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은 선지자 사무엘이 죽은 후 사울왕이 블레셋과 전쟁중에 무당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라 곳곳에 있던 무당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던 일들을 없앴던 사울왕이 무당을 찾아간 것은 무당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울왕은 무당을 찾아가서 죽은 선지자 사무엘을 불러오게 한 후에, 선지자 사무엘에게 전쟁이 어떻게 될지 물어본다. 선지자 사무엘이 이르기를 사울도 전쟁에서 죽고 요나단도 전쟁에서 죽을 것이라 예언한다.
무당은 어떻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낼 수 있었을가? 석가모니가 나이 80에 이르러 자신의 몸을 망가진 수레에 비유하며,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나타낸 것을 생각해 보면, 무당이 그 무슨 능력이 있었을까? 무당자체에게는 능력이 없다. 무당이 초자연적으로 보여지는 과거등을 아는 이유는 바로 귀신을 향한 믿음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란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하나님이나 악령이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간절함과 선한 마음을 보고 그 부탁을 들어주나, 악령은 증오와 미움의 마음을 보고 그 욕심을 본다. 편재하지 못하는 악령의 숫자가 인구대비 적어서 인지, 무당을 만들고 또다른 사람을 무당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만든 무당을 떠나면, 이 무당은 악령으로 부터 벗어날 기회와 가짜무당행세를 할 갈림길에 들어선다. 그저 어떤 한 악령이 무당을 만들려는 사람이 그 악령과 함께 무당을 찾아왔을 때만 신통하다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무당이 어떤 떠도는 주위의 악령이나, 무당에게 의뢰한 사람에게 붙은 악령에게 문제해결을 부탁할 때에는 귀신을 있음을 확신하고 자신있게 굿도 한다. 굿이라는 형식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들에게 그러한 의식이 무슨 초자연적인 힘이 있는 것 마냥 속일뿐, 귀신을 향한 믿음이란, 그러한 의식을 통해 귀신을 불러낼 수 있다고 믿고 그러한 의식을 하면, 그것을 귀신이 귀신과 무당의 계약으로 보고 그러한 무당에게 능력을 보여줄 뿐이다. 마치 사탄이 예수님에게 자신에게 절하라고 회유하며, 그러면 그것을 계약으로 보고 이세상을 다 주겠다고 제안한 것과 같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였을때, 하나님이 창조함 같이,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챙겨주심이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인것인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써의 본분을 인정하면,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챙겨주심을 계약한다. 하나님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하나님과 계약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독립적 자존감을 인정해 보이면서 그들을 살리고 그렇게 라도 그들을 살리고 싶던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제안 하신 계약이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이든 그 마음에 증오와 미움이 있고 욕심을 내어 악령을 부르고 싶고 그를 의지하여, 욕심을 충족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가장 가까운 악령이 바쁘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나 싶다. 악령을 소환하는 의식은 그저 그렇게 믿으면 귀신이 찾아온다고 믿는 사람들의 바람일 뿐 귀신과의 계약의 본질은 귀신에게 바라고 믿으면 귀신이 그 욕심을 채워준다는 마음뿐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귀신을 향한 믿음은 귀신에게 의지함이요, 석가모니가 본 믿음은 무에서 창조된 세상의 본질인 없음에 대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