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수첩 보니...길이 5m 대작 그리며 “초조하고 괴롭다”
역대 최대 규모 김환기 회고전
용인 호암미술관서 오늘 개막
허윤희 기자
입력 2023.05.18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벽화 '여인들과 항아리'를 한 관람객이 보고 있다. 김환기 그림 중 최대 규모인 281.5×567㎝ 크기로,
이번에 발견된 김환기 수첩을 통해 제작 연도가 1960년으로 확인됐다. /뉴스1
“오늘도 점심을 굶고 늦도록 벽화, 초조했던 저녁”
“어제도 오늘도 제작. 죽어버리고 싶은 날”···.
대형 벽화를 의뢰받은 40대 화가는 끼니도 거르며 작업에 몰두했다. 어떤 날은 “11시에서 17시 30분까지 달걀 두 개 먹고 제작”하고, 어떤 날은 “제작에서 오는 희열”도 짜릿하게 맛본다. 몰입과 탈진, 만족과 불안을 오가며 이윽고 작품을 완성한 날, 그는 “벽화 완출(完出)! 나대로의 그림 그대로 밀고가자”라고 기쁨과 확신에 찬 문장을 수첩에 적었다. 1960년 1월 25일의 기록이다. 이 남자가 바로 훗날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132억원)를 기록하는 화가 김환기(1913~1974). 이때 완성한 벽화가 2년 전 이건희 컬렉션으로 기증돼 화제를 모았던 ‘여인들과 항아리’다.
김환기, '달과 나무', 1948. 73×61cm_캔버스에 유채. 1948년 신사실파 창립전에 출품된 작품으로, 김환기 특유의 한국적 추상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18일 개막하는 ‘한 점 하늘 김환기’는 최고 경매가라는 기록에 가려진 김환기의 치열한 고뇌와 피땀 어린 노력, 강박에 가까운 집념을 보여준다. 호암미술관은 1년 반 동안의 리모델링을 마친 후 여는 첫 전시에서,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쳤다. 리움미술관 소장품, 국공립 미술관 소장품을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소장가들의 희귀한 작품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김환기, '항아리', 1956, 캔버스에 유채. 국제무대를 꿈꾸며 1956년 파리로 건너간 김환기는 항아리와 산 등 한국적 소재를 더 파고드는 한편, 새로운 환경에서 조형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 작품은 이전처럼 달과 항아리의 직접적인 비유 대신 도자기 자체의 둥근 기형과 선반의 수평선을 조형 요소 삼아 화면을 구성했다. 자신의 애장 도자기를 빼곡히 보관하던 성북동집 작업실의 나무 선반을 연상케 한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가 자신의 애장 도자기를 보관하던 나무 선반과 도자기들을 전시장 아카이브 공간에서 볼 수 있다. /허윤희 기자
전시작 120점 중 유화만 88점.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초기작과 미공개작을 선보이고, 김환기의 유품과 편지, 청년 시절 사진과 스크랩북 등 자료 100건이 처음 공개됐다. 자료들은 김환기의 장녀이자 ‘한국 단색화의 선구자’ 윤형근(1928~2007) 화백의 부인인 김영숙이 자택에 보관하던 것으로,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발견됐다.
김환기가 홍익대 교수 시절 쓰던 수첩. 벽화를 제작하던 시기의 복잡미묘한 심경이 짧은 일기처럼 담겼다.
2층 전시장 아카이브 코너에서 볼 수 있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특히 김환기 그림 중 최대 규모인 ‘여인들과 항아리’(281.5×567㎝)가 1960년작이라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김환기가 홍익대 교수 시절 쓰던 수첩이 발견됐고, 그 안에 벽화 제작 기간의 복잡미묘한 심경이 담겼다”며 “괴로워 죽겠다고 하고, 온종일 그림 그리고, 다음 날은 지쳐서 종일 자고, 다시 의지를 다지는 마음을 짧은 일기처럼 기록했다”고 했다.
김환기, '북서풍' 30–VIII–65, 1965. 178x127cm. 캔버스에 유채. 뉴욕 이주 이후 1965년부터 김환기의 작업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해,
이 작품처럼 달과 산 등 도식화된 풍경 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들로 대체된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전시는 1930년대 중반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70년대까지 40년 화업 여정을 따라간다.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 새, 매화 등 한국의 자연과 전통 모티브가 그의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돼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뉴욕으로 건너간 후엔 국제 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 분투한다. 그 치열한 실험 끝에 다다른 세계가 수많은 점으로 가득한 점화(點畵). 붉은색, 푸른색 사각형 화폭을 가득 채운 점들이 하늘을 유영하듯, 별처럼 총총히 빛난다.
김환기, '하늘과 땅' 24–Ⅸ–73 #320, 1973. 263.4×206.2cm. 캔버스에 유채. 화면을 구분하는 대지의 능선을 따라,
하늘의 축과 땅의 축을 따라 서로 다른 점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즈음 그는 건강이 악화돼 작업의 힘겨움을 종종 토로했다.
이 작품 완성 날 일기에 "죽을 힘을 다해서 완성"이라고 기록돼 있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하늘과 땅’은 전면 점화 중 처음으로 공간을 지칭하는 제목을 화가가 직접 붙인 작품이다. 푸른 점이 찍힌 하늘과 땅이, 화폭을 가로지르는 흰 선 하나로 능선처럼 구분되고, 안정감과 동시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태 실장은 “점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 점을 품고 있는 선과 그 점을 구성하고 있는 면”이라며 “유려한 곡선을 느끼며 감상해보시라”고 권했다.
김환기, '17-VI-74' #337, 1974. 캔버스에 유채. 86x121.5cm. 죽음을 예감하며 이 작품을 그린 작가는 1974년 7월 6일
생의 마지막 점화에 점을 찍고 7월 25일에 세상을 떠난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점화는 검게 변한다. “하루 열여섯시간 서서 일하고, 침실에 들어가면 그냥 죽어버린다” 했을 정도로 몸을 혹사했던 그는 급격히 건강을 잃었다. 뉴욕에서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나이 61세. 1974년 6월 16일 일기에서, 그는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라고 시처럼 읊조린다. 불과 수개월 전, 푸른 점화에서 요동치던 움직임과 다채로운 곡선은 사라지고, 고요하고 정적인 점들만 남았다. 김환기가 일기에서 쓴 대로, 그가 찍은 점들은 “하늘 끝에 가 닿았을까”. 극심한 고통 속에서 눈물 흘리듯 점을 찍은 마지막 그림 앞에서 뭉클해진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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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5
서울 性醫學 설현욱
2023.05.18 06:58:18
餘談) 김환기 전남 신안 191374 / 61년 살다 감.. 됴쿄 간조 중졸 니혼대학 졸.. 이 나라 작가중 가장 비싼 거래가를 기록..
그 부인이 변동림..이상이 죽고나서 김환기와 재혼.. 딸들은 모두 전처 소생..
이 대단한 부인이 파리에서 소위 얘기하는 김환기 신드롬을 만들었고..
난.. 일제 강점기 이 나라 화가들 작품 별로라고 생각해.. 이중섭 포함..
뭐 그냥 추상화를 이런저런 뻔한 말들 덧붙여 비싸게 만드는 것이고..세금탈세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이 시대 화가들은 렘브란트 얘기만 꺼내도 경련을 한다며..?
3주전 즘 홍대 앞 김진호 화백과 예전 서교호텔 옆 복어집에서 복어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왜 그러노..? 했더니 몽땅 다 야수파니까..그러더군..
무애
2023.05.18 06:51:32
사람마다 좋아하는 장르나,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김환기작품에서 난 그다지 미술적 언어를 느낄 수가 없다.
뭐, 벽지 같은 느낌. 비싸니까 좋아보인다는 사람들이 있을 지 몰라도 키치 느낌이 확 든다.
한국적 감성에만 호소하는 내수용 작품!
okcho
2023.05.18 06:25:38
예술이라 하지만,술이란 기교인가 아닌가 ?,...기교의 예술은 한계가 명확한 것이 분명하고...
기교가 아닌 술이란....결국 미침의 경지라 할만 하다....미치지 않으면....자신과 대면해서 미치지 않으면....
초조하거나 괴로움이란 없다...모두 미쳤다...김환기도...박수근도...이중섭도...유영국도...
수리
2023.05.18 07:50:04
팔다리가 축 늘어진 듯한 이 그림이 우째 그렇게 비쌀까? 생기라곤 없어 보는 이마저 기운 빠지게 하는 화면.
kang8899
2023.05.18 08:37:11
그래 그런 거인도 자기 마음을 컨트롤 못하는 거지 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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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개인전 안내장 속 그림은 소마미술관에
파리 진출 직전 전시회 대표 그림
한국근현대미술展서 전시 중
허윤희 기자
입력 2023.05.18.
김환기, '산'(1955).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에 걸려 있다. /소마미술관
김환기는 1956년 프랑스 파리에 진출했다.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 김환기’전 아카이브 코너에는 이때 파리행을 앞두고 서울 동화화랑에서 열린 ‘김환기 도불(渡佛) 미전’ 표지와 전시작 목록이 나왔다. 황토색 갱지에 등사한 표지에는 우뚝 솟은 산과 달이 그려져 있다. “수화(樹話·김환기의 호) 화백이 파리 베네지디 화랑의 초청을 받아 금년 봄 파리에 가서 개인전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 신사실파 동인들은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의 개인전을 열어 환송하는 바입니다.”
1956년 파리 진출을 앞두고 열린 '김환기 도불 미전' 안내장 표지. /환기재단·환기미술관
1956년 '김환기 도불 미전' 전시작 목록.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이 흑백 표지 속 그림 실물이 지금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 걸려 있다. 8월 27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 전시장이다. 작품 제목은 ‘산’(1955). 산천을 은은한 쪽빛 면과 선으로 구성한 그림에는 매화, 둥근 달, 날아가는 새 등 그가 즐겨 그리던 한국적 소재가 모두 녹아 있다.
허윤희 기자 편집국 문화부 기자