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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4시간 전
'머피의 법칙' 2부... 불효자(2편)...크루즈 여행과 새로운 인연 (因緣) |
삽화: 이기원 작가
(지난호에 이어~)
아침 일찍 관광에 나선 그들은 로이스 강가를 걷다가 식당에 들어가, 끼니를 대충 해결했다. 그리곤 가펠교와 워터스파이크에서 사진을 남겼다.
그는 다시 친구들을 자동차에 태워 인터라켄으로 갔다. 알프스의 지붕 융푸라우로 가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로 그란데발트로 가면 되지만, 융푸라우를 오르는 등산기차를 타는 것이 스위스 풍경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작은 도시 인터라켄은 좀 한가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에서의 간이역 같은 모습이다.
세 사람은 등산열차에 올라 융프라우로 향했다. 3454m에 위치한 융푸라우 역은 험준한 산세 사이를 타고, 이리저리 돌고, 돌아 오르기 시작했다.
간간이 산촌이 보이고, 그 너머로 고산들이 보였다.
2시간쯤 걸려 종착역에 도착해 내리자, 잔설이 뒤 덮인 고산들이 보였다.
라우터부르넨, 체르마트, 브레이트혼, 아이거봉, 마테호른 등 알프스의 등뼈가 고스란히 머리를 내밀었다. 겔렌대라는 고산 평지는 아직도 눈이 깊게 쌓여 있었다. 플라테테라스 전망대에서는 그란데발트와 인터라켄이 발 아래로 펼쳐졌다.
다음 행선지는 로잔이었다. 프랑스로 넘어가기 전에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한 것이다. 북쪽 구시가지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야경에 휩싸인 레만 호로 나갔다.
남쪽 우시항 주변에 산책로와 공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제트분수가 조명 속에 힘차게 치솟고 있었다.
팔레스 호텔에 투숙한 건 밤 11시를 넘겨서다.
이튿날은 지하철을 타고, 구시가지에서 내려 리폴광장으로 갔다.
잠시 햇볕을 쬐고는 노천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여유를 즐긴 뒤, 파리로 건너갔다. 에펠탑과 센 강의 유람선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샹제리제에 도착하자 이미 어둠이 내렸고, 휘황찬란한 야경에 휩싸여 있었다. 야간에도 관광객들은 곳곳에서 북적였다.
그는 친구들을 곧장 에펠탑 꼭대기로 안내했는데, 탑 높이가 300m나 되어서 승강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올라갔다. 상, 중, 하로 나뉘어 전망대가 있고, 맨 위에 닿으면 파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둠 속에 파리는 더 아름다웠다. 에투알 개선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12개의 방사선 도로가 질서정연하게 펼쳐졌다. 모 주방은 친구들과 사진으로라도 추억을 남기고 내려왔다.
그리곤 센 강의 유람선을 탔다.
센 강은 거의 800Km에 달하는 긴 강이지만, 파리 한 복판을 가로지를 때는 폭이 좁아서 그런지, 강 같아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배위에서 올려다보는 파리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다.
시테 섬 구간을 오가는 유람선은 항상 붐빈다. 관광객들만 아니고, 파리의 연인들, 부부들이 동반해서 데이트를 즐기는 터라 그렇다.
센 강변엔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노트르담 성당, 영화에도 등장한 퐁네프다리, 알렉상드로 3세교, 앵빌리드 교 등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이 정말 인상적이다.
강창수와 배 수홍은 불과 대여섯 시간만 투자하면, 이렇듯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는데, 유럽으로 유학 온지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학업이 우선이겠지만, 그보다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하는 가난한 학생 신분이라 그랬다.
새벽녘에 5성급 호텔에 투숙한 그들은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있었다.
그 때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남산 밑 동네 판자촌이 대부분 끼니 걱정을 했다는 것이고, 세 사람 모두 공감했다.
하지만, 모 주방은 예외였다고, 강창수가 회상한다. 배수홍도 마찬가지고. 아버님이 미8군 사령부 캠프 케이지 군속이어서 그의 집안은 넉넉했던 걸, 기억한다. 도시락도 반찬이 제일 좋았고. 강창수와 배수홍은 서로 자기 집들은 무척 가난했다고 털어놓는다.
강창수는 어머니가 함지박 장사로 근근이 연명했고, 아버지는 공사판에서 일당을 받고, 일했다는 거다. 배수홍은 어머니가 용산시장에서 좌판 생선 장사를 해가며, 가솔들을 먹여 살렸다고, 거든다. 한 방에서 다섯 식구가 끼어서 생활했는데, 그래도 그때가 재미있었다고, 회상한다. 아버지가 전쟁 통에 자원 입대해 펀치볼 전투에서 사망한 터라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모 주방은 그들의 과거지사를 더 듣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둘 다 은행계좌를 적으라 했고, 날이 밝으면 한 사람 앞에 5만 달러씩 넣어 줄 테니, 유학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라며 다독였다. 돈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날이 밝자, 그는 친구 둘을 대동하고 은행에 들러서 각 자의 계좌에 돈을 넣어준 뒤, 파리에서 제일 높은 언덕인 몽마르트르로 안내했다. 파리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한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꽤 많았다. 거리화가들이 골목길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즐비한 이젤 앞에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관광객들이 듬성듬성 앉아 모델이 되었다.
모 주방은 두 친구도 앉아보라 권유했고, 차례를 기다렸다.
나이든 화가도 있고, 젊은 여성 화가도 있다. 화단에서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그림쟁이들이 길거리로 나와 관광객들 초상화를 그려주고, 몇 푼씩 얻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자기얼굴을 그린 스노우 화이트 지를 들고, 서로 비교하며 좋아했다.
그리곤 공코르드 광장을 구경시켜 줬다.
드넓은 광장 중앙엔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분수대가 있다. 관광객들만이 아니라, 파리 시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분수대 앞에서 사진 몇 장을 박고 나서, 이 번 여행을 마무리해야 했다.
모 주방은 휴가를 1주일 얻었지만, 친구들은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강의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파리 역으로 옮겨가, 이태리와 오스트리아 행 특급열차 탑승권을 구입해 각 각 건넸다. 자기는 남는 게 시간이니까, 언제 어느 때든 연락하고, 찾아오라는 부탁을 남기며, 그들을 배웅했다.
하지만, 그게 공연한 치레라는 걸, 자신이 더 잘 안다.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지면, 어디로 튈지 자기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삽화: 이기원 작가
모 주방은 남은 사흘은 모나코에서 보내고 있었다.
VIP 룸 바카라 판은 늘 열려있다.
유럽 귀족들과 중동 부호는 앙숙이면서도 맞수이기도 하다.
18-19세기엔 너희 땅이 우리 것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지금도 탐내면서 뭔 헛소리냐고 맞받아친다. 그들의 가시 돋친 은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어느 한 쪽이 돈을 잃으면,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내뱉는다.
딜러는 게임에만 열중 한다. 냉정하고, 침착하다. 이긴 자에게 칩을 밀어주고, 다음 게임을 아무 말 없이 진행한다.
그는 마지막 날 2시간 째 죽을 쑤고 있다. 진짜 한 끗발로 깨지길 수 차례다. 칩도 얼마 남지 않았다.
흐름을 바꾸려고, 보너스카드를 원해봤지만, 행운의 여신은 계속 외면했다. 새벽 5시에 이르러 빈털터리가 됐다.
친구들에게 5만달러씩 빼주고, 남은 40만 달러로 얼마쯤 불렸었는데, 불과 이틀 만에 바닥을 쳤다. 손에 쥐어진 거라곤 3만 달러다.
스페인 남동부 J호텔에 풀이 죽어 돌아오자, 주방장이 유람선 주방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내놓았다. 가볼 의향이 없느냐는 것이다. 모 주방은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했다. 그럼, 지금 짐 싸서 항구에 정박해 있는 유람선으로 가보라는 것이다. 내일 아침 세계 일주를 떠난다니까 말이다. 그는 지하 숙소에 있던 옷가지 몇 개를 가방에 쑤셔 넣고, 곧장 택시를 불러 탔다.
바르셀로나 항구에 정박해있는 크루즈 유람선은 정말 컸다. 족히 10층 높이는 되는 것 같았다. 대단한 화려함과 위용을 자랑했다.
모 주방도 언젠가는 유람선을 타고, 세계여행을 하려 했는데, 오히려 잘됐다. 자체에 실컷 관광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배에 오르자마자 주방장부터 찾았다. 프랑스 계였는데, 덩치가 산만했다. 얼추 2m는 되지 싶었다. 커다란 손으로 악수를 청하며 J호텔 주방장한테 연락 받았다며, 주방과 숙소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곤 우선 부식창고에 가서 각종 야채며 고기, 술 따위를 정리하라고 했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곧장 아래층 부식창고로 갔다. 거기엔 요리사들과 관리부직원들이 뒤섞여 음식재료를 정리하며,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요리사들이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J호텔에서 보조생활을 했다고 하니까, 그럼 믿을 만하겠다는 것이다.
크루즈 유람선은 승객이 다 탑승하자,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신호를 알렸다.
어림 하건데 7만 톤은 됨직했다.
예인선에 이끌려 내항을 빠져 나오자, 첫 행선지 이집트로 방향을 잡았다. 승선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기항지는 남아프리카다.
이집트에서 3일간 머문 크루즈 유람선은 수에즈 운하를 빠져 나와 홍해를 거쳐 남하했다. 다른 기항지가 없어, 인도양 쪽 아프리카 대륙 공해상을 천천히 항해한다.
유람선 갑판상층에 마련된 수영장에서는 선텐을 즐기는 사람과 수영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 주방은 주방에 붙들려 아침, 점심,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정신 없었다.
밤에는 파티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더러는 객실에서 식사하는 손님들도 있어, 요리사 15명과 보조 20명이 모두 뛰어다녀도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남아프리카 더반에 도착하려면, 약 한 달이 소요된다. 그동안 손님들은 배 안에서 시간을 죽여야 하고, 쇼핑도하며, 음악회를 감상하고, 카지노에도 드나든다.
승객들의 온갖 뒤 수발을 하느라, 유람선 승무원들은 쉴 시간이 부족하다. 손님들이 유람선 생활을 지루해 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레크레이션을 준비해 하는 탓이다.
그는 1주일 만에 생각을 바꿨다. 유람선이 너무 지루한 때문이다.
유람선은 남아프리카에 보름을 머물다 인도를 거쳐 태국, 홍콩, 도쿄, 종착지인 샌프란시스코까지 항해한다.
주급 80달러를 받고 6개월을 버틸 생각을 하니 끔직했다. 좀이 수신다고나 할까. 역마살이 끼었는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성격도 늘 문제다.
새벽녘에 잠시 짬을 내 카지노에 들렀더니, 꽤 많은 사람이 게임에 빠져있었다. 잠이 별로 없는 그 역시 세븐 카드 판에 끼었다.
직원들은 손님과 게임을 해서는 안 되는 걸 잘 알지만, 심심한 긴 밤이어서 시간도 죽일 겸 심심풀이로 패를 받았다.
유람선 간부들이 보면 문책하겠지만, 이미 하선을 결심한 터여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전문 카지노와 마찬가지로 유람선에서도 세븐 카드는 3장만 받는다. 딜러가 나머지 4장을 오픈하는 방식은 똑같다.
대여섯 판을 따자 곁에 있던 백인 노신사가 일본인이냐고,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no, I'm korean'이라고 했더니 반색을 한다.
백인 노신사는 영국인인데 대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하는 거다. 헌데, 요즘 한국이 왜, 그렇게 혼란스럽냐고 되묻는다. 대학생들이 매일 데모하고, 최루탄으로 뒤 덥힌 서울이 자칫 북한의 재 침공을 부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모 주방은 솔직히 그 내막을 잘 모른다. 서울을 떠나 온 지도 오래됐고, 전 두환이 철권을 휘두르는 목적도 알 수 없다. 아니,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든, 자신은 관심 밖이었다. 화염병이 난무하고, 각목을 든 대학생들이 전투 경찰과 맞서 싸우는 이유를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영국신사는 게임을 하다 말고, 모 주방을 자기 객실로 안내했다. 술이나 한 잔하며, 대화 좀 하자고 말이다.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한국에 직접 가서 목격하고, 참 자랑스러워했는데, 외신에 들오는 BBC방송을 보자면 걱정이 앞선다 했다.
그는 얼마 전, 함께 여행했던 강 창수와 배 수홍이 전한 이야기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들 사이에 맑스 레린파와 주체사상파라는 친북세력이 있다고 말이다. 폭력혁명을 외치는 건, 두 진영이 마찬가지지만, 그 양쪽 파벌끼리도 캠퍼스에서 맞서 싸운다고 덧붙였다.
영국신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발원됐고, 자신도 그 이론들을 잘 알지만, 소련이나 동구권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곧 무너질 거라고, 소근 댄다는 것이다.
그리곤 강조하듯 남한이 공산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언성을 높인다. 일간지 기사를 읽어서 그 내막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독재정권의 타도를 빌미로 공산화를 꽤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영국도 에이레공화군 때문에 상당히 골치를 썩고 있지만, 왕권타도를 바라는 게 아니라, 종교적 분리 독립을 원하는 것뿐이라는 거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엄연히 많은 차이를 지녔다면서 위스키를 한 모금 삼켰다.
모 주방은 민주주의는 자유경제체제고, 공산주의는 통제경제, 사회주의는 계획경제라고, 답변하면서 대한민국은 아직 개발도상국가라 중앙통제와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전 두환이 정권을 탈취한 것은 맞지만, 쿠테타가 성공하면, 영웅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반역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실은 술을 못해서다. 체질상 안 맞아, 아예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영국신사는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 접고, 자기 생활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제 작년에 암으로 먼저 죽고, 아이들은 장성해 시집, 장가를 가 곁에 없다고 한다. 남아공에 아직, 재산이 남아있는 것은 선대들이 식민지시절 농장과 공장을 함께 운영해 번 것들인데, 자기는 요하네즈버그가 싫다고 한다. 인종차별 정책을 아직도 유지하고, 그로써 얻은 재산을 이번에 들어가면 전부 처분할 거라고 했다. 같은 인간들끼리 인종을 차별한다는 게, 20세기에 있을 수 없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 유람선을 계속 타고 여행할 것이냐 묻는다. 모 주방은 세계 일주를 하려 유람선에 탄 것이 아니고, 주방보조로 일하기 위해 탄 거라, 대답하자 반색한다. 그럼, 자기와 남아공에 같이 내려 일을 좀 도와 달라하는 거다. 그에게는 대단히 반가운 제안이었다. 더반에 유람선이 닿으면, 무조건 내리기로 작정한 터였으니까.
남아공에 도착한 유람선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국립공원 내에 있는 야생 동물들을 관광하도록 안내했다. 그리곤 정박한 기간에 다음 행선지로 항해할 때 손님들에게 시중할 음식 자재를 구입했다.
모 주방은 주방장에게 하선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는데, 주방장은 선장에게 보고한 후, 입국사증을 내줬다. 보증인은 영국신사가 서줬다.
10층짜리 크루즈 유람선을 빠져 나와 항구 부두에 발을 내딛자, 롤스로이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백인 운전사가 뒷문을 열고 영국신사를 맞이했으며, 그도 뒤따라 올랐다. 항구를 빠져 나온 승용차는 도심 한복판을 가로질러 상류층 거주지로 향했다.
삽화: 이기원 작가
도심 한복판의 구획선 우측 백인거주지엔 흑인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백인거주지에 잘 못 들어오면, 경찰이 체포해 유치장에 구류했다가 내쫒는다. 반면, 백인이 흑인거주지를 오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주 들어가지도 않고, 왕래하기를 꺼려한다. 흑인거주지는 치안상태가 불안하고, 대부분 쪽방 촌을 형성해 매우 불결하다. 흑인이 백인거주지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백인거주지에 일자리를 얻고, 당국에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
아무튼, 영국신사의 저택은 상당히 규모가 컸다. 3층 대리석으로 지어졌는데, 중세풍으로 치장돼 있었다.
현관에 이르자 백인 집사장이 맞이했고, 곧바로 식당으로 모셨다. 모 주방을 곁에 앉힌 채 식사를 시작했고, 얼마 후, 농장관리자와 공장관리자가 나타났다.
두 사람 다 백인이었다. 영국신사가 포크질을 하며, 농장 관리인에게 물었다.
“임자 있던가?”
“가격을 흥정하면 모를까, 상대가 너무 비싸다는 답을 줬습니다.”
“지금 국제곡물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버겁지만 않으면, 내가 계속 경영하고 싶은데, 이제 칠순을 넘긴 나이라 버티기 힘들어. 1백만 헥타르에서 생산되는 밀의 양이 얼마인데 깍 아 달라는 건가? 1헥타르 당 3달러 이하는 안 돼. 다른 구매자를 찾아봐”
“예, 대령님”
농장 관리인이 대꾸하고 물러나자, 영국신사는 공장 관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빵가격은 요즘 어떤가?”
“보합세입니다.”
“그래...”
“그런데, 남아공의 정치계가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줄기찬 비판이 먹힌 듯합니다.”
“짐작한 대로군.”
영국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잉글랜드에서도 접한 바라는 얼굴이다.
그날 오후, 영국신사는 모 주방을 자동차에 태워 농장을 구경시켜줬다.
흑인거주지와 접경된 지역이었는데, 끝이 안보일 정도였다. 쿠바 산 시가를 건네며, 운을 떼었다.
“식민지시절에는 흑인들을 데려다가 경작했는데, 지금은 전부 기계화돼 흑인노동이 필요 없어졌어.”
“그렇겠죠.”
“자네 생각을 한번 말해봐.”
“정정불안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겁니다. 인종차별정책이 무너지면, 남아공의 정치체제가 흔들릴 것이고, 농장가격도 당연히 하락하지 않겠습니까?”
모 주방은 직감적으로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곤 담배를 깊게 빨았다. 서양인들이 왜, 쿠바 산 시가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았다. 담배 향이 정말 구수했다. 영국신사는 시가를 질겅질겅 씹었다.
“맞아. 내 재산만 아까워해서는 안 되겠지?”
“더욱이 정권이 바뀌면, 부당이익 환수조치를 핑계 삼아 재산을 몰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생각을 못했군.”
영국신사는 심각해했다. 시가를 깊게 빨아대며 나직이 중얼댔다.
“식민지시대에 축재한 재산이긴 해도, 그냥 빼앗길 수는 없지.”
“그럼요.”
모 주방도 공감했다.
“가격을 좀 낮춰서라도 가능한 빨리 처분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영국신사는 그와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운전기사는 내내 대기하고 있다가 시동을 걸었다.
제빵공장은 농장 안쪽에 있었는데, 대단위 규모였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밀 대부분은 원물상태로 수출하면서도 제빵공장을 함께 운영 함으로서 밀의 재생산가공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공장 역시, 자동화기기와 로봇으로 일괄공정을 진행하는 터라 현장 근로자가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영국신사가 공장 내부를 안내하며 말했다.
“기계를 일본회사에서 만든 거야.”
"네...”
“일본경제도 빨간 불이 켜졌다고 하는데, 혹, 못 들었어?”
“들었습니다.”
모 주방도 그 소문을 카지노 판에서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아무튼 남아공을 뜰 생각이라면, 가격을 맞춰서 매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도 좀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
영국 노신사는 그의 견해에 마음을 바꿨다.
며칠 후, 영국신사는 조금 손해를 보면서 매각을 결정했고, 제빵공장도 그 즘에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그리곤 저택 역시 팔고서는 사흘을 호텔에 묵었다. 그리곤 모 주방에게 치레를 했다.
“옆에서 조언을 해줘 고마워.”
“별 말씀을요.”
“10만 달러야.”
영국신사는 수표를 그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모 주방은 사양하고 싶었지만, 돈이 지닌 유혹에 약했다.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난 프랑스 해안 휴양지에 위치한 실버타운에 입주하기로 이미 계약했어.”
“잘 하셨네요. 주변에 거들 사람도 없는데요.”
“함께 프랑스로 갈 텐가?”
“전 여기에 좀 더 머물겠습니다.”
“그러던지. 나중에 프랑스에 오거든 한번 찾아와.”
영국신사는 약도와 전화번호를 남긴 뒤 객실을 나섰다.
삽화: 이기원 작가
모 주방은 여행 가방을 거들며 함께 승강기에 탔고, 현관 밖에서 택시에 실려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노신사를 배웅했다..........<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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