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아파 본 사람은
정신을 좀 차릴 줄 안다.
그래서,
좀 더 너그러울 수도
좀 더 놓고 갈 줄도
좀 더 이해할 수도
좀 더 배려할 줄도,
그래서,
좀 더 그러려니 하고 갈 수도 있기에
좀 더 이쁘게 낮추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왜냐면,
그게 나를 남과 더불어 좋게 만든다는 진리와,
나를 건강하게 해 준다는 사실과,
나의 삶을 현재 수준과 정도에서
풍요롭고 여유롭게 해준다는
믿음과 진실의 경계선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도 때가 되면 간다는
진리와 이치를 더욱더 깊은 마음 속에서
새기게 된다는 의미로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니라면,
이것 저것 자기 생각대로 말을 퍼붓고,
여기저기 내 편, 네 편 필요하니
권모술수와 시시비비를 부추긴다.
다수의 군중심리에 부하뇌동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게 결국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기때문이다.
인간은 각자가 만든 구덩이에
뒹굴다 힘들고 아프면, 남의 탓하기 쉽고
좀 쳐다봐달라고 한다.
빈 깡통이 요란하듯이
시끄럽다는 말이며,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남을 이해하고 베푼다는 것이
생각의 폭을 넓히고,
스스로의 인성과 교양을 기르며
깨달음으로 이끌게 되니,
그게 몸과 마음을건강하게 하며
잘 살게 만든다는 말이다.
사랑을 잃었다고
슬퍼하는 사람은,
내가 만들어 써 먹는 게
사랑인데,
남의 사랑 자기 것으로 착각하니
무지와 욕심으로
스스로 슬프게 만들게 한다.
그래서 흘러간 시간에 머물면
그만큼 인생 더디게 된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이해하면
뒤따라 오는 게
깨달음이고,
그게
사랑이 된다.
따라서
내가 한 만큼만 그 사랑의 크기가
각자 삶의 원동력이 되어
덜 힘들게
덜 어렵게
덜 아프게 간다는 말이다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은
좀 더 가져보려는 부족한
마음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오래 그리워할수록
세상 구경 덜한다.
살아 있는 한
시간은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오직 앞으로 갈 뿐이다.
사람이 지혜로와야 되는 이유다.
현멍한 사람의 생각은
과거에 머물지 않으며,
항상 현실 속 경계선 상의 분기점에
서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올바른 판단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과의 차이다.
생각이 빨라야
앞으로 잘 헤쳐나간다.
힘들고, 아파도
말과 행동과 생각에 대한
"반성과 다짐과 감사"가 없이,
예전과 변함이 없다면
내 삶의 더 나은 변화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며,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