그런 노력들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사찰에서는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하는 기도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불어 모든 것이 독립된 하나의 존재로 있을 수 없고, 서로서로 연기적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부처님 말씀에 따라, 좀 더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웃 나라들과 교류와 소통을 끝까지 하였더라면 어떠하였을까 생각해 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해서 존재하고, 또한 원인에 의해서 변하고 사라진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 노력해야 하는 이치도 함께….
처마 끝 이름 모를 꽃 한 송이(⑤), |
백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백제 절 고란사의 종소리는 오늘도 울린다. 백제 부처님의 미소 또한 변함이 없다. 중생을 향하여 아무런 걱정 말고 어서 오라고 자비롭게 웃으며 걸어오시는 부처님이 백제의 부처님이시다. 여기에는 중생을 주눅 들게 하는 위엄이나 권위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중생의 입장을 다 들어주실 것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처님이시다.
[불교신문2922호/2013년6월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