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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분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조금 어제가 좀 낫고 오늘은 좀 더 더웠죠. 또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고 오늘인가 내일인가가 오늘인가요? 벌써 입추 가을이 음력으로는 가을이 시작되었답니다. 조금만 견디고 이겨내면 이 시간도 지나갈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도행전 본문에서 첫 번째 지금 이 문단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행적을 누가가 간략하게 말씀을 정리해 놓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행하셨다고 하는 말씀이었고요. 두 번째가 가르치셨다. 그리고 세 번째가 사도들을 택하셨다고 하는 말씀이었죠.
오늘은 성령으로 명하셨다고 하는 내용을 좀 같이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명하셨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최후의 명령 땅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라고 하는 그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는 경향들이 강한데요. 이 성령으로 명하셨다고 하는 이 말을 이 최후의 명령에만 국한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누가가 지금 이 짧은 구절 안에 예수님의 생애를 압축해서 지금 설명을 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서 성령으로 명령하셨다고 하는 말을 지상 명령으로만 우리가 생각하면 너무 협소한 의미입니다.
이 명령 포함해서 지금까지 예수님이 공생애를 하면서 지내오면서 말씀하셨던 수많은 그러한 말씀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이야기하신 그 모든 내용을 통칭하여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주님이 명하셨는데 그냥 명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명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원어적으로 좀 더 자세히 보면 성령을 통해 명하셨다. 성령을 의지하여 명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함이 있으셨고요. 또 우리처럼 고통도 겪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육체를 입은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예수님이 오직 성령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아멘 여기 이 짧은 구절에서 예수님이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성령은 자의적으로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신이 하시는 말씀을 전하는 영이다. 그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는 가운데 말씀을 하셨기에 곧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이 되겠죠.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또 이렇게 성령에 대해 말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아멘 그러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그 뒤에 신앙을 갖고 있는 우리 모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도 성령님을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거고 또 생각나게 하시는 것도 역시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이 성령을 떠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신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의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를 신화같이 생각하기도 합니다.
옛날 이야기 과거에 일어났었던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하지만 여러분 이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방대합니까? 66권 안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그 말씀에서 여러분들이 경험하신 경험들 혹시 있지 않으신가요? 이 말씀 가운데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발견됩니다. 지금 나를 위로하시는 말씀이 발견되기도 하고요. 또 지금 나를 치료하시는 말씀이 발견되기도 하고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기도를 막 강하게 하는 사람 막 예언을 하고 뭔가 방언을 하는 사람이 이 성령 충만한 사람일까요?
물론 그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는 하나의 표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일깨워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들고 그 말씀에 순복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성령 충만한 인생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성령께서 명하셨다고 하는 이 짤막한 증언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냐 지금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성경, 우리가 또 매일 묵상하고 있는 성경을 묵상하고 있는 큐티, 또 말씀을 통해서 듣는 이러한 말씀의 시간들, 그 시간이 그냥 누군가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하는 이야기로 들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받아들임과 그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하고 실행해 나아가는 순종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크리스찬은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복함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크리스찬입니다. 이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인생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해야겠죠. 말씀을 들어야 지금 나에게 뭐라고 하는지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분명한 믿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따라올 수 있는 거예요.
이번에 수련회를 진행했고 또 이번 주에 여름 성경학교를 합니다. 1박 2일 1박 3일 아이들을 붙들고 같이 막 놀기도 하고 또 말씀을 나누기도 하고 다양한 시간들을 가질 텐데요. 솔직히 여러분 2박 3일 1박 2일 그 시간 가지고 애들을 변화시킨다. 그거는 기적입니다. 솔직히 수련회나 여러분 부흥회나 이럴 때 한 번 참여해가지고 은혜 받았다.
그리고 변화됐다. 이건 일반적인 게 아니라 기적이에요. 그들의 변화는요. 우리 먼저 믿는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모습이 그들의 신앙입니다.
먼저 우리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모든 말씀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믿음으로 받고 그 말씀에 순복하며 나아가는 그 인생이 바로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특별히 가정에서 부모님으로서 또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배드릴 때 같은 예배의 동역자로서요. 특별히 우리 공동체는 아직 이렇게 규모가 크지 않아서 부서들이 막 나눠줘서 예배를 각자 드리지 않잖아요. 주일날 우리 여기 안에 막 유초등부 애들도 가끔 예배드리고 청소년부 애들도 청년들도 같이 예배드리지 않습니까? 그들이 누구를 보고 있을까요? 앞에 있는 목사를 보고 있지만 또 옆으로는 여러분들을 다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번 여름 행사들이 은혜 가운데 잘 진행되기를 위해서도 우리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명하심을 온전히 순종하고 순복하는 인생을 살아감으로 우리의 선한 영향력이 그들에게 확장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다섯 가지의 동사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살아온 생애를 정리했다고 말씀을 드렸죠. 첫 번째 행하셨다. 두 번째 가르치셨다. 사도들을 택하셨다. 성령으로 명령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이 승천하셨다입니다.
승천에 대한 부분은 이제 앞으로 말씀 가운데 다뤄질 부분이라서 제가 좀 뒤로 하고요. 마지막 부분에서 기록했다고 하는 이 부분을 좀 같이 나누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누가가 이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이 초대교회에서 일어났었던 놀라운 역사를 우리가 알 수 있을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이정표가 되는 초대교회의 역사들이 아마 이야기로만 전해오다가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남겨져 있을지도 모르고 아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기록을 남겨놓은 누가가 너무나도 고맙고요.
또 누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쓰게 하신 성령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 기록은요 시공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2천 년 전 아니 수만 년 전 이야기들도 우리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왜 알 수 있습니까?
기록하는 것들이 있는 거예요. 기록이 그냥 전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과 관련된 기록은요. 그 기록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그 당시의 심령들과 동일하게 반응이 일어난다는 게 놀라운 역사입니다.
요즘 우리는 좀 이렇게 기록하는 게 좀 많이 멀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록을 위한 기록 나름대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러분들은 신앙에 있어서 여러분들의 여정을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큐티도요. 지저분하게 쓰십시오. 오늘 큐티를 하면서 내가 말씀 가운데 받은 은혜가 있다면 또 도전이 있다면 기록해 놓으시고 또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주일날 또 이렇게 수요일 저녁에 말씀을 들을 때도요. 여러분 머릿속에 한 마디의 문장으로라도 한 단어라도 기록해 놓으십시오. 성경에 써도 좋고요. 주부에 써도 좋고요. 여러분들 일기장에 써도 좋고 아니면 요즘 메모장에도 좋습니다. 그래야 그것들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중에 어느 순간 내가 그 말씀으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또 나의 그 작은 기록들이 나의 자녀들에게 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기록은 참 중요해요. 그런데 여기서 기록했다고 하는 오늘 본문에서 기록했다고 하는 말이 그냥 이런 글자로 남겼다 이런 의미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헬라어를 보면 포이에요라고 하는 단어를 썼는데 행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아까 전에 예수님의 생애를 설명할 때 5개의 단어가 있었잖아요. 첫 번째가 행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 행함과 이 단어가 기록하다가 같은 단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2천년 전에 이 누가가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 데오빌로를 향해서 기록하는데 공간적으로 데오빌로는 너무 멀리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데오빌로를 향해서 할 수 있는 누가의 최선의 일이 바로 직접 자기가 경험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일어났었던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해서 그에게 전달해 주는 게 누가의 그러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데오빌로를 향한 누가의 사랑이 이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이라고 하는 결과물로 기록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우리는 잘 알죠. 사랑장에서 여러 가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있지만 오래 참는다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 이 오래 참는다고 하는 말도요. 그 원어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희생하다 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인내를 뛰어넘어서 나를 희생하는 적극적으로 나를 희생하고 나를 제물로 내어놓는 그런 행동을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사 희생 제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죽었던 수많은 양과 송아지 소 많은 제물들 그들은 사람을 대신해서 직접 죽임을 당했습니다. 희생 제물이 되었죠. 그 제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요.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지금 이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부족한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나를 향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부모님을 되새길 때 우리의 마음이 찡하고 가슴이 찡한 그 이유는 바로 그 부모님의 희생이 우리의 마음속에 그 부모님의 사랑이 그 추억이 우리의 마음속에 늘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누가가 자신이 사랑해야 할 이 데오비로를 향해서 누가복음 24장 또 이 사도행전 28장 52장에 되는 긴 글을 기록했어요. 지금에야 우리가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쳤다가 지웠다가 바꿨다가 복사했다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시대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필기도구도 편리한 게 없습니다. 파피루스라고 하는 아주 고가의 필기 도구와 물건들을 가지고 거기에다가 글을 써야 되는 거예요.
새 깃털로 글을 적습니다. 한 자 한 자 틀리지 않게 얼마나 적으려고 기록했을까요? 이것은 누가가 데오빌로를 향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기록하는 그 배경이 된 겁니다. 누가는 데우빌로를 향해서 자기의 시간을, 자기의 물질을 자기의 육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이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주님 안에서 그 데오빌로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자기가 가진 이 은혜를 하나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 은혜를 나누고 싶은 거예요.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일들을 이루셨는데요. 예수님 예수님은 단 한 글자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따로 예수님이 직접 기록한 성경은 없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대신 당신 자신을 직접 희생하셨습니다. 인간을 위해 자기 자신을 십자가의 재물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한순간을 희생한 게 아니라 온 전신을 전 생애를 송두리째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자기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단 한 문자 한 글을 남겨놓지는 않으셨지만 그 주님의 사랑을 생생히 받은 사람들이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자 기록한 말씀들이 지금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성경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요. 어쩌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였다면 그 주님의 삶을 기록하는 사랑을 기록하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여기서 기록한다는 말이 아까 전에 누가나 또 예전에 우리가 글 이런 걸 표현한 것처럼 그 글로 남기자 이런 의미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흔적을 지금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요 그냥 나 혼자만 누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으로 기록을 남기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하루하루의 인생 과정 속에서 뭔가를 기록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어떤 삶을 사셨나요? 그 삶의 모습들도요. 여러분들 인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자기의 시간과 자기의 물질과 자기의 인생을 희생해가면서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가 초대교회를 통하여 세상이 뒤집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요즘 우리 기독교 특별히 교회들이 신앙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롭게 변화시키는 기폭제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손가락 받고 비판질 당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교회가 교회가 사랑이 없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 교회가 자기 희생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자기 희생 사랑을 말하면서 우리가 희생하지 않는다면요. 그것은 영향력을 줄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천이 자기 희생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손해 본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렇습니다. 나를 소모시킨다고 생각을 해서 그래요.
근데 여러분 물론 희생하는 과정 속에 소모되는 게 있죠. 그런데 그 희생 뒤에 소모되는 뒤에 나에게 주어지는 더 놀라운 은혜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이번에 여름 전교 학교를 준비하면서요. 아이들은 11명, 교사들 11명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근데 아이들 11명 교사가 14명으로 늘었습니다. 이제 역전됐어요. 근데 그 14명의 어른들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 보수를 받고 지금 그 일을 하는 겁니까? 그 땡볕에서 아이들 위해서 행사를 준비하고 저녁에는 고기 파티를 한 대요. 고기를 또 구워서 애들 먹이고 또 애들 어린애들이 또 7살짜리 애들이 2명 있어서 걔네들은 씻기고 옷 입히고 또 저녁에 잠까지 재워야 되는 부모님들은 오랜만에 편히 쉬실지 모르겠지만 교사들은 그 태양볕에서 고생한단 말이에요.
왜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어요?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은혜를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그 마음으로 하는 거잖아요. 그쵸 근데 여러분 그들이 희생했다고 하면 헌신했다고 그것이 그냥 다 아이들에게테만 쏟아지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부 수련회 때도요. 가장 은혜 받는 사람이 누구냐면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은혜 받는 사람은요. 가장 헌신한 사람들이 은혜 받더라고요. 여름 성경학교도 저는 선생님들이 더 큰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 부모도 자녀들을 자기의 희생으로 아이들을 키운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근데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키우면서 아무것도 안 받을까요? 아니요. 내 생명을 내 삶을 그들을 위해서 소모하고 있지만요. 여러분 여러분들도 또 그 자녀들 때문에 얻게 되는 게 놀라운 은혜가 많습니다.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기도 하고요. 부모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기도 하고요.
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도 하고 설 익은 생명의 소모를 통해서 더 성숙한 생명의 놀라운 신비를 경험하기도 하는 겁니다.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자기 희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더욱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우리의 삶의 기록이 필요하다고요. 우리의 삶에 작은 것들이 기록들이 남아서 그들이 우리의 기록들을 발견하면서 주님을 발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먼저는 여러분들의 기록이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여러분들의 기록이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여러분들의 기록이 여러분들이 품고 기도하는 전도 대상자들에게 확장되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의 삶에 기록을 해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이력서는요. 문자로 기록하는 거기 때문에 날조할 수가 있습니다. 위조가 가능해요. 가끔 그거 문제 생기는 사람들 있잖아요. 안 나온 학교 나왔다고 쓰고 또 학교 가지 않은 자격증 땄다고 그렇게 써가지고 나중에 들켜가지고 문제되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으로 기록하는 우리의 삶의 이력서는 위조 변조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 이력서를 내놓고 그것으로 평가받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그렇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더욱더 깊이 누리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의 삶에 정말 기록을 남기는 우리가 되길 원해요. 그런데 그 기록은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남기는 기록이 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 사랑하는 이웃들, 사랑하는 조국과 또 인류를 위해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의 작은 희생 헌신을 한 번 남겨놓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사랑이 작은 이력서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이 이력서를 내어놓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에게 작은 것 맡기셨는데 제가 이 작은 것으로 이런 기록을 남겨놓았습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